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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Sharrocks, Alfred M.(?-1919, NP) / Sharrocks, Mory Ames
 작성자 : 이경훈  2017-06-25 08:31:58   조회: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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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기본사항

1. 이름: Sharrocks, Alfred M. (샤록스 / 謝樂秀 / 미국 / NP)
2. 생몰연도: ?-1919.12.25 미국에서 출생
3. 학력: 미주리주 파크대학 졸업
4. 연표
1899.9.29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서울선교부에 부임
1900 평양선교부로 전임
1901 선천지역 의료선교사로 파견
1904 강계로 전임, 신성학교 교감으로 취임_학교 발전
1911 예장7노회 설립회계,
1912 105인사건의 음모격려자로 연루
1917-19 세브란스의전 의사 및 교수로 의과대학 교과서 역술
1919.12.25 미네소타주 로체스터에서 소천
1938 부인 은퇴후 귀국,
1950.5.30 뉴욕에서 소천
5. 가족사항
부인: Sharrocks, Mory Ames(1899-1938)
딸: Sharrocks, Ella J.
아들: Allen, Horace E.(?-1956.9)


II. 선교사소개: 샤록스(Sharrocks, Alfred M., ?-1919)

1. 개척선교사로 준비되었던 푸른눈의 청년.
미국 북장로회의 의료선교사였던 샤록스(Sharrocks, Alfred M., ?-1919)는 미국 국적의 선교사이다. 그는 21세가 되던 해에 기독교인으로서 일생을 바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선교사가 되기 위해 파크대학(Park College)에 입학하였다. 파크대학은 교육 커리큘럼 자체에 학생들에게 해외 선교지의 개척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노동을 바탕으로 한 현장실습교육이 짜여져있는 학교였다. 따라서 파크대학에서 공부를 했던 샤록스 또한 4년간 개척선교사로서의 실용적인 경험을 쌓으며 개척선교사로 준비되었다.
개척선교사로 충분한 교육을 받은 샤록스는 대학을 졸업한 후, 한층 더 유능한 선교사가 되기 위하여 해외에서의 전도활동에 의료활동이 유용한 영역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샌프란시스코의 쿠퍼 의과대학(The Cooper Medical College)에 진학하여,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899년 9월 29일 부인(Mrs. A. M. Sharrocks)과 함께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서울선교부에 부임하게 되었다.
샤록스는 한국에 들어온 처음 1년간은 서울에서 한국어학습과 더불어 의료활동을 전개하였고, 다음해에 1년간 평양에서 의사로 활동하며 본격적인 선교를 위한 준비과정을 마치게 된다. 그리고 1901년 선천선교부가 개설되며 선천지역 개척선교사로 파견되었다.

2. 선천 최초의 개척선교사.
샤록스는 선천선교부의 개척과 더불어 본업인 의료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병원건물이 없어서 어두운 임시 한옥건물에서 진료를 하였다. 또한 첫 수술을 방바닥에서 집도하는 한편, 수술을 보조할 조수가 없어서 아내인 샤록스 부인이 조수역할을 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의료활동을 하였다. 샤록스가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의료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의료활동을 단순한 박애정신에 뿌리밖은 ‘선한 일’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고, ‘하나님의명령’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가치관에 있었다.
샤록스는 순수한 자비심으로 환자를 고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랑의 실천이 의료선교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의 치료의 기적 사역,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고린도전서 13장을 제시하며 “내가 매일 밤낮으로 환자를 돌보며 나의 생명을 내어준다고 할지라도, 선교부를 빛내려는 동기 또는 환자의 영혼을 구하려는 동기라 할지라도 사랑에서 하지 않는다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의료활동과 전도활동뿐만 아니라 수년간에 걸쳐 남학교를 지도하였고, 선천지역에 세워진 다수의 미션건축을 담당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소화해내는 전형적인 개척선교사였다.
물론 샤록스의 사역은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 같다. 사역 첫해에는 티푸스에 걸려서 고생을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해부터 교회가 약 300여명으로 성장하는 등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이후 1911년에는 마을에서 약 2500명이나 되는 숫자가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개척선교사로서 매우 다양한 활동을 소화했던 샤록스는 최초의 선교사 주택인 허니문 하우스(Honey Moon House)와 자신이 의료활동을 했던 선천 미동병원(1905년 설립)등 선천에 있는 많은 건축물의 설계를 비롯한 건축활동을 감당하기도 했다. 특별히 허니문 하우스는 샤록스가 선천에서 최초로 계획한 선교사 주택으로 샤록스 부부와 개척 당시의 6명의 선교사가 같이 생활하며 선교활동을 시작하는 거점이 되었는데, 초기에 내한한 선교사들의 한국에의 동화에 대한 노력과 사명감을 고려한 건축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평가는 샤록스가 한국 선교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것을 고려하였으며, 체계적이고, 적극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평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다.

3. 한국의 미래에 도전한 선교사.
한국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은 저술활동, 번역, 교육 등을 통해 한국의 교육발전에 매우 큰 도움을 주었다. 샤록스도 한국 교육의 발전에 매우 큰 도움을 준 선교사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취임하여 에비슨(Olive R. Avision), 웰스(J. Hunter Wells), 빈튼(vinton)등과 함께 의과대학 교과서인 해부학 · 생화학 · 생리학 · 약물학 · 세균학 · 위생학 등을 역술하였다. 또한 1904년 강제로 전입하였고, 1909년 매큔(G. S. McCune)과 함께 신성학교 교감으로 취임하여 파크대학의 교육체제인 3H 교육, 즉 지(Head), 덕(Heart), 공(Hand)의 집성교육을 실시하였다.
샤록스를 비롯한 선교사들이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전반에서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했던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사명 때문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 한국교회를, 더 나아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이끌어갈 인물들을 배출하는 것이 선교의 사명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특별히 샤록스를 비롯한 선교사들이 오늘날 북한 지역에서 활동했던 것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선교 활동들은 1907년 평양의 대부흥운동을 준비시키신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각지에서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고, 복음 전파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변혁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인 평양대부흥운동이 준비되었던 것이다.

4. 한국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 선교사.
샤록스는 1912년 105인 사건 판결문에는 음모 격려자로 연루되기도 하였으며, 3.1운동이 발생하고 나서 게일(Gale), 에비슨(Avison), 하디(Hardie), 노블(Noble)등과 함께 선교사 대표로서 일본의 크리스천으로 중요 요직에 있는 우사미, 와다나베 고등법원장, 세키야 학무국장, 서울 프레스의 야마가다씨, 탄와 씨를 만나 3.1운동의 발발이 무단정치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폭동 진압에 협력해줄 것을 요청하는 이들에게 이 운동을 중지시키는 일은 무리한일이고, 만약 그렇게 한다면 반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또 그러한 행위는 본국 정부에 의해 금지되었다는 사실을 들어 거절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샤록스를 비롯한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정서적으로 조선인의 입장에 있었고, 그들의 노력을 통해 세계 언론을 크게 불러일으키고, 전세계에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2017-06-25 08:3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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