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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Lambuth, Walter Russel(1854-1921, MS)
 작성자 : kyc7039  2018-11-29 17:42:45   조회: 1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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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 사항
1. 이름 : Lambuth, Walter Russel / 램버드 / 한국명: 미상
2. 생몰연도 : 1854. 11.10-1921.9.26.
3. 출신 및 소속 : 미국, 감리교
4. 한국선교기간 : 1899-1920
5. 연표
1854년 11월 10일 중국 상해 출생
1875년 에모리대학 문학과 졸업,
밴터빌트대학교에서 신학, 의학, 전공, 의학박사, 학위 취득
1878년 (아내 데이지 켈리와 함께) 중국 파송, 8년간 소주, 북경에서 의료선교활동
1886년 (부모와 함께) 일본 고베에서 남감리회 일본선교 개시
일본에서 간사이 대학교, 영어학원, 여학교 등 설립
1890년 미국에서 남감리회 선교부 부총무로 재직
1891년 2월 26일부터 4일간 미국 클리블랜드 YMCA 회관에서
“제 1회 해외선교 세계학생자원운동(SVM)대회”에 언더우드와 함께 연사로 참석
1896년 남감리회 선교부 총회 총무로 피택되어 14년간 근속
1899년 한국 첫 방문, 이후 매년 연회에 참석하여 선교활동
1910년 5월 남감리회 선교부 감독으로 피선
1911년 아프리카 콩고국 선교활동
1917년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군목으로 프랑스에서 9개월 동안 종군
1919년 극동지역 선교 총괄하며 한국의 3.1운동 때 옥중에 있는 교역자, 교인의
석방 위해 노력
1920년 서울에 태화여자관 건립하여 여성의 계몽교육
1921년 9월 26일 일본 요코하마병원에서 수술 후 소천, 중국 상해에 안장
소천 직전 한국 은퇴 교역자의 은급기금으로 500달러 화사

6, 가족사항
부모 : James William Lambuth(부), Mary Isabella McClellan(모)
아내 : Daisy Kelly

Ⅱ. 선교사 소개: 램버드(Lambuth, Walter Russel, 1854-1921)

1. 복음을 품고 태어난 동양 의료 선교사, 램버드

미국 남감리회 감독, 동양 선교사, 의사인 램버드는 1854년 11월 10일 중국 상해에서 미 남감리회 중국선교사 제임스 램버드(James W.Lambuth) 목사의 아들로 출생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1875년 에모리 대학 문학과를 졸업하고 벤더빌트 대학교에서 신학과 의학을 전공,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남감리회 테네시연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1878년 미국에서 결혼한 후 중국으로 가서 이후 8년간 소주와 북경에서 병원을 설립하고 의료선교 활동에 종사하며 선교사역에 힘썼다. 또한 의사였던 램버드는 한국의 세브란스병원 건립을 타진해 보기 위해 세브란스가 한국에 갈 때 동행하기도 하는 등 한국에 대한 애정을 키워갔다고 전해진다.

2. 선교의 시작, 언더우드와 같이 ‘교육 선교’에 힘쓴 램버드

가장 처음 램버드는 1886년 부모와 함께 일본 고베로 가서 남감리회의 일본 선교를 시작했다. 선교사 자녀로서 성장한 램버드는 1886년에 남감리교회(MECS) 일본 선교부의 총리로서 고베에 건너와 일본 최초의 남감리교회를 개척하고 명문 기독 학교인 간세이가쿠인대학을 설립하였다. 이처럼 그는 언더우드와 비슷하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턱없이 부족한 자금난 속에서 모두들 램버드의 교육 계획을 비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램버드는 홍콩상하이은행(HSBC) 고베지점으로부터 무담보 융자를 받아 내는 은혜를 경험하면서 기적을 체험했다. 아울러 신뢰와 더불어 가슴을 울리는 그의 명연설은 미국의 은행가 토마스 브랜치(Thomas Branch)등의 마음을 움직여 거액의 헌금을 쾌척하도록 이끌었다. 램버드는 자신을 비난하던 사람들을 향해 “기도가 건설적인 힘을 내기 위해서는 명확한 목표를 가진 대담한 기도여야만 한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또한 램버드는 1891년 10월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개최된 미국 신학교 연맹 연차대회에서 윤치호와 언더우드와 인연을 돈독하게 맺게 되었고, 언더우드의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를 설립하였을 때, 남감리교회가 연희전문의 교파연합 정신에 찬동하여 이사를 파견하는 등 연희전문학교의 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협력을 이어가며 교파를 초월하여 ‘교육 선교’에 힘썼다.

3. 한국과 더불어 세계 선교 활동의 큰 영향을 끼친 램버드

램버드는 1890년 미국으로 돌아가 남감리회 선교부 부총무로 재직하였고, 1896년 총회 총무로 피택되어 이후 14년 동안 근속하였다. 이후 그는 1899년에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하여 한국과의 인연을 맺었고 그 후 거의 매년 한국을 방문하여 연회에 참석하고 진행을 돕는 등 한국에서의 선교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1910년 5월 램버드는 미남감리회 총회에서 감독으로 피선되어, 다음 해인 1911년에 아프리카 식인종의 전도를 목적으로 흑인 목사 길버트와 동행하여 아프리카 밀림 속으로 3천여 리를 도보로 들어가 식인종이 사는 콩고국에 선교처를 정한 후 귀국하여 6-7명의 선교사들과 같이 재차 들어가 별세할 때까지 선교관리자로 한국과 더불어 세계 선교의 큰 영향을 끼쳤다.
한편 램버드는 언더우드와 함께 한국선교 개시 직후부터 동아시아의 선교 활성화를 위해 함께 교류하고 노력한 사이로 잘 알려져 있다. 램버드가 남감리회 선교부 부총무로 취임해 미국에 돌아온 때인 1891년 2월 26일부터 4일간은 미국 클리블랜드 YMCA 회관에서 “제 1회 해외선교 세계학생자원운동(SVM)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이 때 언더우드와 더불어 램버드도 연사로 참가해 558명의 대회 참가학생들에게 선교의 열정을 불어넣었데 큰 역할을 감당했다.

또한 1917년 제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미군의 군목으로 입대하여 9개월간 프랑스 전선에서 종군하였고, 1919년부터 남감리회 한국, 만주, 시베리아 등 극동지역 선교사역을 총괄하였고 특히 한국의 민족적 대운동인 3.1운동에서 많은 한국교회의 교역자와 교인들이 옥중에 감금되는 등 수난을 겪게 되자 직접 그들 곁으로 찾아가 격려하고 위로하며 여러 방법 동원하여 그들의 석방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1920년에는 한국 여성들의 계몽 사업을 위하여 감리회의 여성 선교사 매미 마이어스(Mamie D. Myers)를 도와 서울에 태화 여자관(현 태화복지재단)을 설립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시베리아와 만주에 이주하여 고생하는 한국인들에게 선교를 목적으로 만주 시베리아 선교처를 개설하였으며, 중국서북지역에 기아자 구제를 위해 미국에서 100만 달러를 모금하기도 했다.
그 후 시베리아 선교 사역을 대대적으로 확장하기 위하여 극동지역 선교의 필요성을 글로 저술하여 인쇄에 붙였으나 신병으로 입원하여 한국연회도 인도하지 못하게 되자 그 부인의 명의로 한국교회 은퇴교역자를 위하여 기금 500달러를 기부하기도 하였다. 신병을 얻은 이후에도 램버드는 선교 사역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만주와 시베리아를 시찰하며 선교처를 관리하였으며, 그곳의 사업을 소개하는 논문을 집필하여 미국 내 교회기관지에 게재하였다. 이에 답지되는 헌금을 통해 기념예배당을 설립하였다. 이처럼 램버드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를 순방하며 선교 사역을 이어갔다. 그러나 램버드는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일본에 있는 요코하마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1921년 9월 26일 별세했고, 중국 상해에 안장하였다. 램버드는 생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한국 교회에게 로마서 8장 26절을 항상 보며 전도에 힘쓸 것을 강조했다. 더불어 “저는 계속 여러분들을 지켜볼 것입니다!”라는 유언을 통해 한국의 복음화가 속히 이루어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후 램버드의 후임으로 남감리회 해외선교부 총무를 맡았던 핀슨(W. W. Pinson) 목사는 램버드를 “나의 선임이었던 램버드는 예언자이자 개척자였다”고 램버드의 평전에서 말하며, 램버드의 평전을 직접 썼을 만큼 램버드의 정신과 삶을 계승한 그의 제자였다.

또한 램버드는 자신의 기고에서 한국의 복음전도를 위한 미국의 성도들에게 중요한 의무를 다섯 가지 말하는데, 첫째, 그는 죄로부터 구원의 복음을 끊임없이 널리 전파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곧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젊은 남녀 청년들은 평생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요구를 전파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청년들을 교육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그들에게 도전을 주는 사람이었다. 셋째, 설교와 가르침에서 효율적인 복음 전도의 일을 진행하기 위해 긴급한 호소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넷째, 모든 교회는 복음 전도에 있어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위해 기도하도록 부름을 받았다고 말한다. 다섯째, 한국에 있는 모든 남자와 여자와 어린 아이가 듣기에 충분한 기회를 가질 때까지 복음 전도를 멈추지 말아야 하며, 그를 위해 캠페인을 구성하고, 예수님은 완전히 끝까지 그들을 구할 수 있고 구원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기고에서 끝으로 한국은 복음 전도를 위해 이미 추수밭이 익었으며 이는 곧 우리가 받은 예언이기에 복음 전도를 강력하게 호소한다. 그는 성령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한국으로 갈 길을 열어주셨다고 말하며,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잘 수행한다면 앞으로 10년 이내에 한국은 복음화될 수 있다고 말하며 기고를 마쳤다.

이처럼 램버드는 남감리회 소속 감독이자 선교사이자 의사로서 한국과 더불어 세계 선교에 큰 영향력을 미쳤으며, 그는 한국의 고난의 역사인 일제강점기의 시대에서도 함께 했던 한국선교 근대사에 중요한 인물이다. 물론 한국에서만 선교 사역을 이어간 한국 전담 선교사는 아니었지만, 그의 기고와 행적을 살펴볼 때 그는 분명 한국을 사랑하고, 또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의료와 교육 사역에 힘썼고 또 한국교회사에 큰 영향력을 끼친 하나님의 선교사임은 확실하다.
2018-11-29 17: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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