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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Livesay, Joseph B.(1896-1981, NP) / Livesay, Muriel Smith
 작성자 : 이종구  2018-11-20 18:59:01   조회: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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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1. 이름: Livesay, Joseph B. / 리브세이 / 한국명: 이부서(李富敍)
2. 생몰연도: 1896.2.15. - 1981.6.9.
3. 출신 및 소속: 미국, West Virginia, 북장로교 소속
4. 한국선교기간: 1923.10.18. - 1941.3.31.
5. 연표

1896.2.15.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출생
1923.10.4. 벤쿠버에서 출발
1923.10.18. 아담스(J.E. Adams) 목사의 선교기금 후원으로 내한
대구에서 복음 전파
1925 북장로회 선교회에 가입
황해도 재령지방으로 이전하여 선교활동
1926.6.14. 결혼
1933.7.18. 딸 기네스 출생
1934.4.10. 딸 기네스 사망
1941.3.31. 일제에 의해 필리핀 마닐라로 강제추방
1942.7.15. 아들 토마스 출생
1946 은퇴
1981.6.9. 리브세이 사망
1985.1.22. 아내 뮤리엘 리브세이 사망

6. 가족사항
1) 부인
(1) 이름: Livesay, Muriel Smith
(2) 생몰연도: 1896.2.9.-1985.1.22.
(3) 출신 및 소속: 캐나다, Kingston, Ontario, 북장로교 소속
(4) 한국선교기간: 1926.6.21.-1941.3.31.
2) 딸: Livesay, Muriel Gwynneth(1933.7.18. - 1934.4.10.)
3) 아들: Livesay, Thomas Granville(1942.7.15. - )


Ⅱ. 선교사 소개: 리브세이(Joseph B. Livesay, 1896-1981)

1. 출생과 성장
리브세이(Joseph B. Livesay, 1896-1981)는 1896년 2월 15일. 아버지(John G. Livesay)와 어머니(Lizzie E. Livesay)사이에서 6남 2녀의 5남으로, West Virginia의 Spring Creek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농부였고, 1900년 미국 연방 인구 조사를 살펴보면 그의 집은 농장과 집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농장에서 부리는 하인도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그의 어린 시절은 그리 가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920년 미국 연방 인구 조사에서 23세의 리브세이의 직업은 공립학교의 교사로 기재되어 있다. 그가 어떠한 교육을 받았는지, 그의 출신 학교가 어디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 농장 노동자로서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았을 때 리브세이가 고등 교육을 받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한 그가 어떠한 계기로 목사가 되었고, 또 한국에 선교사로 오게 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26세에 목사 선교사로서 한국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23세부터 26세 전까지 목사가 되는 과정을 밟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가 어떤 학교에서 어떤 신학교육을 받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그의 저작, 특별히 The Korea Mission Field 1928년 1월 호에 기재된 ““The Basis of Christian Faith” By Rev. F. E. Hamailton”를 살펴보면 그의 신학이 바른 성경관을 견지하고 있으며, 복음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 아담스 복음 전도 기금(Adams Evangelistic Fund)
미국 북장로회 한국 선교사로 대구선교부를 관할하고 있던 아담스(J. E. Adams) 선교사는 선교비의 부족으로 선교요원이 적재적소에 충당되지 못하는 등 많은 선교대상 지역이 방치되고 있는 점을 안타깝게 여겨 본국에 있던 자신의 개인 재산을 기초로 선교기금을 조성할 결심을 하였다. 이때 선교대상 지역이 방치되고 있는 사실에 대한 외지 선교부의 연례 보고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대구-안동지역에는 약 200만 명의 인구가 있는데, 그 중에서 5분의 2가 전체적인 선교능력의 범위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실제로 기독교인 수는 겨우 1천명에 한 사람 꼴의 비율이며, 30평방 마일에 교회 하나 꼴밖에 안 된다. 경상북도의 방대한 인구가 지금까지 멸망으로 빠져들어 가도록 방치되어온 사실에 대하여 이제는 선교부와 본국의 교회가 대책을 세워야 할 때이다……”
이러한 대구지역의 어려운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한 아담스 선교사의 마음을 통해 1922년 아담스 선교사의 사재를 바탕으로 마련된 경북 지역 선교 보조 기금, 아담스 복음 전도 기금이 시작되었다. 아담스 기금의 첫 열매로 1923년 두 사람의 선교사, 리브세이 목사와 맥팔랜드 목사가 준회원의 자격으로 미국으로부터 도착하게 된다. 그 가운데 맥팔랜드(E. F. Mcfaland) 목사는 건강상의 이유(신병)으로 사임하게 된다. 더군다나 이 기금이 창설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아담스 선교사 본인도 신병이 악화되어 선교사직을 사임하게 되면서 그 기금의 관리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고 아담스 목사의 두 아들(Edward Adams; B.N. Adams)이 관리자로 임명되었으며, 당시 재령에서 사역 중이었던 에드워드 아담스가 기금을 관리하기 위해 대구로 사역지를 옮기게 되면서 리브세이가 북장로회 선교회에 정식으로 소속되며 교체하게 되었다.
이후 이 기금은 최초 목적이었던 외국인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대신에 대게는 한국인 목사들을 2년까지를 기한으로 해서 보조하며 대구의 학생들 사이에서 복음을 전하던 소년학원(Boys’ Academy)의 전도 악대를 후원하는데 사용되었다. 이후 이 기금은 1930년까지 10년도 안 되는 기간 내에 72개의 교회를 설립하는데 사용되었으며, 이 숫자는 경북 내 전체 교회의 15%에 해당되며 대구를 포함한 경북 노회의 교회 총수에 대해서는 25%의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숫자이다. 이에 대한 1928년의 외지 선교부 대구지부의 보고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이 도에 대한 가장 집중적인 복음전도 활동은 아담스 복음전도 기금에 의하여 추진되고 있다. 금년에는 약 10개의 새로운 교회들이 세워졌다……”

이는 사실 한국선교사들의 주된 선교방책이었던 네비우스 선교원리 중의 교회 자치 성장 원칙에는 위배되는 형태였다. 그러나 당시 한국 사회는 심한 경제적 피폐에 시달렸고 특히 일제의 독선적 농촌 경제정책에 의해 한국의 농촌 교회가 겪는 경제적 곤궁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그 여파로 타지역에서는 1920년대부터 1935년 사이의 농촌 교회 성장률은 미미한 상태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경북지역 즉 4분의 1에 해당하는 교회가 아담스 복음 전도 기금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 지역의 교회는 놀라운 성장을 계속했던 것이다. 이 교회들은 점차 자립의 단계로 전환되었으며 경북노회의 중심교회들로 발전하게 되었다.

3. 재령에서의 사역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리브세이는 아담스 복음 전도 기금을 통해 한국선교사로 지원하게 되었으며, 1923년 10월 4일 벤쿠버에서 출발하여 1923년 10월 18일 한국 땅에 도착하게 된다. 한국 도착 후 리브세이는 아담스 기금의 본래 목적대로 북장로회 선교회의 준회원으로서 대구에서 사역을 감당한다. 그는 아담스 기금의 수혜자로서, 대구 지역에서 목사 선교사로서 순회 전도사역과 남자 중등학교 근처에 아담스 기금의 사무실이 있었기에 본국에서의 그의 경험을 살려 중등학교의 선생의 역할을 감당했을지 모른다.
리브세이는 1925년에 정식으로 북 장로교 선교회의 회원으로 가입하며 에드워드 아담스와 교체됨으로 재령으로 그 사역지를 옮기게 된다. 당시 에드워드 아담스는 황해도의 시골 순회 사역을 하면서 특별히 서북 순회구역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 사역이 자연스레 리브세이에게 맡겨지게 되었다. 리브세이가 배정되기 전, 당시 재령에는 한국인 목사들이 이끄는 교회들의 수가 크게 증거한 관계로 순회구역 담당 선교사들의 사역이 크게 줄어들어 있었다. 그래서 당시 동부 순회구역을 담당하고 있던 헌트(Hunt)는 무 교회 지역 ‘천막 전도’(Tent Evangelism)에 많은 시간을 투입해 매우 고무적인 결과를 냈다. 이런 방법으로 14개의 새로운 집단들이 생겨났고 그것들은 1934년에도 계속 존재하고 있었다. 재령으로 배정받은 리브세이도 당연하게 이러한 ‘천막 전도’ 사역을 해나갔다.
천막 전도 사역은 당시 재령에서 행해지던 두 가지 주된 사역 중 하나로 너무 춥지 않고, 덥지도 않은 봄, 가을에 전략적인 장소를 정해 큰 텐트를 치고 그곳에서 선교사들이 직접적으로 짧게는 1년에서 2년 이상 미리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의 문화를 습득하여 더듬거리는 말이지만, 또 때로는 미숙하지만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보다 후미진 지역, 보다 열악한 환경의 지역으로, 나아가 천막을 치고 그 천막을 기지 삼아 그 고장에 원색적인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었다. 1928년의 R. K. Smith의 보고에 따르면 천막 전도 사역을 통해 6개의 도시에서 최대 50명 이상이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에서 사역하며 리브세이는 1926년 2월 9일 캐나다에서 북장로교 선교사로 온 뮤리얼 스미스(Murial Smith)와 만나게 되고 그 해 6월 14일, 영사관이 있던 일본 고베에서 결혼을 하였으며 1933년에는 7월 18일 사랑하는 딸 기네스를 만났으나 안타깝게도 1년이 채 되지 못해 1934년 4월 10일 급성발열로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그를 먼저 하나님께 보낸다. 이러한 아픔에도 불구하고 리브세이 가족은 주님의 위로하심으로 1941년 3월 31일 일제에 의해서 강제 추방을 당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사역을 감당해 나간다. 기네스는 현재 양화진에 묻혀 있다.

4. 일제로 인한 강제 추방
특별히 리브세이가 사역하던 시기는 한국교회가 일제에 의해서 시름하고 있던 시기였다. 찰스 샤워(Charles August Sauer)가 지적하듯 일본 황제에 대한 한국인들의 전적인 충성이라는 최종적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선교사들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일제는 한국에서 선교하던 선교사들에게 끊임없이 압박을 가했으며 급기야 강제 출국 시켰다. 1940년 11월 16일, 전체 9분의 5에 해당하는 160명의 선교사와 49명의 자녀들, 모두 209명이 일본의 압력에 의해 메레포사 호를 타고 혼신의 힘을 다해 온 정든 선교지 한국을 떠났으며 1940년 크리스마스 때 까지 90%의 선교사들이 한국을 떠났다.
리브세이 부부는 이러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른바 “기도일 사건” 때문에 선교부의 15명이 강제로 한국을 떠나게 된다. 이들은 모두 상해로 갔다가 그곳에서 몇 명은 바로 미국으로 직행했으며 나머지는 필리핀 마닐라로 간다. 모두 다 상해에서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1941년 초 필리핀 선교부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리핀 선교부로 옮겨 계속해서 선교사역을 감당했던 사람 중 리브세이가 포함된다. 이것만 보아도 그에게 선교에 대한 사명과 열정이 얼마나 투철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본에 의해서 필리핀에 있던 모든 연합국 시민들이 억류된 것이었다. 처음에 일본은 이 억류자들을 심하게 취급하지 않았으나, 곧 그들의 본색을 드러내고 선교사들을 산타 토마스 수용소와 마닐라 만 건너편의 로스 바노스 수용소로 보냈다. 이때 당시 리브세이 부부와 Baugh 부부는 밀림과 산으로 탈출하여 억류를 피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고난은 계속되었다. 당시 뮤리엘 리브세이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하나님의 은혜로 한국을 떠나 상해를 거쳐 마닐라로 오는 동안 아이는 건강했지만 밀림과 산에 숨어 지내는 동안 뮤리엘의 산달이 차왔던 것이다. 열악한 상황에서 리브세이 부부는 결국 1942년 7월 15일 동굴에서 두 번째 아이 토마스(Thomas)를 낳게 된다. 동굴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 갓난 아이를 키울 수 없었던 리브세이 부부는 나일 강에 모세를 띄워 보냈던 요게벳의 마음으로 필리핀 간호사의 손에 토마스를 맡길 수 밖에 없었으며 18개월 동안이나 토마스의 소재를 알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리브세이 부부의 헌신과 선교에 대한 그 뜨거운 마음을 보시고 토마스를 생각하셨고, 필리핀 간호사가 아이의 피부를 염색하고 18개월 동안이나 감출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그래서 토마스는 당시 “기적의 아이”로 불렸다.
필리핀에서의 이러한 고비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잘 넘긴 후 리브세이 부부는 리브세이의 고향인 버지니아 주의 Waynesboro에 돌아와 1946년 선교사로서의 사역을 정리하고 은퇴한다. 그리고 1981년 6월 9일, 85 세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 까지 그 지역에서 생활 했으며 미국 버지니아 주의 Augusta County, Fishersville에 위치한 Tinkling Spring Presbyterian Church Cemetery에 묻혔다. 뮤리엘 리브세이는 4년 후 1985년 1월 22일에 남편의 곁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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