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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Hopkirk, Clarence Cowles(1885-1954, NP) / Hopkirt, Myrtle Church
 작성자 : 김정규  2018-12-04 20:57:21   조회: 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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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 Clarence Cowles HOPKIRK / 합커크  
2. 생몰연도: 1885.11.28(29) www.hopkirk.org/hopkirk/Page203313.html. 2018년 11월 9일 접속. Hopkirk의 둘째딸이 그에 대해 기록한 전기. 이를 통해 그의 구체적인 생몰연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전기에는 그의 출생일이 두 번 기록되었는데, 28일과 29일로 서로 상이하다.
.-1954.7.10.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21-1924 그의 내한기간에 대해 각주 1)과 각주 2)의 기록이 다르다. 각주 1)에서는 1921. 6. 4.-1924로, 각주 2)에서는 1920-1923이라고 기록한다. 본 연구에서는 더 구체적인 기록인 각주 1)을 따른다.

5. 연표
1885. 11. 29.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출생
아이오와 주립대학, 노스웨스턴 의과대학 졸업
1912. 5. 18.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Myrtle CHURCH와 결혼
1913. 2. 28. 첫째 딸 Corinne HOPKIRK 출생
1921. 6. 4. 북장로교 의료선교사로 부인, 딸과 함께 내한, 세브란스 병원에서 내과, 방사선과 의사로 활동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
1923. 문둥병 치료 H. H. Underwood, ‘OCCIDENTAL LITERATUREON KOREA’
www.raskb.com/transactions/VOL20/VOL020-1.docx 2018년 11월 17일 접속

1924. 선교사직 사임 후 귀국
1946. 뇌졸중 투병
1952. 은퇴
1954. 7. 10 향년 68세로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서 사망

6. 가족사항부인: HOPKIRK, Myrtle CHURCH(1890-1960) 1922년 7월의 어느 날 Hopkirk의 아내와 그의 큰 딸은 짧은 방문을 이유로 미국을 돌아간 기록이 있다. Hopkirk가 한국에 의료선교를 왔을 때는 둘째딸이 없었기 때문에 큰 딸하고만 돌아갔다. 그 이유에 대해서 나오지 않는다. The Korea Mission Field. Vol. ⅩⅦ. 영인본. (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86), 187; 당시 의료선교사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감리교인들하고도 의료선교는 협의가 이뤄진 것 같다. 왜냐하면 타교단에 대한 부고와 출생에 대한 소식이 모두가 볼 수 있게 실려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한국의 많은 교단도 본받아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단이 아니라면 이러한 점에서 우리 모두 협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딸: Corinne HOPKIRK(1913.2.28.-1969)
Marilyn Hopkirk Koontz(1929.9.8. -2014)


Ⅱ. 선교사 소개

1. 생애

1) 어린 시절
Hopkirk는 1885년 11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교장선생님으로 기독교인이며 어머니도 기독교인이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 그의 둘째 딸 Marilyn Hopkirk Koontz는 이렇게 기록한다.

“그는 주님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Hopkirk를 훈련시켰다.”

2) 한센병에 대한 관심과 선교사역
그는 두 명의 형제가 있었고, Rock Island Railroad의 방사선 전문의로 수년간 근무한 후 3년간 서울 장로교 선교사가 되었다. 한때 그의 특별한 관심사는 나병 환자였고, 그들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그는 성경에서 나병 환자의 필요에 관해 배웠다. 그 후, 그는 한국에 의료선교를 오게 되었고 서울의 세브란스 병원의 수석 방사선과 의사로 일했다. 그의 선교 사업 중에는 어머니와 누이가 함께 있었으며, 언니인 Corinne은 서울이 있는 학교를 다녔고 어머니는 소년 소녀들에게 피아노 연주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1920-1923년에 있던 일이었다.

3) 한국을 떠난 후
선교사역을 마치고 Hopkirk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방사선 전문의로 살게 된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예비역으로 의료사역을 하게 된다. 이를 토대로 그는 주님의 능력으로 자신의 부름 받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이고 기억하게 한다.
그는 브렌트우드 장로교교회의 건축을 위해 힘썼으며, 산타모니카 교회등 많은 교회사역에 힘썼다고 알려졌다. 그는 뇌졸중으로 고생하다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진다.


2. 한국에서 그가 남긴 것_한센병과 X-ray Service

1) 그의 전공_방사선
그는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와 노스웨스턴 의과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 이 두 학교 모두 Hopkirk의 재학 당시는 오랜 역사를 가졌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노스웨스턴 의과대학은 현재 의과대학 부분에서는 상당히 유망한 학교로 알려졌다.
이것만 가지고는 그의 의료실력을 알 수 없으나, 당시 방사선에 대한 전문의는 세계적으로 몇 찾아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방사선이 1895년에 발견되었으며, 미국에도 1920년대야 되어서 ‘병원표준화’운동이 진행되었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 들어온 방사선진료기술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고 판단된다. 당시 Hopkirk가 이 기술을 가지고 나병환자들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나병환자의 치료는 한국에서 많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것에 더해 그가 했던 공헌은 다양한 기술과 기구의 보급일 것이다. 이에 대한 그의 글이 The Korea Mission Field 제17권에 실려 있다. 그의 말을 몇 자 인용해 본다.

“현대 의학에서는 이제 X-ray는 필수적 기술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외과의사가 인정하지 못한 골절을 지금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술은 대단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가장 위험한 순간의 실수를 잡아낼 수 있습니다.”

2) 한국의 방사선 치료의 필요성과 그의 노력
Hopkirk는 이 기술을 한국에 가져오는 것을 축복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한국의 병원실태조사에서 절반도 채 안 되는 병원에서만 X-ray기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브란스에 새로운 기계를 가져오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 기계는 지난 20년 사역의 정점이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내과의사가 이 기술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 기계를 설치하려는 노력과 함께 사전지식에 대한 훈련도 진행했다. 여기서 우리는 선교적 사명과 이에 대한 노력의 불가분성을 읽게 된다. 아! 얼마나 놀라운 진행이며, 놀라운 노력인가? 당시 너무나도 척박한 환경에 최신식 기술을 들여온다는 것은 큰 위험과 도전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이 땅에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습이다. 불가능에 도전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보다 늘, 항상, 영원히 앞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에 주목하는 것이다. 앞서 행하시고 해결하시는 모습을 인식하지 못하다면 우리가 어찌 의뢰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지혜는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한국의 실상을 알리고, 자신들의 사역에 대한보고는 반드시 미국에서 이 기기를 보내줄 것이라고 그는 확신하였다. 그 이유에 대해 자국의 시장에서 이 기기는 중고시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최신의 기종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매우 놀랍다. 현대에도 의학전문의들이 이렇게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자세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고시장에서 이것들이 공급과잉이라는 점과 이 제품들이 최신식이라는 것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공급과잉의 이유는 과도한 X-ray 기기에 대한 과도한 경쟁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즉, 이러한 이유로 짧은 시간 안에 최신의 장비들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결국 중고시장의 포화상태가 되었다고 그는 판단한다.
문제의 지적과 그 대안은 오늘날 목회자들에게 주는 중요한 점을 제공한다. 노력과 대안은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는데서 오기 때문이며, 문제를 보다 거시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3. 한센병과 그의 치료

그가 성경에서 한센병에 대해 읽고 느꼈던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의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어떻게 성장했을까? 또한 그가 선교하러 온 한국의 한센병자들을 다루는 한국인들의 태도에 대해 어떤 평가를 했을까?
그가 오기전 이미 한센병자는 한국에 있었다. 그리고 몇몇의 병원들이 세워졌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이들에 대한 치료는 미미했을 것이다. 여기에 그의 전문적 지식과 식견은 한국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미국본토로 돌아가 미국의 중교시장에서 이 기기들을 한국에 들여오는 노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미국에 돌아와서도 방사선 전문의로 활동하고 교회건 축등 활발하게 활동한 것을 둘째 딸의 편지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살펴볼 점은 일제치하에서 한국의 한센병자들의 모습이다. 일제는 1916년 한센인을 소록도에 강제로 수용시켜, 강제노동, 정관수술, 낙태, 손발절단이라는 끔찍한 일을 벌였다. 일러한 상황에서 그는 성경을 읽고 한센인을 치료한 당대 최고의 의술을 들고 한국에 넘어온 것이다. 그의 눈물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피로 후에 마가렛, 마리안느 간호사가 소록도에서 그들을 치료하는 비화를 남긴 것은 아닐까?

4. 그를 통해 읽어낸 당시 세계 선교와 한국의 모습들

The Korea Mission Field는 그 자체로 놀랍다. 오늘처럼 기독교의 분파의 수를 셀 수 없고, 그 분열에 반목이 더해진 시절에 몇으로 나뉜 그들은 선교에 하나가 되어 가족과 같이 그들의 가족의 생사화복을 나누고 있는 장면 때문이다. 이는 바로 한 몸이라는 기독교의 생생한 성경 기록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들은 주님이 주신 은사를 사용하여 그 소명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 깊다.
2018-12-04 20: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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