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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Kagin, Edwin H.(미상, NP) / Kagin, Frances Mary Johnstone
 작성자 : 최문환  2017-06-27 17:02:16   조회: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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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선교사 기말보고서 / M0083 / Kagin Edwin


선교사 소개 : 계군(Edwin H. Kagin)

I. 기본사항
Kagin, Edwin H. ( 카긴 / 桂君 / 미국 / Northern Presbyterian (Presbyterian U.S.A.) (미 북장로회)

1. 이름: Kagin, Edwin H. / 카긴 / 한국명 : 계군(桂君)
2. 생몰연도: 알 수 없음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교, 청주선교부
4. 한국 선교기간: 1907.08.30. - 1921.01.17.
5. 연표 1907.8.30. -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청주선교부에 소속
밀러(F.S. Miller)와 함께 청주 및 충북지역 선교
1914 - 존 스톤과 결혼
1921.1.17. - 선교사직 사임하고 귀국, 미국에서 목회
6. 가족사항: Johnstone, Mary(부인)



II. 선교사 소개

카긴(Edwin H. Kagin)은 미북장로회 선교사로 한국명 계군(桂君)이다. 1907년 8월 30일 내한하여 충북 청주선교부에 배속되었으며 밀러(F.S. Miller)와 함께 청주 및 충북지역 선교의 기틀을 잡았다. 1921년 1월 17일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귀국하여 미국에서 목회했다. 부인(Frances Johnstone)은 1908년 남감리회 여선교사로 내한하여 개성의 미리흠여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1914년 카긴과 결혼하면서 북장로회 선교사로 임명받아 청주에서 부인중심의 선교사업을 추진하다가 1921년 사임하고 남편과 함께 귀국하였다.


1. 미국 북장로회 청주 선교부 형성배경

서울에서 지역선교를 준비하던 민노아(F. S. Miller)선교사와 김흥경 조사는 1900년부터 청주를 방문하고 순회전도와 시장전도를 하였다. 당시 이 지역엔 청주 신대리(1901년), 노계(1901년), 보은 도원리(1902년), 노티(1902년), 법주리 (1902년), 괴산 송림리(1902년), 괴산읍교회(1903 년) 등이 한국인에 의해 자생적으로 설립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선교부의 움직임은 당연하여 1901년 청주읍 남문 밖 초가집을 선교부 객관으로 구입하고 1902년 미국 북 장로회 선교본부(mission board)에 선교부 설치를 청원하였다. 1904년 객관에서 청주읍교회를 설립하여 선교부 설치의 기틀이 마련되자 1905년 독립 선교부 설치허가를 얻고 민노아와 김흥경은 청주에서 본격적인 선교를 수행하였다. 이 때 청주선교부 설치를 허락한 미국 북장로회 선교본부는 선교자금을 즉각 지원할 수 없었으므로 민노아는 우선 사재로 주택, 교회, 학교부지 등을 매입하였다. 1907년 계군(Edwin H. Kagin), 1908년 국유치(Welling T. Cook), 부반서(Walter C. Purviance)의사가 청주에 주재하면서 안정적인 선교부 운영을 펼쳐 나갈 수 있었다.


2. 청주로 부임한 카긴과 청주선교부의 사역

청주는 가장 작고 미약한 신생 선교지 중 하나였다. 하지만 1907년 카긴과 몇몇 선교사들이 청주로 더 배속이 되고 그 결과 8명의 선교사들이 청주에서 사역하게 되었다.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최소 60개의 소모임 참석자는 1083명에 달했고, 세례를 받은 교인은 227명, 예비신자는 1700명에 이르렀다. 이런 부흥에 교회는 턱없이 작았으며 그들은 더 많은 지도자들이 필요했고 더 많은 교육기관이 필요했다. 6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각 지역에서 모여 성경과 복음 전도에 대해 배웠으며 그 교육기관에서 카긴 선교사는 찬양을 가르쳤다. 당시 청주 선교부의 교회 옆에는 작은 소년학교가 있었다. 건물은 낡아서 다 갈라지고 비도 샜지만 교육에 굶주린 서른 명 남짓 되는 학생들은 선생님 한 두 명과 함께 공부를 해 나아갔다. 그렇게 초등교육 기관을 졸업한 사람들은 모두 신실한 기독교신자였으며 그들 중 몇몇은 결혼을 한 남자들이었다. 이렇게 졸업생들은 시장에 나아가 말씀을 전했고 6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받아들인다.


3. 시장에서 찬양하며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

카긴은 5일장에서 찬양을 하는 것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한국에 들어와서 언어의 장벽에 부딪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되었다. 6개월이 지난 후에도 그의 입은 마음속의 말을 다 담지는 못했지만 카긴은 시장에서 소책자를 나눠주거나 찬양을 가르치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겸손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그렇게 조금씩 하나님 나라를 알렸다. 시장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카긴이 찬양을 하면 한국 사람들은 ‘노래하는 외국인’을 보기 위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찬양 이후에 카긴이 시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소책자와 성경을 팔려고 할 때에는 다들 뿔뿔이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카긴의 이러한 방법을 통해 한국 사람들은 찬송을 처음 접할 수 있었고 점점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4. 민노아 선교사와의 선교여행

카긴은 ‘민노아’ 선교사와 함께 약 열흘간 돌아다니며 선교여행을 하게 된다. 작은 흙 집, 좁은 방, 밤에 의지할 것이라고는 촛불 하나뿐이고, 눈이 날리는 날씨 등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사람들은 점점 말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선교여행 중의 어느날이었다. 어느 작은 동네 오대에서는 유일한 기독교인이었던, 그리고 가장 낮은 계급이었던 백정의 가족과 함께 비좁은 방에서 예배를 드렸다. 비록 허름한 집에서 변변찮은 옷을 입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구주’로 삼았다. 이후에 그는 한반도 이남의 선교기관들을 돌기 시작했다. 전주에서는 결핵으로 죽은 여자 선교사 선생님을 애도하며 그 안의 믿음을 보고 감동 받기도 했고 군산에서는 의료선교의 장을 보기도 했다.


5. 민노아 선교사의 귀국과 남겨진 카긴, 그리고 선교사들

민노아 목사가 급하게 미국으로 떠나게 되고 카긴과 남겨진 선교사들은 그의 사역을 맡게 된다. 먼저 카긴은 최영택과 청주읍 교회의 동시 위임목사를 맡는다. 워낙에 급한 일정이라 자세한 설명도 듣지 못하고 경험도 부족했지만 믿음으로 사역을 시작한다. 그들은 장로를 선출하고, 여자들을 위한 학교를 위해 여성 선교사를 구하기도 하는 와중에 공립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지 말라는 반대에 부딪치기도 한다. 나중에는 선생님이 부족하고 그들을 위한 급여 또한 모자라기에 이르지만, 후에 평양에서 여 전도사들이 오게 된다. 그런 어려움들을 겪어가며 선교사들은 그 또한 하나님의 뜻이며 항상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깨지 않으심을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된다.
2017-06-27 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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