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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Edgar, Elsie T.(1905-1985, AP)
 작성자 : 조기숙  2018-11-28 11:54:29   조회: 1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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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기본사항 김승태, 박혜진, 『내한 선교사 총람(수정증보판)』 (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6), 240.


1. 이름: Edgar, Elsie T. / 에드가 / 한국명 : 엽뎍애(葉德愛), 엽득아(葉得兒)
2. 생몰연도: 1905. 9.1-1985.10.10
3. 출신 및 소속: 호주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31-1941
5. 연표
1905.9.01. 중국에서 출생
1929. 호주내지선교회(AIM)에 의해 이너미니커(Innaminka)에 있는 병원으로 배치.
1930. 10.03. 멜번에 도착한 즉시 디커니스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음.
1931. 8.01. 장로교소녀회(the Perbyterian Girl’s Fellowship)의 선교사로 내한.
1931. 9.07. 한국에 도착
1931. 경남 통영선교부에서 활동.
1933. 경남 통영선교부에서 나옴.
1934. 진주 선교부 소속 진주 배돈병원에서 부임하여 진료사업, 간호원 양성에 종사
1941. 일본에 의한 선교사 추방령에 의해 은퇴 후 애들레이로 가서 간호활동.
1947. 포트빌라에 있는 패튼 기념병원에서 활동.
1972. 뉴히브리디스에서 활동.
1985.10.10. 향년 80세로 현지에서 사망.

II. 선교사 소개: 에드가(Edgar, Elsie Trudinger, 1905-1985)

1. 해외선교에 열정을 가진 모라비안 혈통의 의료 선교사.
에드가(Edgar, Elsie Trudinger, 1905-1985)는 간호사로 의료선교를 했다. 본국에서 간호사 자격을 취득한 뒤 1931년 한국 선교사로 내한하였다. 경남 통영선교부에서 활동하였으며(1931-33), 1934년 진주선교부 소속 진주 배돈병원에서 네피어의 후임으로 부임하였다. 1941년까지 진료사업 및 간호사양성에 종사하였다. 1941년 한국선교에서 은퇴하여 본국으로 돌아가 뉴히브리디스에서 활동하였다. 기독교문사, 『기독교백과대사전 11권』 (서울: 고려서적주식회사, 1984), 166.
그녀는 한국선교에 직간접적인 공헌을 했던 소수 독일배경을 가진 이주 호주민이다. 그녀에게는 존경할 만 한 두 선교사의 이름을 지니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 에드가는 중국 내지선교회의 유명한 선교사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해외선교로 유명한 트루딩거의 딸이었다. 엘시의 외조부는 8명의 자녀들을 모두 선교사로 길러낸 전설적인 모라비안 가족이었다. 엘시가 한국 선교사로 지원하게 된 배경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이 직접적이었겠지만 특히, 그녀의 삼촌인 마틴 트루딩거 목사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 마틴 트루딩거 목사는 엘시의 삼촌이다. 그는 종교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모라비안 가족으로 영국의 요크셔에서 태어났고, 그가 한 살 반 때에 애들레이드로 이주했다. 그의 누나, 안나 트루딩거는 1897년에 SVM에 자원했고 중구내지선교회 선교사가 되었다. 마틴은 웨이 칼리지와 애들레이드대학에서 교육을 받았고, 1912년에 졸업했다. 1013년 그는 의사인 그의 형 롤런드 트루딩거와 함께 수단연합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수단으로 갔다. 그는 화이트 나일의 지역의 선교지 총무로 임명되었고, 흑수병에 걸려 호주로 귀국할 때까지 5년 동안 그 지역을 섬겼다. 귀향길에 그는 호주군대에 자원입대했으나 곧 정전이 되었다. 그는 멜버른에 돌아와 오몬드 칼리지에서 공부했고, 1919년 말, 다시 수단으로 갔지만 두 번째 흑수병에 걸려 1920년 8월에 멜버른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는 신학공부를 마치고 1920년 12월에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1921년 1월에 베라 포스트와 결혼했고, 1년 동안 오이연 교회에서 목회를 했다. 그의 모라비안 혈통은 해외선교 열정에 다시 불을 붙였다. 그는 뉴히브리디스에 선교사를 자원했지만 그곳의 열대성 기후가 그의 건강에 적합하지 낳았다. 또한 해외선교위원회는 더 이상의 목사 선교사를 한국에 파송할 자금이 없었다. 마틴 트루딩거는 다시 선교사로 가기 위해 자신의 형이 소속되어 있는 미국장로교선교회와 접촉을 시도했다. 이때 한국을 섬기다 병에 걸려 멜버른에 돌아온 라이얼 목사가 사망했고, 트루딩거는 그 공석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1921년 11월 선교사로 임명을 받았다. 그의 선교 동기는 모라비안 가족의 영향력과 그의 선교적 경험에 근거하며 조카인 엘시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2. 호주 이민의 배경.
독일인의 첫 호주 정착은 1838년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종교박해로 인해 일어났다. 루터의 종교개혁 300주년이 되는 1817년에 그는 루터교와 개혁교회 사이의 연합을 선포하고, 종교적 통합을 통해 왕국을 강화시킬 목적으로 연합교회를 위한 예배식서를 모든 개신교인들에게 강요했다. 전통 루터교인들은 새로운 예배형식을 따르기를 거부했고 “반역자들과 반란자들”로 취급을 받았다. 아우구스트 루드비히 크리스천 카블(August Ludwing Christian Kavel) 목사의 지도아래 250명의 루터교인들은 1838년 7월 3일, 프리즈 조지(the Prince George)호를 타고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를 향해 출발했다. 비록 1840년에 윌리엄 3세가 죽고 박해는 끝났지만 독일인의 이민은 계속 이어졌다. 1900년까지 18,000의 독일인이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했고, 박해기간에 이주한 사람들은 500명에 불과했다.

3. 애들레이드 병원에서 간호사로 훈련받음.
엘시가 한국선교를 위해 자원했을 때, 그녀의 부친은 티베트 국경지대에서 어렵고 위험한 선교사역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녀는 중국에서 태어나고 교육을 받았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로 온 이후에 그녀는 애들레이드 병원에 들어갔고 간호사로 훈련받았다. 그녀는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이너미니커(Innamineka)에 있는 호주 내지선교회 진료소의 부름을 받았다. 그 당시 여선교연합회는 한국에 보낼 간호선교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한국에 있는 선교사 중 하나가 엘시를 추천하는 편지를 보냈고, 여선교연합회의 지도자들은 그녀에게 편기르 ㄹ보냈다. 엘시는 “해외선교가 자신의 소망이었고 기쁘게 한국을 위해 자원한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녀는 기터니스 훈련소에서 필요한 훈련을 받았고 아동복지와 육아법에 대한 자격증을 받았다. 1931년 8월 1일, 그녀는 한국을 향해 항해했다. 엘시는 장로교소녀회(the Perbyterian Girl’s Fellowship)의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그녀의 선교 동기는 모라비안 가족의 영향 그리고 여선교연합회의 권유였다. 정병준, 『호주장로교선교사들의 신학사상과 한국선교 1889~1942』 (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7), 175-76.


4. 생애
엘시 에드거는 중국선교사인 부모를 두었고 중국에서 태어나 거기서 자랐고, 지푸(Chefoo)의 중국내지선교회(CIM) 학교를 다녔다. 애들레이드에서 간호 훈련을 받은 후에 그녀는 멜번의 디커니스 훈련소에서 1년 동안 훈련을 받았다. 1929년에 그녀는 호주내지선교회(AIM)에 의해 이너미니커(Innaminka)에 있는 병원으로 배치를 받았다. 그때는 가뭄시기였다. 동물들에게도 음식이 없었고 오직 브래키쉬 우물에만 물이 있었다. 장티푸스가 창궐하여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병실, 복도, 베란다들이 환자로 가득 찼다. 한 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보조로 보강되었다. 1930년초 PWMU는 그녀가 한국에 갈 의향이 있는지를 타진했다. 그녀는 긍정적으로 대답했으나 1931년 그녀가 호주내지선교회의 의무를 다할 때까지는 갈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1930년 10월 3일에 멜번에 도착했고 즉시 디커니스훈련소로 보내는 조치가 취해졌다. 에드거는 1931년 8월 1일에 한국으로 출발했다. 부모의 길을 따르기를 원했던 다른 선교사 자녀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중국에 가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으로 가라는 강력한 요청을 받았을 때 그녀는 그것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1931년 9월 7일에 한국에 도착하였다. 그 후 10년 동안 엘시 에드거가 선교회와 한국을 위해 수고한 공헌은 진주의 배돈 병원의 수간호사로서 간호사역을 한 것뿐만 아니라 병원행정을 발전시키고, 간호사들과 남성 잡역부들을 훈련시킨 것도 포함된다. 또한 그녀는 유아복지 프로그램도 책임을 지고 있었다. 엘시 에드거는 따뜻하고, 유능하고, 근면하면서 일을 손쉽게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사역과 삶은 왜 이렇게 멀고 불편한 곳까지 와서 우리를 위해 이런 일을 하느냐? 하는 한국인들의 질문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는 1941년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한국을 떠날 때 애들레이드로 돌아왔다. 그녀는 1947년 포트빌라에 있는 패튼 기념병원으로 가라는 요청을 받을 때까지 애들레이드에서 간호활동을 했다. 그녀는 1972년까지 뉴히브리디스에서 일했다. 그녀는 간호사들을 훈련시키는데 큰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은퇴할 즈음에는 선교위원회의 요청을 받아 두 개의 원주민 선교회 안에서 단기간으로 섬기고 있었다.
엘시 에드거는 근면하고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일꾼이었다. 그녀의 삶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사람들을 섬기는데 헌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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