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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Gadeline, Amanda(미상, ETMM)
 작성자 : 민병춘  2018-12-04 21:21:33   조회: 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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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라인 선교사 / Gadeline, Amanda (미국, ETMM)

Ⅰ.기본사항

1. 이름 : Gadeline, Amanda / 가드라인
2. 생몰연도 : 미상
3. 출신 및 소속 : 미국, ETMM 엘라씽 기념 선교회
4. 한국선교기간 : 1896 - 1901
5. 경력 : 1896년 침례교 선교사로 엘라 딩 기념 선교단 파송으로 내한
부산에서 선교사업
충청도 공주로 선교지 이전
1901년 선교단의 재정난으로 철수 시 함께 귀국
6. 가족사항 : 미상



Ⅱ. 선교사 소개 : 가드라인 (Gadeline, Amanda)

1. 미국 침례교 여선교사/가드라인 아만다
1896년 엘라 딩 기념선교단(Ella Thing Memorial Mission) 파송으로 폴링(E. C. Pawling) 목사 부처와 함께 한국에 도착하여 부산에서 선교사업에 착수하였으나 다른 선교회가 정착하여 있었으므로 충청도 공주로 선교지를 옮겼다가 1901년 재정난으로 엘라딩 기념선교회가 철수할 때 함께 떠났다.

2. 한국 침례교의 선구활동자
한국으로 파송 받은 이들은 처음에는 서울의 서북지역에 자리를 잡고 전도용 소책자들을 나누어 주는 등 노방전도와 개인 전도를 하였다. 첫 번째 구령의 열매로 서울에서 침례를 받은 이는 지병석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인천 태생으로 서울에서 포목상을 하고 있었고 서울과 충청도 강경을 배편으로 오가며 장사를 하던 사람이었다. 지병석, 천성녀 부부는 폴링 선교사 부부와 아만다 가드라인 선교사와 함께 강경 옥녀봉 중턱에 있던 그들의 집에서 1896년 2월 9일에 첫 예배를 드림으로써 한국 최초의 침례교회인 강경침례교회를 세우는데 기틀이 되었다. 당시 서울은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이 본거지로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엘라 씽 기념 선교회 선교사들은 사역의 중심지를 충청도 지역으로 옮기게 되었다. 폴링 선교사 부부와 가들라인 자매는 강경 북옥동에서 스테드만 선교사 부부와 엑클즈와 엘머 선교사는 공주 반죽동에서 자리를 잡고 선교활동을 펼쳤다.
가드라인 자매와 에드워드 폴링은 공주에 선교 스테이션을 세웠다. 그들은 강경을 정착지로 정하였으나, 엘라 딩 기념선교회의 오지 선교와 순회선교 정신에 따라 수실 공주를 방문하여 선교본부를 살피고 순회전도를 다녔다. 현재까지 역사적으로 남아 있는 꿈의 교회는 1896년 4월에 한국에 온 프레더릭 스테드만, 세이드 에클스, 아르마 엘머 등 제2진 엘라 씽 선교사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1896년 여름에 공주에 와서 정착하며 선교본부를 정비하고 공주 전역을 돌아보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3. 가드라인을 파견한 엘라 딩 기념선교단에 대해서

침례교 한국 선교단체이다. 1889년 12월 8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독립 선교단 자격으로 한국에 왔던 펜윅(Malcolm C. Fenwick)은 1893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보스토의 클라렌돈가 침례교회(The Clarendon Street Baptist Church)의 담임목사인 고오든(Adoniram Judson Gordon) 밑에서 3년간 신학을 공부하면서 미국전역에 걸쳐 순회집회를 가졌다. 그가 클라렌돈가 침례교회에서 한국선교에 대한 설교를 할 때 이 교회의 집사이며 사업가이기도 한 딩(S. B. Thing)은 펜 윅 선교사의 영향을 받고 자기의 즉은 외동 딸을 기념하기 위해서 선교단을 조직한 것이 바로 엘라 딩 선교단이다. 1895년에 엘라 딩 선교단에서는 폴링(E. C. Pauling) 목사 부부와 여선교사 가들라인을 일차적으로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했다. 이들은 부산에 일단 정착하여 선교사업을 시작했다가 부산은 다른 선교회가 이미 정착해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선교지를 물색하던 중 충청도가 적지로 생각되어 선교지를 충청도로 옮겼다. 충청도에서도 북부지역은 이미 다른 선교회의 선교지구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공주와 강경지방을 선정해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우리는 군마다 시마다 다니며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본토인들은 일반적으로 온순하고 인내심이 있고 친절하며 우리는 사업에 재미를 많이 보고 있다”고 스테드만 선교사는 사업의 진행과정을 본국에 알렸다. 폴링 목사 부부는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일신상의 사정으로 사직하고 미국으로 돌아갔으며 나머지 선교사들은 합심해서 두 선교지역에서 열심히 전도 활동을 벌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고 교회도 많이 건립되었으며 특히 장기영, 홍봉춘과 같은 좋은 일꾼을 얻었다는 것이 큰 성과였다.
스테드만 선교사도 다른 독립선교단과 마찬가지로 선교단의 재정적인 어려움과 타교단 선교사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이 지역에서 더 이상 선교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1901년 9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독립 선교사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펜윅 선교사를 다시 초청하여 자기들의 선교임무를 그에게 이양하기로 합의하고 1902년 9월 공주와 강경에 있는 교회 대표자들을 소집하여 자기들의 선교임무와 전 소유권을 펜윅 선교사에게 이양한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밝혔다. 스테드만 선교사는 펜윅 선교사를 대표들에게 소개하면서 “우리의 가장 신뢰하는 이 분에게 우리가 세운 여러교회와 건물 및 대지 등 남아있는 재정 일체를 위임하고 떠나니 그리 알고 우리 동역자인 이 분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상호협력하여 훌륭한 결실이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스테드만 선교사는 펜윅 선교사에게 공주지방과 강경지방에 속해 있던 많은 교인들과 교회와 교회의 재정까지 이양했고 그 밖에도 공주 욱정에 있었던 수천평이나 되는 대지와 여러 채의 민간 가옥도 이양했다. 특히 공주는 당시 관찰사가 있었던 주요한 지역이며 이 두 지방은 침례교 선교활동과 침례교단 발전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래서 1906년부터 시작된 제 1 회 침례교 대화회를 매년 제 5 회까지 이 두 지방에서 교대로 개최할 정도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두 지방의 원로들은 거의가 스테드만 선교사로부터 침례를 받았다. 1902년 12월에 23개 반의 침례교인들과 그의 모든 것을 펜윅 선교사에게 이양하고 스테드만 선교사는 그의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갔다. 스테드만 선교사는 본국으로 돌아가서 한국에 선교사로 다시 파송해 줄 것을 소속교회에 요청했으나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결국 미국 침례교 선교연맹의 후원으로 일본 침례교 선교부에 파송되었다. 이로써 엘라 딩 기념선교단은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한 지 7년 만에 종료되고 펜윅 선교사가 그 사업 일체를 인계받아 원산에서 관리하였다. 스테드만 선교사는 1905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자기에게 전도받은 신자는 200여명이고 자립교회가 하나 있었다고 했다.

4. 가드라인 선교사가 속했던 엘라 딩 기념 선교단의 의의

엘라 딩 기념선교회의 한국선교는 교파 선교회가 아닌, 한 개인의 헌신에 의해 설립 된 소규모 초교파 선교단체가 태평양을 건너 먼 이국땅 한국에서 선교의 열매를 맺은 첫 사례라는데 있다. 한국의 개신교 선교는 1884년부터 시작 됐는데, 주로 교파 선교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대표적으로 4개의 장로 회 선교부(북장로회, 남장로회, 호주빅토리아장로회선교회, 캐나다장로회) 와 2개의 미국 감리회 선교부(북감리교, 남감리교), 영국성공회가 그것이 다. 한편, 초교파적인 선교단체의 후원에 의한 독립선교사들도 속속 내한 하였다. 1888년에 입국한 게일(J. S. Gale)은 토론토대학 기독청년회 (YMCA) 후원을 받았으나 1891년 미북장로회로 이적하였다. 게일과 함께 입국한 하크니스(R. Harkness)는 한국연합선교회(CUM) 후원을 받았으나 1889년 6월 예기치 않은 질병으로 인해 한국을 떠나 일본을 거쳐 귀국하였 다. 1889년 펜윅(M. C. Fenwick)은 한국연합선교회(CUM) 후원으로 내한 했으나 1893년에 귀국하였고, 1890년에 입국한 하디(R. A. Hardie)도 토론 토의과대학 기독청년회(YMCA) 후원으로 내한했지만 1898년에 미남감리 회로 소속을 옮겼다. 1893년에 입국한 매켄지(W. J. Mackenzie) 역시 캐나 다 독립선교사로 내한하였으나 1895년 일사병과 신열(身熱)에 의한 정신 이상으로 권총 자살함으로 막을 내렸다. 이처럼 초기에 내한했던 초교파 선교사들은 교파선교사로 이적하거나 귀국 또는 단명함으로 뚜렷한 선교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러나 엘라 딩 기념선교회는 약 6년간 한국선교를 지속하여 교회설립이라는 놀라운 선교의 열매를 맺었다. 둘째, 엘라 딩 기념선교회는 당시 선교지 분할정책 속에서 선교의 사각지대를 잘 인식하여 선교를 시도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선교지 분할정책은 한국교회사에서 그 명암이 뚜렷할 정도로 공헌과 한계가 분명하다. 선교사 간에 불필요한 마찰 해소하고, 선교의 재정 낭비를 줄일 수 있었다는 데는 공헌했으나, 30년 이상 이것이 한반도에 적용되므로 인해 선교회 배경에 따라 교회의 특성이 형성되고, 지역성이 더해져 교권분쟁과 교파분열의 단 초가 되었다는 비판은 면할 길이 없다. 폴링의 충청도 선교는 남장로회의 전라도 선교 집중으로 인한 선교 사각지대를 효과적으로 접근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처음부터 오지선교를 추구했던 엘라 딩 기념선교회 선교의 빛이 난다. 교파 간의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면서도 선교의 불모지에 복음을 전 했다는 것은 선교의 후발주자로서 매우 바람직한 선교전략이 아닐 수 없 다. 물론 약 6년 남짓의 짧은 기간이 아쉽지만, 그래도 엘라 딩 기념선교회의 수고와 헌신은 헛되지 않았고, 훗날 펜윅에게 인계되어 한국 침례교회 형성의 중요한 토대요 모판이 되었음을 감안할 때, 엘라 딩 기념선교회의 활동 은 재인식되어야 하고,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2018-12-04 21: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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