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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Dixon, Ethel Victoria(1889-1975, AP)
 작성자 : 유승훈  2018-12-04 21:48:17   조회: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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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1) 이름: Miss Ethel Victoria Dixon RN [한국명: 덕순이(德順伊)]
2) 생몰연도: 1889년 - 1975년 7월 5일
3) 소속: 장로교 여선교연합회 (PWMU: Presbyterian Women's Missonary Union)
4) 선교기간: 거창/서울: 1922-27, 진주: 1928-29, 거창/진주: 1933-41
5) 연표1889년 - 호주에서 출생1922년 9월 16일 - 부산 도착, 이후 거창 배속, 서울에서 언어 공부1923년 - 거창에서 현대식 유아 복지 건강센터 설립, 수간호사로 임명1927년 - 휴가 중 딕슨은 유아 복지 클리닉 분야의 공부, 유아복지 대학원 과정 이수 1928년 1월 - 진주 병원에서 수간호사로 임명1933년 9월 - 한국으로 돌아옴1933년 ~ 1936년 11월 - 거창에서 유아복지 클리닉 사역1936년 11월 - 진주에서 수간호사, 동시에 일주일에 한 번 거창 방문1939년 3월 ~ 1941년 - 거창에서 계속 사역1940년 - 거창 진료소&진주 유아 복지 클리닉 설립1941년 4월 - 거창 진료소 폐쇄, 선교사 추방1975년 7월 5일 - 호주 멜번에서 사망

Ⅱ. 사역
1)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역한 간호사, 에셀 빅토리아 딕슨
에셀 빅토리아 딕슨, 한국 이름으로 덕순이라 불리는 그녀는 한국에 내한한 선교사 중 유명한 사람은 아니다. 고신대학교 간호대학에서 나온 간호선교사 사역 연구에 보면 그녀의 사역기간과 사역 활동은 자료미상이라고 되어있다. 『내한 선교사 총람』에도 그녀의 경력은 단 두 줄에 불과하며, 『기독교대백과사전』에도 그녀는 경남 진주지방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한 그 이상의 설명은 없다.
그러나 그녀는 장로교 여선교연합회(PWMU: Presbyterian Women's Missonary Union)의 교육을 받은 후 20여년의 세월 동안 거창과 진주 지역을 중심으로 실천적 선교 사역을 잘 수행해왔다. 그녀의 20여년의 세월 일제강점기가 극심해지는 20년대에서 41년까지 진행되었다. 특별히 그녀의 중심 사역은 의료 사역과 유아 복지를 중심으로 이루졌다. 거창과 진주를 몇 년 단위로 이리저리 옮겼지만 그녀의 전문성과 사역에 대한 열정은 거창과 진주, 두 지역에 복지 클리닉을 만드는 큰 성과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하였듯이 그녀의 이름은 있지만 그녀의 사역은 좀처럼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녀는 묵묵히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사역을 감당한 것이지 않을까? 마치 양화진에서 이름도 없이 부서진 묘비의 주인처럼, 한 찬양의 가사처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긴 선교사, 그가 바로 에셀 빅토리아 딕슨이었다.

2) 덕순이의 선교사상
E. V. Dixon, 즉 덕순이의 선교사상은 그녀를 파송한 빅토리아 장로교 여선교연합회(PWMU)의 탄생배경과 그 안에서의 선교사 후보생들의 훈련과정을 참고할 수 있겠다. 빅토리아장로교회 안에는 여성을 위한 해외선교사역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느끼는 여성집단이 있었다. 그녀들은 영국과 미국, 그리고 호주 안에 많은 여성선교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그쯤 크리시 딘우디(Miss Chrissie Dinwoodie)양의 제안으로 교회여성들의 선교열정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로버트 하퍼의 집에서 12명의 여성지도자들이 참여한 첫 모임으로 여선교연합회가 시작된 것이다. 여선교연합회는 토착여성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제나나 선교를 롤모델로 하여 한국에서 그대로 시행했는데, 선교사들을 임명하고 선교 자금을 모금하고 집행하며 스스로 경영하는 독립된 선교기구로서 교회의 여성선교본부의 역할을 수행했다. 여선교연합회의 교육은 기초적인 신학수업과 함께 실천 중심의 내과, 외과, 간호학, 가사 등의 훈련의 과정으로 구성되었다. 선교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실생활에 필요한 간호와 교육을 중심으로 실천훈련을 했던 이유는 선교사 후보자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약자, 즉 가난한 사람들과 여성 그리고 어린이들 안에서 선교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녀들은 교육에 있어 동료들 사이에서 인간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시하여, 선교사 후보생들이 각자의 삶과 신앙, 비전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되기를 힘썼다. 이런 교육은 그들로 하여금 선교현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3) 의료 중심의 선교 사역
딕슨은 선교 기간 중 대부분을 의료를 중심으로 하였다. 그녀가 배웠던 장로교여선교연합회의 교육 커리큘럼인 디커니스가 실천과 의료 중심이라서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녀가 세 가지 의료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딕슨 선교사는 거창과 진주에서 모두 수간호사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거창에서는 1923년 유아 복지와 보건 진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수간호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1928-1929년. 진주에서 수간호사로 임명되었다. 1936년 11월에는 진주에서 엘시 에드거의 휴가 기간 동안 수간호사 자리를 대체 하였다. 1940년에는 낡았던 진료소 건물과 부족한 장비를 9,246엔의 비용으로 새롭게 탈바꿈하였다. 그녀의 의료사역에서 가장 확실히 기록으로 남은 장소는 진주의 배돈병원이다. 배돈병원은 호주선교부 의료선교가 집중되었던 곳이다. 휴 커를(거열휴)를 시작으로 진주 지방의 의료활동이 시작되었으며, 1913년 호주장로교 여전도회연합회의 지원을 경남 지방 최초의 병원 바로 배돈병원이 생기게 되었다. 이 병원은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사역만 하지 않고 간호사 양성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의료 자격증을 가진 딕슨의 진주 배돈병원으로의 파송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배돈병원은 한국전쟁까지 김중기 의사와 이주섭 의사가 근무를 하다가 문을 닫았다. 이후 배돈병원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진주복음병원이 열렸다. 배돈병원의 터는 현재에는 영락교회와 진주노회 교육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4) 유아 복지 중심의 선교 사역
딕슨은 선교 사역에 있어서 의료만이 아니라 유아 복지에도 열심을 내었다. 먼저 1923년 부터 딕슨은 거창에서도 현대식 유아 복지 건강센터를 설립하였다. 이후 1927년의 휴가 중 딕슨은 유아 복지 클리닉 분야의 공부, 즉 유아복지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였다. 사실 공부를 마친 후 그녀는 약혼을 발표하고 사임하였지만 1928년 6월에 다시 진주로 돌아와 선교 사역을 시작하였다. 무엇보다 딕슨이 유아 복지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였기에 유아 복지에 전무한 진주 직역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녀가 휴가를 돌아 온 후에는 진주에서 유아 복지 클리닉 센터에 대한 계획이 세워지며, 자금을 모으고 결국 건축이 시작 되었다. 클리닉 센터는 1940년 4월 17일 모든 지역 교회와 당국의 관리자들까지 참석하며 기념식을 진행 되었다. 단 센터의 의료 감독권은 진주 배돈병원의 산하기구여야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후 멕라렌 박사와 같이 딕슨은 지속적으로 센터를 방문하였다. 클리닉 센터를 통하여 한국인 간호사는 부인 학급을 만들어 위생과 육아에 대한 강의를 운영할 수 있었다. 이후 딕슨은 진주에 살고 일하면서도, 일주일에 한 번은 거창으로 가서 유아 복지 클리닉을 지도하였다.
2018-12-04 21: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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