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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Ross, Cyril(1868-1963, NP) / Ross, Susan Shank
 작성자 : 신영미  2017-06-25 23:11:47   조회: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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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1. 이름: Ross, Cyril / 시릴 로스 / 한국명: 노세영(盧世永)
2. 생몰연도: 1867.4.24-1963.2.5.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897-1937.4.
5. 연표
1867.4.24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피블스(Peebles)에서 출생
1897 맥코믹 신학교 졸업
1897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부산에서 전도활동
1899 의료선교사 어빈과 경남 함안에 이영리교회 설립
1901 부산의 영주동교회 설립, 구마산교회의 기초를 닦음
1902.11.25 평북의 선천으로 이주, 남자성경학교장으로 신성학교 설립 참여
1903 강계지방 전도여행, 만주지방 전도활동
1904 샤록스와 강계지방 여행하고, 알렉산더휴양소 건립
1912 장로교총회 조직때 초대 평북노회장에 취임
1912 여름 만주에 부인성경반 조직하여 지도
성서개역위원으로 한국성서 개역작업에 참여
1937.4 선교사직 사직하고 귀국
1963.2.5 캘리포니아주 그렌데일에서 소천
6. 가족사항
부인: Ross, Susan Shank (1897-1937.4)
딸: Ross, Lilian (노일련: 盧一蓮) (1926.9.28-1954)

부인: Ross, Susan Shank
1. 이름: Ross, Susan Shank / 로스 / 한국명: 없음
2. 생몰연도: ?-1954.6.16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897-1937.4.
5. 연표
1897 내한하여 부산에서 의료선교활동
1902 대구에서 잠시 의료활동
1903.4 로스를 따라 선천으로 이주, 선천에 최초의 서양의술 소개하고 다른 의료선교사들
이 오기 전에 이미 많은 환자를 돌보며 복음전파에 크게 기여
1937.4 사직하고 귀국
1954.6.16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에서 소천


II. 선교사 소개: 시릴 로스 부부(Cyril Ross / Ross, Susan Shank / 1897-1937)

1. 부산지방에서의 활발한 선교 활동
시릴 로스(Ross, Cyril)은 미국북장로교에서 파송한 선교사이다. 그는 1867년 월 2일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피블스(Peebles)에서 출생하였으며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한국명은 노세영(盧世永)으로 1897년 의사인 부인 (Susan Shank)과 함께 내한하여 부산지방에서 전도활동을 하였다. 1899년에는 의료선교사인 어빈(Charles H. Irvin; 漁乙彬)과 함께 전도하여 경남 함안군의 이영리교회를 설립하였으며 1901년에는 부산의 영주동교회도 설립하였다.

“부산부 영주동교회가 성립하다. 선시에 선교사 노세영의 전도로 강형린, 장여익, 박원
일, 김성윤이 신종하야 사가에 예배하다가 교우가 점가하야 초옥을 매수하야 예배당으
로 사용하얏고 기후에 와제 14평 예배당을 개축하니라.“

시릴 로스가 활동했던 선천은 성벽이 둘러져 있지 않은 마을로서 그 역사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다. 선천은 서울에서 목단과 북경으로 가는 간선도로 상에 있다. 초기 선교사들이 의주의 기독교인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모두 선천을 지나갔지만, 이곳에서 머물렀다는 기록을 남긴 자는 아무도 없었다. 언더우드 박사는 일찍이 1887년에 그 마을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나 그 장소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지 못했다. 처음에는 북쪽의 새 선교기지가 의주에 세위질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휘트모어가 그 지방을 여행하기 시작하면서 선천을 더 바람직한 장소로 확신하게 되었다. 그것은 강계가 평안북도 북부의 중앙에 있듯이 선천이 평안북도 남부의 중아에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부지로 선택할 뜻을 품은 마펫과 휘트모어는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리하여 새 선교지가 선천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선교기지가 개설될 때는 조랑말이나 가마가 유일한 여행 수단이었다. 기차의 경적소리가 선천에서 1905년 4월 28일에 처음 울려 퍼졌다. 선천지역에 선교기지가 개설되고, 전도사역이 이루어지고, 사경회와 성경학원, 교육 및 의료사업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시릴 로스는 구마산교회에서 7명을 학습시켜 교회의 기초를 닦았다. 선천에서는 남자 성경학교장으로 있으면서 신성학교의 설립에도 참여하였다. 선천의 남자중등학교는 맨 처음에 휘트모어가 책임을 맡았고, 다음에는 로스가 맡았으며, 그 후 1909년까지 한동안 한국인들이 경영했으며, 그때는 70명의 학생들과 9명의 첫 학년 졸업생들이 있었다.
시릴 로스는 경남지역이 오스트레일리아장로교의 선교지역으로 결정됨으로 그가 먼저 1902년 11월 25일 평북지역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선천으로 이주하였다. 1900년 샤록스(A. M. Sharrocks)의사 부부가 베스트(Best) 양과 함께 선천을 방문 후 휘트모어 목사와 함께 이사하여 ‘숙소’에 입주했다. 그들은 두번째 해인 1902년 10월 어느 날의 달 밝은 밤에 선교기지 회원들이 연례 모임에서 돌아왔을 때, 컨스(C. E. Kearns)목사 부부와 동행했다. 그리고 11월 25일에는 시릴 로스 목사가 도착했고, 로스 부인과 아이들은 1903년 4월에 도착하였다. 외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로스 부부가 살게 될 집, 곧 ‘제인 P. 워트먼 빌딩’(Jane P. Wortman Building)이라고 명명된 집이 1904년에 완공되었다. 선천의 선교기지는 1902년의 보고서에서 시골에 7개의 순회구역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의주와 북부의 두 순회구역은 오랫동안 휘트모아가 담당했으며, 컨스(1902-1907), 로스, 로버츠의 도움을 받았고, 램프(H. W. Lampe)에게 인계되었다. 시릴 로스는 블레어(H. E. Blair) (1904-1907)와 함께 용철 순회구역을 담당하였다.

2. 한국에 파견된 선교사 최초로 만주에서 전도활동
로스는 1903년초 강계지방을 전도여행하고 5일동안 성경 강습을 실시하여 많은 결신자를 얻었다. 그가 사경회를 이끈 5일 동안 “그 교회는 밤중에 두 번 돌팔매질을 당했으며, 한 번은 뒷 담장에 불이 났다.” 이번 여행으로 로스는 만주 양자동의 기독교인 집단을 찾은 최초의 방문자가 되었다. 그는 “먼 북쪽” 지방을 2년 동안 관할하고 있었다. 그는 1905년 9월에도 강계와 위원에서 두 번 사경회를 열었는데 각각 100명씩 참석했다고 보고하였다. 그는 한국에 파견된 선교사로서는 최초로 만주에서 전도활동을 하였다. 이후로 그는 먼 북쪽지방까지의 전도책임자로 선임되었다. 1904년에는 샤록스(Alfred M. Sharrocks)와 함께 다시 강계지방을 여행하였다. 캐나다의 「터론토부인회」의 자금지원으로 강계에 건물을 구입하여 알렉산더 휴양소를 세워 강계지역 선교기지로 삼았다. 그리고 그는 남자 성경학교 교장을 맡았다. 남자성경학원의 첫 학기는 1911년 2월 선천에서 남자들의 ‘대’사경회가 종료된 직후에 개최되었다. 출석자는 65명이었다. 로버츠목사가 첫 번째 교장이 되었으며, 램프목사가 이를 넘겨받았다. 램프는 시릴 로스목사와 함께 종종 임시변통으로 교장 역할을 하였다. 그는 1912년에는 장로교총회가 조직되면서 최초의 7노회 창립 당시 초대 평북노회장에 취임하였다. 그 후 계속 선천지방의 선교사업을 주도하였다. 이와 더불어 만주선교에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1912년 여름에는 다시 만주에 전도여행을 하여 부인성경반을 조직하고 이를 지도하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성서개역위원으로 1937년 완성된 한국성서 개역작업에 참여하여 한국성서 사업에 큰 공을 남겼다.

3. 의료선교사로 활동
로스 부인은 1903년 선천에 최초의 서양의술을 소개하였고 다른 의료선교사들이 선천선교부에 오기 전에 이미 많은 환자를 돌보며 이와 함께 복음전파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로스 부인은 부산지방에서 의료선교사로 활동을 하였으며 대구의 선교기지에서도 의료 활동을 하였다. 그녀는 1901년 초 존슨 박사가 발진티푸스에 걸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회복되어 한동안 일본에 가서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그 기간에 시릴 로스(Mrs. Cyril Ross, M. D.) 여의사가 부산에서 와서 대구 선교기지의 의료 업무를 담당하였다. 그녀는 선천에서 치솜(W. H Chisholm)박사 부부와 피터스(A. A. Pieters) 의사의 부인과 함께 선교기지의 회원으로 있으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병원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으며, 특별히 초기 몇 년간 그리고 다른 의료 사역자들이 부재한 기간에 적극적으로 의료사역에 종사하였다. 그리고 선천의 여자중등학교(보성) 개교를 도왔다. 선천의 여자중등학교는 1907년 가을에 개교하였고, 체이스 양이 책임을 맡았다. 로스 부인은 서울에 있는 우리 선교회의 다른 여자중등학교를 졸업한 ‘송씨’와 함께 체이스 양을 도왔다.

4. 학구열에 불타는 선교사
북부에서는 평양과 더불어 가장 왕성한 선교열을 보여주었던 선천 지역에서 무려 34년간 활동하면서 선천지역을 주목받는 선교지로 끌어 올렸던 시릴 로스 역시 맥코믹 출신이었다. 그는 매세츠세츠주 노스 아담스(North Adams)에 있는 윌리암 대학(William College)을 졸업하고 맥코믹 신학교에 진학해 1897년에 졸업했다. 남다른 학구열을 가지고 있던 로스는 틈이 날 때 마다 학업을 계속해 프린스톤에서 B. D.를 Park College에서 M. A.를 그리고 달라스 신학교에서 Th.D. 학위를 받았다.

5. 대를 이은 선교사 가문
한국에서 출생한 그의 딸 (Lilian Ross; 노일련)은 부모의 뒤를 이어 1926년부터 1954년 대구에 귀임하여 은퇴할 때까지 한국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그녀는 황해도 재령, 평북 강계, 평양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며 1941.10.6 기도문사건으로 강제 출국을 당하고 중국 상해를 거쳐 필리핀에 도착했다(11.17). 해방후 재내한 하여 대구지역에서 구제사업에 주력하였으며 한때 일본 교토 부근의 한국인 교포를 위한 선교사업도 하였다. 1950년에는 평양을 방문하여 평양교회 복구사업에 동참하였으며 노모의 병환으로 일시 귀국하였다. 그녀는 1954년 대구에 귀임하여 은퇴할 때까지 부모의 뒤를 이허 헌신하였으며 은퇴 후에도 한국에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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