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6.23 화 09:15
 
 내한선교사 / Butts, Alice M.(1879-?, NP)
 작성자 : 임원주  2017-06-30 00:03:35   조회: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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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1. 이 름 : Butts, Alice M.(버츠 / 한국명 : 부을애(富愛乙))

2. 생몰연도 1879-

3. 출신 및 소속 : 미북장로교
주거는 평양부신양리26번지
  본적은 북미합중국 펜실바니아주 맨스필드시

4. 한국선교기간 : 1907-1941

5. 연 표
1907 미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평양에서 활동
베스트(M. Best)를 도와 여성사업에 헌신
평양 장로교병원 부설 간호원양성소 주임으로 봉직
1924부터 평양여자신학교 교수 및 교장직 역임
1929 조선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 제 2대 회장으로 여성사업
1941.2 세계 평화 기도문 사건으로 체포되어 28일간 구금, 석방 후 본국에 귀환
1945 선교사직에서 은퇴

6. 가족 사항
아버지 1915년에, 어머니는 1918년에 펜실바니아주 맨스필드시에서 자작논을 하시는 중산층으로 사시다가 사망.
여동생 메리가 있었는데 1941년에는 뉴욕 에리시라시로 출가.


Ⅱ. 선교사 소개 - Butts, Alice M.(버츠 / 한국명 : 부을애(富愛乙))

엘리스 버츠 선교사는 1907년 미북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온다. 그가 한국에 와서 초기에 한 일은 평양에서 베스트선교사를 도와서 여성사업에 헌신한 것이다.
1898년에 베어드 부인과 베스트 양은 한국인 여성을 위한 주일학교를 개설한다. 1896년에 평양으로 온 리 부인은 도시 밖에서 주일학교를 운영한다. 베어드 부인과 리 부인은 두 곳에서 매주일 여성 기도모임을 이끌었다. 리 부인은 이 도시의 한 여학교에서 가르쳤고, 웰스 부인에게 그 일을 넘겼다. 이후에 의사 엘리스 피쉬 양과 헌트 부인과 스왈른 부인 그리고 4년 후에는 일곱명의 여 선교사들과 웹 여사가 이곳에 왔다. 베스트 양은 이 기지에 온 첫 번째 독신여성 사역자가 되었다. 이후 그녀는 이 곳에서 뿐만 아니라 전체 선교회에서 한국 여성들을 조직하고 이끌었다. 이곳에 온지 3년 후부터는 평양 북부지역을 제외하고 기독교인들이 있는 곳이면 빠짐없이 방문하였다. 눈덮인 산을 넘어 논길을 지나 밤 11시 반에 시골지역을 다니는 것도 마다 않지 않은 그녀는 미혼여성 사역자였다. 베어드 부인은 주일 아침 여자 성경학원을 맡았고, 웰스 부인은 여학생들의 통학학교를 책임 맡았고, 일주일에 두 번 여자 청년반을 이끌었다. 헌트 부인은 황해도 시골지역에서 11주를 보내면서 네 곳의 여성반을 개최하였다. 샤록스 부인은 여학교와 여성모임에서 어학수업을 이끌었고, 웹 부인은 여자 아이들을 위한 주일아침반을 맡았다. 스왈른 부인은 마리키스 채플 주일학교와 여성반들을 도와 가르쳤고, 시골여성을 위한 가을 훈련반에서 낮 시간을 맡아 가르쳤다. 베스트 양은 한 해에 8개 시골지역에서 성경공부반을 가르쳤으며, 그 이듬해에는 7개 반을 가르쳤다. 여성사역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매년 반복되었다. 이후에 사역이 발전되면서 유치원과 음악사역들이 행하여졌다.
10년 후, 1907년에 알리스 M. 버츠(Alice M. Butts)양이 베스트 양의 동역자가 되어 이후로 계속 같이 일하였다. 이후에 독신여성 사역자들인 루이스 헤이즈양과 캐더린 맥큔양이 이들의 사역에 합류하였다.


엘리스 버츠 선교사는 평양 장로교 병원 부설 간호원 양성소에서 주임으로 봉직한다. 간호학은 의학과 함께 교육사업으로 발족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문직업 교육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는 선교사를 통하여서 이러한 일들이 이루어졌다. 기독교의 가치과 아래에서 간호사업은 그리스도요 정신에 기반하여 봉사와 헌신의 귀중한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다. 또 남존여비사상이 강하고 오랜 쇄국주의 정치의 나라에 여성의 사회참여를 촉구함으로써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혁신을 가져오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여성사업의 큰 힘이 되는 간호원 양성소에서의 사역은 엘리스 버츠 선교사에게는 보람이 되는 사역의 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간호원 양성소에서 주임으로서 일할 정도로 그녀는 좋은 교육을 받았을 것이고, 능력있는 일꾼이었을 것이다.


엘리스 버츠 선교사는 1924년부터 평양여자신학교 교수로 일하게 된다. 평양 여자 신학교는 평양여자 성경학원이란 명칭 하에 사경회 형태의 교육을 해오다가, 1923년 3월 28일에 여교역자 양성을 위하여 평양여자고등학교란 명칭으로 설립되었다. 초대 교장으로는 베스트가 부임하였다. 개교당시엔 11명의 학생이 있었고, 1938년 평양여자 신학교로 발전하였으며, 재학생수가 116명으로 큰 성장을 보였다. 하지만 1939년 총독부가 선교사가 교장으로 있을 수 없다는 통고를 해왔고, 1940년에 폐쇄되었다.


1929 조선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 제 2대 회장으로 여성사업을 한다.
그리고, 1941.2 세계 평화 기도문 사건이 일어난다.
'만국부인기도회'는 교회여성들이 세계를 복음화하고 세계평화를 염원하며 하나님 나라의 형성을 위해 기도하는 운동으로서, 1887년 미국 장로교 국내선교부 의장이었던 다윈 제임스(Mrs. Darwin James)라는 여성 평신도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1895년에는 캐나다, 1922년 미국과 캐나다의 연합으로 이어져 1927년에는 ‘만국부인기도회’로 불려졌다. 이는 미국에 총본부를 두고 전세계적 조직을 가진 국제종교기구가 되었고, 우리나라는 1925년경부터 참여하게 되었다. 매년 선교부 연합공의회장이 장로교, 감리교 양파의 미국인 여선교사 중에서 각 1명씩 기도회 준비위원을 선임 지정하면, 위원들은 한국의 실정에 맞게 순서지의 원문을 개조 번역하여 전국 각 교회에 보내고, 각 교회로 하여금 매년 2월 하순부터 3월 상순 간에 금요일을 정하여 기도회를 개최하도록 하였다.
1941년 2월 28일 실시된 만국부인기도회는 1940년 10월경부터 준비되기 시작하였다. 1940년 10월 20일경 당시 선교부 연합공의회 회장이었던 블레어(邦惠法, H. E. Blair)는 북장로회의 버츠(富愛乙, A. M. Butts)와 감리회의 쇼 부인(Mrs. W. E.Shaw)을 준비위원으로 추천하였다. 그러나 쇼 부인이 그해 11월 귀국하게되자 무어부인(文路得, Mrs. J.Z.Moore)이 이를 대신하였다.
11월 20일경 만국부인기도회 영문 순서지를 블레어를 통해 우송받은 버츠와 무어부인은 영문 순서지의 취지를 벗어나지 않도록 각 사항을 취사선택하고 또 내용을 추가하여, 버츠가 영문으로 원고를 작성하였다. 버츠는 이 영문원고를 11월 말일경 선교사 킨슬러(權世烈, F. Kinsler)의 서기였던 김희선에게 의뢰하여 번역하게 하였다. 그리고 12월 중 전국 각지의 스테이션회 선교사들에게 필요부수를 1월 15일까지 회답해 줄 것을 통지하였고, 그 결과에 따라 15,000부를 인쇄하였다. 인쇄된 순서지는 1월 하순부터 전국 각지에 배포되기 시작하였다. 순서지의 배포는 장로교의 경우 버츠가 각 스테이션회 선교사들에게 우송하여 담당구역의 각 교회에 배포하도록 하였고, 감리교의 경우 평양지방여자사업부장 박현숙이 각 지방의 대표에게 의뢰하여 각 교회에 배포하도록 하였다.
만국부인기도회사건에 대하여 당시 유일한 언론매체로서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역할을 수행하였던《매일신보》는 "英美宣敎師中心 反戰謀略事件發覺, 今朝 平壤中心 十五名을 檢擧"(영국선교사 중심 반전모략사건발각, 금기 평양중심 십오명 검거)라는 표제로 경무국 보안과의 발표를 보도하였다. 일제는 이 기도회를 '만국부인기도회'의 이름을 빌었을 뿐 실제로는 반전적 신앙부흥운동을 일으킬 목적으로 계획된 반국가적 모략사건으로 보았다. 일제는 기도회의 내용 중 특히 "국제간의 분쟁을 일으키고,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여 다른 나라를 괴롭히고 도와주지 않은 것을 자복할 것" 운운한 것은 전쟁의 기운을 꺾고 반전적인 분위기를 초래하여 인심을 자극하고 혼란시킴으로써 일본의 현 정책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반국가적 책동으로 판단하였고, 기도문 중에 「만왕의 왕, 만유의 주」란 용어가 일제의 천황을 모독한 것이며, 「평화」란 어휘가 중국과의 전쟁(일본은 이것을 「성전이라 불렀다.」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트집 잡았다. 기도회 순서지의 배포와 기도회 개최를 지시한 선교사, 기도회를 개최한 교회의 사회자 및 다시 그 순서지를 다른 교회에 배포하여 기도회의 개최를 지시한 자들을 검거하였다. 일제는 이들 중에서 특히 죄상이 현저한 선교사와 한국인 27명을 기소하였다. 체포된 엘리스 버츠 선교사는 28일간 구금, 석방 후 본국에 귀환되고 만다.



41년에 미국으로 쫓겨간 엘리스 버츠 선교사는 미혼이었다. 몇 년이 지난 1945년 그녀는 선교사직에서 은퇴하게 된다.
그녀는 한국에서 선교를 하였다. 그 중에서도 유교적 가치관에 매어 있었던 여성들을 위한 사역에 전념하였다. 한국을 위한 선교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낮은 자리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중에서도 여성들의 자리는 극히 취약하였다. 엘리스 버츠 선교사가 처음에 행한 간호원 사역에서, 비록 간호원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대표하는 분야처럼 보이지만, 사실 한국 근대사, 의료사, 선교사 서술에서 간호원의 존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는 간호원이 여자라는 성의 문제, 병원의 위계질서에서 의사의 지시를 받고 조력하는 지위의 문제, 그리고 대부분 의사가 기록한 의료 선교 보고서에 간호원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료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가장 낮은 자를 섬긴다고 할 때에 어떻게 보면, 어린아이들보다도 여성들의 자리는 더욱 천대받던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여성들을 위하여 나선다고 할 때에, 사뭇 다른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그녀의 일은 역사적으로 거의 자료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희미하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그렇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복음의 빛 아래에서 여성들은 조용한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바로 기도이다. 만국기도회를 통하여서 온 세계 여성들은 강력한 기도의 끈을 붙잡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여성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나라이다. 백 년 전 아니 삼십년 전에 곧 여성대통령이 나올 것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온 교회의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들이다. 우리나라의 선교역사에서 여성과 기도는 어떻게 보면 주된 강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엘리스 버츠 선교사의 삶을 통하여서 들게 되었다. 우리나라 선교 역사를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볼 때에, 그 이면에는 여성들의 기도가 있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7-06-30 00: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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