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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Pollard, Harriet E.(1859-1937, NP)
 작성자 : 김황호  2017-06-30 16:45:44   조회: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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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기본사항

Pollard, Harriet E. (폴라드 / 方解禮 / 미국 / NP )
1.생몰연도 1859-1937
2.학력
3.경력 : 1911. 11. 10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경북 대구 신명여학교 교장으로 1938까지 봉직
대구제일교회 주일학교, 대구 성경학교에서 교육
학교 방학중에는 경북지방 순회전도
1938 교장직 사임후 대구에서 복음전도에 헌신
1941. 2 세계평화기도문 사건에 연루
1941. 11 일제의 압력으로 필리핀 마닐라로 출국
1944 선교사직 사임하고 귀국, 캘리포니아에 거주
4.가족사항


II. 선교사 소개

1) Pollard, Harriet E. 선교사가 교장으로 있었던 대구신명여학교에 대한 조사.
-> 대구신명여학교가 처음 세워진 해는 1903년 10월 23일 북장로회 여선교사 브루엔(H. M. Bruen; 부마태) 부인에 의해였다. 당시는 ‘신명여학교’란 이름으로 설립되었고, 1907년 정식으로 인가 받아 여성교육의 시발점이 되어진다.
당시는 대한민국이 일본에 통치 받던 시절이라 사회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암흑과 같은 시기였을 것이다.
폴라드(Pollard, Harriet E. ; 方解禮)선교사가 속한 북장로회는 이러한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서 중립적인 원칙을 두고 기독교의 비정치화를 주장했을 때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이방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좋지 않을텐데 그들이 한국을 돕는 입장이 아닌 뒤로 한발 빼는 모습이 그리 달가워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정치적 문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정책이었기에 더 할 말은 없지만, 그래서 아쉬운 마음은 든다.
하지만 폴라드(Pollard, Harriet E. ; 方解禮)선교사가 보여준 행보는 이런 정치적, 사회적으로 암울하고 어두운 상황속에서도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생각한다.

1912년 4월 여선교사 폴라드(Pollard, Harriet E. ; 方解禮)가 대구신명여학교 제 2대 교장으로 취임되었던 것이 그 시발점으로 보인다. 이 해에 제 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는데 이 때 교사진으로는 폴라드 교장 이하 교감 조경로(초기) 및 이쾌영(졸업시)이 봉직하였으며 교사진으로는 강대경, 우은봉, 이내문, 아담스 부인, 강부인, 박덕인, 장소연 등 8명이었고 재학생은 51명이었다고 한다. 당시 여학교 인원치고는 적지 않은 인원이었을 것이다. 여자의 신분을 가지고 지성을 가르치며, 교육을 받는 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던 시대이기도 했으며, 외부적으로는 일본의 압제에 더욱이 튀는 행동을 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을 것이다.

이 학교는

“기독교 신앙 위에서 인격을 완성케 하고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는
성실 유능한 여성을 기른다.”

는 교육목적을 가지고 설립하였다.

Pollard, Harriet E. 선교사는 단지 고등학교를 설립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일생을 바치지 않았다. 그녀는 1920년 졸업생 7명을 데리고 ‘신명전도대’를 만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힘쓰기 시작했다. 주된 순회지는 고령읍과 의성군, 안동읍을 돌며 전도 강연에 나섰다. 그 때 153명이 넘는 인원에 새로운 새입교인으로 등록했으며, 풍천읍에서는 213명 가까이 모여 그녀의 강연을 듣고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
그녀가 교장으로 몸 담았던 학교는 규율이 상당히 엄격했으며 보수적인 여성교육기관으로 정편이 나 있었다.
당시 문화나 사회적 모습을 볼 때 여성이 무언가는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여성이 교육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놓은 것이 대단하게 여겨진다. 그것도 수도권인 서울이 아닌 대구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학교의 교육목적에 맞게 기독교 신앙 위에 인격을 완성해 나감으로 국가와 사회에 봉사케 하는 성실 유능한 여성을 기르기 위하여 그녀가 노력한 것은 1920년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감히 생각해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행보는 1927년까지 지속되어져 왔고 학교에서는 교장 근속 15주년 기념회를 열어준 기록이 남아있다. 이 정도 대접을 할 정도였으면 폴라드(Pollard, Harriet E. ; 方解禮) 선교사의 행보는 대구신명여학교를 넘어서 대구 지역에 굉장한 귀감이 되는 행보였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러지 않고서야 근속 기념회를 열 수 있었을까?
내부적으로는 아무래도 보수계층의 눈 밖에 나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그들과 잘 협력하여서 선교적 사명을 감당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여겨진다.

그래서였을까 1930년 그녀가 몸 담고 있던 학교는 지정학교 승격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고향인 미국 땅에 도움을 요청한다. 승격운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그녀가 미국 땅에 어떤식으로 도움을 요청했는지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대한민국 여성들의 교육을 위해서 그녀가 얼마나 큰 힘이 되고자 했으며, 그들을 사랑으로 교육하고자 했는지, 그리고 인격채로써 당시 받지 못한 인간적 대우를 해주려 했는지 느낄 수 있다. 그녀에게 가르침을 받던 학생들은 스스로 고향땅에서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재단범인 설립을 위해 힘쓰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 당시 1930년대는 전국 교회의 주일학교가 급성장하던 때이기도 하다. 가장 열정적인 모습을 보일 이러한 사건이 나왔다는 것은 신앙적 흐름을 타기 시작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폴라드(Pollard, Harriet E. ; 方解禮) 선교사는 이 때가 중요한 때임을 알았을 것이다. 193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세계주일학교대회에서 한국 주일학교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 역시 더 나은 교육을 받게 되어 세계적 여성으로 발돋움할 그날을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을 가만 둘리 없는 집단이 있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1936년부터 이 학교의 신입생을 모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시작한다. 주변에 있던 학교들 역시 교육의 장이 닫히게 된 것이다. 심지어 폐교 위기까지 갔다고 하는 걸 보니 일본인들의 눈에 몹시 보기 좋지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결국 폴라드(Pollard, Harriet E. ; 方解禮) 선교사는 1938년 교장직에서 사임하게 된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녀의 행보를 통해 추측해보건대 그녀는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을 키우기 위하여 힘썼을 뿐 점점 성장해나가며, 부흥해나가는 세력을 두려워한 일본의 만행으로 여겨진다.

그녀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 Pollard, Harriet E. 선교사가 연루된 세계평화기도문 사건에 대한 조사.
1941년 2월 28일 일제 말기에 세계기도일에 일어난 사건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탄압당하고 추방 당한 사건이 있었다. 이 기도회를 주관한 주한선교사의 기도문 문구가 당시 일제 당국에 문제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사회적으로 볼 때 당시는 중일 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미국과 일본은 적대국으로 서로 좋지 않은 시각이 만연한 시대였다. 조금만 잘못하면 곧바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시기에 거슬릴만한 기도문구가 나왔으니 이것을 문제 삼았으리라 여겨진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이런 내용이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이신 예수그리스도...”

기독교인들에게는 보편화되어있는 표현이다. 예수가 왕이시고 주이신 것이 우리의 고백아니겠는가? 너무나 당연한 고백이고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아무 문제없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이지만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 표현이 일본 천황의 절대적 주구너과 신성을 모독했다고 트집잡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본의 불편한 심기는 공동기도회를 구관하던 여선교사들에게 튀기 시작했다. 만만한 여성들에게 화풀이한 셈이다.
결국 일본에 의해 행사는 중단된다. 그리고 평양북장로회 선교부 소속 여선교사 버츠(A.M.Butts)를 비롯 11명의 선교사를 체포, 구금했다. 이때 이 사건에 연루 되었던 폴라드(Pollard, Harriet E. ; 方解禮) 선교사 역시 일제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1941년 11월 필리핀 마닐라로 출국하기에 이른다.

그 이후 그녀의 행보에 대해선 알 수 없으나 남겨져 있는 자료는 1944년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귀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제의 탄압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 정도였으면 이러한 선택을 했었을까 한다. 미지의 땅 한국땅에서 와서 당시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던 여성을 위한 교육에 힘쓰던 사람이었다.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고, 일본으로부터 오는 압박에 시달리며 학교를 세워나가고 이들이 교육을 위해 고향땅에 한국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할 만큼 강력한 부르심을 받고 선교했지만 그 끝은 너무나 아쉽게 끝나 보여 안타까울 뿐이다.

그녀의 행보는 비단 한국 여성들을 위한 모습만 나타낸 것은 아니다. 함께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한 스위쳐 선교사에게 쓴 추모의 글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동역자를 위해서 힘썼는지도 알 수 있다.

대구신명여학교 교장으로 있을 당시 폴라드 Pollard, Harriet E. (한국명: 方解禮<방례해>) 선교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추모의 글을 발표하였다.

“ 스위쳐는 재정적으로 고국에서 안락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하려는 열정으로 한국 선교사로 자원하였다. 보수를 받지 않으면서도 하는 일에 전심전력하며 지칠 줄을 몰랐다. 한국의 부져나와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선교 사업에 가장 큰 즐거움을 찾았다. 그는 매력적인 인품과 인자한 영향력을 지닌 교양 있고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크리스천의 아름다움과 능력으로 주님의 찬란한 광채 속에서 두드러지게 살았던 인물이다.
그를 알고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삶과 사랑의 노고를 마음속에 깊이 기억하고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한국에서 여성선교사로 함께 일하던 Pollard, Harriet E. (폴라드 / 方解禮)선교사의 추모글이다. 함께 타지에서 사역하다 먼저 보낸 이를 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인터넷 사이트
http://yanghwajin.co.kr/zboard/view.php?id=forum&no=167
http://www.cportal.co.kr/bbs/board.php?bo_table=qt&wr_id=12319

자료
장로총회 1924-27 대구시사 제 2 권; 1973; 구미인조사록; HKMPI; 신명 50년대사;
기독교교육사; 한국기독교 사진총감; 한국기독교 학교연맹 회원교 현황 일람표, 1977;
경북노회 100회사; 동아일보 1920-39; 한국학교명감, 1979, 1982;
신명여자고등학교⦁신명여자중학교 제공, 기독교대박과사전자료,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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