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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Myers, Edith G.(1907- , NP)
 작성자 : 신장호  2018-11-26 17:17:05   조회: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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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어즈 Myers, Edith G. 선교사


1907 출생
1932. 9. 6 미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한국 여선교사. 간호원
한국명 매의덕.
가족사항
논저
참고문헌 <<기백>>5권; HKMP Ⅰ,Ⅱ.


마이어즈는

1) 1932년 9월 6일 내한하여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간호원으로 근무하였다.
에비슨은 한국의 위생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의사와 간호사의 양성이 필수적이라고 여겨서 1899년 제중원 의학교를 개설한다.
간호 교육의 확대 – 세브란스에서는 1906년 9월 쉴즈(E.L.Shields)에 의해 <세브란스 간호부 양성소>가 개설된다. 에스더 쉴즈는 안나 제콥슨에 이어 제중원에서 근무한 두 번째 간호사였다. 제콥슨의 순직으로 단절되었던 간호교육과 간호사업은 세브란스 병원에서 40년을 근무한 쉴즈에 의해 꽃필 수 있었다.

“1923년 1월 노조의 기본은 남성 홀 기념 병원 뿐 아니라 은혜의 확장으로 여성을 위한 병원도 포함되어 감리교 측에 포함 되었다. 여성은 2명 대신 3명으로, “평양 연합 기독교 병원”이 채택되었다. 1921년에 시작된 임무는 새 건물을 세우기 위한 건물 목록을 요청을 했다. 최종적으로 요구된 금액은 3만7천5백 달러였는데, 그중 약 1만 6천 달러가 회수 되었다. 손에든 금액으로, 1931년에 조제식 건물이 세워졌다. 몇 년 동안, 현재 예산을 향해 매 년 1천5백 달러가 피츠버그 장로교로부터 받았다. 1921년에 Miss Effie Swier라는 등록간호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두 번째 간호사가 연합병원에 배정되었고, 1932년 Miss Edith Myers가 등록 간호사로 왔다. 그들은 또한 1934 년 3월에 사임했다. 따라서 노동조합 이 승인 된 후 16년 중 8년 동안 임무는 노동자 할당량을 제공 할 수 있었다. 현재 감리교인은 두 명의 의사와 두 명의 간호사를 공급하고 있다.“


2) 1934~41년 - 평양 연합기독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환자들을 돌보았고
복음 전파에도 주력하였다.

평양연합기독병원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12명의 한국의사와 16명의 한국 간호사와 함께 년 간 21명을 훈련하였고, 2,150명이 입원하였으며, 17,963차례 외래진료를 하였고, 75,000 명을 치료하였으며, 6,000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Miss Edith Myers는 이곳에서 Dr. and Mrs. J. D. Bigger, Dr. and Mrs. R. K. Smith, R. N.과 함께 근무했다.
Miss Edith Myers는1941 일제에 의해 강제 철수되기 전 한국에 남아 있던 22명의 미북장로교 파송 선교사 중의 평양에 남아 있던 선교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해방과 함께 미군정은 선교 활동을 공인하였고, 이에 따라 선교사들은 입국하여 농업, 교육, 의료 활동을 펼쳤다. Miss Edith Myers는 Dr. J. D. Bigger과 Dr. R. K. Smith, Miss Ella Sharrocks와 함께 의료에 힘썼다.

평양 연합 기독병원(1923-1950)
- 평양에는 미감리회 선교부에서 운영하던 홀기념병원(The Hall Memorial Hospital)과 미북 장로회에서 운영하던 평양제중병원(Pyengyang Caroline A. Ladd Hospital), 미감리회 여선교회에서 운영하던 평양부인병원(Pyengyang Women’s Hospital of Extended Grace)이 있었다.
홀기념병원은 평양에서 활동을 하다가 과로와 전염병으로 1894년 11월에 사망한 미감리회 의료선교사 홀(W. J. Hall)을 기념하여 1897년 2월에 세운 병원으로 포웰(Douglas Fowell)이 초대 원장을 맡았다.
평양제중병원은 1895년 10월 미북장로회 의료선교사 웰즈(J. H. Wells)가 평양에 정착하면서 운영한 시약소에서 발전한 병원으로, 1906년 10월 병원 건물을 신축하고, 1915년 웰즈가 선교사를 사임하고 귀국하기까지 원장을 맡았다.
평양부인병원은 홀(W. J. Hall)의 부인인 로제타 홀(R. S. Hall)이 한국인 최초의 여의사인 박에스더와 함께 홀기념병원 안에 광혜여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설하였다가 1903년 독립 건물을 지어 분립한 병원이다. 1910년 4월 박에스더가 사망하자 1912년 여의사 커틀러(M. Cutler)가 부임하였다.
1915년 웰즈의 사임 귀국을 계기로 북장로회 선교부에서 미감리회 선교부에 평양 병원 연합을 제안하여 연합하기로 합의하였고, 북장로회측에서 의사 비거(J. D. Bigger)와 간호원 라이너(E. M. Reiner), 미감리회 측에서 홀기념병원 원장 앤더슨(A. G. Anderson)과 간호원 앤더슨(N. Anderson)이 합동의 실무를 수행하여 1920년 병원명칭을 홀기념연합병원(Hall Memorial )으로 하였다. 1923년 1월 커틀러가 원장이던 평양부인병원도 여기에 연합하여 평양연합기독병원(Pyengyang Union Christian Hospital)으로 개칭하고 초대 원장으로는 앤더슨(A. G. Anderson)이 취임하였다. 이 병원에서 활동한 한국인 의사로는 김애희(金愛嬉, 여의사), 유기원(劉基元), 장기려(張起呂) 등이 있었고, 1936년 당시 병원 상황은 의사 19명, 간호원 25명, 직원 120명, 진료환자 수는 82,473명이었다.
1940년 11월 미감리회 선교사들의 철수로 원장 앤더슨이 귀국하고, 1941년 1월 31일 병원 이사회에서 세브란스병원의 김명선(金明善)을 원장으로 선임했다. 김명선은 1945년 해방 때까지 세브란스의전에서 강의를 하면서 원장을 겸임했다.


1939~45  제2차 세계대전 
1941     제2차세계대전시 1천 1백만 미국인들의 선교의식 각성


선교사 철수(1940) : 일제 말기 선교사들은 일제에 의해 갖가지 형태로 선교에 방해를 받았고 마침내 미.일간의 사태 악화로 1940년 10월 미국공사 마쉬는 선교사들의 귀국을 명하게 되었다. 사진은 1940년 말 떠나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들이다.




3)1946년부터는 세브란스병원으로 복귀하였고 미군정청 보건담당 고문으로도 활약하였다.

1942년 일제에 의해 세브란스병원은 강제적으로 아사히의학 전문학교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1945년 8월 해방이 되자 세브란스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고 1947년에는 6년제 의과대학으로 개편되었다.

하지만 곧 닥쳐온 한국전쟁으로 인해 병원 및 간호학교 본부 등은 피난을 가야했고, 거제도나 원주, 청도에 구호병원을 개설하였습니다.

미군정청은 남한 점령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이르기까지 점령지 남한의 급격한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현상유지 정책에 입각해 안정을 추구했다. 미군정청은 미국 대한정책의 대리인으로서 점령정책의 현지 집행자 역할에 충실했으며 북한을 지원하고 있는 소련에 대응하는 활동에 역점을 둔 해방공간에 있어서 과도기적 산물이었다.



4)1954년 사직하고 귀국하였다.


평가

내한 선교사들의 수고와 노력에 감사한다. 국제적인 문제와 정치적인 문제가 맞물려 가는 선교사역이기에 원치 않는 길을 가야 할 때도 있었겠지만, 끝까지 부르심에 충실한 내한 선교사들의 수고로 오늘의 한국교회가 건재하고 한국의 발전을 가져왔음에 감사한다.
Miss Edith G. Myers는 20대 중반 꽃다운 나이에 선교사로 헌신하여 한국에 들어와서, 젊음을 불태워 한국의료선교에 생애를 바쳤다. 그가 평양연합기독병원에 근무했을 때 그 병원의 연간 활동내용을 보면 얼마나 수고 했을지 잘 알 수 있다. 이름 없이 빛 없이 지나갔을 선교사님의 발자취를 찾아보며 감명을 받았다. Miss Edith G. Myers 선교사님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들어왔는지 큰 줄기를 따라가다 본 곁가지들을 보며 알게 되었다. 잘 알려진 몇몇 선교사님의 이름정도나 알고 지내고 있던 내 모습이 부끄럽다. 그처럼 고귀한 삶을 우리의 조국을 위해 살아가셨는데..., 사실 선교사 연구에 대한 과제가 생소한 분의 이름을 받아 답답한 마음과 왜 이렇게 까지 알아야 할까라는 투정도 좀 있었다. 하지만 열정적으로 지도하시고, 평생을 교회사를 위해 드린 교수님의 신실함을 따라 가면 분명 헛된 일은 아니리라 생각하며 준비했다.
자료가 너무 없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생소한 분을 이만큼 알아갈 수 있어서 좋았다.
더 이상의 자료가 없어서 인터넷으로 찾던 중, 동명이며 탄생일도 같아서 그 분의 묘지를 사진으로 올려 보았는데 맞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왜냐면 그 분이 소천하기 전에 그분의 자료에 대해 조사한 것이 기독교백과사전에 나와 있기 때문에 돌아가신 연대를 맞추어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자료인 것 같아 사진을 하나 더 실었는데, Miss Edith Myers의 얼굴을 몰라 그 사진에 그분이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1941년 마지막 철수하기 전 남아 있던 22명의 미북장로교 선교사 중 한 사람이었기에 22명의 선교사님들이 있는 사진에 혹 같이 있지 않을까 해서 넣었다.
역사적 평가에 따르면 ‘미군정은 1947년 5월 과도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한국인을 통치의 전면에 내세우는 일종의 간접통치를 실시하게 된다. 과도정부 수립은 남한만의 자치정부 수립을 위한 준비가 일단락되었음을 의미했으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여전히 미군정 예하의 한인 행정조직에 불과했고, 최종적 권한의 이관된 것은 아니었다. 미군사령부 및 군정장관, 그리고 각 부서에 배치된 미국인 고문들이 중요 인사 임명, 법령 포고,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권한과 최종 결재권을 행사하였다. 특히 미군정기 내내 주한미군사령관과 군정장관이 최고 실권을 행사했다.’고 한다. Miss Edith G. Myers가 해방 후 미군정정의 보건담당 고문으로 일을 했던 경력이 있는데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임무를 감당하였기를 바란다. 이렇게 소망을 쓴 것은 미군정정의 보건담당 고문 때의 자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8-11-26 17: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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