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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Timmons, Henry Loyola(1878-1975, SP) / Timmons, Laura Louise McKnight
 작성자 : 김종봉  2017-06-13 14:57:01   조회: 1552   
 첨부 : 내한 선교사 최종 조사 보고서 M203 -Timmons, H, Loyala.hwp (645120 Byte) 
Timmons, Henry Loyala / Mrs. H. L. Timmons (nee Laura Louise McKnight)


1. 생년연도:
1878년 8월 6일 미국 사우스 케롤라이나 주 티몬스빌(Timmonsville) 근방 달링톤 카운티(Darlington County)에서 출생하였다.

2. 한국명:
김(金)로라

3. 학력:
사우스 케롤라이나 콜롬비아에 있는 장로교 고등학교를 마쳤고
노드캐롤라이나 의과대학 졸업

4, 소속교단:
미국 남장로교(SP)

5. 경력:
1912년 남장로교 선교사로 부인과 함께 내한, 한국어 공부
1913년 전남 순천에 주재, 진료소 마련하여 의료사업, 전도
1915년 현대식 건물 마련하여 병원으로 발전시킴
부인은 순천에서 농촌부녀자들의 계몽과 성경교육 담당
과로로 치료차 귀국 후 다시 내한, 전주예수병원에서 활동
아들도 의사로 전주병원에서 활동
1926년 본국으로 귀국
1975년 소천 함

6. 가족사항:
Timmons, Laura Louise (부인),
Timmons, John R (아들)

7. 결 혼:
1906년 8월에 로라(Laura Louise Mckight)와 결혼했다.


8. 티몬스 Timmons, Henry Loyala (1878-1975)
미국 남장로회 한국선교사, 의사, 미국 사우드 캐롤라이나주에서 출생, 노드캐롤라이나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1912년 남장로회 선교부로부터 한국선교사로 임명되어 부인(Laura Louise)과 함께 내한하였다.
1년 동안 서울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고 1913년 전남 순천선교부의 개설과 함께 순천에 주재하였다.
티몬스 의사는 곧 순천에 작은 진료소를 마련하고 의료사업을 통한 복음전파에 전력하였다.
1915년에는 현대식 병원건물을 마련하고 35개 병상 규모의 병원으로 발전시켰다.
병원의 좋은 시설과 티몬스 의사의 놀라운 의술이 널리 퍼져 순천지역뿐 아니라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왔다. 그는 과로가 겹쳐 병을 얻게 되자 치료차 귀국하였다.
그 후 다시 내한하여 전주예수병원에서 의사로 활약하다가 1926년 귀국했다.

9. 티몬스의 가정환경배경
티몬스는 건축가인 아버지 윌리암 플랭클린 티몬스(William Franklin Timmons)의 영향인지 모르겠으나 의과대학에 들어가기 전 통신과정의 건축공부를 했는데 이는 훗날 한국에서 병원을 건축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 후 1911년 노스케롤라이나 의과대학과 시카고의 러쉬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페이에트빌(Fayetteville)에 있는 하이 스미스 병원(High smith Hospital)에서 인턴 과정을 마쳤다.
티몬스는 인턴 과정을 마친 직후 1912년 의료 선교사로 임명받아 아내와 다섯 살 된 사라(Sarah) 그리고 두 살 된 헨리 (Henry1. Jr)와 함께 한국에 왔다.

10. 티몬스의 활동
1912년에 전주 병원에서 근무하며 우리말 공부를 하고 있던 티몬스(Henry Loyola Timmons, 金로라) 의사는 1913년에 순천 진료소를 열고 환자를 진찰했으나 환자가 많아지므로 1915년에 현대식 건물로 병원을 건축했다. 티몬스 원장이 건강 관계로 미국에 돌아갔을 때는 광주병원의 윌슨 원장이 겸무를 하며 의료 선교 사업에 지장이 없게 운영하였다. 티몬스는 1922년에 한국에 다시 와서 전주 예수 병원장으로 수고하다가 1926년에 아주 귀국했다.
순천 병원에는 1917년부터 로저스(James McLean Rogers, 魯宰世, 노재수) 의사가 부임해 간호실, 전염병실 및 기타 설비를 확충하고 건물도 4층으로 증축했다. 특히 극빈 환자들의 치료에 심혈을 기울여 그의 별명을 ‘노제세(魯濟世)’라고 불러 불신인들에게도 칭송을 들었다. 일제 말기 강제 출국 때까지 순천에서 의료 선교 사역과 전도 사업을 계속했다.
순천에 병원을 열기 위해 한국의 의료 선교사로 부임한 티몬스는 한국말을 배우고 의료 선교 사역에 적응하기 위해, 전주에 와서 8개월 동안 임시로 다니엘 가족과 함께 지냈다.
첫 번째 그의 임무는 당시 전주 예수병원의 3대 원장 토마스 다니엘과 협력하는 일이었다.
1913년 티몬스는 순천으로 임지를 옮겼고, 가로·세로 3m 짜리 판자로 된 집을 새로 지어 의료 사역을 시작했다.
브라운 박사가 쓴 한국 선교 역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비좁은 막사에서 티몬스는 모든 수술을 했으며, 수술한 환자들을 바닥에 눕혀 두어야 했다.”
순천에서 의료 선교사의 진료나 치료가 처음 이뤄진 곳은 주택이나 교회가 아니었고, 병원은 더더욱 아니었다. 순천선교부 공사를 감독하기 위해 가설용 목재로 축조된 10자×10자(≒3m×3m) 크기의 건축 현장 임시 건물이었다. 이곳에서 진료가 시작된 것은 선교부의 각종 시설공사가 한창이던 1913년으로 한국의 풍토병인 이질에 감염된 코잇선교사 가족의 치료가 계기였다. 당시 한국에 처음 파견된 다른 선교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학공부 중이던 티몬스 의사와 그리어 간호사의 파견으로 진료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임시로 축조된 건물에서 7개월 동안 68명을 수술하고 3814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11. 선교사 자녀들의 묘지
이곳에는 유난히 선교사 자녀의 묘가 많다. 예수병원 초대 병원장이었던 마티 잉골드의 사산된 딸과 기생충 근절에 공헌한 의사 폴 크레인의 어린 아들, 태어난 지 22개월 만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사망한 헨리 티몬스(Henry L. Timmons) 선교사의 아들, 그리고 전주와 서울에서 활동한 윌리엄 클락(William H. Clark) 선교사의 두 살배기 아들과 윌리엄 린튼(William A. Linton)의 딸의 유해가 이곳에 안장되어 있다. 묘역 한구석에는 존 폴타(John W. Folta) 목사가 돌본 해진이라는 고아의 묘비도 있다.

12. 티몬스 선교사의 초상화 사진


13. 호남 선교자 7인이 시초 사진과 활동 소개

호남 지방 선교의 역사는 미국 남장로교 7인의 선발대(Seven Pioneers)에서 시작된다. 이들을 조선으로 오게 한 인물은 아펜젤러와 함께 조선에 온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 호레이스 언더우드였다.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교회를 순회하며 한국 선교의 필요성을 호소했고, 7인의 평신도들이 한국 선교사로 자원했다. 윌리엄 전킨(William M. Junkin, 한국명 전위령) 부부, 윌리엄 레이놀즈(William D. Reynolds, 한국명 이눌서) 부부, 루이스 테이트와 그의 여동생 매티 테이트(Mattie Tate, 한국명 최마태), 그리고 여의사였던 린네 데이비스(Linnie F. Davis) 등 7인은 1892년 11월,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전라도와 충청남도 서남부로 파견되어 복음 전파와 의료, 교육선교에 생을 바쳤다.
초기 선교사들이 부딪힌 장벽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질병이었다. 당시 조선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긴 세균성 이질, 학질 등에 의해 수많은 선교사들이 병을 얻거나 목숨을 잃었다. 당시 선교사 자녀인 유아의 사망률은 아프리카 수준을 넘었다. 이로 인해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는 한국 선교팀의 철수를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전주 예수병원 의학박물관이 있는 다가산 자락에 위치한 전주 선교사 묘역에는 전라도 내 첫 의료선교의 씨앗을 뿌린 선교사 17명과 그 가족들이 묻혀 있다. 묘역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첫 번째 있는 것이 린네 데이비스의 묘소다. 7인의 선발대 중 가장 먼저 순교한 그녀는 한국에 올 때 34세의 독신 여성이었다. 군산에서 부녀자와 아동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던 그녀는 의료선교사로 온 윌리엄 해리슨(William B. Harrison, 한국명 하위렴)과 결혼한 뒤 전주 예수병원에서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다가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어 45세의 나이에 순교했다.
그녀 옆에는 ‘군산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전킨 선교사와 그의 세 자녀 시드니(Sidney), 프랜시스(Francis), 조지(George)가 잠들어 있다. 군산 선교의 개척자이며, 1904~1908년에 서문교회 담임목사를 지낸 전킨은 군산에 많은 학교를 세웠다. 1908년 그가 폐렴으로 순교한 뒤 부인 메리 전킨(Mary R. Junkin, 한국명 전마리아)은 서문교회에 남편의 선교를 기념하는 대형 종을 기증하는 한편, ‘전킨 선교사를 기념한다’는 의미를 담은 기전여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 학교의 교장을 역임한 독신 여성 넬리 랭킨(Nellie Beckwith Rankin, 한국명 나은희)은 전주에서 여성 교육에 힘쓴 인물이다. 시골 부인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다니던 중 맹장염 수술 합병증으로 32세의 젊은 나이에 순교했다. 마치 첫 번째 순교자 아벨처럼, 주님의 복음을 위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의 삶을 드린 그녀를 남은 이들은 이렇게 추모했다.
“뎌가 죽엇스나 그 밋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나니라”(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개역개정).
그런데 그 당시, 풍토병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진 선교사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던 이가 있었다. 간호사 출신의 로라 피츠(Laura May Pitts) 선교사였다.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11년간 전문 간호사로 활약한 경험이 있는 그녀는 한국 선교사를 자원하여 병든 선교사들을 정성으로 간호했다. 그러나 그녀는 한국에 온 지 6개월 만인 1911년, 말을 타고 광주로 가던 중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32세였다.
이곳에는 유난히 선교사 자녀의 묘가 많다. 예수병원 초대 병원장이었던 마티 잉골드의 사산된 딸과 기생충 근절에 공헌한 의사 폴 크레인의 어린 아들, 태어난 지 22개월 만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사망한 헨리 티몬스(Henry L. Timmons) 선교사의 아들, 그리고 전주와 서울에서 활동한 윌리엄 클락(William H. Clark) 선교사의 두 살배기 아들과 윌리엄 린튼(William A. Linton)의 딸의 유해가 이곳에 안장되어 있다. 묘역 한구석에는 존 폴타(John W. Folta) 목사가 돌본 해진이라는 고아의 묘비도 있다.
낯선 선교지에서 어린 자녀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선교사들의 아픔은 어떠했을까? 이곳에 서면 이 땅에 복음의 나무들이 자라날 그날을 기대하며 마치 제물처럼 죽어간 어린 자녀들을 묻었을 선교사들의 아픔이 시리게 전해져 온다.

14. 현재 한국 기독교 유적지로 지정
한국기독교사적 제30호: 예수병원 전주선교부 남장로교선교사 묘원 / 예수병원의 전주선교부 남장로교선교사 묘원은 1892년에 호남 선교를 처음 시작한 미국남장로교 개척선교사 7인의 선발대 중 2명이 묻혀있는 호남 선교의 뿌리다. 7인의 선발대 일원인 데이비스 해리슨은 예수병원에게 봉사하다 41세의 나이에 사망했으며, 윌리엄 전킨은 군산선교의 개척자로 전주서문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하고 16년간 사역하다가 43세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의 묘 앞에는 세 자녀의 묘비도 함께 있다. 그 외에 이 묘원에는 설립자 마티 잉골드 자녀, 윌리엄 크레인(구바울 전 병원장 자녀), 윌리엄 린튼의 자녀, 헨리 티몬스(티몬스 전 병원장 자녀), 로라 피츠(간호사), 넬리 랭킨(전주기전여학교 2대 교장) 프랭크 켈러(병원장을 역임), 박영훈(의사) 등 예수병원에서 헌신한 선교사와 가족 등 17명이 안장되어 있다.

15. 1913년 순천 최초로 서양의술이 행해진 가설건축물과 1914년 개원한 순천 최초의 병원인 순천병원


어학공부 중이던 티몬스 의사와 그리어 간호사의 파견으로 진료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임시로 축조된 건물에서 7개월 동안 68명을 수술하고 3814명의 환자를 진료했던 곳이다.

16. 현재 예수 병원 박물관 내부전경


17. 예수병원 전경


예수병원은 미국남장로교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 의료선교기관으로 118년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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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학기 동안 귀하게 가르쳐 주신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017-06-13 14:5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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