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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Paine, Josephine Ophellia(1869-1909, M)
 작성자 : 김윤희  2018-12-03 23:41:21   조회: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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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 선교사 / Paine, Josephine Ophelia (1869-1909)

I. 기본사항

1. 이름: Paine, Josephine Ophelia / 페인/ 한국명: 페인(陛仁)
2. 생몰연도: 1869.2.21-1909.09.25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감리회
4. 한국선교기간: 1892.8-1909.9.25
5. 연표
1869.2.21. 미국 매사추세추주 보스턴에서 출생
보스턴 공립학교 졸업
1892. 뉴잉글랜드 교사양성소에서 교육학 전공
보스턴 상업도서관에서 사서로 잠시 일하다가 귀국한 한국선교사의 강연을 듣고
선교사로 헌신할 것을 결심
1891.11. 뉴잉글랜드 지부에서 한국 파송 선교사로 선임
1892.8. 미국 감리회 선교사로 내한. 한국어 공부
1893.9.18. 제3대 이화학당장 취임
1893.9.18-1907. 이화학당장 15년간 봉직
1899. 생리학(生理學) 교과서를 한국 최초로 프라이(Frey)와 공동 저술
1900.11. 서양식 건물인 본관 신축
1904.9. 중학과 설치. 성경, 영어 강의, 체조를 교과과정에 첨가하여 지도.
재봉, 자수 가르치는 가사과 설치, 여성해방에 공헌
1905. 을사조약으로 외교권 박탈. 학교에서 기도회로 신앙을 통한 민족 운동 지원
1907. 이화학당장을 프라이(Frey, Lulu E.) 선교사에게 인계
인천(제물포), 평양, 서울의 기독교 학교의 관리와 전도를 위한 선교활동에 주력
1909.9.25. 해주지방 전도사업 순회 중 콜레라로 별세. 양화진에 안장
6. 가족사항: 독신


II. 선교사 소개: 페인(Paine, Josephine Ophelia, 1869-1909)

1. 조선시대 학교 설립과 여성 교육을 통한 선교의 출발
한국 개신교 선교 역사상 최초로 한국(조선)정부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고 알렌,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들이 입국하였다. 그들은 모두 의사, 교육자인 선교사였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학교를 세우기 시작했던 거의 같은 무렵에 한국 최초의 근대식 여성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이화학당이 세워지게 되는데, 바로 미국 감리교 선교회 소속의 스크랜튼 여사(Mrs. Mary F. Scranton)가 1886년 5월에 단 한명의 학생을 데리고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이화학당의 출발이었다. 감리교는 어느 교파보다도 교육사업을 위하여 열심이었고 많은 투자를 한 교파였다. 이화학당은 표면적으로는 교육기관이었으나 선교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개화기라고 할지라도 수천 년 동안 내려온 남존여비의 봉건사상이 팽배했던 시기에 여자들을 위한 교육을 시작했다는 것은 대단히 혁신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세핀 오필리아 페인 선교사는 이화학당에서 제3대 학장으로서 교육에 헌신하며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한 교육선교사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 전도자였다.

2. 한국을 사랑한 여성 선교사, 페인
조세핀 오필리아 페인이란 이름은 일반인에게 낯설다. 그러나 그녀는 조선의 여성사와 민족 독립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조세핀 O. 페인 선교사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1869년 2월 21일 출생했다. 보스턴 공립학교를 졸업하고, 1892년 뉴잉글랜드 교사양성소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보스턴 상업도서관에서 사서로 잠시 일 할 때에 한국에서 귀국한 선교사의 연설을 듣고 감명을 받아 자신도 선교사로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이후 페인은 1892년 보스턴 선교사 양성소를 졸업한 직후 8월에 미 감리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한국어를 공부하였다. 그리고 1893년 9월 18일 이화학당장에 취임했다. 1892년 9월 이화학당이 설립된 지 6년째 되던 해의 일이었다. 페인은 제3대 이화학당장에 취임하여 성경과 영어를 직접 가르치며 15년 동안 헌신하였다. 페인 선교사는 민족과 시대를 넘어서 조선을 사랑했고 자신의 위치에서 시대적 책무를 다하며 올곧고 꿋꿋한 정신으로 시대의 관습과 차별을 깬 세상을 바꾼 여인이었다.

3. 체조(체육) 수업을 선도한 조세핀 오필리아 페인
페인은 학당장 재임 중 ‘나라가 튼튼하려면 몸이 튼튼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학생들에게 체조를 정규교과로 가르쳤다. 당시 조선은 콜레라 같은 전염병이 쉽게 퍼졌고, 특히 면역력과 체력이 약한 어린 여학생들은 병으로 인해 학업을 그만두거나 심한 경우,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페인 선생은 체조를 통해 질병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화학당에서의 체조 수업은 이내 서울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부모들은 딸들을 교실에서 빼내오기 바빴고, 심지어 이화학당의 여학생을 며느리로 삼지 않겠노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여성의 행동이나 마음가짐을 규율하던 조선의 유교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조선 여인들은 자신의 발 길이만큼의 보폭으로 걸어야 했고, 팔 흔들기 같은 몸동작은 최소한으로 제한되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화학당에서 여학생들에게 팔 벌리기, 뜀뛰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회적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한성부에서는 이화학당에 체조과목을 없애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지만, 페인 선생은 체조 수업을 강행했다. 페인 선교사가 체조 수업을 강행한 것은 오로지 허약한 여학생들의 건강을 염려하여서 사람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단호히 실행한 것이다. 이화의 체육은 전체 학생의 체력향상에 그 목적을 두었으며 그 결과 학생들의 건강과 전염병에 대한 저항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895년 고종이 덕(德), 체(體), 지(知)를 교육의 3대 강령으로 정한 ‘교육입국조서’를 공표하면서부터 사람들은 이화학당의 체조수업을 받아들였다.

4. 페인 선교사의 주요 업적과 활동 상황
페인 선교사는 구약 성경을 가르쳤으며, 교과과정의 편성과 정비에 힘썼다. “여자가 공부는 해 무엇 하느냐”하는 시절에 여성 교육에 대한 강력한 의지로 앞장섰다. 그녀의 주요 업적과 활동 상황을 살펴본다.
첫째, 1899년 생리학(生理學) 교과서를 한국 최초로 프라이(Frey)와 공동 저술했다. 이 책은 “젼톄공용문답(全體功用問答, Lessons on the Human Body)"이라고 했다. 젼톄(全體)란 온 몸이며, 공용(功用)이란 신체 각 부분의 쓰임새(機能)를 의미한다. 68쪽의 총10장으로 분류하여 사람의 몸 즉 인체(人體) 각 부분의 구성과 기능 및 위생에 관한 내용을 문답식으로 만든 교과서이다. 생리학(生理學)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전에 인체의 기능에 관하여 여성에게 교육을 했다는 사실은 사회적으로 큰 관심거리가 되었다.
둘째, 페인 선교사는 1900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 각지를 돌며 강연을 통해 모은 기부금으로 이화학당의서양식 본관 건물을 신축하는 등 시설을 확장했으며, 학생수 증가로 1900년 11월 정동에 2층 양옥 본관을 건축했다. 이 건물은 규모가 크고 서양식으로 미려하게 건축되어 장안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공부하는 교실과 생활하는 기숙사가 함께 있어 학생들은 좋은 환경에서 즐겁게 생활했다. 페인 선교사는 학생들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면서도 엄하게 훈육하여 학생들은 그녀를 아버지라 불렀다. 식료품 조달을 위한 장보기도 직접 담당하였는데, 그녀의 시장 행렬은 앞뒤에 각 각 두 사람씩 모두 네 사람이 메는 사인교(四人轎) 가마를 타고 기수(護身人)를 앞세웠다. 늘 흰밥(쌀밥)을 해주니까 학생들이 팥밥이 먹고 싶다고 하면 가끔 시장에 나가 팥을 사다 팥밥을 해 먹이기도 하였다.
셋째, 1904년 9월 중학과(중등과정)를 설치하여 여성 교육의 질을 높였다. 또한 교과과정(敎科課程) 정비의 기틀을 마련했다. 190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우리 민족은 배워야 나라도 잘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교육열이 점차 높아갔다. 그러나 외국 선교사들의 한국어 실력이나 학생들의 연령, 지식수준 등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적절한 교과 과정을 편성하기란 대단히 어려웠다. 이 때 페인은 산수 등 기존 과목 외에 성경, 영어, 체조 등을 교과과정에 편성하였으며 재봉, 자수를 가르치는 가사과를 설치했다. 특히 한국 최초로 여성에게 체육 운동과목을 첨가한 것은 큰 변혁이었다.
넷째, 학생을 보호하고 기도회 등으로 민족 운동을 지원했다. 1904년 러ㆍ일 전쟁이 있었을 때 학생들을 기숙사에 보호하고 쌀, 콩, 어포 등 각종 식량을 구입 비축하여 안정된 생활 속에서 수업을 계속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되었을 때는 신앙을 통한 기도회로 민족 운동을 지원했다. 조국을 잃은 슬픔 속에서 가냘픈 소녀들은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수업을 중단하고 전교생이 한자리에 모여 조국의 주권 회복을 기원하는 간절한 기도회를 가졌다.
다섯째, 1907년 이화학당장 자리를 프라이(Frey, Lulu E., 富羅伊, 1907-1921) 선교사에게 인계하고 인천, 평양, 서울의 기독교 학교의 관리와 전도를 위한 선교활동에 주력했다. 신앙이 돈독한 그는 험한 길을 수 백리가 넘도록 걸으면서도 지칠 줄 몰랐다. 열정적인 설교와 전도는 감동을 주었으며 여성 해방 운동에 공헌했다.

5. 주님을 기쁘시게 한 페인
페인 선교사는 1907년 이화학당장을 사임하고 인천을 중심으로 해주와 인근 섬에서 복음 선교사역에 헌신했다. 조선을 사랑했던 그녀지만 1909년 해주 지방 전도사업을 위한 순회 중 페인 선교사는 1909년 해주에서 과로로 쓰러진 후, 콜레라에 감염되어 그해 40세를 일기로 9월 25일 소천 했다. 그녀는 양화진 제1묘역(사-9)에 안장되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았으며 그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페인(Josephine O. Paine) 선교사는 지식과 능력을 겸비한 신앙인이었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청년의 때에 많은 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이 있었으나, 모든 환경이 열악하고 낙후된 한국에 선교사로 지원하였다. 이는 개인의 호기심이나 유익을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과 신앙적 결단이었다. 페인은 한국 개화기에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차별 받고 소외된 한국 여성들을 위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여성 교육에 힘쓰고,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했다. 그녀는 한국 민족에게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았다. 페인 선교사는 교육을 통하여 복음 전파와 선교를 위한 기독교적인 사명을 수행하였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김의 본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진정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고 충성된 믿음의 사역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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