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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Gutzlaff, Karl Friedrich August(1803-1851, 독일)
 작성자 : nagary2192  2018-11-01 23:57:07   조회: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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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tzlaff, Karl Friedrich August (귀츨라프/ 郭實臘 / 독일)

1. 생몰연도 : 1803-1851 독일 포메라니아(Pomerania) 출생

2. 학력 : 독일 할레(Halle)에서 신학 공부

3. 경력 : 1803 프로이센 퓌릿츠(현 폴란드)에서 재단사인 아버지와 그의 두 번째 부인
사이의 외아들로 출생
1821 베를린 선교학교 입학, 교장선생인 야네케의 경건주의와 후텐헤르트 주의의
영향을 받음
1823 베를린 대학교(지금의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신학공부 시작 ‘네덜란드 선교회’의 선교사가 되기 위해 로테르담에서 선교회
세미나 시작
1826 네델란드 선교회에서 바타비아(지금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파송되어 선교활동
1827-28 자바, 수마트라, 싱가포르 선교
1829 네달란드 선교회와 절연, 야곱 톰린과 함께 태국을 방문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태국 방콕에서 성서번역 1831 중국 선교, 메리 뉴엘 (런던 선교회 파송
최초의 여 선교사)과 결혼
1831 쌍둥이 딸 출산 중 뉴엘 숨짐, 쌍둥이 중 하나는 출생 중 다른
한 명은 약 4개월 후 사망, 방콕에 매장됨
1832. 7.17-25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 로드암허스트호에 동승하여 황해도 백령군도 도착,
통상요구 실패하자 충청도 고대도에서 서양물품과 성서2권, 교리서 전달,
주민들과 접촉 – 성경과 전도문서, 의약품, 감자종자와 저장법 등을 주며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함, 통상 실패 후 떠남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로서 최초의 한글 성서번역자라 는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
1833 동아시아 2차례 항해기 발간(영문), 모리슨과 함께 동서양고매월통기전 발간
1834 메리 윈스톨(1799-1849)과 재혼, 동아시아 3차례 항해기 발간(영문)
1835 광저우내 영국 무역감독관 겸 수석통역관으로 대중국 교섭 메드허스트, 브리지만, 모리슨과 함께 중국어 구약성경 개역 작업 시작,
동양여자교육협회학교 설립 1836 성경 번역: 일본어로 구약성경인 구유조서 발간(~1840)
1837 일본 선교 포격으로 되돌아와 요한복음, 요한서신 일본어 번역, 신약성경인 신유조서 발간
1842 중국 저우산의 주정부 장관(~1842)
1844 중국인 선교사 양성을 위해 ‘복한회’ 홍콩에 설립 1849 1837년 발간된 신유조서를 수정하여 구세주야소신유조성서 발간 선교 보고를 위해 유럽 방문(10월)
1851 홍콩에서 소천
4. 가족사항 : 1803년 프로이센 퓌릿츠(현 폴란드)에서 재단사인 아버지와 그의 두 번째 부인 사이의 외아들로 출생 1807년 친모 사망 1808년 아버지의 재혼 1829년 메리 뉴엘(런던 선교회 파송 최초의 여 선교사)과 결혼 1831년 쌍둥이 딸 출산 중 뉴엘 숨짐, 쌍둥이 중 하나는 출생 중, 다른 한 명 은 약 4개월 후 사망
1834년 메리 윈스톨(1799-1849)과 재혼
1836년 시각장애 소녀(메리) 입양
1837년 4명의 중국 시각장애 소녀(아그네스, 라우라, 루시, 제시) 입양
1849년 두 번째 부인 메리 윈스톨이 싱가포르에서 사망(4월)
1850년 세 번째 부인 도로시 가브리엘(1821~1888)과 유럽에서 결혼

5. 귀츨라프의 생애
① 성장배경: 칼 귀츨라프(Karl F. A. Gützlaff, 1803-1851)는 1803년 7월 8일 프로이센 포메라리아(Pomerania)의 피리츠(Prytz)의 마구상의 외아들로 태어난 유대계 혼혈인 폴란드계 독일인. 네 살때 어머니가 죽고 계모의 손에서 자랐고, 고등학교 졸업 후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14살에 스테틴에 있는 혁대제조공장 공원으로 들어감. 그곳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개혁파 목사의 아들 하이덴라이히(Heidenreich)를 교제하며 목사가 되려는 희망을 가짐.
② 야니케선교학교(Missionsschlule Janiches)에서 공부: 1820년 스텐틴을 방문한 프로이센왕 프리드리히 빌헬름(Friedrich Wilhelm Ⅲ)에게 장문의 시(詩)를 바친 것을 계기로 왕에게 해외선교사로 가고 싶다는 소원을 피력하여 1821년 베를린에 있는 루터교학교인 야니케선교학교에 왕립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됨. 그곳에서 수학하며 6개국어를 습득함.
③ 네덜란드선교회와 동남아선교사로의 파송: 1823년 네덜란드선교회로부터 선교사지원요청을 받은 야니케선교학교는 교수회의의 추천으로 귀츨라프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동남아선교를 위해 말레이어를 공부하면서 선교사역을 준비함. 당시 중국선교사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으로부터 20여년간의 중국 선교사역에 관한 얘기를 듣고 큰 감명을 받음. 1826년 루터교목사로 안수를 받은 후, 1827년 1월 6일 그의 나이 24세에 정식선교사로 말래카를 거쳐 인도네시아 바타비아(Batavia, 지금의 자카르타)에 도착함.
④ 사이암선교: 바타비아에서 런던선교회 소속 선교사 메드허스트(W. H. Medhurst, 1776-1857)와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수마트라, 자바, 빈탕섬, 말라카, 싱가폴, 사이암) 거주 화교를 대상으로 한 선교계획을 세움. 1828년 초 혼자 사이암(지금의 태국) 선교를 떠났으나 선교가 여의치 않자 네덜란드선교회와의 관계를 끊고 싱가폴을 떠나 1828년 8월23일 런던선교회 소속 톰린목사와 함께 최초의 사이암 선교사로 현지에 도착하여 복음서와 로마서를 사이암어로 번역함.
⑤ 결혼과 중국선교: 1830년 2월 11일 런던선교회 소속 뉴웰(Maria Newell) 선교사와 결혼 후 신구약성서를 완역함. 1831년 2월 16일 뉴웰은 쌍둥이 딸을 출산하다가 아이 하나와 함께 죽자, 이로 인한 충격과 건강의 악화로 귀츨라프는 1831년 6월 중국으로 떠나면 딸아이를 싱가폴에 있는 친구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는데 그 아이 마저 사망함. 가정적 비극 속에서도 귀츨라프는 1831-1833 중국 연안을 따라 세 차례의 선교여행을 떠남. 1) 방콕을 떠나 텐진(천진)까지의 1차 선교여행(1831.6.3.-11.13)
2) 모리슨의 소개로 영국 동인도회사의 통상교역지 탐사선에 동승한 2차 선교여행 (1832.2.26.-9.5):2차 선교여행 때 당시 조선 서해안 1개월(1832.7.17.-8.17)간 방문 하였고 그 기간 중 20일 고대도에 머뭄.
3) 무장한 영국국적의 아편밀수선에 동승한 3차 선교여행(1832.10.20.-1833.4.29)
⑥ 마카오 정착과 저술활동: 1834년 재혼 후 마카오에 정착하여 그해 12월 모리슨이 별세하자 주중 영국대사의 비서 겸 통역관으로 근무하는 동안 선교활동에 관한 기사와 논저 저술, 모리슨이 번역한 한문성경 개역, 중국어 문법책과 한영사전(漢英辭典) 발간. 1837년 표류한 일본인으로부터 일본어를 배워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표류 어부 7인의 송환을 일본선교의 계기로 삼으려고 오키나와를 방문하나 상륙하지 못하고 돌아옴.

6. 귀츨라프의 조선 선교(1832.7.17.-8.17)
① 최초로 한국에 온 개신교 선교사: 귀츨라프는 1866년에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보다 34년, 1884년에 입국한 의료선교사 알렌보다 52년, 1885년 입국한 미국 선교사인 언더우드, 아펜젤러 보다 53년이나 앞서 조선을 선교하기 위해 방문함.
② 조선에 오게 된 배경: 1832년 동인도 회사는 극동의 새로운 통상지를 개척 탐사하려는 목적으로 타이완, 조선 서해안, 제주도와 오키나와까지 이른 항해를 계획하고 린제이(Hugh Hamilton Lindsay)를 임명함. 중국어에 능통한 귀츨라프는 모리슨의 추천으로 선의(船醫) 겸 통역관으로 Lord Amherst호에 승선함. 귀츨라프는 이를 선교기회로 여겨 선교에 필요한 전도문서와 성경 및 선물 마련하는 한편 모리슨으로부터 한문성경을 지원받음.
③ 고대도까지의 여정: 선장 Hugh H. Lindsay는 廣東 출발(1832년 2월 27일)하여 타이완, 福州, 영파, 상해, 산동반도의 威海衛를 거쳐 1982년 7월 17일 대청군도 북쪽 장산곶에 도착하여 한문으로 필담을 나누어 지방관이나 정부당국과의 접촉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함. 7월 23일 남하하여 외연도, 녹도, 불모도를 거쳐 충청도 홍주만 古代島 앞에 정박함. 홍주목사 이민회와 수군우후 김형수가 보낸 관리에게 국왕에게 통상청원과 선물을 전하고자하는 방문목적을 밝히고, 통상청원서와 유리그릇, 옥양목, 모직물, 담요 등의 선물과 더불어 성서(로버트 모리슨과 밀른 선교사가 번역한 한문성경인 신천성서, 神天聖書) 한 질과 전도문서를 전달함.
④ 고대도 주민과의 만남과 한국 최초의 복음전도(1832. 7. 27-8.11): 중앙정부의 회신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며 고대도 주민과 접촉함. 27일 귀츨라프 일행은 고대도에 상륙하여 단골조사관인 조선인과 고대도 주민에게 필담으로 복음을 전하였으나, 조선인은 복음에 대해 무관심함. 한국 최초의 선교사역에 대해 귀츨라프는 “이 모든 일은 내가 늘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를 간구한 결과 이뤄진 하나님의 역사이다. 조선에 파종된 하나님의 진리는 사라져 버릴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머잖아 주님께서 예정하신 때가 되면 많은 결실이 있을 것이다.” 또한 27일 조선인 양이의 도움으로 주기도문의 한글로 번역함. 7월 30일 해변에 감자를 심었으며 감자재배법을 가르쳐 주었고, 7월 31일 야생포도를 발견하고 포도주와 포도주재배법을 가르쳐 줌. 8월 2일 감기환자 노인 60명분의 약을 처방하여 나누어줌.
⑤ 조선조정의 선물·서한 환급과 조선을 떠남: 8월 9일 조선조정의 특사인 오계순이 귀츨라프가 보낸 서한과 선물을 돌려주자, 귀츨라프는 외국의 통상사례를 들어 설득하였으나 실패함. 이에 8월 10일 떠날 물품을 요청하였고, 8월 11일 관리들로부터 약속받은 물품을 공급받고 조선 해안을 떠남. 귀츨라프는 조선과의 작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함 :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큰 섭리로 자비로운 방문의 날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진리를 전파하도록 서둘러야겠다. (중략) 이 첫 전도는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실 것을 확신한다. 조선에 어두움이 가고 속히 새벽이 와서 밝은 날이 오기를 다같이 바랄 뿐이다.”

7. 공헌
① 동북아 선교를 위한 공헌 1) 최초의 사이암 선교사 및 중국선교에 기여: 귀츨라프는 1828년 8월 23일 런던선교회 소속 톰린목사와 함께 최초의 사이암(지금의 태국) 선교사로 복음서와 로마서를 사이암어로 번역함. 1831년 이후 3차에 이르는 중국 선교여행을 통해 중국에 복음을 전함.
2) 선교지언어로의 성경번역과 목회자양성을 통한 선교: 귀츨라프는 1828년 최초의 사이암 선교사로 복음서와 로마서를 사이암어로 번역함. 1834년 이후 마카오에서 선교활동기사와 논저 저술, 모리슨이 번역한 한문성경을 개역함. 1843부터 1851년 8월 9일 죽을 때까지 목회자 양성학교를 통한 47명의 중국인 목회자를 배출함. 1844년 복한회(福漢会, Chinese Union)를 결성하여 약 천명의 권서인(colporteur)과 백명의 설교자를 파송하여 중국오지 선교를 지원하였고, 이러한 선교방법은 이후 영국선교사 허드슨 테일러에 의해 채택되어 중국내지선교회 탄생에 기여함.
3) 최초로 동북아를 위한 체계적인 선교전략의 구상: 귀츨라프는 제주도 일대를 둘러본 후, 조선, 중국, 만주, 일본을 잇는 선교기지(Missionsstation)로 알맞다는 생각함. 그는 선교기지인 제주도를 통해 조선을 비롯한 동북아 여러 나라에 “그리스도의 교회의 첫 번째 시작”을 언급하면서 동북아 선교를 위한 기본적인 전략을 처음으로 구상함. 4) 인도네시아, 태국(당시 사이암) 및 중국선교에 기여: 귀츨라프는 1827년 1월 6일 그의 나이 24세에 네덜란드선교회의 정식선교사로 인도네시아의 바타비아(Batavia, 현재 자카르타)에 도착. 이후 1823년 8월 23일 런던선교회 소속 톰린목사와 함께 최초의 사이암(지금의 태국) 선교사로 복음서와 로마서를 사이암어로 번역함. 1831년 이후 3차례에 걸쳐 중국연안(텐진-만주-한국-타이완)을 따라 중국에 복음을 전함. 1834년 재혼 후 마카오에 정착하여 그의 선교활동에 대한 기사와 논저를 저술하고, 모리슨이 번역한 한문성경 개역과 중국어 문법책과 한영사전(漢英辭典) 발간. 1843년부터 1851년 8월 9일 죽을 때까지 영국정부의 홍콩정청에 근무하면서 목회자 양성학교를 통한 47명의 중국인 목회자 배출 및 1844년 복한회(福漢会, Chinese Union)를 결성하여 약 천명의 권서인(colporteur)과 백명의 설교자를 통한 중국오지(내지)선교 지원함. 5) 중국전역 완전복음화 목표 및 좌절: 귀츨라프는 홍콩에 거처를 마련하고 중국전역을 1세기안에 완전복음화를 목표로 신약성경 수천권, 수많은 소책자를 배포함. 이후 2,871명의 회심자가 세례를 받았다는 성공담을 귀츨라프의 편지가 유럽에 전해지자 유럽전역에서 재정후원 답지. 1850년 귀츨라프의 중국사역의 열매는 중국사역자의 날조극으로 들어남. 중국사역에 사용된 소책자는 인쇄업자를 통해 다시 귀츨라프에게 판매되었고, 유럽전역에서 모아진 기부금의 일부는 아편거래자금으로 유입된 것으로 들어남. 귀츨라프는 자신의 중국선교사역를 보고를 위한 유럽순회 이전에 이미 이를 인지한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거짓 증거를 외면하고 자신의 명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시 중국에 돌아왔으나, 중국사역을 재조직하지 못하고 1851년 사망함.
② 조선 선교를 위한 공헌 1) 최초로 한국에 온 개신교 선교사: 귀츨라프는 1866년에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보다 34년, 1884년에 입국한 의료선교사 알렌보다 52년, 1885년 입국한 미국 선교사인 언더우드, 아펜젤러 보다 53년이나 앞서 조선을 선교하기 위해 방문함.
2) 최초로 한글로 주기도문 번역 시도: 성경에 나오는 “주기도문”을 한문으로 써주고 그것을 한글로 번역하였다. 이는 단편적이지만 한글 성경번역의 효시라 불릴 만함
3) 최초로 한문 성경 전달: 귀츨라프는 가는 곳마다 조선인들이 읽을 수 있는 한문으로 된 성경이나 한문 전도 서적을 나누어 주었으며, 순조 대왕에게는 로버트 모리슨과 밀른 선교사가 번역한 한문성경인 신천성서(神天聖書)를 진상함. 4) 최초로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체계적으로 소개함.
5) 최초로 서양 감자의 파종: 먹을거리가 없는 곤궁한 조선인들을 위해 서양감자를 심고 재배하는 법을 실제로 조선인들의 눈앞에서 보여 주었고, 또한 글로 써 남겨 줌(1832년 7월 30일). 또한 야생포도로 음료를 만드는 법을 전수함(1832년 7월 31일).
6) 최초로 서양 선교사로서 서양 근대 의술을 베풂: 고대도 도착(1832년 7월 25일) 이후 줄곧 환자들을 위해 약을 처방함. 한 예로 60명의 노인 감기환자를 위한 약을 처방함(1832년 8월 2일). 이 기록은 조선에서 서양 선교사가 최초의 서양의술임.

8. 논저
① A Sketch of Chinese History, vol2, 1834
② Die Mission in China, 1850
③ Journal of three voyages along the coast of China in 1831, 1832 and 1833, 1834
④ The life of Taou-Kwang the late emberor of China, 1852
⑤ 대영국통지, 1834
⑥ 東西洋考海月紶記傅 4권, 1833-37
⑦ 무역통지, 1830

9. 평가
① 동양 기독교선교에 끼친 영향
1) 최초의 사이암선교자이자 인생의 대부분을 중국선교에 헌신한 선교사: ⒜ 1820년 스텐틴을 방문한 프로이센왕 프리드리히 빌헬름(Friedrich Wilhelm Ⅲ)에게 장문의 시(詩)를 바친 것을 계기로 해외선교사를 소원하며 1821년부터 베를린에 있는 루터교학교인 야니케선교학교에서 수학함.
⒝ 1827년 1월 6일 그의 나이 24세에 네덜란드선교회의 정식선교사로 말래카를 거쳐 인도네시아 바타비아(Batavia, 지금의 자카르타)에 도착. 이후 1823년 8월23일 런던선교회 소속 최초의 사이암 선교사로 사이암현지에 도착하여 복음서와 로마서를 사이암어로 번역함. ⒞ 1831년부터 1851년 8월 9일 죽을 때까지 목회자 양성학교를 통한 중국인 목회자 양성, 한문성경 개역 등 문서사역, 1844년 복한회(福漢会, Chinese Union)를 결성하여 중국오지 선교를 지원함으로써 인생의 대부분을 중국선교에 헌신한 선교사임.
② 최초로 한국에 온 기독교 선교사 인정여부
1) 최초로 한국(당시 조선)에 복음을 증거한 공식 선교사
⒜ Lord Amherst호(선장 Hugh Hamilton Lindsay)가 조선에 도착할 당시 귀츨라프 는 런던선교회 소속 선교사였음.
⒝ 린제이 항해기 등 기록를 통해 귀츨라프 일행은 1982년 7월 27일 고대도에 상륙하 여 처음으로 필담(筆談)으로 복음을 전하였고, 전도문서와 복음서를 전해주고, ‘양이(Yang-yih)’라는 조선인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고 이를 한글로 번역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음. 또한 당시 감자와 감자재배법 및 포도주·포도즙재배법을 전수하고 의약품을 처방하여 주었다는 기록이 있음.
⒞ 김양선(1907-1970, 목사·고고학자)은 “양씨의 도움으로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한 것은 성서 한글 역의 효시가 되는 의의 깊은 일이다”라고 평가함.
⒟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귀츨라프의 조선방문기간이 비록 20여일 정도에 불구하다 하더라도 그의 행위는 런던선교회 소속의 공식선교사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인간영혼의 구원이라는 선교의 본질에 충실하였다 사료됨.

10. 참고자료

김승태, 박혜진. “내한 선교사 초람(수정 중보판)” 「자료총서」 제18집 (1994): 275-76.

김칠성. “한국개신교 선교역사의 시작은 언제인가?” 「한국교회사학회지」 제38집 (2014): 181-216.

오현기. “귀츨라프의 선교신학에 나타난 친첸도르프 헤른후트주의의 영향에 관한 연구” 「복음 과 선교」 제20집 (2012): 237-78.

“중국 근대사에 끼친 서양 선교사들과 선교회들의 영향에 대한 연구” 「대학과 선교」 제25집 (2013): 121-60.

Ruth A. Tucker. From Jerusalem to Irian Jaya: A Biographical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 Zondervan, 2004; 오현미 역. 『선교사 열전』. 서울: 복 있는 사람, 2015.

신호철. 『귀츨라프 행전』 양화진 선교회, 2009.

오현기. 『굿 모닝, 귀츨라프 한국에 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북코리아, 2014.

이진호. 『동양을 섬긴 귀츨라프』 에이멘, 1988.

허호익. 『귀츨라프의 생애와 조선선교활동』 한국기독교역사 연구소, 2009.

http://www.귀츨라프.kr/

https://www.guetzlaff.kr/

http://new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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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늘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2018-11-01 23:5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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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회사3권 전체 서평/ 3-5 / 2017210326 / 조일흠   조일흠     2019-12-17   425
1546
  한국교회사3권전체서평/3학년6반/2017210381/이재선   이재선     2019-12-16   417
1545
  한국기독교회사 3권 서평 / 3-5 / 2017210331 최현진   최현진     2019-12-16   411
1544
  한국기독교회사 3권 서평 / 3-5 / 2017210322 정연수   정연수     2019-12-16   425
1543
  한국기독교회사 3권 서평 / 3-5 / 2017210292박지훈   3학년5반박지훈     2019-12-16   413
1542
  내한선교사 / Tucker, Almira Bertha(미상, MS)   3학년6반양병식 (2017     2019-12-16   453
1541
  내한선교사/B134/Tucker, Almira Bertha(미상, MS), 3학년 6반 양병식/2017210369   3학년6반양병식(20172     2019-12-16   473
1540
  한국기독교회사 3권 서평 / 3-6반 / 2017210336 강성웅   강성웅(3-6반)     2019-12-16   419
1539
  한국기독교회사 3권 서평/ 3-5반/ 2017210314 이지운   이지운     2019-12-16   424
1538
  내한선교사/B126/Tait, Maisie G.(생몰연도 미상) / 내용올리라 하셔서 다시 올립니다 수정이 안되네요   명노아     2019-12-16   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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