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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Wilson, Robert Manton(1880-1963, SP) / Wilson, Bessie L. Knox
 작성자 : 강일진  2017-06-30 03:45:44   조회: 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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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1. 이름: Wilson, Robert Manton / 윌슨 / 한국명: 우월손(禹越遜), 우일선(禹一善)
2. 생몰연도: 1880-1963.3.27 미국 콜롬부스 출생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05-1948
5. 연표
1905 워싱턴 대학 의학박사 학위
1908 남장로교 의료선교사로 내하, 광주 선교부에 부임 광주 기독병원의 원장으로 취임
1912 광주 나병원 개원, 나환자 치료하며 전도
1922 광주 기독병원 안에 치과개설, 결핵 예방에도 공헌 순천지방에도 순회진료
1926 여천군 율촌에 애양원 신축
1940 일제에 의해 병원 폐쇄, 강제 추방
1946.1 재내한, 애양원에서 구라사업에 전념
1948 정년퇴임으로 귀국
1962.3.13. 부인 소천
1963.3.27.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에서 소천

6. 가족사항
부인: Wilson Bessie Knox
자녀: James Stephenson Wilson, John Knox Wilson, Sarah Elizabeth Wilson, Mary Stuart Wilson, Robert Manton Wilson, Thomas Edwin Wilson


Ⅱ. 선교사 소개: 윌슨(우월손, 우일선)

1. 미국 남장로교단 선교정책

한국에 선교를 왔다가 잠시 귀국한 언더우드는 한국 선교의 시급성과 필요성을 강력하게 전하였다. 이를 통해서 많은 남장로교에 속해져 있는 학생들은 도전을 받고 한국으로 선교를 오기 시작했다. 북장로교(1884)나 북침례교(1885)에 비해 늦게 한국 땅에 입국(1892)하기 시작했지만 남장로교 선교사들은 한국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성경 번역에 힘썼던 레이놀즈 선교사이다. 남장로교는 일본에서 선교하던 조지 낙스 선교사와 중국에서 활동하던 길버트 니드 선교사님의 편지의 내용을 적극 반영하여, 교육과 의료 선교에 큰 투자를 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윌슨은 의료 선교를 하기 위해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세인트루이스 시립 여성 병원에서 근무한 후 잠시 그랜든 철도회사의 주치의로 활약하다가 1907년 한국 부임을 통보받고, 1908년 1월 광주로 파송되어 광주로 입국하게 된다. 그는 파송 직전 뉴욕 화이트 성경학교에서 6개월간 연수를 받았다.

2. 미국 남장로교 광주선교부

특별히 윌슨이 활동했던 광주는 전남 지역의 선교기지로 사용되던 곳이다. 1904년 2월 목포에서 남장로회 선교회 소속 선교사와 각 지방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서 대 사경회를 실시하였다. 목포 사경회가 끝나자마자 남장로는 선교회를 소집하고 전남에서 목포 이외의 지역에 선교부를 결성하기로 한다. 그 지역이 광주가 된다. 벨 목사와 오웬 의사가 광주 선교부 개설 책임자로 선정되었고 1904년 12월 19일에 목포에서 광주로 이주해가게 된다. 이처럼 광주 선교부는 전국으로 확산된 부흥의 불길 가운데 생겨난 선교부로 전남 지역에 목포와 함께 핵심적인 역학을 감당하게 된다. 이때 윌슨은 오웬 선교사를 도와 의료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광주로 이주한 오웬이 병에 걸리자, 이를 치료하기 위해 포사이드(Willey Hamailton Forsythe)가 목포에서 광주로 갔게 되었다. 광주로 가는 길에 포사이드는 한 나병환자를 발견하게 되었고, 광주에 도착한 포사이드 의사는 윌슨의 도움을 받아 나환자를 치료하였으나, 결국 죽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12년 윌슨은 한국 최초의 나병원을 개원하게 된다. 모든 것이 우연 같았지만,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오웬의 병은 모두에게 슬픔이고 아픔이었지만, 이 때문에 포사이드가 광주로 오는 길에 나환자를 발견하고 광주로 데려오게 되었고, 그 과정 속에서 나환자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윌슨이 실현해나갔다.

3. 광주기독병원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는 광주에 ‘광주야소교병원(광주제중병원)’을 설립한다. 이 병원은 1970년 ‘광주기독병원’이 되었다. 1904년 오웬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1904년 내한한 미국 남장로교 소속 의료선교사였던 놀란이 1년 반 가량 봉사를 한 후 의료선교사직을 사면하고 광주를 떠난 후 병원은 잠시 폐쇄되었다. 그리고 1908년 제 2대 병원장인 윌슨에 의해 재개되었다. 윌슨은 광주에 머물면서 현대식 의료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진료하였다. 당시 병원 시설이 열악하여 1911년 미국인 그래함(Graham)에게 재정적 지원을 받아 수술실을 갖춘 3층 건물로 만들어 ‘그래함 병원’이라고 하기도 헀다. 1910년 한 해 동안 9천 9백명의 환자를 진찰하였고, 175건의 수술을 집도하였다. 병원이 커지고 환자 수가 늘어나자 남장로교 해외 선교부에 간호사 보내주 것을 청원하였고, 1912년 쉬핑(Sheppin) 선교사가 한국에 오게 되었다.

4. 광주 나병원

1909년 미국 북장로교 소속 의료선교사로서 목포에서 선교 활동을 벌이고 있던 포사이드가 광주에서 일하던 오웬 선교사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로 가던 도중 나환자를 보고 측은히 여겨 그를 자기가 타고 가던 말에 태우고 광주로 와서 윌슨과 함께 간호하였으나, 결국 그 나환자는 죽게 된다. 그러나 같은 해 여름 나환자에 대한 포사이드의 이와 같은 자선에 감동을 받은 윌슨을 중심으로 광주에 있던 선교사들은 나환자 진료 활동의 중요함을 깨닫고 모금 운동을 벌인다. 이 때 최홍종의 도움으로 1912년 광주에 병실 3개의 작은 병원을 세우고 나환자 10명을 수용하여 진료를 시작하는데, 이 병원이 한국 최초의 나병원인 광주 나병원이다. 광주 나병원은 영국 에든버러에 있는 영국구라협회에 지원을 요청하여 2천 달러의 지원금을 받았고, 이 지원금으로 그 해 방림동 덕악바위 쪽에 5명 이상이의 환자 수용소 및 진료소, 예배소 등을 구비한다. 여수로 이동하기 직전 애양원의 공식적인 정원은 약 300명 가량이었는데, 몰려드는 환자로 600명의 환자가 입원한 때도 있었다, 이로 인해 병원 주변은 통행하기를 꺼릴 정도로 혼잡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당시 나병원의 시설을 이용한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았으며 대부분의 환자들이 기독교인이 되었다. 광주 나병원은 1917년 조선총독령 사립병원 취제 규칙에 의해서 정신병원으로 인가를 받는다. 그러나 나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했던 당시 상황에서 광주 시민들은 길거리 많은 나환자들이 흩어지게 되자 병원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을 갖게 되었고, 광주 나병원은 조선 총독부에 건의하여, 1925년 전남 여천군 율촌면 신풍리로 옮기게 된다. 이전 후 잠시 기부자의 이름을 따 ‘비더울프 수용소’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1935년 ‘애양원’으로 개칭하였다. 1940년 일제의 탄압으로 병원은 폐쇄되어 본국으로 강제 추방당했으나, 해방이후 1946년 1월 재내한하여 앵야원에 돌아와 구라사업에 전념하다가 1948년 정년퇴임으로 귀국하였다.
이러한 윌슨 선교사님의 사역은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의 비유를 생각나게 한다. 윌슨은 소외되고 저주 받았다고 버려진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진정한 그들의 이웃이었다.

5. 그 외의 사역

윌슨은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여 1908년 자신의 집에서 장애아와 고아들을 위한 고아원 사역을 진행한다. 당시 문둥 병원으로 불려진 광주 나병원에 주일학교를 조직하여 운영한다. 또한 .광주 중앙교회 안에 1918년 유치원을 설립하여 교회 교육에 힘쓰기도 하였으며, 1922년에는 기독 병원 안에 치과를 개설하였고, 결핵 예방에도 큰 공헌을 한다. 그리고 윌슨은 광주에서만 의료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순천 지방에까지 순회 진료를 다니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윌슨의 선교 사역은 의료나 교육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에 힘썼으며, 신앙 지도를 겸하였다. 원내에 신학원을 설치하여 능력 있는 환자에게 교육의 기회를 열어주고 나환자 전도인으로까지 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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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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