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6.23 화 09:15
 
 내한선교사 / McKenzie, Ranier Janet(1889-1969, NP)
 작성자 : 강신욱  2018-12-03 18:31:48   조회: 1106   
 첨부 : 기말보고서_3-5_036_강신욱_강지현.pdf (8783485 Byte) 
Ranier J. Mckenzie (1889-1969)

I. 기본사항
1. 이름: Ranier Janet McKenzie / 매켄지 / 한국명: 매건시(梅建時)
2. 생몰년도: 1889.07.22. - 1969.10.09.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20.11.6. - 1951
5. 연표
1889.07.22.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출생
1920.11.06.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경북 안동지방을 중심으로 선교활동
주로 부녀자를 상대로 순회전도, 성경 강습 실시
1941 건강상의 이유로 “SS Mariposa”를 통해 귀국
일제 말기 강제 귀국
해방 후 재내한 하여 활동
1951 은퇴하고 귀국
1969.10.09. 미국 켈리포니아주 두아르테에서 사망
6. 가족사항
아버지: Donald A. “Don” McKenzie (1858-1919)
어머니: Luella Louise "Ella" Lewis McKenzie (1864-1939)
언니: Martha Rose McKenzie Gaston
언니의 남편: Harrison G. Gaston
언니의 딸: Margraet Rosemary Gaston
언니의 딸의 딸: Francella Criswell Ferguson


Ⅱ. 선교사 소개: 매켄지(McKenzie, Ranier J. 1889-1969)

1. 매켄지의 가족과 후손

매켄지는 미국 북장로교에서 한국으로 파송 받은 여자 선교사이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의 이름을 그녀가 태어난 워싱턴 주에서 가장 큰 산이자 미국의 북서부 태평양 해안에 수놓아 있는 Cascade Range에서 가장 큰 산인 Mount Rainier에서 따왔다. 그녀의 부모님은 이 이름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으며, 그녀가 워싱턴 주에 있는 시애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짓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훗날 아버지 Donald A. “Don” McKenzie와 어머니 Luella Louise "Ella" Lewis McKenzie는 이혼을 하였는데, 아버지는 재혼을 했지만, 어머니는 재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아버지는 훌륭한 사업가이자 시의회 의원에도 당선이 되었었는데, 시애틀 연안과 알라스카에서 사업을 하며 상당한 부를 축적했고, 사망 당시에도 알라스카 금광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훗날 매켄지는 그녀의 노년에 눈을 멀게 되는데 다행이 이러한 아버지의 재산이 그녀의 노후에 큰 힘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매켄지의 언니 Martha Rose McKenzie Gaston은 Harrison G. Gaston과 결혼을 하였으며, Margaret Rosemary Gaston이라는 딸을 낳았다. 매켄지는 자신의 조카딸 Margaret을 매우 사랑하였다고 한다. Margaret이 세 살이 되던 해 그녀의 부모님은 남자 아이 한 명을 자신들의 아들로 입양했다. Margaret은 자라 이후 결혼을 하여 딸을 낳았지만, 딸이 여섯 살이 되던 해에 남편과 이혼을 하였다. 그녀의 딸이 바로 다수의 자료를 제공해준 Francella Criswell Ferguson이다.
존재하는 자료와 후손들을 통해 추적해본 결과 매켄지의 가족과 후손들은 연속되는 이혼과 입양 등으로 추적 자체가 매우 어려우며, 매켄지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슬하에 어떠한 자녀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가정사를 살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추측 할 수 있는 것은 그녀는 매우 혼란스러운 가정 속에서 자랐으며, 이러한 현실은 그녀의 후손들에게도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그녀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선교사로서 그녀의 삶을 하나님과 이웃에게 헌신하며 살았다.

2. 매켄지의 해외 선교 활동

해를 측정할 수 없지만, 매켄지는 그녀의 삶을 해외 파송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처음 그녀는 일본과 중국, 그리고 홍콩을 두루 다니며 선교 활동을 하였다. 그녀의 해외 선교 활동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참고자료를 보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내한 전 허드슨 테일러가 설립한 CIM(China Inland Mission)의 맴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매켄지의 내한 선교 활동

3.1. 안동 지방의 부녀자 대상 성경 공부
1920년 11월 6일 매켄지는 내한하여 경북 안동 지방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에 참여했다. 그녀의 한국명은 매건시(梅建時)였다. 주로 부녀자를 상대로 한 전도활동과 성경 강습을 실시했는데 어떤 해에는 매주 14개 지역을 순회하기도 하였다. 일제말기 강제추방 되어 본국에 귀환했으며 8.15 해방 후 다시 한국에 와 활동하다가 1951년 은퇴하고 귀국하였다.
그녀의 주 사역지는 경상북도 안동이었다. 남아 있는 기록을 살펴보면 1935-1937년 안동에서는 선교사들의 잦은 이동으로 주춤했던 안동 교회를 다시 세우기 위한 선교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 기간 두드러지게 일어났던 사역은 바로 교실이나 비슷한 기관, 시설 등에 모여 성경을 읽는 것이었다. 매켄지 여사는 특별히 여성들을 위해 14개의 1주일 코스를 만들어 그녀들을 지도하였다. 이러한 여성 교실은 매년 그 숫자가 증가하여 1938년에는 총 800명이 등록을 하였다. 그 중 대략 300명의 여성은 50세가 넘은 여성들이었다. 한 해에는 일곱 명의 여인들이 80km가 넘는 길을 통학하며 수업을 들었다.

3.2. 안동지방의 Market Evangelism
부녀자 대상으로 한 성경 공부 뿐만 아니라, 그녀의 행적은 Korea Mission Field 1939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당시 안동 지역에서는 “미스터 안동”이라고 불리는 John Y. Crothers 목사님이 “Market Evangelism”이라는 사역을 하고 있었다. 포드사의 왜건을 개조하여 시장들을 다니며 전도를 하는 이 방식은 당시 국가의 특별한 허가 없이는 야외 전도활동이나 집회가 전혀 불가능했던 안동 지역에서 매우 획기적이었고 유용한 사역이었다. 전도용 왜건에 성경과 찬송을 비롯한 수 백 만장의 쪽 복음, 전도 전단지 등과 같은 기독교 문서들을 싣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장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글과 말로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기억해야, 기억되어야 할 것은, 이 땅에 세워진 초기 한국교회는 성경을 근간으로 세워졌으며, 그 기반은 바로 ‘시장 전도(Market Preaching)’이다.”

이 사역의 책임자인 Crothers 목사님은 초기 한국 개척자인 Dr. Adams의 말을 기억하였는데, 그는 “Work the markets, Crothers, Work the markets.”라는 말을 남기며 이 선교사업의 중요성을 언급하였다고 한다.
여러 차례의 어려움도 존재했지만, 이 사역은 엄청난 부흥을 맛보고 있었다. 마켓 선교의 현장에 있었던 선교사님들의 증언에 따르면 복음전파의 수요에 비해 그들의 믿음이 너무 없었다고 한다. 전도를 출발하며 준비했던 성경을 포함한 여러 책자들은 늘 그들의 여정이 끝나기도 전에 모두 소진이 되었으며, 항상 준비한 양이 부족하였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 매켄지 여사가 존재한다. 안동에서 이 사역에 자주 동참하던 그녀는, 1939년 어느 날, 선교사들이 준비한 1,700부 중 혼자서 340부를 팔고 “the Best Saleswoman”이 되었다. 이 열기는 계속 이어서 당시 겨울과 봄에만 자료들이 총 11,589부가 나갔고, 95권의 성경, 300권의 다른 책들과 75권의 Pulpit Bible이 팔렸다. 그들은 항상 준비된 자료가 부족하여 사역을 계속 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현장 선교사님들의 “믿음이 없었다.”는 고백의 배경이다.

4. 본국으로 귀국 후의 삶
모든 선교활동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노년에 눈과 관련된 질병을 겪으며 점차 시력을 잃어갔다. 이후 그녀는 완전히 장님이 되어 남은여생을 보냈는데, Francella Criswell Ferguson의 증언에 의하면 그녀는 아마도 녹내장을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1969년 10월 9일 미국 켈리포니아주 로스 엔젤레스 카운티의 두아르테시에서 사망하여 “Live Oak Memorial Park”에 묻힐 때까지 부르심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던 매우 훌륭한 여성이었다.

Ⅲ. 느낀점

2018년 3학년 2학기 졸업을 앞두고 설레이며 시작한 마지막 학기, 한국교회사를 통해 “선교사 조사” 과제를 받고 처음에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필자는 2016년 두 학기에 걸쳐 이영식 교수님을 통해 “한국 장로교회와 민족운동”와 “인물로 본 한국교회사” 수업을 이수했다. 위 수업들을 통해서 한국 초기 선교, 특별히 장로교 선교사님들에 대하여 연구하고 배우면서 많은 것들을 느끼고 또 자극을 받았다. 신학대학원 1학년에게 아주 적합한 수업이었다. 그래서인지 “선교사 조사 과제”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할당된 “Ranier J. McKenzie”라는 이름 앞에서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는 미북장로교 선교사임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녀에 대하여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 그녀에 관하여 조사를 시작했지만 그녀에 관하여 아무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박용규 교수님의 연구소에 들러서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연구소 서재에 커다랗게 쌓여있는 책들 중 그녀의 이름이 언급된 것은 고작 3-4 페이지, 그것도 한 두줄의 언급이 존재할 뿐이었다. 난감했다. 인터넷을 사용하여 미국 주립 대학교 도서관의 Data Base와 연관 사이트들을 두루 다니며 찾아보았지만, 그녀의 관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동명의 “McKenzie”와 비슷한 이름의 “MacKenzie”, “Rainier” 등이 계속 연관 검색어로 떠오를 뿐이었다. 그렇게 절망하는 가운데 이영식 교수님께 자료를 요청해 보았지만, 교수님께서도 마땅한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는 도무지 보고서를 작성할 수 없었다. 많은 동료 전도사님들이 자료를 찾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지만, 비교해본 결과 매켄지 여사만큼은 아니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그녀는 어떠한 후손 이야기도 찾아 볼 수 없었고 (어떤 선교사님은 가족들이 그/그녀를 기념하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도 운영하고 있었다), 한국 선교사 열람에도 기본적인 정보조차 적혀있지 않았다.

그렇게 실망하며 선교사 교체를 고려하던 순간, 미국 구글 사이트를 통해 그녀를 마지막으로 검색하던 중이었다. 정말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고인을 기리는 미국의 한 사이트에서 매켄지 여사와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Francella Criswell Ferguson라는 이름의 여인이 매켄지 여사에 관하여 짧게 남긴 글을 보게 되었다. 그 글에는 그녀에 관한 어떠한 설명도 소개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느낌이라고 할까? 직관이라고 할까? 아니면 영감이라고 할까? 필자는 호기심에 그 사이트에 가입하여 그녀에게 그녀와 매켄지 여사의 관계에 대하여 묻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답장에는 그녀가 바로 매켄지 여사의 언니 Martha Rose McKenzie Gaston와 남편 Harrison G. Gaston에서 태어난 Margraet Rosemary Gaston의 딸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 순간을 교수님의 어룩을 빌어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아!” “다!” “리!” 그러니까 매켄지 여사는 Francella Criswell Ferguson의 중조 이모 할머니가 된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님의 이혼과 위탁 보호소를 통해 개명된 상태였고, 매켄지 여사의 Full Name 어디와도 닮아있지 않았다. 이렇게 마지막으로 살펴본 그저 평범한 한 이름을 통해 그녀의 후손을 만나게 되었고, 우리는 이메일을 통해 그녀에 대해서 나누게 되었다.
Francella Criswell Ferguson은 매켄지 여사를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어머니를 통해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듣고는 했다. 그녀는 어릴적부터 가족과 떨어지며 또 잦은 이사로 옛날 물건들이 많이 없다고 했지만, 매켄지 여사의 사진 몇 장을 스캔하여 보내주었다. 고인의 흑백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며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일은 매우 묘한 일이었다. 지금은 흑백으로 굳어진 그녀의 역사는 당시 형형색색으로 살아있던 하나님의 역사였다. 그리고 한국 선교와 한국교회의 역사이자, 그 유산으로 필자가 지금 여기에 있다. 이 “아다리”의 사건이 필자에게 주는 감격은 실로 엄청났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묻혀있던... 당대 보잘 것 없던 작은 나라, 경상북도 안동에서 살아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약자들을 섬기며,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나라를 떠난 그녀의 발자취와 그녀의 후손을 만난다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 속에서 보물을 캐내는 순간 같았다.
너무 감사했다. 너무 감격이었다. Francella Criswell Ferguson가 게시한 글을 보면 매켄지 여사는 “중국, 홍콩, 일본”등을 다니며 선교를 하였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그녀에게 매켄지 여사는 한국에서 오래 선교를 하였음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게시 글을 수정해주기를 부탁했다. 그녀는 매켄지 여사가 한국에서 32년간 봉사를 했던 선교사임을 명시하였고, 필자는 그녀에게 필자가 미약하게나마 이곳에서 찾은 매켄지 여사의 한국 여정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녀도 감격하였고,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던 사이에서 매켄지 여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하나님의 대역사 속에서 그리스도로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선교사님의 발자취를 찾아간 짧은 여정은, 이름도 빛도 없이 이 나라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한 한 여인을 통해 영광스럽게 조명되었다. 비록 그녀가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알렌이나 토마스 선교사님들처럼 큰 사역을 담당하지 않았다고 말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또한 이 나라의 후손들이 그녀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계심을, 그래서 결론적으로 필자가 걸어가는 이 길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영광스러운 길인지를 다시 한 번 조명되는 시간이 되었다. 이 모든 시간들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기회를 제공해주신 박용규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2018-12-03 18:31:48
49.xxx.xxx.169


작성자 :  비밀번호 : 

1907revival (49.xxx.xxx.169) 2018-12-07 09:46:49
메일 확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aphar27@naver.com (119.xxx.xxx.104) 2018-12-05 23:19:29
연구소와 통화 후 kich-seoul@hanmail.net로 한글 파일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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