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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Roberts, Stacy L.(1881-1946, NP) / Roberts, Evelyn Millen
 작성자 : 박제경  2017-06-30 23:02:49   조회: 1820   
I. 기본 사항

1. 이름: Stacey L. Roberts / 로버츠 / 한국명: 라부열(羅富悅)
2. 생몰연도: 1881.2.18.-1946, 미국 펜실베니아 출생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07-1941
5. 연표
1904 라피에르대학 문과 졸업
1907 프린스턴신학교 졸업
1907.8.29.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5년간 선천에서 선교
1913~38 평양 장로회신학교 교수로 신구약해의 강의
1924 마펫에 이어 평양장로회산학교 2대 교장에 취임하여 입학교례와 교수내용 보완하여 학교의 수준을 높임
1938 교장 취임 14년 만에 신사참배문제로 신학교 폐교
1941 일제에 의해 강제 귀국
1946 소천
6. 가족사항
부인 Mrs. S. L. Roberts(Evelyn Millen)
7. 논저
[논문] 갈라디아편지 서문, 신학지남 8.2(1924,6); 고대 히브리인의 관습, 신학지남 21.2(1939,3); 골노새서, 신학지남 2.3(1919,10); 골로새인서 서문, 신학지남19.3(11937,5); 구약과 성령, 신학지남 21.3(1939,5); 베드로전서 강해, 신학지남 13.1(1931,1); 도마의 인격과 신앙, 신학지남 13.1(1931,1); 무죄하신 예수, 신학지남 4.4(1922,9); 바울사도의 로마옥에 初次 被囚한 후의 일, 신학지남 15.1-16.3 (1933.1~1934.5); 사복음 연구, 신학지남 3.3-4.3(1920.10~1922.5); 삼위일체에 관한 예수의 교훈, 신학지남 1.2(1918,7); 설교자의 귀중한 기회, 신학지남 12.2(1930,3); 성서주석가로 본 칼빈, 신학지남 16.4(1934,7); 성경에 대한 문답, 신학지남 4.3(1922,5); 성경의 난제론, 신학지남 2.2(1919,7); 성경의 인격과 사업, 신학지남 17.5-18.5(1935,9~1936,9); 신자생활의 경주적 장면, 신학지남 13.2 (1931.5); 야고보인서 강해, 신학지남 10.1-11.1(1928,1~1929,1); 예수 부활의 증명, 신학지남 2.1(1919.4); 예수에 대한 적의 증거, 신학지남 13.1(1931.5); 예수와 성경, 신학지남 7.2(1925,4); 예수의 살으신 세계, 신학지남 7.3-9.3(1925.7~1927.7); 예수의 최후 만찬, 신학지남 3.1(1920.4); 예수의 탄생연월일, 신학지남 1.4(1919.1); 예수의 被捉과 심판, 신학지남 5.2(1923,4); 예언, 신학지남 13.4(1931,7); 요한1서 강해, 신학지남 17.5-19.6(1935,9~1937,11); 요한2서 강해, 신학지남 20.4/5/6(1938,7/9/11); 요한3서 강해, 신학지남 21.3/4(1939,5/7); 유대인의 가풍과 습관에 대한 소고, 신학지남 20.6(1938,11); 유태인의 관습, 신학지남 21.3(1935,5); 조선교회를 창조한 삼대개척선교사 사무엘 엘. 마펫(마포삼열 목사), 신학지남 16.5(1934,9); 주기도문 묵상, 신학지남 17.3-19.1(1935,5~1937,1); 주여 기도를 교시합소서, 신학지남 10.4(1928,7); 주여 사역하게 가라쳐 주옵서서, 신학지남 10.5(1928,9); 히브리인의 주택과 가구에 대한 일고, 신학지남 19.5-20.5(1937,9~1938,9)


II. 선교사 소개: 로버츠(라부열)

1. 미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로버츠 선교사는 1907년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프린스턴신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졸업 후에 곧바로 미 북장로회 선교회로부터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었고, 1907년 8월 29일 부인(Evelyn Millen)과 함께 한국에 도착하여 선천(宣川)을 선교지로 배정받았다. 이 지역은 마펫(馬布三悅) 선교사가 책임 맡은 구역이었으나, 그의 뒤를 이어 선교 사업에 종사하게 된 것이었으며 이러한 관계로 이후 그는 마펫으로부터 극진한 사랑과 지도를 받게 되었다. 선천에 부임하여 평양장로회신학교 교수로 가기 전까지 5년 동안 선천 부근의 산간벽지까지 순회하면서 복음전도에 심혈을 기울였다.

2. 평양장로회신학교
그는 1913년에 평양장로회신학교의 교수로 발탁되어 신구약해의(新舊約解義) 과목을 담당하여 로마서, 옥중서신, 공관복음, 요한계시록 등을 강의하였다. 그는 신구약성경을 거의 암송하고 있었으며 학생들이 질문하면 대부분 성경의 몇 장 몇 절을 보라는 식으로 대답하였다. 1924년 그는 마펫의 뒤를 이어 제2대 평양장로회신학교 교장이 되었다. 그는 교장이 된 후에 교수시절 생각하였던 신학교 개혁방안을 실천에 옮겨 신학교 입학규례와 교수 내용을 보완하여 학교 수준을 높였다. 1901년 처음 학교를 시작할 때는 1년에 2학기씩 3년을 공부하게 되어 있었으나 그가 교장으로 취임한 후에는 1년에 3학기 씩 공부하게 하여 1926년부터 실시하였다. 이와 같이 1926년 입학규례를 개정 발표하였으며 그해 신학교 창립 25주년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하였다. 그는 또한 1918년부터 교지의 형식으로 시작된 신학지남에 다양한 논문과 학교의 소식들을 발표하였다.

3. 평양장로회신학교의 폐교
그러나 총회가 1938년 신사참배를 가결하게 되고, 신학생들과 선교사들이 이에 대하여 반발하기 시작하면서, 평양신학교는 1938년 9월 20일 2학기를 개설하지 못한 채 폐교되었다. 일제에 굴복하고 신사참배 하면서까지 신학교육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던 그로서는 괴롭고 착잡한 심정으로 이를 감행하였고, 곧이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일제의 선교사 강제추방으로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1938년 10월 2일자 동아일보의 기사에서는 로버츠의 인터뷰를 실으며 “우리미슌회의 사업에는 어느 것에든지 기독교의 신조를 기초로 하야 실행될 것이다. 이 신학교문제도 마찬가지로 기독교교회에 준거하야 문제가 해결 될 것인데 지금 이 정세로는 개학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이 학교를 개학할 수 잇을 시기를 엿보고 잇을 뿐인데 아직 그것을 발견치 못하엿다. 어떠한 때가 개학할 수 잇는 시기라고는 말할 수 없다. 언제든지 개학을 할 수 잇서 이 신학교만은 게속할 수 잇기를 바라고 잇다. 어제가 개학일이엇는데 그날이 그냥 지나고 나니 새삼스럽게 정막한 감이 잇다.”라고 한다. 또한 1939년 4월 15일자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학교가 휴교 상태에 있으면서도 재학생에게 교수를 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통신으로 교수하여 소정과목을 모두 마치게 하였는데, 지난 13일에 예년과 다름이 없는 졸업식을 거행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비록 폐교는 하였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졸업생을 배출했다는 데에서 그의 교육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8.15 해방을 맞이하면서 강제 추방되었던 선교사들이 속속 한국을 찾아왔으나 그는 돌아오지 못했으며, 결국 1년 후 1946년 미국 땅에서 별세하였다.

4. 관련 일화
평양장로회신학교 교수 및 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대표적인 것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915년 봄에 정주 오산학교의 설립자이며 교장인 이승훈(李昇薰)이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학교에서는 거물 인사가 찾아왔다고 하여 떠들썩하며 대환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때 그는 「이 선생은 나라의 일을 해야 할 사람이오. 목사 될 사람이 아니디오. 그러니 신학 공부 할 필요 없디오. 내년부터 올 것 없디오.」하고 하면서 퇴학하기를 권고하였다. 사실 이승훈은 신학 공부를 하기 위해 신학교를 찾아온 것이 아니고 독립운동을 함께 할 동지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함태영(咸台永) 목사를 알게 되어 후일에 거사를 같이 하였다. 거물 신학생을 환영은 아니 하고 퇴학을 권고한 로버츠 목사는 사람을 볼 줄 알았으며 사물을 바로 판단하는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선천에서 배운 평안도 사투리 「이랬디오」「저랬디오」「있디오」「없디오」를 많이 썼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라디오」였다. 즉 「디오」라는 말에 그의 한국성(姓)인 라(羅)를 붙여 라디오라 호칭한 것이었다.
로버츠 목사는 아무에게나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상대방에게 감과를 주어 전후 사정을 수긍케 함으로 문제를 수습하는 미덕도 갖고 있었다. 1925년부터 한국인 최초의 신학박사 남궁혁(南宮爀) 목사가 장로회산학교에 부임하여 교수하게 되었다. 그는 어떻게 되어서인지 당시 한국 장로회 총회의 중요인물인 종교교육부 총무 정인과(鄭仁果) 목사와 정면으로 대립하여 문제가 많이 일어났다. 어느 날 한국교회의 원로인 한석진 목사와 평양 장대현교회의 이덕환 장로가 교장 로버츠 선교사를 찾아 남궁혁 박사가 숭실학교 대강당에서 서경에 위반되는 설교를 하였으니 조치해 달라고 진언하였다. 그는 곧 남궁목사를 불러 설교 원고를 받아 쭉 검토하고 나서 “성경에 위반된 것이 없다”고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로버츠에게는 옳고 그릇된 것에 대한 판단력과 용감한 결단과 과감한 박진력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사리에 맞는 진언은 선뜻 받아들여 실천에 옮기었다. 주기철(朱基徹) 목사가 신학생 시절에 한 가지 건의를 하였다. 그 내용인즉 지방별 기숙사 제도를 철폐해 달라는 것이었다. 기숙사의 건물을 미국 북장로회 선교회와 남장로회 선교회와 그리고 호주장로회 선교회 등에서 각기 비용을 내어 건축했다고 하여, 자기 선교구역 안의 신학생들만을 평안도, 전라고, 함경도, 경상도의 지방별로 하여 수용하고 있었다. 그는 학생들과 의논한 결과 남북 학생이 섞여 기숙하는 것이 친목을 도모하게 되어 남북 화합의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하여 이를 시정하게 하였다.
1932년 9월 소집된 평양노회는 당시 한국교계를 휩쓸고 있던 이용도(李龍道) 일파에 대하여 단죄하는 결의를 하였다. “신학생은 신학교에서, 숭실 학교 학생은 숭실 학교에서, 교인은 각 교회에서 엄중히 처단하라”는 명령이 노회로부터 내려졌다. 이때 학생이었던 박윤선(朴允善)도 여기에 참석했던 고로 큰 걱정이 되었다. 박윤선은 우연히 교실 복도에서 로버츠 교장을 만나게 되었다. “박윤선!”하고 부르자 이제는 퇴학이라 생각하여 질겁했다. 그러나 그는 “예수 잘 믿으려고 하면 실수도 하디요”란 한마디 말을 던지고 해결하였다. 박목사는 오늘날 유능한 신학자로 이름이 높다. 로버츠 교장의 보는 눈은 이렇게 깊고 세밀하고 멀리 앞을 내다보았다.
1930년대에는 보수주의 신학을 벗어난 진보주의 신학이 소개되었는데, 1934년의 모세 창세기 저작 부인 문제와 여권문제가 전국적으로 비화되면서, 장로교총회는 당시 평양신학교 교장이었던 로버츠 선교사를 위원장으로, 박형룡을 서기로 하여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들의 조사 결과는 1935년 장로교 제24회 총회에서 채택되어 기존 성경비평학적 입장과 여권에 대한 진보적 해석을 사과 및 입장 철회 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이는 그가 당시 보수 신학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교육자로 총회에서 인정받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5. 평가
로버츠 선교사는 신학교를 마치고는 젊은 나이에 조선으로 건너와 마포삼열의 뒤를 이어 평양장로회신학교의 교수 및 교장으로 재직하며, 조선의 보수 신학의 기틀을 닦았다. 그는 평양신학교에서 재직하는 동안 신학지남에 수많은 논문을 게시하였고, 신학교를 한 단계 성숙하도록 개혁했으며, 진보주의 신학에 맞서서 보수주의 신학을 지킨 선교사였다. 그는 신학교를 통해 이 땅에 목사를 키워냈던 목사들의 요람으로 쓰임 받은 하나님의 귀한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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