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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Bell, Eugene(1868-1925, SP) / Bell, Lottie Witherspoon; Bell, Margaret Whitaker Bull; Bell,
 작성자 : chun bok Lee  2017-06-30 14:50:30   조회: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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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기본사항

1. 이름: Eugene Bell / 배유지
2. 생물연도: 1865. 4. 1- 1925. 9 .28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장로회
4. 한국 선교기간: 1895-1925
5. 연표
1865. 4. 1. 켄터키주 스코트 선교부 출생
1889-1891. 샌트럴 대학교 학사
1892-1893. 캔터키주 유니온 신학교 석사
1893-1894. 루이스빌 신학교 신학 박사
1894. Lottie Charlotte Ingram Whiterspoon과 결혼
1901. 04. 12 아내 Lottie Charlotte Ingram Whiterspoon 상처 후 미국 귀국
1902. 내한 목포 선교부 활동 시작
1903. 목포 광주에 남학교 설립, 북서부 순회전도, 목포교회 담임
1904. Margaret Whiteaker Bullr과 재혼
1904. 목포 광주에 임시숙소 건축, 광주(반경 20리) 순회전도
1905. 목포 광주 북부구역, 동부구역, 동북서구역 전도 및 순회
1906. 목포 광주 북서구역 순회전도, 광주(반경 20리) 전도사역
1907. 광주, 북서구역, 건물관리, 평양신학교조력
1908. 광주, 나주(20리), 북서구역, 북동구역 순회전도
1909. 광주 북동부 구역, 시골전도와 책방책임
1909-1910. 평양장로회 신학교 교수
1911. 광주 촌락전도, 북부순회전도. 전주 훈련반 지도
1911-1912.5. 안식년 휴가
1912. 광주 촌락전도, 북부순회전도, 남학교 책임, 안식년
1913-1918. 평양장로회 신학교 교수
1914. 광주 선교부교회 시찰, 나주-장성구역, 신학교 6주 교수
1915. 광주 선교부교회 시찰, 광주, 서부구역담당, 신학교교수
1916. 광주 서부구역 담당, 선교부교회 협동목사, 성경학교 감독, Knox구역 일부
담당, 신학교 교수활동
1917. 서부구역담당, 선교부교회 협동목사, 성경학교
1918. 광주 감독, Knox구역 일부담당, 신학교 교수활동, 선교부 교회 협동목사, 서
부구역담당, 책방책임
1919. 광주 문서업무, 신학교교수활동
1921. Julia Dysart와 재혼
1922. 광주 선교부교회 협동목, 서부구역담당, 문서업무
1922. 평양장로회 신학교 교수
1923. 신학교 교수활동 휴가
1924. 신학교, 목회활동, 북문교회협동목사, 문서사역
1925. 광주 북문교회 협동목사, 촌락순회전도
1925. 9. 28. 광주에서 소천
전남남자 성경학교 위원, 문서업무, 선교회 서기,
북문교회 협동목사, 문서업무, 서부구역 순회전도.

6. 가족사항:
C.I Witherspoon과 사이에 자녀 2명,
Margaret Whithaker Bull과 재혼,
Julia Dysart와 재혼


1. 이름: Bell. Lottie Charlotte Ingram Whiterspoon
2. 생물연도: 국적: 1867-1901년
3. 출신 및 소속: 미국 , 장로회 / 캔터키주
4. 한국 선교기간: 1895- 1901년
가족사항: 1894년 Eugene Bell과 결혼, 자녀 2명
5. 연표
1867. 미국 캔터키주 출생
1899 아우구스투스 여자신학교 신학/ 학사
1895 서울에서 어학
1896 서울에서 어학
1897 목포 선교부 개쳑, 전도사역
1898 목포 선교부 개설, 양동교회설립, 전도사역
1898-1901 목포 양동교회, 전도사역
1901. 04. 12. 심장마비로 사망.
6. 가족사항
1894년 Eugene Bell과 결혼
자녀 2명

1. 이름: Bell. Margaret Withtaker Bull / 배주량/ 배마가렛
2. 생물연도: 1873-1919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장로회
4. 한국 선교기간: 1904-1919
5. 연표
1904. Eugene Bell과 결혼
1904. 목포, 광주 어학
1905. 목포-광주 어학, 전도사역 조력, 여성조사 관리
1906. 목포-광주 어학, 여성과 어린이 전도사역
1907-1908. 광주 어학, 여성과 어린이 전도사역
1909. 광주 여성과 어린이 전도사역, 주일학교, 여자성경반 교육, 순회전도
1910. 광주 여성과 어린이 전도사역, 주일학교, 목포 여자 훈련반 교육지원
1911-1912. 광주 여성과 어린이 전도사역
1912-1913. 안식년 귀국
1913. 나주-장성 여성전도 사역담당
1914. 광주 지역 전도사역, 주일학교 사역
1915-1917. 지역 전도사역
1918-1919. 지역전도사역, 여학교(수피아 여자중, 고등학교 교사) 기술 담당
1919. 경기도 병점에서 교통사고로 사망
6. 가족사항: Eugene Bell과 결혼, 자녀 3명

1. 이름: Bell. Julia Dysart/ 배쥬니아/ 배주야
2. 생물연도: 1872-1952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장로회
4. 한국 선교기간: 1907-1940
5. 연표:
1872. 미국 미조리주 출생
---. 카르크빌 사범대학 학사
1921. Eugene Bell과 결혼
1922-1925. 광주 지역전도사역
1926-1928. 광주 북서구역 여성사역, 이일성경학교 (전주한일신학대학) 교사
1929-1930. 안식년
1931-1936. 광주 서부구역 전도부인 지도, 전도사역, 성경학교 교사
1934. 이일성경학교 교장
1936. 안식년
1937-1937. 광주 이일성경학교 사역
1940. 출국
1941. 6월. 선교사 은퇴
6. 가족사항:
Eugene Bell과 결혼


II. 선교사 소개: 배유지 (Eugene Bell. 1865- 1925)

1. 한국까지의 여정
유진 벨은 오직 신학만을 공부한 인물로써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고 한국까지 올 때에는 다른 일이 아니라 복음전파와 교육에 대한 소명을 갖고 왔다. 그리고 그는 한국 전역을 순회하며 폭 넓은 전도활동을 펼쳤으며 다년간 신학박사로써 평양 신학교에서 교수로 섬겼다. 이로 보아 유진은 오직 성경교육에 대한 소명만을 갖고 한국에 입국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는 1895년 2월 1일경 샌프란시스코를 목적지로 추운 겨울날 켄사스에서 기차로 출발했다. 세인트루이스를 거쳐 콜로라도, 네바다, 2월 8일 센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 Occidental 호텔에서 숙박을 하고 조카와 만나고 한국으로 가져갈 가구와 생필품들을 구입하여 화물을 보내는데 이틀의 시간을 할애한다. 그리고 2월 12일 3시 배편으로 고국을 떠나 일본으로 향한다. 18일 호로룰루 (하와이)섬에 18일 도착해서 이틀 정박하고 20일 일본으로 출발한다. 유진과 로티는 멀미로 인해 매우 힘든 여행을 하며 같은 해 3월 8일에 일본 요코하마 항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들은 일본에서 매우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며 관광을 하고 심신의 회복하는 시간을 갖는다. 같은 달 14일 단 일주인간의 시간만을 일본에서 지낸 후 고베항에서 한국으로 출발하는 배편을 구하려고 하지만 일본 군인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배편을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3월 14일 로티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국으로 가는 배편은 열흘에 한 번 있는데, 우리가 언제 한국에 가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열흘 뒤에 갈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1896년 5월 25일자 편지를 한국의 서울에서 보낸다. 아마도 일본에서 배편을 구하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지체하였고 1895년 3월부터 1896년 5월 이전에 한국에 입국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첫 아들인 헨리를 1986년 5월 17일 서울 근교 ‘삼막’이란 곳에서 출산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그들의 삶은 쉽지 않았고 오랜 기간 동안 향수병에 시달렸다. 이런 그들의 마음을 1896년 8월 13일 편지에 기록한다. “로티는 다시 건강해졌고 우리는 아기가 매번 자는 시간에 다시 등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곳 산의 해지는 풍경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산에서는 중국 쪽으로 바다가 보이는데 바다를 바라보면 가끔 진한 향수가 찾아오곤 합니다. (It some times makes us very homesick)" 그리고 로티가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전에 보낸 마지막 편지인 1901년 4월 9일의 편지에서 그는 ‘로티는 그들의 대화가 로티에게 향수를 자극했습니다. (Lottie said their talk was almost too much for her as it made her so homesick)”라고 하며 한국 생활 6년간 끊임없이 고향을 그리워하던 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들은 일본에서는 너무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갖았던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한국이란 나라보다 국가의 부정과 부패에 실망했다.

"The longer I stay in Korea the more corrupt ot seems to me the whole country is. We say they ought to have honest laws and honest officials but as a matter or fact there are not enough honesty me in the country even if they could all be officers" "한국에 거주할 수록 이 나라 전체의 부패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 정직한 관료들이 필요함과 사회에 정직성이 얼만 부족한지 점점 알게 됩니다."

이들은 이렇게 한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이들에게는 좋은 소식이 있는데 바로 첫째 아들 헨리 벨(Henry Bell)이 로티의 태속에 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1896년 7월 18일 삼막(Sam Mak)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로티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유수유를 하지 않고 은 36냥에 송아지를 구입해서 헨리에게 소젖을 먹였다. 그리고 벨은 아기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그의 어머니에게 자기 자신이 언제부터 어떻게 방을 썼는지, 또 언제 젖을 떼었는지 등등의 질문을 하는 편지를 8월 21일에 보낸다. 이는 헨리가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일이다. 이것은 얼마나 로티와 유진이 주위에 사소한 대화와 삶에 대하여 논의 할 사람이 없이 외롭게 지냈는지에 대한 증거이며 또 외로운 타향에서 삶에 활력소이기도 하다. 어찌 하였든 로티는 아마도 일본에서 한국에 들어오는 길에 임신했을 것이다.

2. 한국에서의 주요 사역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서 한국이름은 배유지(輩裕祗)다. 1868년 4월 1일 미국 켄터키주 스코트 선교구에서 출생. 1891년 켄터키 신학대학을 졸업 하였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 파송을 받아 1893년 서울에 도착하여 전남 선교부가 설치된 나주군에 부임, 그해 9월 6일 나주읍에 최초의 장로교 「나주장로교회」를 설립했다. 그러나 이곳 양반 세력의 텃세가 심하고 외국인에 대한 반발이 대단하여 정착할 수 없으므로 1897년 10월 1일을 기하여 개항된 목포로 선교지로 이주하고, 1898년에 목포 선교부를 개시하였으며 뒤따라 부임한 의료 선교사 오웬 (Clement C. Owen) 및 여선교사 스트래퍼 (Fredrica Stragger)등과 함께 전도 및 부녀자 계몽 사업에 착수 하였다. 다른 한편 선교방법의 일환으로 응접실을 설치하고 변창연으로 하여금 관리하게 하면서 「결신자를 위한 상담실」 역할을 하였으며, 1900년 3월 5일 4명의 원입으로 목포교회가 설립되었다. 그해 여름 30명의 세례지원자 중 6명이 세례를 받았고 8명의 원입교인으로 증가되는 등 꾸준한 발전을 거듭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시작한 목포 선교부에 큰 어려움이 발생하고 잠시 활발하게 성장하던 사역에 큰 어려움이 닥쳤다. 이것은 유진의 아내 로티의 죽음이다. 그녀는 전도여행 도중에 심장마비로 1901년 4월 세상을 떠났다. 당시의 상황을 두 통의 편지로 확인 가능하다. 3월 30일자 목포에서 켄터키에 있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아내 로티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한다. "로티는 지금 봄옷을 만들고 집안 청소하느라 바빠요, 그리고 미스 스트레퍼(Straffer)와 집안을 단장하기 위해 여성가정 저널을 보고 있어요"라고 한다. 이 편지에는 로티의 신상에 아무 문제없이 여느 때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하지만 4월 9일의 편지에는 로티가 '신경통'을 앓고 있다고 말하지만 다시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현한다. 아마도 로티는 한국에 입국하고 지속적인 향수병을 앓고 있었던 것 같다. 이는 그녀의 개인 편지에서 지속적으로 고향의 물건들을 보내달라는 내용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6년째 한국생활에 완전하게 적응하지 못한 상태로 사역을 진행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며칠 동안 신경통을 앓다가 결국 심장마비로 이 생에서의 삶을 마친 것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득 안은 채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명의 땅에서 34년의 짧은 생애를 타향에서 사랑하는 어린 두 자녀를 둔 채 마쳤다. 이것이 유진과 로티가 미국에서 떠날 때부터 자신의 어머니와 가족에게 보냈던 마지막 편지다. 이 이후로 더 이상 유진은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지 않는다. 아마도 편지를 쓰기를 주도했던 것은 로티였을 것이다. 이것은 로티가 가족을 사랑하며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 였을 것이라는 증거가 된다. 유진 벨은 이 때 두 자녀를 데리고 귀국했다, 그리고 함께 동역하던 같은 선교부 오웬 의사와 그 부인도 건강 문제로 귀국하고 결국 목포 선교부는 스트래퍼 straeffer 한 사람만 남게 된다. 결국 처녀 혼자 선교부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 선교부의 사역들은 중단하고 6개월 후 레이놀즈 목사가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와서 목포 선교부를 담당했다. 이 후 벨은 1902년 가을에 다시 내한하여 목포선교를 재개했다. 1903년에는 「목포교회」를 설립하여 교인수가 2백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때 2백 명을 수용하는 석조 예배당을 신축하고 이곳에서 별세한 그의 부인을 기념하기 위하여 「로티 위데스푼 벨 기념교회당」이라 명명했다. 이해 말 목포 근처에는 6개의 예배처소가 설치되었으며 1백 명의 원입교인이 확보되었는데 1904년 봄에 장로교 선교연회에서 광주 선교부를 개설하기로 가결함에 따라 그 책임자로 피택되었다. 그해 12월 오웬과 함께 광주 선교부 초대선교사로 전임한 벨은 광주시 양림동에 선교부를 설치하고 12월 크리스마스를 맞아 그 축하예배를 자신의 사택 사랑방에서 집례 함으로써 광주 선교 역사의 첫 장을 열었다. 이 모임은 1905년 1월부터 「기도회」 모임으로 발전하였고 점차 교인이 증가하자 북문안 (北門안) 교회 (현 광주제일교회)를 설립, 6년 후인 1910년엔 교인 수 5백 명을 기록하였다. 또한 1908년 그의 사랑방에 세 여학생을 모아놓고 시작하는 한편 같은 해 같은 장소에서 남학교도 시작하였는데 이 후신이 곧 수피아 여학교 및 숭일학교로서 1910년엔 이미 튼튼한 기초 위에 서게 되었다. 그가 세운 교회는 광제 제일교회를 비롯하여 광주 송정리, 장성군, 모생리, 해남군 우수영, 곡성군 옥과리, 장성군 소룡리, 순창군 쌍계리, 해남군 신덕리, 장성읍, 광주 월성리, 담양읍교회 등 수 없이 많아 가히 전라 선교의 개척자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수년 동안 평양장로교회 신학교 교수를 겸직하였으며 광주 기독병원 (당시 제중원)설립에 산파역할을 담당하였고 1911년 10월 15일 전주에서 열린 전라노회 창립총회 총회장으로 피선되었다. 그의 둘째 부인 (M. W. Bell)이 3.1 운동 당시 수원 제암리 참상을 취재하고 돌아오던 중 교통사고로 별세하는 등 가정적인 역경 속에서도 선교사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전라도 지방 선교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겹친 격무로 건강을 잃고 몇 년 동안 병에 시달리다가 1925년 9월 28일 광주 자탁에서 별세하였다. 그의 자택이었던 광주 양림동의 집은 현재까지 「벨 기념관」으로 남아 있다. 유족으로 3남 (Henry, Eugene, William) 1녀를 두었는데 딸 샬롯 벨은 후일 남장로교 선교사 린턴(W. A. Linton)의 부인이 되어 군산에서 선교 하였다. 현재 유진 벨 재단은 린턴과 살롯 벨의 손자 인세반 (Stephan W. Linton)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3. 유진 벨의 중심 사역.
1907년 광주-목포 선교부에 Mss. Graham과 Dr. Willson이 참여하였고 이들은 한국어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진 벨을 필두로 진행된 사역은 수요일 저녁 기도회였는데 이 대 벨을 도운 사람은 바로 김연수 였다. 그는 유진 벨이 없을 때 교회를 잘 이끌었다. 그리고 지역 설교자로는 곽씨가 선출되어 사역했다. 또한 성경 공부 사역에 집중했다. 성경공부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지역사람이나 특수계층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성경공부로 선교사들이나 실력있는 조사들이 지도했다. 그리고 둘째는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성경공부다. 이들은 남자와 여자 두 그룹을 나뉘어서 공부를 진행했다. 그리고 떠ㅗ 여자와 아이들 사역도 있는데 이 사역은 벨과 오웬에 의해 주도 되었다. 우선 여성 지도자를 양성해서 그들을 통해서 교육이 진행되어는데 이 부분에서는 오웬이 가장 효율적인 인물 이였다. 또한 미스 벨 (Mss. Bell)도 여성인재를 양육하는데 능력이 있었다. 남편이 광주로 순회 선교를 할 때 그녀는 주위 여인들을 모아서 성경을 교육하며 지도자를 길러 냈다. 그리고 이것은 선교의 모델이 되었다. 광주-목포 선교부는 현지인들 (한국인들)이 재정을 지원하는 자립 정신을 보이는 교회다. 북쪽 선교부와의 관계에서는 오웬 박사가 군산 선교부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두 달 정도는 평양장로교 신학교에서 신학과목과 에베소서 주해 과목을 강의했다. 그리고 평신도들도 일반 성경공부반 2년 단계를 수료하면 평양 신학교에 보내서 공부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들의 특별한 사역으 특별한 모습은 철저한 권징이다. 누구든지 잠깐이라도 죄를 지었다면 확실한 회개의 증거를 보여야 했으며 두 세 번의 반복적인 죄를 번할 경우 출교당하기도 했다. 또한 이 선교지역의 또 다른 활발한 활동은 다량의 성경 판매와 기독교 서적의 판매다. 이 시기에 대하여 유진 벨은 기적적인 기회 (Marvelous opportunity)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1907년 선교대회에서 아홉째 날에 목포 선교부는 남자 기숙사 제도를 도입할 것을 결정한다. 벨 부인 (둘째 부인 Margaret Withtaker Bull)은 언어교육, 여성과 아이들 교육, 주일하고 담당했고 벨목사는 도시 사역, 나주와 주변 12도시 사역, 건물건축, 목포선교부 지원, 평양 신학교에서 6주 신학강의, 남자 학교들 담당했다. 이렇듯 유진벨 목사는 한국에서 신학자로써 평신도 양육에서 신학생 양육에까지 힘을 쓰며 문서 선교에도 관심을 보였다.
당시 한국인에게 평등한 교육은 없었다. 교육은 양반들에게만 허용된 것인데 이런 상황에 교육을 받는 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였다. 특히 여성들이 교육을 받는 다는 것은 평민에게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런 사회 풍조에 교육을 받는 것은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사님들의 교육은 매우 매력적인 것이다. 게다가 한국인의 성품은 더 파격적인 효과를 자아내는데 한국인은 좋은 것이 있으면 자랑도 하고 초대도 하고 공유도 하는 것이다.

4. 2017년 현재 한국의 유진 벨의 흔적
현재 한국에는 '유진벨 재단'이 존재하는데, 이 재단은 2007년부터 북한 내 최초로 결핵 약에 내성이 생겨 일반결핵치료에 실패한 환자들을 위한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해 다제내성결핵 치료에 주력하기 시작했고. 모금활동을 통해 북한에서 다제내성결핵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유일한 단체다. 이렇듯 유진벨의 자손은 지금도 한국에 북한 선교에 힘쓰며 살아가고 있다.
2017-06-30 14:5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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