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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Hirst, Jesse Watson(1864-1952, NP) / Harbough, Sadie B.; Erwin, Cordelia
 작성자 : 성낙원  2017-06-30 22:43:02   조회: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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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st, Jesse W.

Ⅰ. 기본사항

1. 이름: Hirst, Jesse Watson / 허스트 / 한국명: 허시태(許時泰) / 미국 / NP
2. 생몰연도: 1864.12.24.-1952.4.28.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04.9.13.-1934.
5. 연표1864.12.24 미국 메사추세츠에서 출생.1886. 이스트헌튼 공립학교 졸업.1890. 프린스턴대학졸업.1893. 필라델피아제퍼슨의과대학졸업.1899. 존스홉킨스 대학병원에서 의학박사학위 취득.
1900 제퍼슨대학에서조직학, 산부인과 진단학 4년간 강의.
1904.9.13. 북장로교의료선교사로내한 에비슨과 세브란스병원을 전담, 남대문교회 교인지도
세브란스의 전산부인과 주임교수, 간호원 양성사업.
1907.3. 남감리교 선교사 하보(Harbaugh)와 결혼.
1928.2.19. 병으로 첫째 부인 하보 사망.
1929. 남감리교 어윈과 재혼.
1934. 정년으로 은퇴 후 귀국.
1952.4.28. 플로리다 주에서 사망.
6. 가족사항부인: Harbaugh, Sadie B.(?-1928), Erwin, Cordelia(?-?)자녀: Richard, Jessie, Donald(4자녀 중 1명 별세함)
Harbough, Sadie B.

Ⅰ. 기본사항
1. 이름: Harbough, Sadie B. / 하보 / 미국 / MS, NP
2. 생물연도: ?-1952.2.19.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감리교, 북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899.-1928.
5. 연표 1899 남감리교 선교사로 내한 개성의 송도학교 창설에 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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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3 북장로교 선교사 허스트와 결혼 세브란스간호원양성소에서 교육에 종사
1928.8.28 서울에서 병으로 사망
6. 가족사항 남편: Hirst, Jesse W.(1864-1952)

Erwin, Cordelia

Ⅰ. 기본사항
1. 이름: Erwin, Cordelia. / 어윈 / 한국명: 어원(魚源) / 미국 / MS, NP
2. 생물연도: ?-?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감리교, 북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05.-1934.
5. 연표 1905 남감리교 선교사로 내한, 개성송도선교부에 부임 개성성경학원에서 교육활동
1919 앤더슨(Mrs. E. W. Anderson)과 철원으로 전임하여 유치원 사업 및 여전도 사업
등의 활발한 교육사업, 춘천에서도 활동
1921 무즈(J. R. Moose)의 집에 여자 야간학교 개설, 교육 및 계몽운동
1929 허스트와 결혼, 북장로교 선교부로 이적
1934 허스트와 귀국하여 미국 플로리다주 피츠버그에 거주
6. 가족사항 남편: Hirst, Jesse W.(1864-1952)


Ⅱ. 선교사소개 : 허시태(Jesse W. Hirst)와 하보(Sadie B. Harbough)&어원(Erwin, Cordelia)

1. 하나님이 맡겨주신 분야에 최선을 다한 선교사, 허스트

허스트는 1864년에 태어나 1890년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면서 신학과 신앙을, 그리고 1893년 필라델피아 제퍼슨 의과대학을 다니면서 간접선교의 방편인 의료를 배우며 선교사로서 철저하게 준비시키는 과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보다 더 의료선교에 가르치는 일들도 잘 감당케하시고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1900년 제퍼슨대학에서 조직학과 산부인과 진단학을 4년동안 강의하시도록 하셨다.
그가 최선을 다하였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것은 아주 후의 그에 대한 평판이다. 허스트는 의사로 그는 의학적으로도 30년 동안 필리핀, 중국, 일본, 한국에서 의사로서 매우 유명해졌다고 에비슨은 증언한다. 그는 자신의 분야에 자신을 드러내려 애쓴 것은 아니지만 전문적인 자신의 의료선교사역에 최선을 다했던 것으로 보인다. 허스트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산부인과 주임교수로 한국인 의사양성과 간호원 양성사업에 최선을 다하였다. 에비슨은 그가 단순히 의사로서 유명해진 것 뿐만 아니라 학장으로서 많은 의과 졸업생들을 배출한 것도 높이 평가한다. 그가 30년동안 무려 165명이라는 간호원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맡겨주신 분야에 최선을 다하였음을 증언하는 셈이다. 그는 물론 남대문교회 교인을 지도하기도 하였지만 주로 의료선교에 힘썼고 그 분야에는 전문적 기질을 잘 닦고 연마하는데 최선을 다했음을 알 수 있다.


2. 개척자요 온순한 성품을 가진 선교사, 허스트

그는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도 모남이 없이, 사역자들과 성격이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에비슨은 그의 성품을 다음과 같이 칭찬한다. 30년 동안 함께 일하면서 단 한번도 심각한 갈등이 없었다고 말하면서 허스트에게 공평, 인내, 기독교적 긍휼(Christian charity)를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에비슨은 그의 30년 사역을 마치고 1934년 귀국하기까지의 그의 삶 전체의 사역을 한 마디로 사역의 개척자(Pioneer)라고 불렀다. 1908년, 세브란스병원의 첫 졸업생을 배출한 역사적인 사건에 일본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까지도 졸업식에 참여하여 에비슨을 포함한 학장들 모두를 가리켜 그를 의료의 ‘개척자’라고 불렀다. 이를 종합하여 결론내리자면, 허스트가 의사로서 또 학장으로서 있지않았던 봉사의 길을 열어주고 봉사 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영광을 함께 공유하고 나누는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또한 그는 사역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특출함을 내세우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온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3. ‘2인자’의 자리를 빛낸 선교사, 허스트

그는 진실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을 도와 주는 2인자의 역할을 돈독히 해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과 함께 전문적인 의료선교사역을 분담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그가 쉬면서 언어공부를 할 때 에비슨 자신이 자신을 찾아온 많은 이들에게 과학 의학을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이 생길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 당시 대한제국 정부는 1899년 3년제 의학교를 설립하였지만, 1902년 졸업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고작 19명이었으며 이들마저도 부속병원이 없어 임상실습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세브란스병원을 신축하고 에비슨(O. R. Avison) 혼자 병원 업무를 관장하고 있어 일손이 딸렸다. 이에 에비슨은 미국 북장로회선교본부에 의료선교사 파송을 요청하였고 이에 병원 설립자인 세브란스(L. H. Severance)의 후원으로 허스트가 파송되어 온 것이다. 1893년 에비슨 시대에 이르러 의학교육이 재개되었고, 1900년 의학교육이 본격화되어 1908년 6월 세브란스병원의학교 명의로 1회 졸업생 7명을 배출하게 되었다. 이들 졸업생들에게 오늘날의 의사면허에 해당되는 의술개업인허장이 부여되었고, 7명의 졸업생은 1번부터 7번까지의 의술개업인허를 받게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중에는 의학교 졸업한 후 세브란스병원의학교에 편입한 2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의학교의 열악한 환경에서 임상실습을 했던 의학교 학생들은 최신 설비를 갖춘 세브란스병원에서 임상실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정식으로 면허의사를 배출한 것은 세브란스가 최초(의술개업인허 1번에서 7번까지)였다. 1906년 9월에는 쉴즈(E. L. Shields, 1868~1941)가 세브란스병원에 간호부양성소를 세웠을 때 그는 학장을 맡아 에비슨의 의료사업을 도왔다.
이처럼 세브란스 병원의 전문적인 의료 선교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에비슨 뒤에 허스트의 전폭적인 도움이 있었기 때문임을 에비슨의 말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었고 실제로 역사가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셈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감당하는 선교사의 모습은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만 보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마 6:18).


4. 허약한 육신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운 영혼(bright spirit)의 소유자, 하보 선교사

독신으로 내한했던 허스트에게 아름다운 내조자 역할을 했던 것은 하보였다. 그녀는 교단 출신도 남감리교로 북장로교 선교사인 허스트와 달랐다. 어떠한 이유에서 그 둘이 만나게 되었는지는 알지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907년 3월 남감리회 여선교사 하보(Sadie Harbaugh)와 결혼하고 1928년 병으로 별세하기까지 허스트의 아름다운 내조의 사역을 잘 감당했다는 것이다.
E. Wagner는 말하길, 그가 평소에 몸이 허약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악 조건에도 불구하고 더욱 활동적인 선교의 일을 감당했는데, 이러한 용감한 희생(sacrifice bravely)을 가지고 한국을 사랑한 동기가 그녀에게 있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주로 1899년 남감리회 여선교사로 내한하여 개성에 있으면서 송도학교 창설에 참여하였고 영문잡지인 편집을 맡기도 했으며, 허스트와 결혼 후에도 세브란스간호원양성소에서 교육에 종사하였다. 그러한 그녀를 한 줄로 평가한다면, ‘허약한 육신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운 영혼(bright spirit)의 소유’자라고 부르고 싶다.


5. 허스트의 든든한 제 2의 조력자이자 개척자 정신을 닮았던 어원 선교사

어원은 허스트의 둘째 아내로서 의료선교사역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개척정신으로서 한국의 여러 사회적 요소들에 관심을 가지고 선구적으로 간접선교에 힘썼던 자였다. 그녀는 하보보다 더 한국의 문서사역과 교육사역에 힘썼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허스트와 만나 결혼하기 이전부터 한국에서 선교하고 있었다. 1905년 한국선교사로 파송되어 서울에서 1년 동안 어학을 익힌 뒤 경기도 개성군 송도선교부에 부임하였다. 그녀는 여기서 수년 동안 송도 구역의 전도사업에 헌신하였으며 동시에 조이하디 성경학원 그리고 뒤에는 춘천지방까지 담당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 앤더슨(Mrs. E. W. Anderson)과 함께 철원구역으로 전임하였고 이곳에서 유치원사업 및 여전도사업을 전개한 이래 어원은 가장 잘 알려진 이름이 되었다. 즉 어원은 철원지방에서 여선교회 감독 아래 8개의 인가유치원, 7개의 서숙 및 초등학교를 운영하면서 교육사업에 힘쓰는 한편, 14명의 성경부인을 육성하여 함께 전도부인으로 또 교회일꾼으로 키워나감으로써 여선교사업의 든든한 기반을 구축하였다. 이들 초등교육기관에는 평균 2명의 교사를 배치하였는데 그 1인에게는 학교기성회가 그리고 다른 1인에게는 여선교협회가 봉급을 지원하기도 하였으며 작은 규모의 학교는 1인의 교사만을 두고 그 봉급의 반을 기성회가 담당하기도 하였다. 또한 어원은 여선교회 산하 순회전도반·여자기독교절제회연합회 등과도 보조를 맞춰 활약하였고 1921년부터는 무즈(J. R. Moose)의 집에서 여자야간학교를 개학, 점차 발전시키면서 교육의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부녀자교육 및 계몽운동에 전념하는 등 눈부신 활약으로 10여년 동안을 철원에서 보냈다.
어원이 1928년 2월 15일, 3월 28일, 4월 6일, 4월 18일에 걸쳐서 「긔독신보」에 낸 기사의 글, ‘신테에 밋치는 술의 해독’이라는 글을 보면, 그녀가 어떻게 교육의 기회를 가지고 부녀자 교육 및 계몽운동에 전념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그녀는 사랑이 많은 자였다. 1907년에 첫째 부인 하보에게서 낳은 3자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녀들에게 친모의 자리를 돈득히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주었음을 타인들에게 인정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에비슨은 어원이 자녀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베푸는 자였다고 증언한다. 1934년 모든 세브란스의 의료선교를 마치고 그의 남편이 귀국할 때까지 함께 있어준 사랑의 조력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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