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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Welbon, Arthur G.(1868-1928, NP) / Nourse, Sadie
 작성자 : 이용훈  2017-06-30 19:03:16   조회: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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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기본사항

1. 이름: Welbon, Arthur G. (오월번)
2. 생몰연도: 1868.8-1928.4.6
3. 출신 및 소속: (오웰번 / 미국 / 미북장로회)
4. 한국선교기간: 1900년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후 선교활동을 하다 부인 건강의 문제로 1919년 귀국함. 3년후 다시 내한하여 1928년까지 선교활동.
5. 연표:
1866.8 미국 미시건 주 이스트맨빌에서 출생
1897 매칼레스터대학(미네소타)
1900 샌츠란시스코신학교(캘리포니아) 졸업
1900.10.17.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경북 안동선교부에 부임.
1901.9 대구에서 선교하고 있던 노어스와 결혼
1917 평양선교부로 전임
1919 부인 건강상의 문제로 귀국
1921 3년만에 다시 내한하여 선교
1928.4.6. 과로로 소천, 양화진에 안장

6. 가족사항:
Sadie Nourse (부인)
(1) 연표 1899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서울에서 어학공부
1900 대구선교부에 부임/ 최초의 간호 선교사
1901 웰번과 결혼 후 9년간 서울에서 생활
1910.6. 안동으로 옮겨 여자성경반, 여성계몽교육에 헌신
1917 평양선교부로 전임
1919 건강문제로 귀국
1925.7.20. 테네시주 메리빌에서 사망

Thomas Harvey (자녀)
Alice (자녀)
Henry G. (자녀)
Barbara B. (자녀)
Mary F. (자녀)
Charles P. (자녀)


II. 선교사 소개: (Welbon, Arthur G. & Sadie Nourse)

1. 선교의 시작
한국에 선교를 온 선교사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가진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선교의 방법에 대해서이다. 낙스와 길버트 리드의 편지의 내용과 같이 조선의 선교는 지금 시작되어야하며 의료 및 교육을 통해서 간접선교를 시작해야하며, 그 거점을 서울이나 제물포로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속에 오월번 선교사는 1900년도에 조선에 입국하게 된다. 그 또한 선교의 시작을 서울에서 하게되었다. 오월번 선교사는 미북장로교에서 경북 안동지역으로 파송을 받은 선교사였지만, 서울을 시작으로 경기도, 강원도등 지금의 수도권 중심의 선교사역을 하였다.

2. 아름다운 만남
오월번 선교사가 1900년도에 조선에 입국하였다면, 그와 결혼을 한 여성 선교사인 새디는 그 보다 1년 일찍인 1989년에 미북장로교에서 파송되어 조선에 입국은 하였다. 새디는 한국에 최초의 간호 선교사였다. 그녀는 조선에 입국하자 바로 서울에서 어학공부를 1년간 한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00년도에 대구선교부로 부임하게 된다. 그리고 1년뒤 오월번 선교사와 만나게 되었고, 그들은 그 해 결혼을 하게 된다. 이는 오월번 선교사 부부에게 크나큰 축복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들의 사역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금방 알게된다.
3. 경북지역의 큰 일꾼
그 당시 새디는 대구에서 그의 사역을 하고 있었다. 또한 오월번은 경북 안동지역에 파송을 받았다. 그렇기에 대구를 거점으로 안동으로 사역을 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대구에서 안동까지의 거리는 무려 120KM가 떨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경북지역의 선교를 원활하게 하지 위하여 1908년 북장로교 선교회 정기 총회 이후 부산에서 열린 한국선교 집행 위원회는 오월번 선교사와 그의 부인 새디에게 안동에 새로운 지부를 개설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1908년 안동지부가 세워졌다.
그 당시 선교사들은 회의를 통하여 합의를 본 것이 있는데, 그것은 첫째 의료 및 교육을 통한 간접선교, 두 번째 문서선교, 세 번째 선교지 분할정책, 네 번째 연합운동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립, 자치, 자전의 네비우스 선교 정책이었다. 이에 따라 1909년 9월에 강원도 원주 지역이 감리교 구역으로 확정되었고, 그곳에서 사역을 하던 오월번 선교사는 안동으로 이사하여 본격적인 안동지역에서의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오월번 선교사는 원주에서 김영옥이라는 사람과 함께 사역을 하였는데, 그도 오월번 선교사와 함께 안동지역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김영옥은 1911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경북 북부지역의 한국인 최초의 목사가 되었고, 이는 오월번 선교사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 당시 선교사들에게는 한국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을 개명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영어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오월번으로 바꾸게 된 것이다. 선교사들에 정책에 맞춰서 오월번 선교사 또한 안동지역에서 의료와 교육을 통한 사역에 힘을 쏟았다.
그와 함께한 선교사들이 별의추 그리고 사우대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은 의사들로 의료를 통한 사역에 큰 힘을 쏟았고, 곧 이어 안동최초의 병원도 그곳에 세워지게 되었다. 오월번, 별의추 그리고 사우대는 안동지역의 선교 삼총사로 불렸다. 이들은 세부적으로 선교의 구역을 구분하여 사역을 효율적으로 하였다. 오월번은 안동의 서쪽을 책임지게 되었고, 그곳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오월번 선교사 부부는 특별히 교육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그 당시 조선인들의 개몽운동에 앞장서서 큰 역할을 감당하였다. 특별히 그의 사역은 평신도를 양육하는 것이었다. 새디의 일기장을 살펴보면 1909년 8월 안동교회의 첫 예배를 참석했을 때, 7명이 참석하였는데 그중 세례를 받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후 그 성도들은 무려 75명이 되었다. 폭발적인 성장을 한 것이다. 또한 새디 선교사는 특별히 평신도 여성을 훈련시켰는데, 1910년 여성 성도들을 위한 성경공부를 개설하였고, 첫 모임의 참석자가 75명이었다고 한다. 새디는 일주일에 두 번씩 성경공부를 인도하였는데 화요일에는 젊은 여성을 위한 성경공부, 목요일은 나이가 든 중년 여성을 위한 성경공부를 진행하였다.

4. 교회의 건축
그 당시 조선의 상황을 보면, 외국에서 선교사들이 와서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았다. 거주한 곳을 구한다 하더라도 장기를 투숙할 만큼의 상태가 되지 못했다. 이는 오월번 선교사 부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이들은 안동지역에 선교사들을 위한 사택들을 짓기를 시작하였다. 오월번 선교사 부부의 헌신으로 그들은 4채의 선교사 사택이 완공되었다. 또한 그는 원주에서 함께 사역하고 또한 안동에서 함께 사역하고 있는 김영옥 목사와 함께 안동초대교회의 동사목사로 사역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안동교회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건축에 큰 역할을 감당하였다.
이 건축물의 양식은 조선의 건축양식을 따른 것이 아닌 미국의 건축물 양식을 따라서 지었기 때문에 현재 한국농촌건축학회의 논문집에도 그 건물물에 대한 연구가 되어있다. 안동교회는 1908년 9월에 건축을 시작하였는데, 성도들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하였는지 10월에 완공되었다. 즉 한달만에 교회가 완공되었다는 것이다.
새디 부인이 기록한 편지에 따르면 신축한 예배당의 크기는 무려 450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였다고 말하고 있다.
두 번째 건축은 1913년 11월에 시작하게 되었는데, 4개월 후인 1914년 2월에 준공을 하게 되었다. 상당히 큰 건물이었기에 안동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함께 모일 수 있었다. 이는 대형집회를 가능하게 했다. 1903년 원산, 1907년 평양의 대부흥도 말씀 사경회를 통해서 시작되었다. 그러니 그 큰 건물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사경회를 하였다는 것은 부흥의 초석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동교회에서는 지역교회들과 연합하였고, 그곳은 안동지역의 부흥을 주도하는 곳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1912년 3월 경상노회록에 따르면 오월번 선교사 부부의 사역지는 안동 서북지역, 영양 서부지역, 봉화, 순흥. 풍기, 예천, 문경, 함창, 상주 북부지역, 영주 등으로 거의 경상북도 북부지역 전역을 포함할 전도로 광범위했다. 또한 그는 한국어 연구 감독과 성경 판매원인 권서들을 감독하는 업무 등을 계속하여 수행하였다. 또한 안동 지역에 최초로 사과나무를 보급하였다. 그의 사역이 얼마나 왕성하였는지 1921년에 안동지역의 교인들이 7천명으로 부흥되었고, 130여개의 교회가 생겨나게 되었다.

5. 선교사 부부의 마지막

오월번 선교사 부부는 안동에서 약 9년간 사역을 하다 1917년 평양 선교부로 이임하게 된다. 그는 계속해서 순회전도와 계몽교육에 전념하였다. 그러다 안타까운 소식이 들리게 되는데 그것은 부인인 새디 선교사의 건강상의 문제였다. 결국 1919년 오월번 선교사 부부는 미국으로 귀국하게된다. 그러나 오월번 선교사는 3년 후 1922년 혼자서 다시 안동지역으로 돌아와 사역을 끝까지 강당하였다. 슬프게도 그의 부인인 새디는 1925년 7월 20일 테네시주 메리빌에서 소천하게 된다.
안동으로 다시 돌아온 오월번 선교사는 사역에 힘쓰다가 1928년 4월 6일 과로로 소천하여 양화진 선교사 무덤에 안치된다. 오월번 선교사 부부의 자녀들도 안타까운 소식들이 이었다. 그의 장남인 토마스와 딸인 엘리는 풍토병으로 어린 나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된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오월번 선교사 부부의 남은 자녀들은 아주 잘 성장하였다. 그의 차남 헨리는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미 군정청 통역관으로 봉직하였다.(1946-1947). 또한 바바라는 1962년 한국에 다시 돌아와 영어교사로 봉직하였고, 메리는 미국에서 여배우로 활동하였다. 또한 오월번의 손녀인 프리실라 웰본 에비는 2013년 9월에 한국에 찾아와 오월번 선교사 부부가 소장했던 한국의 역사적으로 아주 가치있는 사진등 300여점의 유품등을 기증하였다.
2017-06-30 19: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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