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6.23 화 09:15
 
 내한선교사 / Rehrer, Jennie M.(1890-1953, NP)
 작성자 : 안소희  2017-06-30 16:41:50   조회: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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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1. 이름: Rehrer, Jennie M. / 레러 / 한국명: 이우로(李雨路)
2. 생몰연도: 1890-1953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17.8.24.-1928.
5. 연표
1890. 미국에서 출생
1917.8.24.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1917-1928. 평북 강계(江界)의 케네디병원에서 유일한 간호원으로 근무
1928 사임하고 귀국. 귀국 후 윌리엄 불록(William Bullock) 목사와 결혼
1953 펜실베니아 샤론에서 사망
6. 가족사항
남편: 윌리엄 불록(William Bullock)


Ⅱ. 선교사 소개: 레러(Rehrer, Jennie M. 1890-1953)
1. 강계
레러 선교사가 파송된 ‘강계’ 지역은 평안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이다. 1896년에 전국을 13도로 나누며 강계가 평안북도의 군에 속하게 되었다. 1907년 당시 강계군은 20면에 호수 9,542호, 인구 3만 7308명일 정도로 큰 군이었다. 그리고 옛날부터 강변 7읍 중 하나에 속해 평안북도 동북 지역의 심장부 역할을 하며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리고 조선시대 때부터 많은 교육기관을 보유하고 있었고, 1904년에는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인 명신학교가 세워진 곳이다. 이후에도 많은 교육기관들이 설립되었는데 그중 1907년에는 레러 선교사가 속한 미국 북장로교의 후원으로 4년제 중등교육 기관인 영실중학교가 설립되었다. 초대교장은 캠벨(Campbell, A.)이었다.
레러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올 때는 일제 감정기였는데 그녀가 사역한 강계 지역은 지리적 특수 조건으로 인해 무장 독립단이 격렬하게 활동한 곳이다. 조선총독부 경무국 연표(1930)에는 1920년 6월에서 1925년 6월까지 5년간 58회에 걸쳐 독립단과의 충돌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발행)에는 강계군 출신으로 무장 독립단이나 독립 운동에 참가하여 순국 또는 전사한 사람만 40여명이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중에는 대표적인 독립 운동가로 뽑히는 이응서도 있다. 1919년 3‧1 운동 때 벌어진 강계 만세시위에 집회인 수가 5만 35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강계는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던 곳이다.
강계는 평안북도에서 선천과 함께 기독교의 고장으로 불린다. 강계에는 1899년에 최초 개신교 교인이 생겼는데 그는 김윤붕(金潤鵬)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이른 시기인 1880년에서 1885년 사이에 이미 기독교에 관한 지식이 강계의 산악지대 사람들에게 먼저 전해졌다고 추정한다. 1899년 김윤붕이 기독교인이 되고나서 집으로 가져 온 책을 본 어머니는 약 15년 전 만주에서 한국인 권서들에게 받았던 책과 비교했다. 그런데 같은 책이었다. 어머니가 수년간 가지고 있었던 책은 로스와 매킨 타이어가 한국인들과 협력해 번역 출판한 최초의 한국말 신약성경이었다. 성경이 번역 출판된 후 한국인 권서들은 이 책을 전하고 다녔는데 강계에도 이 책이 전해졌던 것이다. 물론 그 책이 전해졌다고 해서 기독교인이 생겨났던 건 아니다. 1889년 언더우드 부부가 신혼여행으로 강계에 왔는데 그 때 강계를 언더우드 부인이 묘사하기로 “우리는 이곳에서 매우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 했지만 기독교인은 한명도 보지 못했다.”라고 했다. 어쨌든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성경은 이미 전해졌던 상태였고, 자칭 기독교인 집단도 생겨났던 것 같다. 하지만 본격적으로는 의화단 사건으로 인해 만주에서 강계로 피난 온 사람 중 일부, 약 80여명의 신자들에 의해 1899년 위원군 석포동에서 교회가 시작되었다. 그 후 기독교는 계속 전파되어 1902년에는 교인 80여 명이 돈을 모아 최초의 교회인 동문밖교회를 세웠다. 그 뒤 1910년에 남장대예배당(=강계읍교회)이 세워졌다. 강계의 초기 선교 때 활약한 사람은 캠벨 선교사였다. 그는 1910년에 처음 와서 1935년에 일제에 의해 추방될 때까지 활동하며 복음 사역을 위해 교육과 의료 사업을 추진하였다.

2. 케네디병원
강계에서의 의료사역은 랄프 밀즈 박사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그는 헛간을 진료소로 고쳐 한 해 여름동안에만 300여명의 환자를 돌보았고, 그의 옆에서 블레어가 통역을 하며 동역했다. 그의 뒤를 이어 1910년에 플레처 박사가 강계에서 일을 했다. 케네디 병원은 1910년에 건설되기 시작하여 1911년 2월에 개원되었다. 미국 36대 대통령이었던 케네디의 선조들이 병원 설립을 위한 비용을 기부했기 때문에 ‘케네디 병원’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 계례지 병원이다. 병원 개원 후 존 비거와 그의 약혼녀인 노마 블런트가 병원을 맡아 의료사역을 원활히 진행했고, 세브란스 간호학교를 졸업한 김봉순이 한국인 최초의 간호사로 이곳에서 일하였다. 레러 선교사는 1917년에 최초의 외국인 간호사로 오게 되었다.
케네디 병원을 통한 강계의 의료사업은 확장되어 1918년까지 1만 8천명이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강계의 교회들은 매년 케네디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한 해를 시작했다. 또 이 병원은 케네디 부인의 지속적인 경제적 후원으로 수입금 내의 운영과 사역의 기록이 완전하게 보존되었고, 의료 사업도 꾸준히 할 수 있었다.
케네디 병원은 의료사업 뿐만 아니라 한국의 독립 운동에도 동참한 걸로 보인다. 3.1운동 때 강계에서 4월 8일에 만세시위가 일어났는데 이 때 필요한 독립선언서 2천부를 케네디 병원 지하실에서 찍었다고 한다. 이는 케네디 병원이 단순히 의료가 목적이 아니라 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해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인 도움을 주었다는 증거가 된다.

3. 레러 선교사의 사역
1910년부터 1924년까지 선교사들에 의한 의료사업은 ‘억압 속의 발전기’라 불릴 만큼 어려웠다. 이시기에 일제의 식민 통치가 시작되어 일제가 기독교 의료사업을 크게 탄압했기 때문이다. 조선 총독부는 1913년에 <의사규칙>이라는 걸 반포하여 이미 의사면허증을 가지고 있었던 의료 선교사들이 일본식 의시 자격시험을 다시 통과해야만 병원의 책임자로 일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도립병원을 각 지역에 설립하여 기독교 병원과 경쟁구도를 조성하여 의료 선교에 압박을 가했다.
이로 인해 선교사들은 의료사업을 중단하는 걸 심각하게 고려했다. 복음 선교사들은 의료사업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의료 선교사들은 의료선교를 지속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논쟁 끝에 의료사업은 계속되게 되었다. 일제의 억압으로 인해 시작된 논쟁이지만 기독교 의료사업과 선교 병원에 대한 목적과 사명을 논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던 걸로 보인다.
강계 케네디병원은 이 시기인 1910년에 건립된 선교병원이다. 레러 선교사는 건립 7년 후인 1917년에 케네디 병원에 파송되었는데, 그녀는 최초의 외국인 간호사였다. 그녀는 의료사업을 복음전도의 강력한 수단으로 사용한 인물 중 하나로, 간호사로 근무하며 전도와 의료 사역자들을 훈련시켜 한국 복음화 사역을 계승하게 했다. 레러와 같은 여성사역자들의 도움으로 강계에서의 의료사업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이는 선교를 함에 있어 의료사업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함을 증명해주는 선례가 되었다. 1928년 레러 선교사는 약 11년간의 한국선교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해에 윌리엄 불록(William Bullock) 목사와 결혼하였고 1953년 펜실베니아 샤론에서 사망하였다.
레러 선교사가 한국을 떠난 후 강계 선교기지는 다른 외국인 간호사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1924년부터 의료 선교에 대해 일제가 직접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제에 의해 설립되는 도립병원이 확장되며 선교병원에 찾아오는 환자가 줄어들었고, 그에 비례해 지원되는 재정도 감소했다. 그래서 그동안 선교회와 선교사의 주체로 운영되던 기독교 병원을 한국교회와 한국인 의료진의 주체로 전환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기독 병원들에서 한국인 의료진 역할이 증대되었고, 레러 선교사가 있던 케네디 병원에서도 그녀 이후에 외국인 간호사는 구해지 못하고 간호학교를 졸업한 한국인 간호사들을 채용했다. 비록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선교 병원의 시설이 확장되거나 진료 인원이 늘진 못했지만 의료 선교의 주체가 한국인으로 전환된 발전이 있었기에 기독교 의료사에서는 이 시기를 성숙기라 부른다고 한다.

4. 한국교회사 관점에서 평가
레러 선교사에 관한 자료는 많지 않다. 강계의 의료사업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두 세 줄만 언급된다. 그리고 당시 선교사들이 주고받은 편지에서도 그녀의 이름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한국 나이로 28살에 미혼여성으로 낯선 한국 땅에 들어와 약 11년을 의료선교를 위해 헌신한 후 돌아간 것에 비해 그녀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아쉬웠다.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는 건 그만큼 최초의 외국인 간호사로서 사명을 가지고 의료선교에 몰두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강계의 유일한 선교병원으로 자리하던 케네디 병원에서 간호사로서 수많은 환자들을 그녀는 돌봐야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고 기록에도 남아있듯이 자신의 후임들을 양성하기 위해 의료기술과 복음을 가르치는데 전력을 다했을 것이다. 가장 아름답게 인생을 꽃피울 20대에 가족들을 모두 남겨두고 홀로 한국에 들어와 와 선교했다는 그녀의 기록은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시기에 하나님의 소명 하나 붙잡고 한국의 복음화를 위한 사명을 충실히 감당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또 당시 그녀가 사역했던 시기는 일제에 의해 국가가 탄압받고, 기독교가 탄압받던 때이다. 이미 일제 감정기가 시작했다는 걸 알고 그녀는 한국 땅에 들어왔다. 그리고 치열하게 독립운동이 이루어지던 강계에서 사역했다. 이렇게 그녀가 사역했던 배경들은 자신의 신변이 위협받을 수 있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편안함보다는 복음의 간절함을 쫓아 선교를 했다는 걸 보여준다. 또 외국인 여자 간호사가 없었던 병원에 첫 간호사로 부임하는 걸 결정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고, 사역을 해나가는 과정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기반을 잘 다져놓았기에 그녀에 이어 많은 한국인 간호사들이 자리를 잡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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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2017-06-30 16: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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