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6.23 화 09:15
 
 내한선교사 / McQueen, Anna(1883-1964, SP)
 작성자 : 미나리  2017-06-30 03:09:36   조회: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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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기본사항

1. 이름: McQueen, Anna / 매퀸 / 한국명: 구애라
2. 생물연도: 1883.7.30.-1964.5.3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09.9.- 1940 & 1947.10 - 1951.6
5. 연표
1883.7.30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로랜드(Rowland, North Carolina) 출생1902 미국 남장로교대학(Southern Presbyterian College)에서 문학사 학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대학원(The Graduate School of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석사 학위
고향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학교들(Mountains, Burlington and Lincolnton of North Carolina)에서 교직생활1909.9.14. 페이어트빌(Fayetteville, North Carolina) 노회 소속으로서,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사로 임명 및 파송.1909.10.20. 미국에서 한국으로 출항1910 미국 남장로교 배유지(Dr. Eugene Bell) 선교사가 광주에 설립한 여학교의 제 2대 교장으로 부임,1911 미국 스턴스(M. L. Stearns Nee Speer) 여사의 기금으로 회색 벽돌의 3층 교사(Speer Hall) 신축, 교명을 수피아여학교(Jennie Speer Memorial School for Girls)로 명명,1913 보통과 제 1회 졸업생 배출1915 고등과 제 1회 졸업생 배출1916 첫 번째 안식년을 맞아 미국 지 교회 순회 및 수피아여학교 재정원조 모금, 붉은 벽돌 본관(Winsborough Hall) 준공1919.3.1. 독립 운동에 전교생이 제 1회 졸업생 박애순의 지휘 아래 선봉으로 참가. 교사 2명과 학생 21명 등 23명이 투옥되어 옥고를 치름
건강이 쇠약해져서 학교 직무에서 떠나 전도사업에 투신,
광주 중심으로 부녀자성경연구반, 달(月)성경학교 지도,
열흘 성경 반을 통해 여 전도회원 육성1940 일제의 선교사 추방정책에 의해 강제로 추방당함
1947.10 재내한. 다시 광주에 부임하여 성경학교 재건, 여전도사 양성
1948.9 폐교된 광주 이일학교(Neel Bible School)를 복교1950 42년 동안의 한국선교 생활을 전남 광주에서 마무리한 뒤 6·25사변 당시 귀국.
1951.6.1. 은퇴
1964.5.3. 고향 로랜드에서 여생을 보낸 뒤 향년 82세의 나이로 사망(Ashpole Presbyterian Church Cemetery에 묻힘)
6. 가족사항아버지: William McQueen어머니: Iola Florence Carmichael


II. 선교사 소개: 구애라(Anna McQueen, 1883-1964)

1. 한국의 격변기 속에 복음의 발걸음을 옮긴 선교사
구애라 선교사(Anna McQueen, 1883-1964)가 한국에 파송되었던 1909년은, 평양대부흥운동(1907)과 백만인 구령운동(1909)으로 인해 뜨거운 영적 각성운동의 불길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던 때였다. 평양에서부터 전국으로 부흥이 확산되고, 여러 기도운동과 해외 유명 부흥사들의 순회 전도 집회를 통해 영적 각성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시기에 괄목한 교회의 대대적인 성장이 전체 사회개혁운동의 도화선이 되어, 그야말로 기독교 민족 부흥의 발흥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복음의 자기 확장이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한편으로는 일제의 탄압으로 끝없이 고통 받아야 했던 이 애환의 시대에 구애라 선교사는 이십대 젊은 미혼 여성의 몸으로 먼 동방 나라의 ‘광주’라는 낯선 도시에 발을 내딛게 된다. 이후 구애라 선교사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한국의 파란만장한 시기를 함께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들을 묵묵히 감당해내었다.

2. 광주의 여성 교육 사업의 기초를 쌓은 교육자
1) 한국선교사로의 부르심
구애라 선교사는 1883년 7월 30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로랜드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미국 남장로교대학과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한 뒤 고향에 있는 몇몇 학교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교직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처럼 학창 시절과 청년기를 미국의 남동부 지역인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보내며 익숙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구애라 선교사는, 멀고 낯선 땅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주님의 강력한 부르심에 순종하여 만 26세가 된 1909년 9월 14일 미국 남장로교 해외선교부로부터 한국선교사로 임명받아 페이어트빌 노회 소속으로 파송 받게 되었다.
2) 광주 수피아여학교의 제 2대 교장으로 취임
임명받은 지 한 달여 만에, 1909년 10월 20일 드디어 미국에서 출항한 구애라 선교사는 한국에 도착하여 미국 남장로교의 선교관할지역인 광주로 향하게 되었다. 미국에서의 교직생활과 경력은 자연적으로 한국에서의 교육 사업으로의 헌신으로 이어졌다.
당시 광주의 교육 사업은 광주 스테이션(Station)이 개설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07년, 조선인 직원들의 자녀와 교인들의 자녀들을 교육할 목적으로 배유지 선교사(Dr. Eugene Bell)의 사랑방에서 시작되었다. 1907년에 4명의 여학생에게 읽기·쓰기·셈하기 등을 가르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교세가 점차 발전하고 남녀 학생의 수가 많아져서 여학생은 따로 변요한 선교사(John F. Preston)의 사랑채로 옮기게 되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1908년 봄에 대한제국의 승인을 받아 정식 여학교로 개교하였고, 구애라 선교사는 1910년 한일합병 당시 본교의 제 2대 교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이처럼 한국사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던 구한말의 시점에서 교회가 근대 교육을 도입하고 실시한 것은 교육사적으로 커다란 의의를 가졌다.
3) 광주 수피아여학교의 발전을 위한 헌신
일제가 교육령을 공포하고 학교를 정비하기 시작하던 중, 구애라 선교사는 학교의 사정을 본국에 알려 재정적 원조를 얻어내었고 이를 통해 학교의 기틀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특히 1911년에는 미국 스턴스(M. L. Stearns Nee Speer) 여사가 여동생 제니 스피어(Jennie Speer)를 기념하기 위해 5천불의 기부금을 희사하였고, 그 기금으로 3층 건물인 교사(Speer Hall)이 준공되었다. 이때부터 교명을 수피아 여학교(Jennie Speer Memorial School for Girls)라고 부르게 되었다.
학교에 보통과와 고등과를 함께 설치하였고, 교과목으로 성경·수신·국어·한문·영어·역사·지리·산술·대수·기하·식물·동물·화학·물리·가사·재봉·도화·음악·체조 등을 가르쳤다. 1913년에는 보통과에서, 1915년에는 고등과에서 제 1회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1916년에는 구애라 선교사가 첫 번째 안식년을 맞아 미국의 지 교회들을 순회하였고, 수피아여학교의 재정원조를 위해 모금 운동을 펼쳤다. 구애라 선교사의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수피아여학교의 붉은 벽돌의 본관을 준공할 수 있었다.
4) 광주 수피아여학교가 끼친 신앙적·사회적 영향
이렇게 여러 헌신의 과정을 통해 기틀이 잡힌 수피아여학교에서 수학한 학생들은 사회와 민족의 필요에 깨어있었으며, 1919년 3·1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이로 인해 교사 2명과 학생 21명 등 23명이 투옥되어 옥고를 치르게 되기도 하였다. 한편, 구애라 선교사는 건강이 쇠약해져서 학교 직무에서 떠나야만 했다. 그녀가 수피아여학교의 직무에서 물러난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1924년 9월 제 3대 교장으로 마정원(Miss Margaret Martin) 선교사가 취임하였다.
수피아여학교는 이후 1937년에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얼마간 폐교하기에 이르렀지만, 시대적 위기 가운데 신앙을 지키고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을 끼치는 귀한 사명과 역할을 감당해내는 요체가 되었다.

3. 광주의 전도 사업 및 성경연구반 활성화에 투신한 전도자
구애라 선교사는 건강상의 이유로 학교 직무에서 떠난 뒤 전도사업에 투신하였다. 그녀는 전도부인들과 함께 광주를 중심으로 마을을 순회하며 부녀자 성경연구반(7일성경반)을 지도했고, 달(月)성경학교와 열흘 성경 반을 구성하여 농한기를 통한 여 전도회원을 육성했다.
당시 미국의 고향으로 써 보낸 그녀의 편지들에는 그녀의 순회 전도 여행 과정과 한국인들의 성경공부에 대한 열의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성경공부 반에 참여하기 위해 56km의 산길을 걸어서 온 여성도도 있었고, 구애라 선교사 역시 65km가 떨어진 곳까지 성경공부를 위해 여행하기도 했다. 1929년 4월 4일의 편지에서 구애라 선교사는 설 명절 직후에 갔던 전도 여행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꽁꽁 언 땅과 혹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백 명에서 백 오십여 명의 여인들과 아이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 교회에 모여들었다. 또한 여성들을 위해 열린 5일 성경 공부 반에 참여하기 위해 여 성도들이 5km 이상 떨어진 지역들에서부터 하얀 눈 위를 걷고 걸어 모여들었다. 오후에는 교회에 모여 기도한 뒤 두세 그룹으로 나뉘어져 근처의 마을들로 가가호호 방문하며 전도에 힘썼다."

1931년 10월 16일의 편지에서는 사백여 명이 주일 저녁에 함께 예배드리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다른 마을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들어 바깥뜰에서 예배하기 위해 이동하는 동안 구애라 선교사는 “예수 사랑하심을(Jesus Loves Me)”을 찬양했다. 그녀는 고향 사람들에게 편지하며,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이 귀한 복음을 그곳에 모인 무리들이 모두 주변 마을들에 전해줄 수 있도록 기도에 힘써주기를 부탁하고 있다.
구애라 선교사는 주변의 수많은 마을들에 대한 복음의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여 전도회원의 육성에 힘을 쏟았다. 그녀가 보낸 편지 속에는 더 많은 전도부인의 필요에 대한 간절함이 그대로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지도하는 전도부인들의 이름들을 편지 속에 명시하며 그들을 위한 기도를 세세히 부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구애라 선교사의 선교 사업에는 병원에서의 전도사역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비신자들을 향한 복음 전파의 기회에 대해 늘 들뜬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만난 이들에 대한 기도 요청을 잊지 않았다.

4. 재내한 후에도 멈추지 않는 복음의 발걸음
구애라 선교사는 1940년 일본에 의해 강제추방 당한 뒤 7년이 흐른 65세의 나이에도 다시 한국 땅에 찾아와 복음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1947년 10월 한국에 입국한 뒤, 공산주의로 인해 흉흉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계속해서 마을들을 순회하며 성경공부 반을 가르쳤으며, 주일학교 사역을 위해 학생들을 훈련시키고 여전도사들을 양성했다. 1948년에는, 미국 남장로교 서서평 선교사(Elisabeth J. Sheepping)가 설립했으나 1941년 9월에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폐교된 광주 이일학교(Neel Bible School)를 복교했다.
재내한 뒤에도 펼쳐진 그녀의 활발한 사역들을 통해 볼 수 있듯, 어느덧 노년이 된 그녀의 가슴 한 중앙에서도 여전히 한국에 대한 소명이 꺼지지 않는 불씨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과 동료들의 은퇴가 다가오는 것을 염려하여, 새로운 미혼 여선교사들이 광주에 와서 사역을 이어갈 수 있도록 미국 지인들에게 기도를 요청하였다. 이처럼 한국 복음화에 대한 열정은 그녀로 하여금 다시 먼 항해를 거쳐 광주 땅으로 그 걸음을 재촉하게 만들었으며, 그녀 자신이 기도편지에 소개하듯 그녀는 분명 “당신의 한국인 친구 애나 매퀸”(Your Korean friend, Anna McQueen)이었다.
2017-06-30 03: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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