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6.23 화 09:15
 
 내한선교사 / Kearns, Carl E.(1876-1953, NP) / Kearns, Daisy Rohrer
 작성자 : 강경선  2017-06-30 23:08:39   조회: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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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Rev. Carl E, Kearns (커언스)
1. 이름(한국명) : 계인서
2. 생몰연도 : 1876-1953.11.30. 미국에서 출생
3. 출신 및 소속 : 미국출신으로 북장로회 소속 선교사로서 평북 선천선교부에 부임
4. 한국선교기간 : 5년 (1902년 9월-1907년)
5. 연표: 1902.9 북장로교 선교사로 부인과 함께 내한
평북 선천선교부에 부임하여 복음전도자로 활동(순회 전도 포함)
1905 1년간 성인 660명 세례, 1천여명 학습 받게 함
1907 선교사직 사임하고 귀국
1953.11.30. 펜실베니아주 샤론에서 소천
6. 가족사항: Kearns, Daisy Rohrer(부인)


Ⅱ. 선교사 소개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선천 선교부에 수록된 keans, Carl E.에 대해 조사하던 중 선천선교부의 각 영역별 설명과 Korean Mission Field에 수록된 커언스(keans)의 편지 형식으로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커언스 중심으로한 사역정리를 연도별 분기로 재구성하였다.
keans가 활동하기 이전 선천의 배경적 특색, 부임하기 직전의 선교 상황, 부임 후 1902년부터 1907년 사임하기까지의 선교 사역을 구분하여 서술하였다.

1. 배경이 되는 선천 해리 로즈, 최재건역,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2010 : 연세대학교 출판부); 195.
:
서울에서 목단과 북경으로 가는 간선도로 상에 있다. 초기 선교사들이 의주의 기독교인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모두 선천을 지나갔지만 이곳에서 머물렀다는 기록을 남긴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마을에 관심을 끌어들일 기독교인이 없어서 아무런 언급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에는 마을 인구가 3천 명의 인구를 넘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휘트모어가 그 지방을 여행하기 시작하면서 선천을 선교기지로 확신하게 되었다. 그것은 강계가 평안북도 북부의 중앙에 있듯이 선천이 평안북도 남부의 중앙에 있기 때문이다. 이후 선교기지가 세워진 후에 주민이 5천명으로 증가했다. 기독교 집단들은 1897년부터 1899년 사이에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2. 커언스가 부임하기 직전 해 선천의 상황 :
1901년에 선천에 선교기지가 세워진다. 그런데 이때에는 이북 지방에서 콜레라가 유행함으로 한 해에 6명의 선교기지 회원들이 거주하다가 한 명이 죽고 그의 미망인도 사망했다. 집이 한 채가 지어졌고 6명의 방문을 받았으며 2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장티푸스 감염 사례가 2번 있었고 콜레라가 유행하였다.
1901-1902년 겨울 동안 선교기지가 개설된 후 처음으로 세 개의 중요한 남자 사경회가 열렸다. 삭주에서 40명, 의주에서 200명 참석, 선천에서 460명 참석했다. 선천 최초의 여자 사경회는 1901년 5월에 열흘 동안 열렸으며 참석자가 123명이었다. 해리 로즈,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196-198을 참조하여 내용 재구성함.


3. 커언스가 부임한 1902년 선천 선교부
선교기지가 문을 열었을 때(1901) 장소가 너무 좁은 상태에 이르러 이 해(1902) 봄에 새 예배당을 짓기 위해 5년 기한을 작정하자고 회중들이 요청하였다. 그리고 9월말에 커언스( keans, Carl E.) 목사 부부가 선교기지 회원들과 함께 연례모임을 하고 선천 선교기지로 왔다. 오랫동안 휘트모어에 의해 담당된 의주와 북부의 두 순회구역은 이후 커언스(1902-1907), 로스, 로버츠의 도움을 받았고 램프에게 인계되었다. 해리 로즈,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196.
또한 이 해에 행해진 선교기지 최초의 보고서는 남녀 아이들을 위해 17개 소학교가 있다고 보고하였다. 많은 기독교인 가족들이 교회학교 때문에 선천으로 이사 왔다. 선교기지의 거의 모든 선교사들이 선천의 소학교들에서 가르친다고 보고되었다. 해리 로즈,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196-216.

따라서 커언스 선교사는 휘트모어 선교사를 도와 협력하는 선교를 담당하였고 선천선교부의 선천을 포함하여 의주와 북부의 두 순회구역에 대한 사역(순회전도, 교회들 방문, 격려포함)도 담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특별히 교회학교가 잘 이루어져서 선천의 모든 소학교들의 교육을 선천 선교기지의 선교사들이 담당하였는데 커언스 선교사도 소학교에서 아이들 대상으로 교회학교 교육에 협력했음도 알 수 있다.
-사역 평가 : 특별할 것 없는 선천이라는 작은 지역을 택하셔서 선교기지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이 지역을 중심으로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 복음 전도가 순회 사역의 방식대로 이루어지게 하시고, 특별히 교회 학교가 세상 교육을 주도할 만큼 탁월하게 이루어지게 하셔서 다음 세대를 일으키시는 섭리를 행하심이 드러난다. 이것은 선천 선교부를 담당하였던 휘트모어 선교사, 커언스 선교사 등의 일행이 하나님의 복음의 통로로서의 사역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감당하였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4. 1903년 커언스 선교사의 선천 선교부 사역
커언스 선교사가 합류한 선천 선교부 팀의 순회 전도 사역에 힘입어 겨울 훈련 수업에 약 450명이 출석하여 커언스만큼 다정한 평양의 스왈른(swallen) 선교사가 도와주러 올 정도였다. 훈련 수업 참가자 중 일부는 멀리서 왔는데 특히 3명은 230마일 떨어진 강계에서 왔다. Korean Mission Field에 수록된 커언스의 편지(1903. 3.12. 달마다 내는 보고 편지)를 번역하여 알게 된 사실이다. (죄송하지만 외장하드 데이터 손실로 교회사 연구소 방문한 자료가 지워져 총신대 사당캠퍼스에 가서 거기에 있는 Korean Mission Field를 참조하였음을 이해해 주세요).
겨울 훈련학교 종강 후에 통계를 내보니 입학(등록)생이 60명이었고 관할 구역 내에 학교 학생들은 멋진 1년 학업을 완수했다. 그리고 성명서가 평안북도 지도만큼 길 정도로 거의 5000명 기독교인이 이 지역에 있다. 한 개의 교회 조직에 60개의 비 조직화 된 보통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47개의 교회 건물 20개의 학교가 지역에 필요하다. 1년여 전에 렉 선교사에 의해 기초 복음을 소개받았던 도움을 받았던 입문자들은 넓게 확장되어 사역자의 도움을 크고 절실히 부르는 교회 속에서 성장하였다.
“선천 지역의 핵심은 열정이다.” 2배 비율의 성공이 다가왔다. “우리는 넓게 깨어있고 열려있는 사람들 한가운데서 빠르게 성장하는 사역에 대해 감화를 받았다.”라고 커언스는 사역 보고서에서 서술하고 있다. Korean Mission Field에 수록된 커언스의 편지(1903. 4.11. 달마다 내는 보고 편지)를 번역하여 참조하고 재구성함.
이 해에 이루어진 사경회 참가 회중은 500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이는 그 마을 인구의 10펴센트에 달하는 수였다. 해리 로즈,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196-216.

-사역 평가 : 순회 복음 전도 사역과 교회 교육, 말씀 사경회 중심으로 사역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고 커언스 선교사는 특유의 다정함으로 한국인들과 관계를 잘 맺어 복음의 결실이 맺히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커언스 선교사가 겨울 훈련학교를 진행하고 종강 후 통계를 내어 보고한 것으로 보아 교회 교육적인 면에서 주도적으로 사역을 담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역은 2배의 결실을 맺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복음의 수용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하나님은 1년여 전에 복음에 입문하였던 초신자들을 교회 교육 속에서 빠르게 성장시키셔서 그들로 사역을 도울 수 있도록 역사하셨음이 보고서에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평안북도의 부흥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단적으로 드러내시는 것이다. 부흥의 인원을 감당할 교회와 학교의 장소가 부족할 만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 안에 복음의 열정으로 역사하셨다.

5. Kearns, Daisy Rohrer(부인)의 1904-1905년 사역
1902년부터 회중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거둔 작정헌금으로 기와지붕이 매우 매력적인 집을 예배당으로 구입하였다(1904). 그리고 선교기지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여성 회원들 일부가 통상적으로 읍의 여자주일학교에서 일하였고 선교기지의 두 여선교사들이 남교회와 북교회의 여자 주일학교를 순회하며 감독, 한국인 가정 방문, 사경회와 성경학원 교육, 여학교와 병원 협력 사역 수행을 담당하였다. 그 중에 커언스 부인, 즉 Daisy Rohrer는 삭주를 순회한 최초 외국인 여성으로 주일학교 감독하고 한국인 가정 방문, 여성 성경 교육, 여학교 교육을 담당하였다. 1904년 10월에 그녀는 260마일을 남편과 함께 순회하였다. 해리 로즈,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196-216.

1904년에서 1905년에 걸쳐 1200명의 여자들이 사경회에서 공부할 정도로 기독교 교육을 받은 여자 성도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커언스 부인(Daisy Rohrer)은 봄에 의주군의 16개 집단을 방문하며 660마일을 순회하여 사역을 잘 감당하였다. 해리 로즈,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196-216.

-사역 평가 : 커어스 부인은 주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주일학교 교육, 일반 학교 교육, 가정 심방을 중심으로 한 순회 복음 사역에 헌신하였다. 여자의 몸으로 다니기 불편하였을 텐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여자 성도들의 필요에 맞춰 헌신적으로 사역함으로 수많은 여성 기독교인들이 진리에 바로 설 수 있는 결과를 낳았다.

6. 러일전쟁(1904-1906)의 발발로 인한 선천 선교부의 변화된 상황
1904년 3월 8일에 러시아 군인들이 오고 일본 군인들이 와서 러일 전쟁이 일어났다. Korean Mission Field에 수록된 커언스의 편지(1904. 3.8)
그런데 그 군대들의 진입과 일본이 새 철도를 최대한 빨리 부설하도록 압박한 일로 인해 선교기지의 관할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혼란에 빠졌다. 기독교인들을 포함해 한국인들이 큰 길을 따라 산으로 도망쳤다. 선천읍에 있는 거의 모든 한국인의 집들이 한달 혹은 그 이상 동안 군대에 의해 사용되었다. 해리 로즈,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196-216의 내용을 참조하여 재구성함.
그럼에도 커언스 부부를 비롯한 서천 선교부의 일행들은 다른 곳으로 일시적으로 피난을 가기는 했지만 서천 선교부에 계속적으로 머물렀다. 이것은 미국 국기가 선교기지 구내에 계속 걸려 있고 선교사들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사실에서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큰 힘을 주어 공포의 엄습을 이겨내도록 만들었다.
샤록스 박사와 커언스는 전쟁 통신을 중국 요양과 평양 사이에 빠르게 전하는 밀사업무를 관리했다. 그것은 최전선과 외부세계를 연결시키는 유일한 통신수단이었다. 그 밀사들은 한국 기독교인들이었는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놀랄만한 신속성과 신뢰성을 보여주었다. 해리 로즈,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196-216의 내용을 참조하여 재구성함.
1904년 4월 4일자 커언스 선교사의 보고서 편지는 미국이 쿠바를 식민지화한 것처럼 일본도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러일 전쟁을 일으켰다고 보고하고 있는데 이것은 커언스 일행도 비록 미국 소속이지만 미국과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7. 커언스 선교사의 1904-1905년 선교사역
그의 1904년 1월 1일자 보고서 편지에 의하면 선천 선교부의 사역은 자립, 자전, 자치 원리로 수적, 양적 성장을 이루는 데 성공하였음이 기록되어 있는데, 2000명의 선천 선교부 소속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세워진 교회들을 도왔다고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러일 전쟁이 3월 8일에 터져서 사역이 임시로 중단되었지만 복음의 사역이 사그러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1905년 7월 5일자 매달 보고서에 의하면 그 때에 세례 받은 자는 711명으로 과거 310년간 중에서 최고의 수이며 신자수는 총 6507명으로 보고되고 있다. 북부교회는 건강하고 왕성하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므로 여전히 고립되어 있는 선천 지역의 500명 집회할 모임 장소가 매우 적음을 한탄하고 있다.
같은 해 1905년 11월 15일 보고서 편지에 의하면 8000명에 육박하는 수많은 성도를 형성한 교회가 60개로 보고되고 있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을 세례 지원자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하루가 지나가고 있음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한국 교회의 재정 자립도가 놀라울 정도임을 제시하면서 조직화된 한 교회에 총 세례자는 195명 정도라고 제시한다. 커언스가 1905년 1년간 성인 660명에게 세례를 주었고 1천여 명에게 학습 받게 하였다고 한다.
-사역평가 : 하나님은 러일 전쟁이 발발한 중심부에서도 여전히 복음의 사역의 불꽃을 피워내시며 수많은 회심자들을 일으키시는 분임이 드러난 대표적 선교사역 이었다. 그런데 이 역사의 현장 속에서 커언스 일행을 비롯한 샤록스 박사 등등의 선교사들은 복음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전쟁의 현장을 떠나지 않고 해외에 송수신 역할을 담당하면서 선천 선교부의 성도들과 함께 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님은 부흥을 일으키신 것이다. 이것은 현재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디에 있는 지 시사하는 부분이 많다고 할 수 있다.

8. 커언스 선교사의 1906년 사역
커언스 하우스가 외국인으로서 세 번째로 완공되었다. 1400명 이상의 신자들이 보고되었는데, 그 해 2월 중에 5개 시골지역 집단들이 이 읍 교회에서 분립해 갔다. 그 해 드디어 새 예배당을 위한 제 5차 작정 헌금을 거두고 머릿돌이 7월 5일에 세워지고 그 건물은 10월에 3천 달러를 들여 완공되었는데 몇몇 선교사들의 개인적인 기부금 외에는 모두 한국인들이 충당하였다. 그 예배당은 넉넉히 1500명이 앉을 수 있는 규모였으나 수많은 성도들로 인해 2천명을 수용한 때도 많았다. 의주와 선천의 남자 중등학교 건립운동이 시작되었고 의주의 기독교인들은 선천의 학교를 위해서도 한 달에 30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기로 약속하였다. 해리 로즈,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회사』 196-216.

1906년 8월 10일자 커언스의 보고편지에 수록된 선천-연간보고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코멘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간의 보고를 토대로 볼 때, 우선적으로 한국 선교의 핵심은 10년 전에 서울에서 평양으로 옮겨졌으며 선천 한 지역의 복음화 사역이 서울, 청주, 대구, 부산의 네 지역보다 더 크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사무엘 모펫은 한국 선교를 진짜 이룬 사람으로 네비우스가 이론가라면 모펫은 실현자라고 할 수 있다. 본인 개인적으로 1037명에게 개별 세례를 주었다.
-사역 평가 : 그동안 숙원이었던 예배당 완공이 실제로 이루어진 해이며, 그 역사의 현장에서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재정 자립도가 빛을 발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자립, 자전, 자치의 원리를 실현하여 커언스 선교사를 비롯한 선천 선교부의 선교사들의 선교 사역이 성공적이었음이 또한 드러난다. 그리고 남자 중등학교 건립에 있어서 의주 성도들과 선천 성도들이 서로 지역 이기주의를 드러내지 않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었음이 또한 빛을 발하고 있다. 복음화가 제대로 이루어진 현장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실현되고 있음이 드러난다.

9. 1907년 3월 3일자 편지를 근거로 볼 때 이때는 이미 선교사역을 사임하고 떠났음이 드러나며 다른 자료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이 때에는 더 이상 사역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으로 받아들이고 생략한다.

10. 선천선교의 성장(종합적인 평가)
1902년과 1917년의 보고서를 비교하면 그 25년 동안에 평안북도의 전도, 교육, 의료 사역이 4000퍼센트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선천에서 얻은 큰 결실은 사역 방법이 자전, 자치, 자급이었다. 교회들 가운데 60명의 목사와 2500명의 직원들도 수고했지만 모든 것보다 뛰어난 것은 그리스도의 성령의 위대한 사역이었다. 선교기지들마다 수천 명의 개종자들을 얻었지만 선천은 그 수천 명의 열 배를 얻었다.
2017-06-30 23: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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