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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Woodberry, Earle J.(미상, NP) / Woodberry, Ada W. Pierce
 작성자 : yescome3  2018-12-04 10:59:12   조회: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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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베리(Woodberry, Earle J. & Mrs. Woodberry)

1. 개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미국에서 출생, 1930년 중국지방 선교사로 파송되었다가 1949년 한국 선교사로 전임되었으며, 부인(Ada W, Pierce)과 함께 그 해, 11월 7일 내한, 경북 대구 선교부에 부임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전도 및 선교부 일에 전념하다가 1958년 은퇴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특히 그는 6.25사변 당시 국군과 UN군에게 잡힌 중공군 포로 2만 2천명을 대상으로 한병혁 목사와 함께 선교, 많은 결신자를 얻은 바 있다.

2. 6.25 전란시의 중국포로 선교

한국인 포로들은 그 가운데 기독교 신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포로교회가 그들에 의해서 먼저 시작되었다. 이에 비해 중국인 포로선교는 중국에서 다년간 선교한 경험이 있던 우드베리(Woodberry, Earle J. ) 군목과 그를 도운 한국인 목사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1951년 봄부터 밀고 밀리던 전선이 지금의 휴전선 부근에서 교착되면서 중국인 포로들의 수도 급증하였는데 이렇게 중국인 포로들이 증가하고 있을 때 당시 한국에 있는 화교들 사이에서 사역을 하고 있던 우드베리가 중국인 포로들 사이에서 사역하도록 초청을 받았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민간인 신분의 연락 군목으로서의 직임을 받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부산에서 중국인 포로들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하였다. 그는 1951년 3월 말경부터 대구제일교회를 담임하다가 피난 온 한병혁 목사와 중국 산동지방 선교사를 지낸 이대영 목사등과 함께 포로 선교를 시작한다.

선교를 시작한 그 첫 달에 철조망이 처진 포로수용소에서의 집회에 자발적으로 참석한 청중이 1,500~2,000명이 이르렀고 그 후에는 4,000~5,000명에 이르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으며 1952년 2월 무렵에는 집회 참석자가 6,500~7,000명에 이렀다. 이런 대규모의 중국인 포로수용소가 두 곳이었으므로 일상적으로 집회에 참석하는 그 연인원은 그 두 배에 이르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중국에 파송되었던 선교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이대영 목사가 도우면서 처음부터 중국인 포로들 가운데 결신자들이 생겼는데 첫 달에 600명의 중공군 사병들과 장교 98명 가운데 75명이 그리스도를 그들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등록하였다. 그리고 첫 3달 동안에 수 백 명의 사병들과 493명의 장교가 등록했다. 그 후에도 개인적인 결신자들이 꾸준히 늘었다.

우드베리는 1952년 2월호 미국성서공회 기관지에 기고한 글에서 그들의 선교 방법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전쟁에 지치고 약하고 겁먹고 당황한 새로운 포로 그룹들이 다섯줄로 손잡고 포로수용소에 도착할 때 우리는 반드시 그곳 정문에 나간다. 이 첫 날들은 우리가 그 사람들을 친구삼고 따뜻한 마음과 미소, 그리고 그들 자신의 말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이 날은 그들이 읽을 소책자와 복음서로 그들의 마음을 안심하게 하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이날에는 거의 언제나 그들의 용모가 펴지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 이렇게 소리 지른다 “이봐, 저것 좀 들어봐! 저 사람들이 중국말을 하잖아.” 그리고 대부분 월요일인 공휴일은 병원 선교를 한다. 그들이 정규 포로수용소로 가기 전에 많은 사람들을 거기서 처음 만나게 된다. 선교사들이 그곳에서 소책자들을 나누어 줄 때 그들이 가장 잘 하는 표현들은 “저에게 큰 것 주세요.” “저에게 두꺼운 것(복음서 책자)을 주세요.” “다른 것 하나 더 주세요.”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재방문 약속 시간을 기억해 두고 있다가 인사할 때 “당신은 전에 두 주 후에 온다고 했는데 세 주 째에 왔네요.”라고 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늦은 이유는 교통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늦은 것인데...

그곳을 방문했던 한 방문객은 그가 본 것을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이전에 중국과 한국 선교사였던 얼 우드베리 군목은 매일 4,000명 이상의 공산주의자 군중에게 설교하고 있다. 나는 그와 함께 장교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을 방문하는 기쁨을 가졌다. 그곳에는 800명의 완전히 교화된 중국 공산당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복음을 듣고 거의 모든 사람이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들을 그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한국전쟁을 사용하셔서 철이 장막 뒤에서 결코 복음을 듣지 못했을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산에서 가까운 수용소 중 하나의 새벽기도에 참석했는데 그날 새벽기도회에는 4,800명이 참석했다. 나는 이 광경을 목격하고 “여기에서 이런 일은 경험하게 될 줄이야!”라고 말했고 그는 아침 식사 후에도 계속해서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우드베리 선교사 일행의 중국인 포로선교를 지원한 곳은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였는데, 그들인 지원한 것의 한 예로 그들은 우드베리가 보다 효과적으로 선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1952년 10월 10일 중국인 선교를 위한 예산으로 3,500불을 책정, 우드베리 선교사가 사용할 자동차를 사도록 했다.

우드베리 선교사와 그 일행은 중국인 포로들이 거제도로 이송되자 그들을 따라 거제도로 갔고 그들이 다시 제주도로 옮겨가자 제주도로 따라가서 선교활동을 계속하였다. 선교사 일행은 휴전협정이 성립되어 판문점에서 포로를 교환할 때까지 계속해서 포로들을 지원하였으며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포로들이 강제 송환되는 것을 막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들 선교위원회는 포로 교환 후에 우드베리가 대만에 건너가 대만을 선택한 중국인 포로들을 양육하려는 계획을 승인하였다.

이와 같이 우드베리는 그를 돕는 중국어를 할 수 있는 한국인 목사들과 함께 1951년 봄 부산에서부터 중국인 포로들을 대상으로 설교, 교육, 영화상영, 기독교 문서 배포 등의 활동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전도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출처: 6.25전란 기 유엔군 측의 포로 정책과 기독교계의 포로선교,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4. 21호 pp37-71, 김승태 논문 중 발췌

3. 자녀들

Woodberry, Earle J. & Mrs. Woodberry는 이슬람 선교의 대가 J Dudley Woodberry의 부모이기도 하다.

J Dudley Woodberry(1934년생) 박사는 풀러신학교 (Fuller Theological Seminary School of World Missions )의 이슬람학 전공 선임 교수이며 명예 교수이다. 그는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아프가니스탄 (다른 많은 이슬람 국가들)에서 선교사와 교사로 봉사했다. 우드베리의 이슬람•기독교 관계 분야에 대한 첫 기여는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기독교 전도, 신학적 비교연구, 기독교회교세계에 관련된 주제들에 관한 수많은 반성과 기사를 썼다. 그는 또한 신학 적으로 건전하고 행동과학에서 배운 선교에 대한 총체적 접근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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