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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Edgerton, Faye Elva(1889-1968, NP)
 작성자 : 이은지  2017-06-30 18:54:01   조회: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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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1. 이름: Edgerton, Faye E. / 에드거튼 / 한국명: 예가전(芮可田)
2. 생몰연도: 1889년 3월 26일 – 1968년 3월 4일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18년 9월 14일 – 1923년 3월 5일 (re, 사임)
5. 연표
1889년 3월 26일: 미국 네브래스카주 아담스 카운티의 Little blue township에서 태어남.
1899년 : 10살이 되던 해 기독교인이 됨(회심).
1908년(추정)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카고로 음악을 공부하러 감.
1910년(추정) : 심한 열감기로 일시적 귀머거리가 되었고 다시 회복됨. 이때 선교사로 서원하게 됨.
1911~1918년(추정): 무디 성경 연구소(Moody Bible Institute)에서 수학하고 졸업함.
1918년 9월 14일: 한국의 선교사로 파송됨.
1918년 겨울 : 심한 Sinusitis(부비강염, 부비동염)에 걸림.
1922년 12월말 : 부비동염이 낫지 않아 미국으로 치료하러 감.
1923년 3월 5일 : 건강상의 문제, 아버지의 건강 악화 등의 문제로 한국 선교사를 사임하게 됨(추정).
1923년 12월 : 아버지의 사망.
1924년 초 :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에 속한 애리조나 주 가나도에 학교에서 일하게 됨.
1943년 : 언어학 연구소(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에서 Kenneth L. Pike와 Eugene A. Nida에게 언어학을 개인적으로 사사받음.
1944년 : 북장로교 선교 사업을 떠나고 Wycliffe Bible Translators으로 사역하게 됨.
1956년 : 게로니모 마틴(Geronimo Martin)과 마가복음, 누가복음, 로마서, 고린도전서, 요한계시록의 오래된 번역본을 개정하고 신양성경을 완성함. 미국 성서 공회에서 출판되었음.
1958년 : 미국 노만에서 열린 Athapaskan 언어 세미나에 참가.
1959년 : Western Apache의 문장 구조에 관한 연구를 발표함.
1964년 : 멕시고 Ixmiquilpan의 번역 워크샵에 참가(Dr. Robert Longacre와 함께).
1966년 : 아파치(Apache)언어를 배워 페이스 힐(Faith Hill)과 함께 신약성경을 아파치어 신약성경으로 번역함. 이 성경은 존슨 대통령에게 제출됨.
1968년 3월 4일 : 뉴멕시코(New Mexico)의 파밍턴(Farmington)에서 사망.

6. 가족사항
1923년 12월 장로인 아버지의 사망만 확인할 수 있었다. 추정하건데 독신으로 보임.


Ⅱ. 선교사 소개: 애드거튼 Edgerton, Faye Elva (1889-1968)

애드거튼 선교사, 댄스를 좋아하던 소녀가 하나님께 서원하기까지..
애드거튼 선교사는 미국 네브래스카주 아담스 카운티의 Little blue township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애드거튼은 댄스를 좋아하고, 파티를 다니면서 친구들과 남자아이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소녀였다. 전형적인 노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던거 같다. 어려서부터 장로인 아버지를 따라 교회에 다녔는데 모태신앙인지는 알 수 없다. 다른 기록에 보면 10살 무렵에 하나님을 만났다고 한다. 애드거튼은 음악과 춤을 좋아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음악공부를 하러 갈만큼 선교사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졸업 2년 후에 극심한 열병으로 몸의 문제가 생겼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귀머거리가 된 것이다. 그때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 같다. 기적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회복된 애드거튼은 선교사의 서원을 하며 본격적인 선교사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첫 선교지, 잘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으로 애드커튼은 가게 되었다.

한국으로 온 비운의 선교사, 애드거튼
애드거튼 선교사는 1918년 9월 14일 미국 북장로교 소속의 선교사로서 한국 땅에 첫발을 딛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약 4년 뒤인 1922년 말 본국인 미국으로 돌아가고 이듬해인 1923년 정식으로 사임한다. 애드거큰 선교사가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한 4년 동안 그녀의 사역은 어찌보면 열매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 청주로 가서 사역하고, 이후 평북 선천으로 옮겨 사역을 했는데 한국 선교에 관한 그 어떤 자료를 보아도 애드거튼 선교사의 업적이나 활동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그저 ‘부임했다’, ‘옮겼다’등의 사역지 이동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애드거튼의 대한 자료가 얼마나 없는지는 내한선교사 총람, 한국선교총람 등의 자료에서 아주 간략한 정보만이 있음을 통해 알 수 있다. 활동도 미비하고, 업적도 없는 이 한국 선교지에서 애드거튼 선교사의 선교는 실패처럼 보인다. 한국에 온 1918년 겨울 애드거튼은 부비동염, 소위 말하는 축농증이 너무 심해서 사역을 포기할 정도로 고민하게 된다. 한국의 기후가 애드거튼과 맞지 않았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그녀에게 부비동염은 활발한 선교활동에 제약을 걸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애드거튼 사역: 노방전도, 여자주일학교
처음 사역했던 청주는 불교의 중심지였고, 개신교가 전해지기 오래 전 가톨릭의 중심지였다. 청주의 주된 선교 사역은 전도지를 뿌리는 ‘씨를 뿌리는 일’을 중점으로 하였다. 1918년에는 청주의 남부 순회구역에서 7500여권의 책자와 3만 부의 전도지들이 배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북부 순회구역에서는 5300권의 책자와 5만 부의 전도지가 사용되었다. 실로 방대한 양의 전도지를 통한 노방전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의 날씨와 맞지 않아 심각한 부비동염에 걸린 애드거튼이 밖에 나가 전도지를 나눠주는 사역에 얼마만큼 기여했을까 생각이 든다. 아마 건강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애드거튼은 얼마 뒤 청주에서 선천으로 사역지를 옮기게 된다.
선천에서는 노방전도의 사역도 함께 했지만 실내에서 하는 사역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선교기지에서 여성 회원들의 일부는 통상적으로 이 읍의 여자주일학교에서 일하였다. 그 대부분의 기간에 선교기지의 두 여선교사들이 남교회와 북교회의 여자 주일학교들을 감독하였다. 다른 형태의 사역들, 곧 한국인 가정 방문, 사경회와 성경학원 교육, 여학교와 병원 협력사역 등도 수행되었다. 실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성경학원은 건강이 좋지 않았던 애드거튼에게 보다 적합한 사역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이 여자주일학교의 기록을 통해 처음으로 애드거튼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힐다 헬스트롬(hilda helstrom)은 1909년에 와서 일하다가 1920년에 페이 에드거턴(faye edgerton) 양에게 넘겨주었다.” 그런데 이 한줄의 문장이 전부이다. 선천 여자성경학원에 대한 책과 기록들에서 동시대에 다른 여성 선교사들의 활약만 기록되어 있을 뿐 애드거튼 선교사의 활동은 없다. 그만큼 건강의 문제가 심각했던 것 같다.

포기하지 않은 선교 사역
한국에서 애드거튼은 한국 선교역사에 업적이 되거나 남겨질 만큼의 행적이 없다. 한국에 오자마자 기후와 환경에 맞지 않아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사역을 지속해나갔다. 의료 시설도 미비했던 그 시절, 바로 포기하지 않고 한국에 남아 사역을 4년간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한국인들의 투지와 선교의 불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애드거튼이 한국에 온 이듬해 한국사의 중심 사건인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통해 애드거튼은 자신이 경험한 3.1인 운동이 충격적이었다고 고백한다. 독립에 대한 뜨거운 한국인들의 열정이 복음으로 연결되었을 때 퍼지는 부흥의 확산을 애드거튼은 느꼈을 것이다. 변화될 수 있다는 희망이 3,1운동을 통해 배웠을 것이라 추측한다. 애드거튼이 한국 선교지를 떠나갈 때도 처음부터 사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여러 자료들을 통해 보았을 때 치료차 미국을 갔지만 생각보다 극심한 병과 당시 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곁을 바로 떠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한국 선교는 중도에 하차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선교의 열매가 없었다. 그러나 애드거튼은 선교지가 한국에서 미국 내의 소수민족(인디언)으로 바뀌었을 뿐 선교 사역은 계속 되었다. 특별히 나바호와 아피치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계속 감당하게 되었다.

성경 번역가로서 문서 선교사로 열매를 맺다.
애드거튼의 가장 큰 업적은 성경 번역이다. 미국에서 소수 민족만이 사용하는 언어로 신약 성경을 번역하는 번역과 문서 사역, 성경 배포 사역에 열매를 거두게 되었다. 처음 애드거튼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북장로교의 소개로 애리조나주의 가나도 지역에서 인디언 학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나바호 부족과의 만남이었다. 아이들의 교육을 하면서 아마도 한국의 불길처럼 번진 부흥의 역사를 회상했을 것이다. 애드거튼은 한국의 기독교가 빠른 확산과 부흥의 이유로 자국민의 성경을 생각했다. 한국어로 된 성경, 그것이 한국인들의 복음의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 이에 자신의 언어적 은사를 더욱 개발하여 나바호, 아파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며 반평생을 소수민족 인디언의 복음 전파 사역을 위해 힘쓰다 1968년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죽음을 앞둔 며칠 전까지 성경 번역에 몰두했다고 할 만큼 애드거튼은 성경 번역가로서 열정이 넘쳤다. 하나님께서는 미국 내의 소수민족의 복음을 위해 애드거튼이 한국에서 한국어 성경과 부흥의 불길을 먼저 경험하게 하셨다. 비록 업적없는 한국 선교사로서의 생활이 헛된 것이 아님을, 미국 소수민족 선교사로서 한평생을 바친 애드거튼 선교사를 통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2017-06-30 18:5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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