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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McFarland, Edwin Frost(1878-?, NP) / McFarland, Mary Stewart; Grimes, Etta Bell
 작성자 : 남영안  2017-06-30 00:37:32   조회: 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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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 사항

▶ 맥팔랜드 (Edwin F. McFarland)
(1) 이름: Edwin Frost McFarland (맥팔랜드, 맹의와(孟義窩))
(2) 생몰연도: 1878년-?
1878년 10월 7일 미국 미시시피 워터 벨리에서 출생하였다.
(3) 출신 및 소속
그는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와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하고, 북 장로교(PC USA)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4) 한국선교기간
1904년 11월 19일 미국 북 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대구에 부임하였다. 이듬해 9월, 부인 스튜워드(Mary Stewart)와 합류하여 바렛(W. M. Barrett)의 뒤를 이어 대구를 중심으로 북쪽 지역을 책임 맡아 시무하였다. 후에 그의 선교구역은 안동지방까지 확장되었으며 1923년부터는 경북지역 선교확장을 위한 <아담스 선교기금>의 후원을 받아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1922년 부인이 귀국 후 별세하자, 그림스(桂羅任/Grimes, Etta Bell)와 재혼하고 계속 활동하였으나 그 역시 건강을 잃어 1928년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귀국하였다.
(5) 연표
(6) 가족사항
그의 아버지는 외과 의사였고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McFarland, Mary Stewart(부인)
Grimes, Etta Bell(부인)

▶ 스튜어트 (Mary Stewart McFarland)
(1) 가족사항
McFarland, Edwin Frost(남편)

▶ 그림스 (Etta Bell Grimes)
(1) 이름: Etta Bell Grimes (그림스, 계라임(桂羅任))
(2) 한국선교기간
1919년 북 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Ms Pollard와 함께 대구에서 교육선교를 하다가, 1922년 맥팔랜드와 결혼하고 이후 계속 활동하였다. 1928년 남편의 건강문제로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귀국하였다.
(3) 가족사항
McFarland, Edwin Frost(남편)


2. 선교사 소개: 맥팔랜드 (Edwin F. McFarland, 1878-?)

(1)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동안 한국에 있으면서 열정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였다. 추운 날씨와 장마 속에서도 불편한 집을 어떻게든 고쳐가며 지냈다. 긴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다니며 순회 선교를 하고, 때로는 다리를 절어가며 아프고 불편할 때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어떤 때에는 두고 온 고국 집도 잊고서 영어로 표현하는 것을 거의 할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쉬지 않고, 핍박과 박해 속에서 너무나 괴로웠지만 복음의 열매들을 맺으며 나아갔다. 수많은 교회들을 개척하고 셀 수 없는 구도자들을 만들어내면서 한국부흥의 중심에 있었고, 특히나 경상도의 복음화에 크게 기여 하였다.
우리는 1905년에 연간 회의를 10월 1일에 갔다 왔고, 첫 번째 추진은 johnson의 게스트 하우스에 앞쪽에 있는 작은 방 두개를 도배하여 Mrs. McFarland와 내가 공부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6주간 우리는 Nulls와 같이 기숙하였고, 그 다음부터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해서 Mrs. McFarland의 서재 방 뒤에 위치한 나무 방을 고쳐서 거실과 부엌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이 집을 지키고, Nulls의 집의 잔디에 건너에 있는 침실을 가졌다. 겨울이 오면서 넘 추워져 자주 그 잔디를 지나 집을 왔다 갔다 하기 힘들어졌을 때, 우리의 침실을 다른 지붕 아래 있는 것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다시 게스트하우스를 공사하여 모든 방을 한 지붕 안에 자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극히 작고 불편한 집을 어떻게나마 편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거의 1년 동안 여기저기 붙이고 고치는 게 필요했다. 비가 올 때는 비가 새는 것을 막기가 어려웠다. 당연히 우리는 언제든지 항상 공부하는 것에 열심을 다하였으나, 쉽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집이 워낙 작았고 어떤 일을 하려면 당분간 집 전체가 언짢을 수밖에 없었다.


(2)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선교사
말씀을 중심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기도하고 기도모임을 가졌다. 그는 기도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했다. 그가 주재하는 모임과 성경공부 그룹, 그리고 컨퍼런스 등에서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회개의 영이 임하고 모두가 자기 자신만이 알고 있는 죄들을 고백하지 않고는 두려워서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선교사의 요리사가 자신이 식재료 차액을 착복했던 것을 고백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이렇게 한국인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한국인들의 노력과 또한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힘입은 부흥에 굉장히 놀라면서 그 중심에 있었다.
제일 성공적으로 대구에서 열렸던 컨프런스는 12월 27일에 있었고, 10일동안 진행되었다. 이 행사에는 협력자들, 교회 지도자들, 집사들, 그리고 북경상지방에 기독교 선생들로 시종일관 성령과 열의로 살아있었다. 목사들과 형제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매일 아침 9시에는 1시간 15분간 성경공부를 하기 위해 모두 모였다. Mr. Bruen은 3일 오전을 맡아 “기도”의 주제를 가지고 했고, Mr. Adams는 3일 오전을 “성령님이 하시는 일”; 그리고 나는 “예수 나의 중보자”로 아침을 맡았다. 성경공부 후에는 운동, 그리고 선생들은 Messers, Adams, 그리고 Sidebotham으로부터 pedagogy에 대해서 오후 12시까지 강의를 받았고, 다른 사람들은 일반 세션에 만나서 한시간 반동안 중요한 주제로 논의를 하였다. 12시가 지나면 찬양예배가 있었고, 그 다음에는 긴 컨프렌스가 있었다. 밤에는 연설이 있거나 컨프렌스 주제가 있었다. 마지막 밤에는 질문 박스가 있었고 모든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었다. 모두 교회의 미래에 대한 영감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고, 다음 해에 이러한 훌륭한 컨프런스의 결과로 인해 많은 열매를 볼 것이다.


(3) 여성에게도 최초로 성경공부를 시도한 선교사
대부분의 나라가 그랬지만 우리나라도 과거에 글을 가르치지 않았고 교육도 시키지 않았기에 복음을 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여자를 대상으로 한 성경공부는 처음이었으며, 6명의 여자와 2명의 여자아이의 참석으로 시작하였으며, 70-120리의 거리를 등에 애기를 업고 다녔다고 한다. 그들은 10일 동안 머무르면서 열심히 배웠고 그 중 3명은 그 때부터 교리 문답을 실시하였다. 매년 일반 여성 성경학교가 시작도어 1917년에는 약 1000명의 참석자가 있었고 보통 600-700명 이상으로 참석하였다고 한다. 1916년의 보고서에는 13개의 도마다 도시 성경반이 있고 125명의 등록자가 있었고, 4일간 5개 이상의 도시 성경반에 900명이 참석, 16개의 지방 성경반의 경우 Miss Switzer가 가르쳤고, 그리고 35개의 여성 선교단체에는 Mrs. McFarland가 관리자였다고 한다.

(4) 사회운동을 주도한 선교사
일본은 3.1운동 이후에 한국에서 아편을 재배하고, 술 담배를 장려하며, 창녀촌을 만드는 등 우경화 정책으로 전환하기 시작한다. 과거에 정치사회를 관장하던 사람들의 모임장소였던 이 곳은 쌓여진 맥주 통들과 작지 않은 담배꽁초와 재 무더기들, 춤추는 여자들을 데리고 즐기며 그리고 부적절한 나쁜 행동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지만, 이제 성경학교가 열리고 많은 수가 모였으며, 더 이상 그런 모습들은 볼 수가 없고 오히려 모임 후에는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더 경건한 좋은 삶을 살기 위하여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사회에 중요한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공공심과 열정을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해 비난하곤 했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었기에 공공심과 열정을 보이지 않을 수는 있지만, 과거의 술 담배와 춤추는 모습은 더 볼 수가 없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사회모임의 사람들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다고 한다.
올해 반은 8일정도 진행되었고, 관심과 참여는 끝까지 지탱되었다. 우리의 가르침의 영향은 Dr. Moffett 이 있어서 많은 도움과 축복이 되었고, 또한 김종상씨도 “Christian News”에 Dr. Gale의 어시스턴트로서 도움이 되었다. Dr. Moffett 는 예전에 여기에서 도와준 적이 있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서울의 Mr. Kim은 그의 진실 되고 명확하고 간결한 스타일로 매일 그의 반들을 기쁘게 하였다. 오늘 한국에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더 많은 훌륭한 젊은이들이 많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대구 성경 반에서는 예전부터 평양에서 사용되었던 성경 반 일정표를 따랐다. 사람들은 10년간의 진보적인 성경 반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년에도 가능하면 다시 참석하는 것에 매우 기뻐하고 열심을 보였다. 성경공부 반에 일찍 와서 끝까지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은 수료증을 받았고, 다음 해에 올 때 가지고 왔다. 수료증을 받는 것도 반을 끝까지 참여할 수 있게 동기부여가 되어 맨 끝에 흐지부지 되지 않게 되었다.


(5) 한국의 진정한 부흥을 이끈 선교사
그가 주도하는 성경학교에 오는 사람들은 먼 거리를 무거운 쌀가마니를 등에 매고 오랜 시간을 들여서 걸어서 왕복하며 춥고 좁은 방에서도 다닥다닥 붙어서 자야하는 불편한 숙식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공부를 열정을 가진 믿음이 있었다. 그냥 믿음이 아니라 행위가 따르는 믿음이었다. 그런 곳에서는 나쁜 의도를 가진 불순한 무리들이 있을 수가 없었다. Mr. Pak이라는 양반은 아니지만 높은 위치와 힘을 가진 자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여러 아내가 있었고 셀 수 없는 아이들이 있었으나 자식을 잃게 되면서 회심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악한 일 계속했고 겉으로는 회개를 하였지만 결국은 천주교로 간다고 하는 그를 교회와 선교사는 끝까지 그가 영접하기를 바라며 기도했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죄의 삶에서 어떻게 하실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법이 되기를 끝까지 기도했다고 한다.
연간 미팅 후 첫 주일부터 크리스마스 전 주일까지는 하나의 긴 여행으로, 나의 3개의 회로를 연휴 전에는 한 번 돌기 위해 매일 분주하였다. 아버지 시간과 경주하는 것 같았고, 그는 특히 높은 산을 지나서 다른 산마을에 숨어있는 소수의 형제들을 만나러 가야 할 때 서둘러서 갔다. 내가 천천히 올라갈 때면, 해는 완벽히 서쪽 방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 여행 기간 동안 추수감사절 주에 우리는 짧은 도우미 수업을 가졌고, 이 것 때문에 대구에 몇 일 있어야 했으나 나는 고향집에 대해서 거의 잊어버린 상태로 우리가 크리스마스 저녁을 먹을 때 내 자신에 대해서 영어로 표현하는 걸 거의 못할 정도가 되었다. 나는 성탄절에 맞춰서 대구에 도착하기 위해 이틀 동안 매서운 추위와 바람을 무릅쓰고 이동을 해야 했다. 타기에는 넘 추웠고, 걷기에는 바람이 넘 세게 불었기 때문에, 나는 그 둘 중에 끼어서 애매했다. 내 발은 너무 감각이 없어서 갑자기 말에서 뛰어 내렸고, 그 다음부터는 그로 인해 몇 일 동안 다리를 절어야 했다.


(6) 아담스 선교기금
1928년부터 1929년에는 선교에 대한 보고서가 매년 회의록에 나타났다. Dr. Adams가 경상북도 지방에 있는 선교사 및 전도사들을 후원하기 위한 특별한 자금을 확보하였다. 이 사업이 선교자금과 위원책정과 별도로 이루어졌으나 위원과 선교회의 허락과 더불어 그 지방에 있는 장로회와 대구 station의 긴밀한 협력으로, 일의 결과는 뒤집혔다. 1923년에는 J.B.Livesay 목사와 E.F. McFarland 목사가 (건강의 이유로 사직하심), 이 지원금으로 이 지역에 소속된 선교사로 오게 되었다. 남자학교 근처에 있는 주택 지구를 위한 땅은 Adams 박사와 아내한테 팔렸고 거주할 곳과 ‘사무실’이 세워졌다. 1926년에 이 건물은 위원에게 선물로 바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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