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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Boots, John L.(1894-1983, NP) / Boots, Florence Schumacher
 작성자 : 권혁준  2018-11-21 16:33:20   조회: 1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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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츠 / John L. Boots (1894-1983)

I. 기본사항
1. 이름: Boots, John L. / 부츠 / 한국명 : 부소(夫蘇)
2. 생몰연도: 1894. 11. 9. ~ 1983. 1. 28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21. 03 ~ 1939
5. 연표 1894. 11. 9. 미국 펜실베니아 뉴브링톤에서 출생
1915.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3년과정 졸업
1917년 12월 24일에 결혼
1918. 피츠버그치과대 3년 과정 졸업
1921. 3. 북장로교 의료 선교사로 내한, 세브란스 병원 치과 의사 의대 교수직 겸직
1925. 12. 치과 선교센터 설립 계획을 위한 기금을 마연하기 위해 미국으로 감
1928. M. S.와 F. A. C. D 학위를 취득
1930. 9. 세브란스 병원에 치과 진료소 설치 및 치과센터 건설 시작
1931. 10. 27. 치과 센터 완공
1939. 3. 북경대학교 의과 대학으로 전임
1941. 중국에서 축출되어 마닐라 포로수용소에 수용
1943. 미국으로 귀국
1952. 샌디에고에서 개인치과 개업
1970. 피츠버그 치과대학에서 근무
1983. 1. 28. 만 89세를 일기로 타계

6. 가족사항
부인 : Boots, Florence Schumacher



I. 선교사 소개: 부츠(Boots, John L, 1894-1983)

1. 세브란스 병원에서의 사역

1885년 4월 10일 문을 연 제중원을 모태로 세워진 세브란스 병원은 우리나라 선교병원의 출발점이자 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치과 의사인 부츠는 한국인이 섭취하는 음식과 식이습관을 구강보건의 관점에서 연구했다. 먼저 부츠는 한국인의 식사가 영양학적으로 불균형이 있고 섭취하는 음식물의 종류도 제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에게서 특정 영양소의 결핍으로 인한 질환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사실에 다소 놀라움을 표한다.
한국인의 구강보건과 관련해 특별히 부츠의 관심을 끝 것은 식사 후에 소금으로 양치를 하는 관습이었다. 부츠는 한국인들이 거의 예외 없이 식사 후에는 굵은 소금을 가운데 손가락에 담아 치아와 잇몸을 문지르는 것을 보았다. 부츠는 이것이 충치를 예방하거나 소화를 자극할 목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구강내의 청결과 구취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렇게 한다고 보았다. 한국인들은 손가락과 소금으로 치아를 닦는데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한동안 치약과 칫솔을 쓰던 사람도 결국은 다시 소금과 손가락으로 치아를 닦는 이전 관습으로 돌아간다고 쓰고 있다. 소금으로 치아를 닦는 것은 과학적 측면으로 보더라도 치아를 보호하는 효과가 충분히 있다는 연구 결과를 부츠는 인용하고 있다.

[부츠의 치과 치료 제공안]
1. 부츠 박사는 우리 의대생들의 치과 교육을 감독할 것이며, 점차 의대 학과의 치의학 설립을 목표로 하고, 그동안 한국인 치과를 지도하고 감독할 것이다.
2. McAnlis 박사는 외국 사례의 치료에 크게 전념할 것이지만, 한국인들을 위한 교육과 임상 작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3. 여기 있는 세 번째 외국인 치과의사를 위한 즉각적인 필요는 그들과 그들의 현장을 돕기 위한 남방 감리교 선교회에 보내질 것이라는 발표로 충원되었다


2. 벽돌 만개 팔기 운동과 부츠

2대 치과과장으로 부임한 부츠(J. L. Boots, 1921. 3 ~ 1939)는 구강외과를 담당하면서, 대국민 구강보건교육과 의료윤리를 강조하였다. 부츠는 부임 직후 압축공기시설을 장착한 체어를 들여왔고, 최신 장비를 갖춘 치과건물을 짓기로 했다.
1925년 부츠는 치과건물 신축을 위한 기금모금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부츠는 10달러짜리 ‘돌 만개 팔기'라는 구호를 내걸고 모금운동을 펼쳤다. 가족들과 한복을 입고 기자회견을 하고, 여러 지역 치과의사회를 방문하였다. 한국의 풍물과 세브란스 치과학교실을 소개하는 콘서트를 열기도 하였다. 그 결과 1929년 미국치과의사협회에서 1만 달러의 기부금을 약속하며 "때가 되면 한국인들에게 신축건물의 운영을 인계하라"고 지시하였다.


3. 한국 음악과 부츠

부츠는 1940년 서양인 중 처음으로 한국의 음악과 악기들을 영어로 소개했다.
J.L.Boots는 1940년 서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영어로 한국의 악기 및 음악 소개(Korean Musical Instruments and an Introduction to Korean Music) 논문을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저널(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에 집필하여 한국의 전통악기와 음악을 세계에 소개하였다. 물론 간헐적으로 외국인들이 한국의 전통음악과악기에 관한 사진, 내용들을 수록한 책자들은 있었으나, 영어로 고조선부터 삼국, 고려, 조선에 이르는 한국음악의 역사 및 악기를 소개한 서양인은 처음이었다.
J.L.Boots가 내한한 1921년부터 1939년의 한국 상황은 일제식민지 시대로 조선 5백년의 전통을 자랑하던 악원(樂院)은 위축일로(萎縮一路) 파국(破局)에 직면하였고, 일제의 내정간섭이 본격화되면서 원구(圓丘), 사직(社稷), 선농(先農), 선잠(先蠶), 문선왕묘(文宣王廟), 종묘(宗廟) 제례 등의 전통적인 국가적인 제반 의식이 폐지됨으로서 이를 연주하는 악사의 수가대폭 줄고, 전통음악이 인멸하는 상황이었다. 반면 서양음악은 19세기 말 기독교 선교사들이 한국에 선교를 시작하면서 그들이 가르친 찬송가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특히 서양식 군악대의창설로 에케르트 지도하의 한국의 양식 군악대는 군의 의식은 물론 정부의 각종 의식에서 음악을 담당하였고, 서양의 군악 및 국가, 국민가요, 서구의 행진곡 등 서양음악이 급속도로 전파되기에 이르렀다.
부츠는 Korean Musical Instruments and an Introduction to Korean Music 에서 갑자기 도입된 완전히 다른 유형의 음악으로 인해 전통음악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경우 전통음악에 대한 가능한 모든 지식을 수집하고 집대성하고 기록해야한다고 역설한다.
J.L.Boots는 1940년 서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영어로 한국의 악기 및 음악 소개(Korean Musical Instruments and an Introduction to Korean Music) 를 집필하여 세계에 소개하였다. 영어로 고조선부터 삼국, 고려, 조선에 이르는 한국음악의 역사 및 악기를 소개한 서양인은 처음이었고, 이 논문은 현재까지 한국음악계에 소개되지 않은 논문으로 이번 연구를 통해서 처음으로 서양인 쓴 한국의 전통음악을 살펴볼 수 있었다.
부츠는 1921년 3월에 선교치과의사로 한국에 왔으며, 1921년부터 1939년까지 세브란스 치과과장직을 맡으면서, 서양인 최초로 한국의 전통음악에 관심을 갖고 논문을 집필하였다.
부츠가 내한한 당시의 한국 상황은 일제식민지 시대로 한국음악계는 위축되고 전통적인 제향의식이 폐지되면서 전통음악회 연주 및 악사수가 줄고, 반면 서양음악은 급속도로 전파되는 시기였다. 부츠는 갑자기 도입된 완전히 다른 유형의 서양음악으로 인해 전통음악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한국전통음악 지식을 수집하고 집대성하고 기록해야한다고 역설하였다. 아마도 한국 전통음악계가 당시의 위축된 상황에서 기록하고 집대성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실감하고 부츠가 외국인이지만 기록의 필요성에 의해 한국전통음악을 이 논문을 통해 기록해놓으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


4. 한국 관련 저술

세브란스의전 교수들이 행한 의료, 보건, 식생활, 환경 등에 대한 연구들이 있다.
의전에서 치과학 교수로 있던 부츠가 쓴 한국의 전통 무기류와 갑옷에 대한 연구(“Korean Wwapons and Armor”)는 구석기시대의 돌도끼부터 조선시대의 총포류에 이르기까지 군사력에 관련된 유물과 유적을 총괄적으로 다루었다. 부츠는 무기류뿐 아니라 화약통, 방패, 갑옷, 그리고 성곽 등도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가 쓴 ‘한국인의 음식과 구강상태; Diet and Dental Conditions in the Korean’이 논문은 1927년 미국치과의사협회에서 발표되고 노스웨스턴대학 회보에 게재되고, 1930년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 연구소에 속한 각과 연구발표회와 오사카의 일본의과치과학회에서 발표됐다. 이것은 한국인의 구강질병 발생양식을 통찰한 논문이다.
‘한국의 치의학의 발전; The Progress of Dentistry in Korea’ 이 논문은 1934년 경성치과의학회에서 한 특별강연이었다. ‘2세기의 중국 낙랑인의 두골; A Chinese Nak Nang Skull of the AD 2C.’이 논문은 1935년 Journal of Academy of Dental Association에 발표한 것으로 의사학에 관한 학술적인 내용의 것이다.
‘나방과 나비; Caterpillars and Butterflies’ 이 글은 ‘The Korea Mission Field’에 실린 글로서 종교적으로 선교사의 윤리에 관한 것이었다.



플로렌스 슈마허 부츠 / Florence Schumacher Boots (1896~?)


I. 기본사항
1. 이름: Florence Schumacher Boots / 플로렌스 부츠 / 한국명: 부소(夫蘇)
2. 생몰연도: 1896 ~ 1977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21 ~ 1939
5. 연표
1896. 펜실베니아에서 출생.
1916. 미북장로교회 계열 Beaver College와 Geneva College 음악부에서 6년간 수학 후 졸업(음악 디플로마)
1921. 미국 북장로회 소속 선교사이자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에서 치과교수로 재직한 남편 John L. Boots와 함께 내한
1924. 이화여전에서 합창과 오르간 지도.
1925. 이화여전에서 합창 지도
1926. 중앙악우회 관현악단 결성.
1928~1929. 평양외국인학교 음악교원으로 일함.
1936. 전기풍금 처음 수입하여 연주.
1977. 미국에서 사망.

6. 가족사항
남편 : Boots, John L.

I. 선교사 소개: 플로렌스 슈마허 부츠(Florence Schumacher Boots, 1896~1977)

1. 여성 선교사이자 전문 음악가, 교육자인 슈마허 부츠
1884년부터 1940년까지 내한했던 개신교 선교사 가운데 여성은 약 60%를 차지했으며, 교육, 의료, 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맹활약했다. 당시 내한했던 여성 선교사들은 대부분 중산층으로써 19세기 유럽 음악문화의 영향하에 성장했던 사람들이었다. 어린이와 여성 교육이 선교 역사적으로 여성의 일이기도 했던 만큼 우리나라의 음악적 토대 변화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한 그룹이 여성 선교사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장로교단은 1920년대 초부터 음악을 전공한 선교사들이 내한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학교 음악 교육이 체계적으로 전개된 때와 일치한다.
당시 3인의 여성 선교사 루츠(Ernice Lenore H. Lutz, 1886-1979)와 솔토(Grace Blanch Z. Soltau, 1886-?), 부츠(Florence E. S. Boots, 1896-1977)는 1921년 미북장로교 파송으로 내한한 음악전문가로 평양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그 중 우리가 살펴보는 부츠(F.S. Boots)는 펜실베니아 출신으로 미북장로교 선교부 파송으로 1921년에 내한하여 1939년까지 다양한 음악적 행보를 보인 선교사이다. 남편인 존 레슬리(John Leslie Boots)가 세브란스에서 치과의사로 일했던 관계로 경성에 주로 머물며 활약했다.
그녀의 개인 보고서에 의하면, 부츠는 미북장로교회 계열의 대학인 비버대학(Beaver College)과 제네바대학(Geneva College)의 음악부에서 6년간 수학하였고 1916년 졸업하였다. 음악교육 전공이 개설되어 있던 제네바 출신인 만큼 선교사 파송 이전에도 주로 개인교습, 학교 교육에 관여했던 부츠는 한국에서도 주로 학생들을 만나며 음악적 영향력을 확대해 갔다. 특히 바이올린, 피아노, 파이프 오르간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룰 수 있었던 부츠는 관현악단, 반주, 교회 음악 분야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활약했다. 게다가 건반화성, 작곡 이론 실력도 뛰어났다.
부츠는 평양의 외국인 학교, 이화여전 등의 학교 교육 이외에 중앙악우회 등의 연주 단체 활동에도 관여하였고, 다양한 무대에서 교단과 상관없이 가장 활발하게 연주했던 선교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음이 확인된다.

2. 악보의 번역과 보급, “전기풍금”을 한국에 들여온 장본인
그녀의 개인 기록에 의하면, 경성 성가 연합(Seoul Choir Union)의 디렉터로 활약한 부츠는 김형준과 함께 바흐(J.S.Bach), 세자르 프랑크(Cesare Frank), 사무엘 웨슬리(Samuel Wesley)등 교회 음악을 작곡한 클래식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구, 번역, 출판해 왔다고 언급하고 있다.
30년대 후반 교회 음악에 깊이 경도되어 있던 부츠는 교회 음악 컨퍼런스, 다양한 성가대 활동, 번역, 그리고 합창 음악의 출판을 준비하는데 할애하면서 교회의 음악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미진한 것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교회음악 악보 출판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는데, 부츠의 이러한 활약은 그가 보유하고 있던 다양한 자료들이 밑바탕이 되어 가능했다. 자료에 따르면, 이화여전부터 많은 유치원에 이르기까지 오르간과 관련한 교수법과 자료를 구하기 위해 부츠의 도서관(library)를 찾았다고 밝히고 있을 만큼 그가 보유하고 있던 자료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가 번역하고 출판했던 책들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해 어떤 곡들이 어떠한 형태로 출판되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1936년 “전기 풍금”을 처음 수입하여 연주하였는데, 음악회에서 본인이 연주를 하거나 제자들의 독주회에서 반주를 맡는 등 서양음악 보급을 위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전기 풍금은 1935-1936년 안식년으로 1년간 미국에 다녀오면서 전기오르간 두 대를 가져와 한 대는 이화여전에 주고, 다른 한 대는 본인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3. 다양한 무대의 연주활동
부츠는 다양한 무대에서 연주활동을 펼쳐갔다. 그가 출연한 음악회의 성격을 살펴보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녀는 경성을 중심으로 해서 다양한 공연에 참여하였다. 독특한 것은, 교회를 중심으로 한 종교 행사 외에도 중앙유치원이나 아동보건회에서 주최하는 일반 기관 음악회라든지 음악가 개인 단독 음악회에도 다수 출연하였으며, 중앙불교전문학교 음악회 등 타종교 음악 행사에서도 모습을 드러내는 등의 활약상을 보였다. 선교사인데 타종교 음악 행사까지 가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는 음악가로서의 부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츠는 서양음악에 대한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가 말하는 음악은 각 민족의 고유한 음악이라기보다 서양음악에 기초한 클래식 음악으로, 클래식 음악에 대한 다양한 훈련이 감성을 가꾸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원천으로 작용할 것이며 서양의 클래식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과 풍성함은 그 근원이 교회음악이며 따라서 우리가 “초기 교회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서구 음악의 기원과도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서구 클래식 음악의 우월성에 대한 뿌리 깊은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녀의 종교와 교파를 넘나드는 연주활동의 이면에는 이러한 생각이 전제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 “중앙악우회” 창단과 관현악단
선교사 플로렌스 부츠를 말할 때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중앙악우회 활동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전문 관현악단의 시초로 일컬어지는 중앙악우회 조직에 있어 부츠의 역할이 상당했던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중앙악우회는 부츠와 함께 박경호, 이유경(李有慶) 등 민간인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다. 이들은 신문기사를 통해 단체의 첫 사업으로 오케스트라를 조직한다고 밝힌다. 그러므로 중앙악우회는 하나의 큰 모임이고 그 모임활동의 일환으로 가장 먼저 관현악단을 조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부츠는 1935-36년 안식년으로 미국에 가기 이전까지 주로 지휘를 맡은 것으로 보이는데, 『경향신문』은 1974년 4월 17일자에,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 등을 연주한 첫 번째 공연은 사람들을 압도하였으며, 여성 지휘자 부츠의 지휘하는 모습이 단연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녀의 주도로 중앙악우회가 지휘자로서도 손색없었다고 평가되는데 반해, 1920-30년대 신문에서는 부츠가 지휘자로 기록되어 있는 기사를 찾기 어렵다는 점을 보았을 때, 그당시 여성 리더십에 대해 인정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기사 작성에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부츠의 활약과 영향력이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있었을거라 추측한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부츠가 실력 있는 음악인으로서 다수가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는 관현악단을 이끌어갔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5. 유학의 길잡이
플로렌스 부츠는 음악공부를 위해 유학을 준비하는 한국인들의 안내자가 되기도 했다. 음악인의 길에 들어서도록 하는데 중요한 스승의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전문인으로서의 더 높은 도약을 위한 걸음에 디딤돌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안병소의 스토리는 이를 여실히 잘 보여준다. 그가 처음 부츠를 알게 된 것은 흥미롭게도 군악대원으로 활약하였던 백우용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백우용은 바이올린에 재주가 있으나 재정적인 상황이 매우 열악했던 안병소의 사정을 알고 당시 경성 내에서 1920년대부터 실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소문난 부츠부인을 소개한다. 부츠에게 바이올린 교습을 받게 된 안병소는 이후 유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심적, 재정적 지원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일본 유학 당시 부츠의 소개로 알게 된 영(Young) 선교사의 도움으로 클라인과 모기레프스키(Alexander Mogirevsky)의 사사를 받게 된다.
이 외에도 부츠는 국내 일본인과 다수의 한국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유학의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2018-11-21 16: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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