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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Linton, William Alderman(1891-1960, SP) / Linton, Charlotte Bell
 작성자 : jeremiah86  2017-06-30 16:24:21   조회: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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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기본사항

Linton, William Alderman
1. 이름: Linton, William Alderman / 윌리엄 올더만 린튼 / 한국명: 인돈(仁敦)
2. 생몰연도: 1891.2.8-1960.10.13.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12–1960
5. 연표
1891.2.8. 조지아 주 토머스빌 근교에서 출생
1892-1899. 큰 누나 모드, 형 와이츠 2세, 여동생 칼리 죽음
1901-1906. 어머니가 감리교인이었기 때문에 감리교회에서 세례 받음.
1907. 조지아 공대 입학
1908. 어머니 소천
1912.4.9. 해외선교부 실행위원회의 선교사 임명
1912.6. 조지아 공대 전기공학과 수석 졸업
1912.8.23. 한국을 향해 샌프란시스코를 출발
1912.9.20. 증기선 만추리아호로 목포항 도착
1913. 평생 친구가 된 한국어 선생 고성모를 만남
1914. 군산 영명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국말로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
1917. 영명학교 교장 임명
1919.5.4. 첫 안식년으로 미국행
1919.8. 몬트리올선교사대회 참석, 미국남부지역평신도대회에서 한국 실정을 세계에 알림
1919.가을. 뉴욕 화이트 성경학교 공부 시작 및 컬럼비아 사범대학 교육학석사과정 등록
1921.6. 컬럼비아 사범대학 교육학 석사학위 취득
1921.10. 다시 영명학교 교장 취임
1922.6.10. 일본 고베에서 샬롯과 결혼
1923.4.1. 장남 윌리엄2세 탄생
1924.4.21. 차남 유진 탄생
1926.2.22. 삼남 인휴 탄생
1926.초가을. 선교부 명으로 전주로 옮김. 신흥학교 공동 교장으로 임명
1927.12.4. 사남 인도아 탄생
1928. 컬럼비아 신학교 석사과정 입학
1930. 컬럼비아 신학교 석사과정 취득, 토머스빌 교회에서 특수목회를 위한 목사안수
1930.6.29. 여부솔의 귀국으로 신흥학교 교장직 계승
1935.4. 전주신흥학교 총독부 지정학교 인가
1936. 연초 3,400명 모여 일일 사경회 개최
1936.9. 장남과 차남 평양신학교 입학
1937.6.21. 기전학교 교장 겸임
1936.9.8. 신사참배 문제로 신흥학교와 기전학교 폐교
1938.1. 선교부 산하 학교 폐쇄
1940.11.14. 한국 철수
1941.9월말. 미국 선교부 부총무로 사역
1946.6.1. 6명의 선교사들과 한국 입국
1946.11.6. 신흥학교 교장으로 학교정상화 노력
1948.7. 첫 번째 수술 받기 위해 도미(버지니아 주 리치먼드)
1955.6. 두 번째 수술 받기 위해 도일(동경)
1956. 대학설립 인가 접수, 문교부로부터 학관 설립인가
1957. 미국 미시시피 주의 벨헤븐 대학에서 교육학박사 학위 취득
1958. 학장 취임 및 본관 헌당식
1959. 문교부 대전대학 인가
1960.6.9. 대전대학 학장 사퇴
1960.8.13. 테네시 주 녹스빌에서 사망

6. 가족사항
Linton, Charlotte Bell(부인)
Linton, Hugh MacIntyre(삼남)
Linton, Thomas Dwight(사남)

Linton, Charlotte Bell
1. 이름: Linton, Charlotte Bell / 샬롯 벨 린튼 / 한국명: 인사례
2. 생몰연도: 1899.1.7.-1974.4.30.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12–1960
5. 연표
1899.1.7. 출생
1922.6.10. 일본 고베에서 윌리엄 린튼과 결혼
1923.4.1. 장남 윌리엄2세 탄생
1924.4.21. 차남 유진 탄생
1926.2.22. 삼남 인휴 탄생
1926.초가을. 선교부 명으로 전주로 옮김. 신흥학교 공동 교장으로 임명
1927.12.4. 사남 인도아 탄생
1936.9. 장남과 차남 평양신학교 입학
1949.4.1. 기전여학교(현 기전여자고등학교) 교장 취임
1974.4.30. 사망

6. 가족사항
Bell, Eugene(부)
Linton, William Alderman(남편)
Linton, Hugh MacIntyre(3남)
Linton, Thomas Dwight(4남)


II. 선교사 소개

윌리엄 린튼은 1891년 2월 8일 미국 조지아주 토마스빌에서 태어나 조지아 공과대학에서 전기학을 공부하고 1912년 4월에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는 곧바로 한국 선교사를 지원하였고, 미국 남장로교회 해외선교부의 추천으로 한국선교사로 파송, 그 해 9월 군산에 도착하여 이후 48년 동안 한국에서 교육을 통한 선교사업에 종사하였다. 그는 선교부 활동과 전북노회와 장로교 총회에서도 기민한 판단력과 투철한 정의감으로 결정적인 주요안건을 상정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고, 줄곧 신흥학교에서 봉직하면서 주일이면 연약한 교회들을 순회하며 도와주어 많은 농촌의 교우들을 사귀게 되었고, 그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기도 했다. 특히 린튼은 어학 실력이 뛰어나 한국어에 능통하여 새로 내한하는 선교사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고도 한다.

그의 삶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제1단계는 1912년에서 1930년까지 군산과 전주에서 교사와 교장으로 지낸 시기, 제2단계는 1930년 목사임직을 받은 후 1940년까지 전주 신흥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신사참배 반대로 학교를 폐교시킨 시기, 제3단계는 해방 후 1946년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1956년에 대전대학교를 세우고 초대학장으로 취임한 후 사망할 때까지의 시기이다.

1. 군산 영명학교와 전주 신흥학교의 교사·교장 시절
린튼은 거의 대부분을 전주지방에서 신흥(新興)학교를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나, 처음에는 군산선교부에서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 1902년에 전킨(W. M. Junkin) 선교사의 방에서 시작된 군산 영명학교는 창설 당시 30여 명 정도의 학생이 등록하였으나, 가난으로 인하여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학생들이 많았다. 이에 군산 선교부는 학교 내에 공업반을 두어 학생들이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1907년부터 학생들에게 가마니를 짜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일본산 제품과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공업반 자체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이즈음 한국에 온 린튼은 1913년부터 공업반에서 목공과 여타의 기술을 가르쳤다. 그의 지도를 받은 목공기술반 학생들은 도시락 가방과 책상을 만들어서 서울에서 열린 전람회에 출품하여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1916년 등록학생 74명 중 13명은 공업반에서 일을 하면서 등록금을 충당하였다. 그 후 린튼은 1917년부터 군산 영명학교 교장직을 맡아서 학교의 운영 전반을 책임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19년부터 1921년까지는 안식년을 맞이하여 미국으로 돌아가 컬럼비아대학교 교육대학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22년 6월 10일에는 같은 남장로교 선교사로 목포와 광주에서 활약하던 유진 벨(E. Bell; 배유지) 목사의 큰딸 샬럿과 일본 고베에서 결혼한 후 군산의 해리슨(W. B. Harrison) 선교사 사택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였다. 1926년부터 전주 선교부 소속으로 일하면서 전주남학교 임시 교장을 하다가 1927년부터는 교장직을 맡았다. 1928년 7월 1일부터 다시 안식년을 맞이하여 컬럼비아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30년 5월에 목사임직을 받았다. 그 해 7월부터 다시 전주 신흥학교에 부임하여 1937년에 일제 총독부가 강요하는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학교를 자진 폐교할 때까지 교장으로 사역하였다. 전주 신흥학교는 재학생 가운데 학업을 계속하기 원하는 학생들을 고창 고등보통학교로 전학시켰는데, 이날 린튼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마련한 버스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는 1938년 1월 22일 기록에서 “전주 신흥학교가 문을 닫은 것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나는 한국에서 지금까지 교육을 전담했다. 이제 내 모든 정성은 40개 농촌교회를 돌보는데 힘쓸 것이다.”라고 했다.

2. 미국의 퇴폐문화에 대한 반감
해방 후 한반도의 남쪽에 미군정이 시작되자, 미국 남장로교회는 한국에 선교사들을 파견하기에 앞서 린튼을 위원장으로 하는 6명의 ‘한국조사위원회 The Korea Search Committee’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1946년 7월 한국에 도착하여 전주, 목포, 광주, 순천 등지를 둘러보았다. 그렇지만 린튼은 “미국이 한국 문화를 침범하는” 상황을 목격하고 그것을 “문화적인 침입 혹은 점령”이라고 표현하였다.

문화적인 침입—우리 미국인이 이 생각을 좋아하든지 혹은 좋아하지 않든지, 한
국은 우리들에게 침입당하고 있다. 이 침입은 하지 장군과 우리나라의 모든 군인
들이 철수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침입은 군사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이기 때문이다…….

호퍼 목사도 “남한을 일본대신과 미국 육군이 점령한 것을 보고서, 나 자신은 두 국가의 점령 군대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대조하였다. 현재는 미국 군대가 모범과 교훈을 보여주고 의롭게 행동할 때만이 미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지 않는가!” 라고 말했다.
린튼은 미군정청과 교섭하여 당시 미군들의 병영으로 사용하고 있던 학교건물을 일부 인계받아 1946년 11월 6일 학생을 모집, 학교를 재개하여 교장으로서 학교를 정상화시키기에 혼신을 다하였다.

3. 대전대학교 설립과 초대학장 취임
한국전쟁이 끝난 후 미국 남장로교 한국 선교회는 호남 지방에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인문학과 현 시대가 요구하는 과학적인 지식을 고루 갖춘” 4년제 대학교를 세우기로 하고 린튼에게 그 책임을 맡겼다. 남장로회의 최대사업으로 이루어진 대전대학의 설립은 그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그는 1956년 4월에 ‘대전대학교’를 개교시키고 초대학장을 맡았다.
린튼은 대전대학교를 동서양 문화교류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수업은 영어와 한국어를 병행으로 진행시켰다. 동시에 질 높은 교육을 위해 교수 35명이 409명의 학생을 가르침으로써 교수 한 명당 학생을 약 11명으로 하는, 오늘날에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을 유지하였다. 그는 한국에서 ‘교육 선교사’로 고등학교 교사와 교장을, 대전대학교를 설립하여 초대학장을 역임했다. 그는 호남 지방의 ‘근대 교육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이었다.

4. 그 뒤
린튼의 두 아들 인휴와 인도아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각각 순천과 광주에서 선교 활동을 펼쳤다. 그의 손자 세대는 좀 특이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인세반(Steven Linton)과 인요한(John Linton)은 유진벨 재단을 1994년에 설립하여 북한에 밀가루와 의약품을 전달하는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은퇴하여 미국에 살고 있는 린튼의 며느리 인애자와 아들 인도아는 다른 분들과 함께 ‘한국을 사랑하는 기독교인 친구들’이란 단체를 만들어 북한을 돕고 있다.
그의 후손들은 한반도를 잊지 못한다. 한국인들도 그들을 잊지 못한다. 여수와 순천에서, 그리고 목포와 전주에서 린튼은 매우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사람으로 기억된다. 동시에 대전에 있는 한남대학교는 린튼을 설립의 아버지요 대학을 이끄는 힘과 정신으로 생각하고 그 뜻을 실천하고 있다. 인돈기념관과 인돈동산, 인돈학술원, 한남인돈문화상 등은 사라져 가는 인돈 정신을 봉사와 사랑과 헌신을 통한 교육이 실현되도록 하는 잣대로 삼고자 하는 뜻의 표현이다.
2017-06-30 16: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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