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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Sidebotham, Richard H.(1874-1908, NP) / Sidebotham, Effie Bryce
 작성자 : 이성현  2017-06-30 08:21:03   조회: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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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기본 사항

1-1) 이름 : Sidebotham, Effie Bryce 사이드보텀 / 미국 / 미북장로회
1-2) 생몰연도 : 1876. 7. 17 – 1944 일리노이주 디카터에서 사망
1-3) 출신 및 소속 : 미국, 북장로교
1-4) 한국선교기간 : 1899.12 ~ 1907. 8
1-5) 연표
1876. 7. 17 미국 미시건 주 펜톤 출생
1899. 6. 28 리차드 사이드보텀과 결혼
1899. 9.6 한국 선교사로 임명
1899. 10. 14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으로 출발
1900 장남 알프레드 출생
1906 장녀 마가렛 출생
1907. 8 안식년으로 귀국
1908. 12. 3 남편 리차드 사이드보텀 사망
1909. 4. 30 선교사직 은퇴
1944 미국 일리노이주 디카터에서 사망
1-6) 가족사항
남편 : R. H. Sidebotham (1874~1908)
자녀 : Sidebotham, Alfred B. / Margaret (1남 1녀)

2-1) 이름 : Sidebotham, Richard H (사이드보텀 / 謝普淡 / 미국 / 미북장로회)
2-2) 생몰연도 : 1874.10.14.-1908.12.3. 영국에서 출생 (미국 이주)
2-3) 출신 및 소속 : 미국, 북장로교
2-4) 한국선교기간 : 1899.12 ~1907. 8
2-5) 연표
1874. 10. 14 영국 배드퍼드 비글스웨이드 출생
1833 미국 미시건 주 레이크 시티로 이주
1891~1896 앨마대학 예비과정 입학, 최우수졸업생으로 졸업
1896~1899 프리스턴 신학대학 졸업
1899. 6. 28 에피 브라이스와 결혼
1899. 9. 6 한국 선교사로 임명
1899. 10. 14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으로 출발
1899. 11. 20 내한(부산 도착, 11. 23 대구 도착)
1899. 12 본격적인 대구 지부에서의 본격적인 사역 시작
1900 장남 알프레드 출생
1900. 11 부산지부로 사역지를 옮겨 사역 시작
1904 어빈, 빈톤, 스미스 등과 함꼐 나환자들을 위한 위원회 조직
1906 장녀 마가렛 출생
1906. 6 6주간 계성중학교 교장으로 역임
1907. 4 평양신학교 새학기 개강사경회 강사로 초빙
1907. 8 안식년으로 귀국
1908. 12. 3 향년 34세로 미국 미시간 주 래피어에서 가솔린 사고로 사망
2-6) 가족사항
부인 : Sidebotham, Effie Bryce (부인 1844-1944)
자녀 : Sidebotham, Alfred B. / Margaret (1남 1녀)


Ⅱ. 선교사 소개 : 리차드 사이드보텀(1874~1908)과 에피 사이드보텀(1876~1944)

R. H. Sidebotham, Mrs. R. H. Sidebotham(Effie Bryce)
리차드 사이드보텀(이하 사보담)은 개항기 한국에서 활동했던 미국 북장교 해외선교사이다. 그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파송으로 1899년 내한하여 1907년까지 대구와 부산지부에서 활동하였다. 내한하여 첫 1년은 대구선교부에서, 이후 부산선교로 옮겨 7년 동안 선교활동을 하였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그의 선교사역은 부산의 초기 기독교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1907년 안식년으로 귀국하게 되었지만 지속적인 선교지에 대한 관심을 가져왔으며 한국 선교를 위한 기금 모금도 하였다. 그러던 중 1908년 12월3일 그는 가솔린 폭발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사보담은 1974년 10월에 영국 배드퍼드 비글스웨이드에서 아버지 윌리엄 사이드보텀과 어머니 이자벨 레이콕 심슨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감리교 목사인 아버지 윌리엄은 1883년 가족을 이끌고 미국 미시건 주 레이크시티에 이주하여 북장교 목사로 활동하였다.
그는 1891년 앨마대학 예비 과정에 입학해서 1896년에 최우수 졸업생으로 졸업했다. 그는 곧 바로 프린스턴 신학대학에 입학해서 1899년에 졸업하였으며 그해 5월에 새기노 장로교회에서 목사로 안수 받았다.
사보담은 프린스턴 신학대학을 졸업한 얼마 뒤인 1899년 6월 28일 그는 미시건주 레피어에 사는 에피 엘든 브라이스와 결혼하였다. 에피는 제이콥과 사라 우드러프 브라이스 부부의 딸로 1876년 7월 17일 미시건 주 펜톤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장로교회와 목사로서 그녀 역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하였다. 얼마 있지 않아 1899년 9월 6일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같은 해 10월 14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배를 타고 한국으로 떠났다.
2. 1년간의 대구에서의 활동
한국으로 오는 경로는 호놀룰루, 요코야마, 도쿄, 고베, 시모노세키와 나가사키를 경유하여 1899년 11월 20일에 부산을 도착하여 한국에 첫 발을 딛었다. 11월 23일에는 최종 기착지인 대구에 도착하였다. 그들이 한국에 와서 미국 북장로교 해외 선교부에 보낸 보고서를 통해(12월 14일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을 알렸다. 보고서는 선교에 대한 희망적인 전망과 교인들의 교리 지식 정도, 기도에 나타나는 경건함 등에 대한 인상 등을 담고 있다.
또한 사보담은 아담스가 세운 계성중학교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계성중학교가 개교한 후 한 달 동안은 아담스가 가르치고 그 다음 6주은 사보담이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다. 1911년 있었던 계성 중학교 제1회 졸업식 사진의 뒷면에는 역대 교장의 이름과 재임기간이 있는 사보담은 1906년 6월부터 6주간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사보담이 부산으로 사역지를 옮긴 뒤에도 대구지부와의 관계는 매우 긴밀했음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최초의 피아노를 사이드보텀부부가 들고 왔다는 것이다. 1900년 3월 26일 달성군 화원의 사문진 나루터로 피아노가 유입되어 28일 자신의 집으로 옮겨졌다.
3. 부산에서의 다양한 활동
사보담 부부는 1899년 12월에 대구로 파송되어 이듬해인 1900년 부산으로 옮기게 된다. 1900년 11월 10일자 보고서에 “우리는 부산 지부의 멤버가 되었다“라고 밝히고 있어 대략적으로 그 쯤에 부산으로 갔을 것이다.
부산에서 사보담은 많은 활동을 했었는데 그 활동을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부산 안과 밖으로 교회를 돌보았다는 것이다.
1) 부산 밖 활동
1905년 9월의 『코리아미션필드』를 통하여서 그의 사역을 유추할 수 있는데 그의 활동은 부산지부의 하위지부인 김해, 밀양, 영산, 창녕, 칠원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상)에 의하면 김해 일천교회(1904), 창년 오호교회(1906), 합천 초계교회(1906)가 그와 조사들의 전도의 결과로 신도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는 이 지역 교회에 대한 전반적인 보살핌과 순회설교를 하였고 대구에서는 후원자 수업, 밀양에서는 여성 성경수업, 김해에서는 지도자 수업 등도 병행하였다. 그의 업적을 게재한 미국의 기사자료(1908년 1월 16일 미시건주 디트로이트 신문)에는 “그가 처음 도착했을 때 한 명의 기독교인도 없었던 2000평방미터의 지역에서 23개의 교회가 그 자신의 노력에 의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라는 글이 게재되어 있어(과장은 되어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보다 많은 곳을 다니며 활동했을 거라 추측이 된다.
2) 부산 안의 활동
부산 안에서는 후원자 수업, 남성성경수업, 조사 대상 교육, 지역교회 보살핌, 본부 총무업무, 전도사업, 저술 활동, 조사들의 업무감독, 언어교육 등으로 활동하였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그가 부산지역교회, 특히 영선정교회(현 초량교회), 절영도교회(현 제일영도교회), 자갈치교회(현 항서교회) 등의 초기 교회형성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특히 항서교회는 그의 전도로 김성우 김공원등에 의해 설립되었다.
두 번째, 그는 저술활동을 하였다. 1903년에 그가 집필한 “사무엘서의 교훈”에 대한 원고가 『더 크리스찬 뉴스』에 실리고 1907년에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를 끝내고, “마가서의 한글 편집에 대한 문법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복음서의 번역작업과 저술활동은 한국인에게 복음을 효율적으로 전파할 목적을 가져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세 번째로는 사보담의 한국어 습득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임선교사에 대한 언어교육이 그의 업무로 주어졌으며 한국인을 위한 성서번역 작업에도 동참하게 되어 1907년에는 성서번역위원회에 위원으로 선출된다.
다시 밟아보지 못한 한국...
사보담은 1907년 8월 안식년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미국 미시간 주 레피어로 돌아간다. 그는 돌아간 직후 가솔린 폭발사고가 나기까지 한국을 위한 모금과 조력자를 구하기 위한 순회설교를 계속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한국에서 온 편지들을 살펴보면 조사나 제자들과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자신의 선교지를 지속적으로 관리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들 편지에는 그가 돌아오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현지 교인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의 부인 에피는 남편을 너무도 사랑했었기 때문에 재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을 돌아가지 않고 1909년 4월 30일 부로 선교사직을 은퇴했다. 그녀는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자 및 피아노 연주자로 봉사를 하였으며 동네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그리고 1944년 일리노이주 디카터에서 사망하였다.
비록 사보담이 너무 일찍 죽었기에 한국의 땅을 다시는 밟지 못하였다. 하지만 사보담의 한국선교의 마음은 너무나 컸다. 그렇기에 그의 자손들은 지금도 한국을 기억하면서 사보담의 유물을 부산으로 기증하였다.
그는 교육, 의료, 선교, 문학, 번역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사진을 통한 그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을 하였으며 경상도의 선교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또한 사보담은 부산의 근대화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을 남겨서 교회 뿐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었다. 이 사보담을 하나님께서 쓰셔서 부산의 교회뿐만이 아니라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경상도의 복음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지금도 사보담의 영향력을 100년이 지난 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사보담과 그이 부인 에피 사이드보텀의 모습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할 것이다.
2017-06-30 08: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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