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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Cottrell, Arthur Thomas(1903-1982, AP) / Cottrell, A. T.
 작성자 : 손상민  2018-12-04 13:14:06   조회: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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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열 선교사 / Cottrell, A. T. (코트렐 아서 토마스 1903~1982)

*본 선교사의 자료는 연구소의 서적에서 기록을 5줄 이상 찾지 못하였기에
‘네이버 블로그(작성자 : 물길손길, 정연이네 집)’에 기고 된 글들을 재구성하였음을 밝힙니다.

기본사항
1) 이름 : Arthur. Thomas. Cottrell
2) 생몰연도 : 1903.1.4.~1982.1.4.
3) 출신 및 소속 : 호주, 호주장로교
4) 한국선교 기간 : 1933.09-1938 (진주:1933-1936 / 거창:1936-1938)
5) 가족 사항 : Mrs. Jessie Cottrell (Jessie Mcarthur), 1903.7.25.-1984.8.3

2. 선교사 소개 : 고도열(Cottrell, A. T.)
1. 고도열 그는 어떤 사람인가?
호주 전역에 “코티”(Cottie)로 알려진 아서 코트렐은 그 부친이 대장간 주인으로 일했던 윌리암스 타운(Williamstown)에서 자라났다. 두 사람은 강한 유대가 있어서 아서는 아버지에게 도제생활을 했다. 그러던 얼마 후에 아서는 목회에 소명을 느끼고, 장로교회의 목회를 위한 국내 선교훈련 과정에 참여하였다. 
 
미틀포드(Myrtleford)에서 첫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아서 코트렐은 1933년 6월에 한국 선교사를 지원하였다. 이 당시 아서 알렌이 갑자기 사망한 이후 후임자를 찾고 있었던 해외 선교부는 코트렐의 지원을 받고 크게 환영하였고, 1933년 7월 26일에 그를 선교사로 임명했다.
 
코트렐은 신학생 3년 동안 노스 브룬스윅 교회(the North Brunswick Church)를 섬기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결과 총회 홀에서 열린 그의 안수식에는 많은 교인들이 참석했다. 코트렐 부인이 출석했던 푸츠 크래이(Foots cray)의 회중들도 이 감동적인 예배에 많이 왔다. 아서와 제시 코트렐이 어려운 시기에 한국선교사로 지원하였다는 사실은 대공황의 한가운데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빅토리아 장로교에게 선교적 희망을 주었다.
 
2. 한국에 입국한 부부 선교사
코트렐 부부는 1933년 9월 한국에 도착해서 진주에 배치되었다. 한국어 공부를 마친 후, 아서 코트렐은 “스태프의 의무절약계획”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고 복음전도 사역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1936년에 거창으로 이전하였고, 아서는 의무절약계획의 행정적 책임을 지면서, 동시에 그 지역의 시골 교회들을 보살피는 목회적 책임을 감당하였다.
 
3. 짧았던 그들의 한국선교 기간, 그리고 귀국
그의 가족은 1938년의 휴가 때에 호주로 왔으나, 코트렐 부인의 지속적인 건강 문제와 딸 제니퍼(Jennifer)의 출산으로 인해 아서 코트렐은 1940년 1월에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애들레이드에 있는 굳우드 교회(Goodwood)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그는 후에 두 개의 빅토리아 교구의 목사로서 왕립호주공군(RAAF)의 군목으로 일했고, 호주내지선교회(AIM)와 함께 여러 순찰대를 위한 경목(Patrol Padre)으로 일했다. 코트렐은 용기와 희망으로 고통과 병을 견뎌내면서 암과 오랜 투병을 한 후에 1982년에 세상을 떠났다.

4. 고도열의 영원한 동반자 (Mrs. Jessie Cottrell (Jessie Mcarthur))
제시 맥아서는 푸츠크래이에 있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아주 어려서 선교의 소명을 느꼈으나, 그 단계에서 디커니스로 훈련을 받기로 설득되었다. 그녀의 첫 임지는 아폴로 베이(Apollo Bay)였고 당시로서는 오직 배와 말을 타고만 접근이 가능했다. 그녀가 거기서 일했던 시간은 큰 감동과 존경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녀의 두 번째 임무는 깁슬랜드에 있는 소년들을 위한 킬매니 파크홈 (Kilmany Park Home)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아서 코트렐을 만났다. 그들은 1933년 1월 6일에 결혼했고, 아서에게 “운명의 출구”가 된 미틀포드(Myrtleford)로 갔다. 
아서는 선교사로 한국에 가기위해 지원했고 그들의 첫 임무는 진주로 가는 것이었다. 1935년 진주에서 제시(혹은 젠으로 알려진)는 언어공부와 여성과 소녀들을 위한 산업 자립 프로그램을 감독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듬해 그들은 거창으로 이동했고, 그녀는 지부의 서기가 되었고 전도부인 중에 하나를 감독하게 되었다.
 
젠은 탁월한 요리사였고, 아주 예술적이고 매우 적극적인 성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코트렐의 딸 제니퍼는 그들이 휴가 중인 1939년에 태어났고, 그들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훗날 그녀는 심각한 관절염으로 고생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것은 부분적으로 어린 시절에 당했던 교통사고가 원인이었다.)

3. 코트렐 목사의 사역 : 거창지방 기독교의 연원과 교회

1. 거창지방의 기독교 접촉
거창지역에서의 최초의 기독교와의 접촉은 1904년으로 확인된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는 1904년의 기사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同年 秋에 居昌郡 開明里敎會가 成立하다. 先時에 朴順明, 金宗漢外 十餘人이 信徒하야 敎會가 成立되고 宣敎師 沈翊舜 助師 金周寬이 視務하니라.

1904년에 건립된 개명교회는 거창지역 최초의 교회이다. 그렇다면 박순명과 김종한 그리고 10여명의 개명교회 교인들이 거창지역 최초의 신자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들이 심익순과 김주관에게 전도 받아 믿게 되었는지, 혹은 이미 다른 누군가에게 복음을 듣고 믿고 있던 차에 심익순 일행이 와서 교회를 조직해 주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개명교회는 설립보고만 되어 있을 뿐 후대의 기록 속에서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 1906년 북장로교 선교보고에는 당시 거창지역에서 “불순한 발전(wild-cat-proceedings)" 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개명교회는 순수하지 못한 목적으로 일시 모였다가, 목적한 바를 달성하지 못하자 곧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선교사들의 정치적인 세력을 얻기 위해서 일시 교회로 모여드는 현상은 당시 거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이와 같이 거창지역 최초의 교회의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만약 심익순이 개명리에 왔을 때 박순명과 그 외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상태였다면 거창지역에 최초로 복음이 전해진 시기는 1905년 가을이 아니라 그보다 더 이른 시기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다만 이름모를 권서나 타 지방에서 복음을 접하고 거창지방으로 유입된 어떤 사람에 의해 복음이 전해졌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개항장이 없는 내륙지방에 권서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02년 이후였다. 선교사들이 거창에 도래하기 전 매우 이른 시기부터 경남지역에서 활동한 권서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그들 중의 한명이 거창에 복음을 전해 주었을 가능성 매우 크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갈 수 없는 곳으로 권서들을 파송하여 전도하게 했으므로 경남 서북단인 거창지역으로는 권서가 먼저 방문했을 가능성이 크다.

2. 호주장로교선교회 활동(이후, 교육사업, 의료사업도 있으나 코트렐 부부의 기록은 없음)
맹호은 목사는 1910년 9월 한국에 도착하여 진주에 2년 머무르면서 어학을 익히고 있었다. 호주 선교부는 1911년부터 거창에 선교지부를 설립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는데 맹호은이 거창지부 신설의 책임자가 되어 1912년 거창으로 파송되었다. 그는 1913년에 거창에 새 선교지부를 개소했다. 거창지부(1913)의 관할지역은 거창, 안의, 함양, 합천, 초계 등 이었다. 그는 곧 새로 도착한 길아각 목사 부부와 합류했다. 맹호은목사 부부와 길아각목사 부부는 호주선교회가 거창읍 죽전에 건립한 집에 거주했다. 그러나 맹호은 목사는 한국식 집을 지을 것을 제안 했으며 해외선교위원회는 두 번째 거주지를 세우는 것에 동의 했다. 1915년 1월에 일본에서 결혼한 맹호은은 신부를 이 새로운 건물로 데리고 왔다. 1915년 중반 맹호은 목사는 창신학교와 그 지역의 교회를 담당하게 되어 마산으로 이주했다. 길아각 목사 부부가 사임하고 1916년에 도착한 도별익 목사 부부가 1922년까지 사역했다. 도별익 목사의 부인은 자신의 음악적 재능으로 많은 공헌을 하기도 했다. 도별익 목사부부가 사임한 후로는 고도열 목사부부가 거주한 2년(1936-1938)을 제외하고는 거창선교부에 대부분 여성선교사가 배치되었다.

3. 이후, 코트렐이 목사로서 사역했던 교회
1) 웅양교회(거창군 웅양면 노현리 185-2)
2) 가조교회(거창군 가조면 마상리 224)
3) 가천교회(거창군 남하면 대야리 276)
4) 성기교회(거창군 주상면 성기리 297-7)
5) 원기교회(거창군 고제면 봉계리 687)
6) 적화교회(거창군 웅양면 한기리137)
7) 청림교회(거창군 남상면 대산리 1165)
8) 말흘교회(거창군 마리면 말흘리 852)
9) 농산교회(거창군 고제면 농산리 523)
10) 가북교회(거창군 가북면 우혜리 1718)
11) 북상교회(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1154)
12) 도평교회(거창군 주상면 도평리 620)
13) 봉산교회(거창군 고제면 봉산리 472)
2018-12-04 13: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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