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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Beck, S. A.(1866-1927(?), M) / Hallman, Sarah B.
 작성자 : 이형진  2017-06-29 22:17:41   조회: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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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기본사항

1.이름: Beck, S. A (베크/ 백서암/ 배액/ 미국/ M)
2.생물연도: 1866-1927(?)
3.직업: 미감리회 선교사, 문서 및 성서 사업가
4.소속: 미국 감리회
5.한국선교기간: 1889년 6월~1919년 4월 1일
6.연표:

1899.6 미감리교 선교사로 내한
문서선교사로 배정받아 콥(Cobb) 후임으로 삼문출판사의 책임자로 활동.
1900 출판사 이름을 미이미교회출판사로 개명(-> 1909 감리교출판사로 변경), 성서외에 일반교리, 전도문서 다량 출판
1905-08 YMCA 회계로 봉직
1903-1908, 1914-15. 1917-18 미감리회 조선매년회 서기
1911 미국성서공회 초대 총무로 선정되어 활동
종로에 성서공회 건물 신축하여 성서번역, 출판, 번역사업
1912 Hallman과 결혼
1919.4.1. 성서사업 영국에 전담하기로 하고 귀국
1919.6.30. 3.1운동 상황을 미국 국회에 전달, 사진 제공

7. 가족사항: Hallman, Sarah B(부인)
8. 논저: [저서] 미국성서공회 백년략소, 1916


II. 선교사 소개

미감리회 소속 Beck선교사는 한국에서 1899년 10월부터 1919년 4월까지 문서선교사로 활동하였다. 그는 미이미교회 출판사의 책임자로 일본에서 활자 및 조판기, 인쇄기를 들여와 현대적 인쇄소를 차렸다. 그는 출판사역을 통해 성서 외에도 전도문서, 교리문서 등을 출판하며 문서선교에 힘썼다. 또한 그는 조선 매년회에서 서기를 담당하며, 한국선교사들의 사역활동 및 보고서들을 정리하고 검토하고 기록하는 일을 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미감리교 선교사들의 선교의 기록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그는 1911년 미국성서공회의 총무로 선정되었고, 보다 전문적으로 성서번역, 출판, 반포사업을 이뤄나갈 수 있었다. 그는 또한 YMCA 회계로도 봉직하며, 보다 폭넓게 한국에서 선교의 사역을 넓혀나갔다.
이제는 그의 사역 활동을 미이미회와 조선매년회, 그리고 미국성서공회를 중심으로 살펴보며 그가 선교사로 한국선교에 남긴 특징 및 사역의 기록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이미회와 조선 매년회>

1889년 올링거를 통해 배재학당 내에 설립했던 삼문출판사에서 일하던 콥선교사가 건강문제로 귀국하게 되어 그 뒤를 이어 Beck선교사가 문서선교사로 내한하게 된다. Beck 선교사는 도착 후 삼문출판사의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이듬해 삼문출판사를 미이미교회 출판사로 고치면서 성서 외에 일반 교리, 전도문서를 다량 출판하였다. 그가 출판사업으로 활동한 자료는 감리교 조선매년회에 매우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그가 조선매년회에서 1903-1908년, 1914-1915년, 1917년-1918년 동안 서기로 활동하며 Methodist Publish House 보고서를 매년 작성했기 때문이다. Beck선교사는 1903년 이전에는 부서기로 활동하다가 1903년부터 서기로 활동하였다. Official Minutes OF THE TWENTIETH ANNUAL MEETING KOREA MISSION

그의 기록을 통해 보면 당시의 선교상황이나 당시의 어려움에 대해 알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들을 채워주시고 일을 해결해나가시는지 그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이처럼 그가 남긴 가장 많은 자료는 조선매년회에 기록된 자료인데, 간략하게 그 자료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1904년에 그가 조선매년회의 서기로 작성한 서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는 1904년 2월 8에 시작된 러일전쟁에 대해 기록하였고, 이에 대해 2월 10일에 긴급히 한국 선교사 회의가 소집되었음을 기록해 놓았다.

Under these conditions on Wednesday, Feb. 10, Bishop Moore called together all the members of the Mission in Chemulpo and Seoul for the Twentieth Annual Meeting of the Korea Mission

그러면서 이 사건을 통해 어떠한 어려움이 생겼고, 그럼에도 복음의 사역을 하나님께서 섭리가운데 어떻게 이끌어 가셨는지 기록한다.

It was found that the war had interfered with the work of the Church only in the far North, and that there, while there han been temporary unrest among the natives and the scattering of some groups, the missionaries had had the confidence of the people, the scattered ones were being searched out.....and very many others were being reached with the Gospel. The universal testimony was given that the work of the Lord was spreading among the people in a wonderful way.

또한 마지막에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며 주님의 수확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하며 보고를 마친다.

Now is the time for the Church and individuals in the home-land to recognize as never before the overwhelming need of men and money to properly carry forward the work of the Lord in Korea.......We need help!

이번에는 1904년도에 그가 기록한 출판사 기록을 살펴보고자 한다.

1903년 당국에 요청한 출판사 감독 N.D Chew가 1903년 10월 21일에 서울에 입국하였고, 그는 오자마자 출판사에서 많은 일과 성과를 보였음을 보고하고 있다. 그리고 1904년 재료값이 많이 올랐으며, 또한 노동비도 많이 올라서 작년에 예산이 부족하게 됨을 보고한다. 그리고 출판사에 작업할 공간이 더 필요함을 요청한다. 너무 많은 일과 오랜 업무시간으로 힘들지만, 그럼에도 지속적인 하나님의 채워주심과 복 내려주심을 확신하며 보고를 마무리한다.
There si an abundance of hard work, with long and trying hours, but the constant assurance that God’s blessing is resting upon the work of publishing the glad tidings for this people. Official Minutes p.62


그의 보고서를 보면 당시의 역사적으로나 상황적으로 얼마나 어렵고 어떤 위기들이 있었음을 매우 상세히 이해하게 된다. 갖은 전쟁의 위협과, 인력과 물질의 공백, 작업공간의 부족들이 있다. 어찌보면 너무 열악하고 절망뿐인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선교사들은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낙담하고 절망하고 포기하지도 않았따.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먼저 바로 직시한 후에 하나님의 채우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문제들을 합력하고 기도하며 해결해 나갔음을 보게 된다.

<미국성서공회>

Beck선교사는 D.A Bunker에 이어 미국성서공회 총무로 활동하였다. 그가 활동한 미국성서공회는 1816년에 조직되어 빠른 속도로 전세계에 활동범위를 넓혀간 단체이다. 1882년 일본 주재 미국성서공회 총무 루미스(Henry Loomis)는 당시 수신사 박영효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왔다가 그곳에 남아 일본의 문물을 익히고 있던 이수정에게 전도하여 기독교인이 되게 하는 한편 그로 하여금 중국어 성경과 일번어 성경을 원본으로 한글성경을 번역케 하고 그 경비를 부담하였다. 마침내 1884년 마가복음을 완역 간행하여 이듬해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내한할 때 한국어 성서를 휴대할 수 있었다. 이후 1890년 올링거를 비롯한 국내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로 하여 미국성서공회가 한국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노일전쟁, 을사보호조약, 헤이그밀사사건, 고종황제폐위사건, 한국군대의 해산 등 중대한 사건들이 벌어졌지만, 성서공회를 통한 성서출판 및 배급을 끊지 않고 계속해서 밀고 나갔다. 하지만 영국성서공회와 미국성서공회의 불화가 생기게 되어 1907년부터는 각기 지부를 설치하고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1911년 Beck선교사가 미국성서공회의 총무로 임명되었다. 그는 취임한 그해 대영성서공회와 연합으로 종로에 성서공회건물을 신축하였고, 성서번역, 출판, 반포사업을 조직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다 1919년 영국성서공회가 성서사업을 전담하기로 결정하고 미국측은 철수하면서, Beck선교사도 함께 1919년 4월1일 한국을 떠난다. 기독교백과사전 p729~731

The Independence Movement and the Missionaries에 보면 당시 활동했던 H. H. Underwood, E. W. Koons, W. G. Cram and Dr. Frank W. Schofield을 비롯한 많은 선교사들이 일본의 탄압과 박해를 증명하고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운동을 벌였는데, Beck 선교사도 미국으로 귀국하기 전에 미국성서공회(American Bible Society)를 통해 일본의 만행을 미국사회에 고발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S. A. Beck, a Methodist missionary with the American Bible Society in Korea, placed photographs of atrocities in the hands of Senator Norris of Nebraska who protested Japanese brutality in a fiery speech on the floor of the Senate on July 15,1919

Beck 선교사는 미국성서공회와 함께 일본이 조선에 가한 잔혹한 사실을 사진들 통해 미국에 알린다. 그는 네브라스카의 Norris 상원의원에게 이 사진들을 전달해 이 사실을 알렸다. 1919년 7월 15일 Norris 의원은 일본의 잔인한 만행에 대해 항의하며 맹렬한 연설을 상원의회에서 쏟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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