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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Follwell, E. Douglas(미상, M) / Follwell, Mary W. Harris
 작성자 : 심귀례  2017-07-01 11:41:14   조회: 2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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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기본사항

1. 이름: Follwell, E. Douglas/ 폴웰/ 한국명: 보월(輔粤)
2. 생몰연도 : ?
3. 출신 및 소속 : 미국, 북감리회
4. 한국선교기간: 1895-1920, 平壤・釜山
5. 연표
1894. 해리스(1891 내한) 와 결혼
1895.12. 미감리회 선교사로 내한, 서울에서 한국어 공부
1896.5. 평양에 부임하여 의료선교 시작
1897.2. 홀 부인의 도움으로 병원 완공, 기홀병원이라 함
여자 환자는 홀부인, 폴웰은 남자 환자 진료
1915.1. 환자수가 증가하여 새로운 병원 건물 신축
주일학교, 복음전도에도 참여, 평양 이문동교회 소속으로 봉사
부인은 평양여자성경학교에서 교육활동
1920.10 선교사 자퇴서 제출 후 면직 결정
부산에서 개인적인 사업을 함

6. 가족사항
Follwell, Mary W. Harris (부인)
Harris, Lillian N. (처제)


II. 선교사 소개: 폴웰(Follwell. E. Douglas)


1. 한국에 제임스 홀 선교사의 뒤를 이어 온 의사 폴웰
미감리회 선교사, 의사, 한국명 보월(輔粤). 1895년 12월 내한하여 서울에서 한국어를 익힌 후 1896년 5월 평양에 부임하여 의료선교를 시작하였다. 그는 앞서 평양에서 의료선교를 개척한 후 1894년 순직한 홀(W.J. Hall) 박사의 미망인(Rosetta Sherwood Hall)의 도움을 얻어 곧바로 시약소와 병원 건축에 착수하여 1897년 2월 병원 건물을 완공하고 기홀병원「紀芴病院」이라 칭하였다. 평양에서는 처음 생긴 서구식 병원으로 개원 후 처음 두달 동안 1,334건을 진료하는 정황을 보였다. 여자 환자는 역시 의사인 홀 부인(로세타 샤유드)이 전담하였고 그는 남자 환자만 진료하였는데 1900년의 1년동안 그 혼자 3,125건의 진료실적을 나타냈다. 이듬해엔 5,862명의 환자를 치료했고 총 진료회수는 7,305회에 이르렀다. 이처럼 병원을 찾는 환자가 늘어나 미처 수용하기 어렵게 되자 1914년에 다시 새로운 병원 건축을 시작하여 1915년 1월 벽돌로 된 3층 건물을 마련하였다. 그는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성심껏 진료하였을 뿐 아니라 병원 내에 전도인을 두어 복음 전도에도 주력하였으며 평양 이문동(里門洞) 교회에 소속되어 주일학교 및 복음전도에도 참여하였다.


2. 제임스 홀의 죽음과 그의 사역 계승

폴웰 선교사가 제임스홀의 사역들을 계승하게 된 배경으로는 로제타는 남편 닥터 윌리엄 제임스 홀이 죽은 후 그 해 12월 로제타 홀에게는 셔우드 홀이라는 두 살 난 아들과 뱃속에 7개월된 아이가 있었다. 그녀는 출산을 위해 미국으로 갔다. 딸 에디스를 출산한 로제타는 귀국하기 전 로제타는 남편의 유산과 친지들의 부의금을 모아 한국에 보냈고, 결국 1897년 1월에는 홀의 유업을 기리는 홀기념병원(또는 紀忽病院)이 평양에 건립됐다. 폴웰(E. Follwell) 박사가 이를 인수 경영하였다 남편을 잃은 로제타 홀은 고종 33년(1896) 1월 홀의 유산과 부의금으로 그를 기념하는 기홀병원 (The Hall Memorial Hospital)을 설립하기로 하고 감리교회 선교의사 폴웰로 하여금 의료사업을 계승토록 하였으며, 로제타 홀은 아픈 상처를 달래기 위하여 일시 귀국길에 올랐다. 폴웰은 기와집을 개조해서 만든 빈약한 시설의 간이병원에서 여러가지 악조건과 싸우면서 의료사업을 계속해야만 했고 열심히 일했다. 개원 첫해(1896)에 그는 3,000명의 환자를 보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3. 폴웰 기홀병원 원장으로서 섬기다

이 병원은 1897년 2월 2일에 폴웰(E. Douglas Follwell) 의사를 원장으로 하여 개원하였다. 평양의 서문 안에 설립된 기홀 병원은 44 x 16피트 크기의 건물에 4개의 방을 갖고 있었다. 2명의 의사가 북한의 전 지역을 돌보고 있는 실정에서도 환자들은 500리 밖에서 이 병원으로 찾아 오고 있었다. 1897년의 선교보고서에 실린 120리나 떨어진 지역에서 온 한 환
자의 이야기는 눈물겹다. 수술을 받은 그는 병원을 떠나기 2주일 전에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을 고백했던 것이다. 이 병원도 서울의 병원과 같이, 매일 아침 식사 후 병동에서 환자들을 위한 기도회가 있었는데, 조수이씨가 이를 인도했다.

개업 4년을 맞은 기홀 병원은, 1900년의 폴웰의 보고에 이하면, 12x12피트 입원실 3개와 8x12피트 수술실을 가진 병원으로 확장되었고, 12명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홀 여사와 한국과 미국에 있는 그녀의 친구들의 지원에 의한 것이었다. 1902년의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해 동안 5,862명의 신규환자가 있었는데, 이는 1900년보다 2,737명이나 많은 것이었고, 작년의 병원 출입자는 7,035명이나 되었다는 것이며, 그중 1,562명이 외과치료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기홀 병원 개원 4년 반 동안에 14,000명의 신규환자와 24,000여명의 출입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올해는 5,743명의 출입자 중 1,532명이 외과치료를 위한 것이며, 121건의 수술이 있었으며, 자신이 취급한 병의 종류는 75종이었다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의 변화의 하나는 서울의 선교병원인 시병원이 문을 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병원의 마지막 책임자였던 셔먼은 1899년의 보고서에서 지난 8개월간 이미 병원 문을 닫았음을 보고한 바 있고, 또 그는 어학문제로 매우 고심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 뒤에는 이 병원에 관한 보고서가 없고, 평양의 기홀 병원에 관한 보고서만 보인다. 이 점과 관련, 백낙준 박사는 ‘서울의 북감리교 선교부 소속병원은 문을 닫았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재정난과, 이 무렵에는 의료사업의 도움 없이도 복음 전도 사업이 독자적으로 가능해졌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3. 미감리회 조선연회에 선교사 자퇴서를 제출
1920년 10월 그는 제13회 미감리회 조선연회에 선교사 자퇴서를 제출하였고 그의 문제가 품행조사위원회에 회부되어 「유죄면직」 (有罪免職)이 결정되었다. 이로써 그는 25년간의 감리교 선교사직과 기홀병원장직을 내놓게 되었고 이후 부산에서 개인적인 사업을 벌였다.


4. 폴웰 선교사 부인(Mary W. Harris)이 정의 여학교 운영
한편 그의 부인(Mary W. Harris)은 1891년 독신으로 내한하여 활약하다가 귀국하여 1894년 폴웰과 결혼한 후 함께 내한하여 평양여자성경학교에서 가르쳤다. 1899년 5월 12일 제15회 ‘미북감리회한국선교연회’는 노블(W. A. Noble, 노보을) 선교사 부인으로 하여금 평양 수옥리에 정의여학교(正義女學校)를 설립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노블 부인이 신병을 얻자 폴웰(Mrs. E. D. Follwell) 부인(Mary W. Harris)이 학교 사업을 인수받아 그 해 가을 46명의
학생을 모집하여 학교를 시작하였다. 당시 교과목은 한글을 비롯하여 수학ㆍ지리ㆍ 성경ㆍ교리문답 등이었다. 이듬해인 1900년부터는 실업반을 설치하고 편물과 자수 등을 교수하였다. 그 후 1920년 ‘사립정의여자고등보통학교’로 인가를 받고 딜링햄(G. Dillingham, 단영함)이 교장으로 부임하였으며, 1923년에는 4년제 4학급의 인가를 받았다. 1922년 고등보통학교의 첫 졸업생이 나온 이래 1928년까지 20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1929년에는 8학급을 증설하였다. 1930년 당시 이사장은 무어(J. Z. Moore, 문요한)였고, 이사는 앤더슨(A. G. Anderson, 안도선)ㆍ김득수ㆍ오기선이었다. 교사로는 안식수ㆍ한유신ㆍ김도광ㆍ소애련ㆍ박일숙ㆍ무어(R. B. Moore, 문로득)ㆍ헐버트(E. Hulbert, 헐법) 등이 봉직하였다. 1935년 당시 교장은 맥퀴(A. E. McQuie, 귀다애)였고 21명의 교사에, 381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었다.


5. 마무리 하면서
폴웰 선교사는 닥터 윌리엄 제임스 홀을 이어서 한국 의료선교사로 왔다. 그의 사역을 돌아보면 의료사역과 복음 전도사역을 균형 있게 열정적으로 잘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간에 유죄면직(有罪免職)이라는 선교사로서 명예롭지 못한 상황으로 퇴임을 하였다. 그 어떤 자료에도 왜 그가 유죄면직(有罪免職)을 받았는지 나와 있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유죄면직(有罪免職)으로 인하여 바로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료에 의하면 부산으로 가서 비즈니스를 했다고 하는데, 그 이후의 삶의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그래서 최대한 자료들을 통해서 그의 흔적들을 영문원서를 통해서라도 자료를 모아 과제를 완성하는 데 노력 해 보았다. 그러므로 선교사의 일생은 하나님만이 아시고 어떻게 빚어 가실지 모르겠으나,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웰 선교사님께서 한줌의 소망이 없는 조선의 땅에 와서 많은 노고와 사역들을 박수를 보내면서 감사드려 본다.
2017-07-01 11: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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