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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Henderson, Lois Elizabeth(미상, NP)
 작성자 : 양희진  2018-12-05 11:52:14   조회: 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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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엘리자베스 헨더슨 선교사 / Lois Elizabeth Henderson

I. 기본사항

1. 이름 : Lois Elizabeth Henderson
2. 생년월일 : 알 수 없음
3. 출신 및 소속 : 미국 북장로교
4. 학력 : Moody Bible Institute of Chicago
5. 경력 : 1922년 10월,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1922-29년, 서울 외국인학교에서 교사로 봉직
1929년, 선교사직 사임하고 귀국
6. 가족사항 : 귀국 후에 시놋트(W. Sinnott)와 결혼
7. 저서 : [논문] Is Foreign School Teaching Missionary Work

II. 선교사 소개(Lois Elizabeth Henderson)

1. 신학생에서 선교사로
헨더슨(Lois E. Henderson)에 대한 정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몇 년 정도 교사로써 선교사로 지내다가 귀국해서 결혼한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어렵사리 그녀에 대한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1920년 8월 16일에 시카고의 ‘The Seattle Star’이란 신문기사에 의하면 그녀는 1920년 8월 13일 시카고 시카고 무디 성경 연구소 (Moody Bible Institute of Chicago)를 졸업 한 70 명의 반원 중 한 명으로 소개하고 있다. 졸업한 그 해 가을, 그녀는 Washington주의 Bellingham에 있는 일반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한국에서 교사가 될 준비를 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Lois E. Henderson은 1922년에 북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서울 외국인학교에서 교사로 지내다가 1929년에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귀국하여 후에 W. Sinnott와 결혼하였다.

2. 서울외국인학교에서 교사로 섬김

(1) 초기 한국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상황
서울 외국인 학교는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 선교사들의 자녀교육을 위해 설립된 학교이다. 초기 한국선교사들의 가장 큰 곤경의 하나가 자녀교육문제였다. 그들을 교육시킬 만한 학교가 없었고, 또 하나 이질적 문화권 속에서 자신들의 문화 양식과 지식을 어린 자녀들에게 전해주는데 있어 특별한 주의가 요구되었기 때문이었다. 초기에는 주로 선교사들의 부인, 즉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개별적으로, 혹은 선교부(Station)별로 그룹을 형성하여 교육을 담당해왔다. 이런 기본 교육 과정이 끝난 후에는 이미 선교사들의 대거 진출로 그들 자녀를 위한 외국인 학교가 개설되어 있는 중국의 지푸(Chefoo)나 아니면 미국, 본국으로 보내 교육시켰다.

(2) 평양외국인학교
본격적인 한국에서의 외국인 학교는 1900년 평양에서 비롯되었다. 1899년 2월에 평양 주재 선교사 베어드의 집에서는 베어드 부인의 주선으로 자녀교육을 위한 자모회(Parents Association)가 조직되고, 이를 추진하였다. 1900년 6월 15일 평양에 근거지를 둔 장로교와 감리교 등 5개 교단연합체에 의해 마펫 선교사 사택 뜰에서 6명의 학생으로 학교가 시작되었다.
첫 교사로는 모리스부인(Mrs. C.D. Morris)이 가르쳤다. 그해 곧 작은 초가집을 마련하여 교실로 정했고, 1902년에는 여교사 암스트롱(M. Armstrong)이, 1907년에는 스트랭(S. Strang)이 차례로 부임하였다. 교육과정은 초등과정에 치중하였으나 1903년부터 고등과개설이 시작되었고 1914년에는 기숙사를 건축했다. 1921년 종전의 기숙사를 크게 증축하는 한편, 현대식 새 교사를 완공하므로 한국 굴지의 외국인학교로 발전하였다.
평양 학교는 서울 학교보다 규모도 크고 역사도 오래되어 해방 전까지 한국은 물론 동양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다. 서울외국인학교와의 친선 운동경기에서도 늘 평양학교가 우수하여 두 외국인 학교는 해방 전까지 서로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발전해 왔다. 1935년 당시에 초등과와 고등과를 합친 총 재학생수가 남녀 425명에 이르고 있는 등 계속 발전하였으나 1938년 이래 일제의 선교사 탄압, 추방령으로 학교도 쇠퇴하였고 모든 선교사가 한국을 떠남과 함께 자연히 이 학교도 폐쇄되었다.

(3) 서울외국인학교
한편 서울에서도 별도의 외국이 학교가 시작되었는데 1901년 헐버트 부인이 15명의 학생을 모아 조선호텔의 방 하나를 빌려 개설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2년에는 전 벨기에 영사관 건물로 교실을 옮겼고, 이어 「Old Moore House」, 조선은행 건물 등으로 계속 이전했으며 중국 지푸 외국인 학교에서 가르치던 콜벳,(G.Corbett) 그리고 스크랜톤(A. Scranton) 등이 교사로 계속 봉직했다. 마침내 1912년 4월에 선교사 부부들로 구성된 자모회가 조직되고 이를 발전시켜 서울외국인학교기성회(Seoul Foreign School Association)를 만들었다.
에텔 언더우드는 서울외국인학교 첫 원장이자 교사로 1912년 가을 한국에 도착했다. 서울외국인학교는 그해 4월 감리교 선교사 찰스 드밍(Charles Deming)의 지도하에 학교설립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고 베재학당 건물에 교실을 정하고 18명의 학생들로 개원하였다. 교실 하나에 교사도 언더우드 부인(E. Van Vagoner )이 전부였다. 12월에는 학생 수가 27명으로 증가하는 성공적인 출발을 하였다. 그러나 혼자서 12학년을 모두 맡아 교육을 시켜야 했다. 게다가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어린 학생들이 좋아하는 등반이나 장거리 소풍을 갔다. 때문에 어린 학생 하나를 등에 업고 3마일(4.8 킬로)을 걷기도 했다. 그녀는 계약이 만료되어 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4년 동안 관리인(janitor)의 일만 빼고 거의 모든 학교일을 혼자서 해야 했다. 4년 동안 그녀가 가르쳤던 학생들과의 관계는 그녀가 외국인 학교를 그만둔 후에도 계속 이어져 그녀가 불의의 사고로 숨을 거둘 때까지 계속 서신을 주고받았으며 그녀가 사망한 후에는 남편인 언더우드 박사와 서신을 주고받았으며 마치 친어머니를 잃은 아이들처럼 에텔의 갑작스런 죽음을 슬퍼하였다.
서울외국인학교는 에텔의 다섯 자녀가 모두 수학하였고 그들의 자녀들 역시 모두 외국인학교를 다녔다. 에텔의 아들인 리처드 언더우드(Richard F. Underwood 원득한, 1927-)는 서울 외국인학교 교장을 역임(1961-1992)하였고 그의 아내 캐롤 언더우드(Carol Underwood)는 음악을 가르쳤다. 그의 맏형 호레이스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의 아내 조안 데이비슨(Joan Davidson Underwood)도 외국인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들의 며느리이자 아들 호레이스 H. 언더우드(원한광)의 아내 낸시 언더우드(Nancy K. Underwood, 원은혜)역시 교사로 봉직하여 언더우드 가와 서울외국인학교는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1914년에는 첫 졸업생(초등과)를 배출했고 1919년에는 여교사 보이스(F. Boyce)가 고등과를 개설했다. 그때까지는 연평균 50여명의 학생이 재학했고, 졸업생수는 19반, 119명에 이르렀다. 하이디(G. Hardie), 홉킨스(S. Hopkins) 선생 등이 계속 가르쳤고, 1923년에는 새 건물을 마련하여 이전했다. 이때부터 학교는 전성기를 이루어 연평균 82명 이상의 신입생이 입학했고, 1931년에는 96명이나 새로 들어왔으면 이때는 전임교사 5명, 강사 3명이 함께 봉직했다. 학교의 역사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고용된 40명의 교사 중, Lois Henderson은 선교사 멤버로써 미국 장로교회의 선교부로부터 5년 동안 후원을 받았다.

(4) 교육선교에 대한 당시 이해
선교사역에서 교육은 필수적인 부분이었다(마 28:19-20). 국내사역뿐 아니라 해외 선교사역에서 교육과 선교는 함께 추진되어 왔다. 학교는 지난 200여년의 근대 개신교 선교역사 초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한 선교적 도구로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해왔다. 1910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에서도 교육선교는 선교활동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해왔다. 전통적으로 선교지에서 추진된 교육사업은 (1)현지교회지도자 양성, (2)사회 개선을 위한 수단, (3)비그리스도인 학생에게 전도하기 위한 3가지 목표로 진행되었다. 미국 시카고 복음주의 신학대학원의 테드 워드(Ted Ward)교수는 선교역사에서 선교사들이 학교를 세우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었으며 한국에 온 선교사들도 많은 학교를 설립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5) 해방직후 10인위원회의 재건활동
1946년 3월에 10인의 개신교 선교사 가운데 플레처와 코엔 그리고 구호책임자였던 빌링스는 선교부를 시찰하는 조사관의 자격으로 입국허가를 받았다. 입국허가의 명분이 밝히는 것처럼 이들은 앞으로 각 교단의 선교부 재건을 위해 현장을 조사하고 선교사의 입국을 미군정과 협의할 예정이었다. 가장 먼저 입국한 위원은 제7안식교의 랄프 와츠(Ralph S. Watts)로 3월 중순이었다. 그리고 4월에 입국한 빌링스와 5월에 입국한 플레처를 제외한 나머지 위원들은 7월 1일에 인천항으로 입국했다. 7월 1일에 입국한 8인의 위원들 가운데 동야선교회의 하이네스가 빠지고, 감리교 선교사 로이드 스나이더(Loyd Snyder)가 입국했다.
10인위원회가 맡은 임무 중 하나는 선교사 자녀의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일이었다. 한국위원회는 10인위원회 가운데 북장로교, 남장로교 그리고 감리교에서 1인씩 3인을 선발해 선교사 자녀가 다닐 서울외국인학교(Seoul Foreign School)의 설립과 운영을 맡도록 했다. 북장로교 해외선교부 존 후퍼는 학교운영과 관련된 문제를 재한민국인학교(American School in Korea)의 전직 교장이었던 랄프 라이너(Ralph O. Reiner)와 함께 운영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군정 관리들의 가족도 내한이 예상되면서 이 학교는 군정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재건되었다. 개교 예정일은 9월 1일이었다.

3. 외국인교사가 선교사역의 중요한 일환임을 부르짖었던 헨더슨
먼저 헨더슨은 선교사의 정체성과 살아가야 할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받은 자이며, 지상명령은 인종을 넘어 어둠 가운데 속한 모든 자들을 향한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은 골로새서 3장 17절의 말씀처럼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의 완전한 이끄심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들은 마태복음 6장 33절의 말씀처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헨더슨은 고린도전서 12장 29절의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은 각 사람들에게 명확하고 구체적인 사역을 주신다고 한다. 그녀는 “교회와 학교가 직면 해있는 가장 큰 사역 중의 하나이자 문제와 특권은 바로 젊은 사람들을 훈련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이 두 기관은 그의 인생의 몇 년 동안 모든 어린이의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학교교육과 함께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회는 광야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기회이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명령과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선교를 감당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부모님뿐 아니라 선생님도 성격의 깊이를 개발하는 것을 도울 수 있고, 그들로 하여금 삶의 진정한 목적을 목표로 삼고 세상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학교 선생님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외국학교의 가르침은 3 년의 영광스러운 선교 사업이 될 수 있으며, 귀중한 동기에 의해 추진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과목을 가르치면서 무의미한 평범한 사람으로 이 시간을 낭비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바른 동기와 바른 정체성을 가지고 교사역할로써의 선교에 뛰어들 것을 권면하였다.

III. 사진 및 기타자료

1912년 시작된 SFS(Seoul Foreign School); 사진은 1913년 말 학생들

1923년 10월 Plaisant House(모리스홀 일층)
IV. 참고문헌

[헨더슨 선교사 논문]
Henderson, Lois E. Is Foreign School Teaching Missionary Work, KMF, vol20, No.8,
1924.8

[참고논문]
변창욱, “내한 선교사의 교육선교(1884-1940)-한국교회의 교육선교에 주는 선교적 함의”, 선교와 신학, (2015.06)
이종만, “해방 직후 내한 선교부의 연합단체와 그 역할”, 장신논단, (2010.12)
한지은, “언더우드가의 여성선교사들 – 릴리어스 언더우드(1851-1921)와 에텔 언더우드(1888-1949)를 중심으로”, 한국학논집 (2015,9)

[웹사이트]
“서울외국인학교.” . 2018년 11월 7일 접속.
“Lois Henderson.” teach_in_korea/>. 2018년 11월 7일 접속.

[책]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기독교대백과사전 XI」. 서울: 기독교문사, 1984.
A. F. DeCamp. The Korean Mission Field. 서울: 한국기독교사 연구회, 1986.
Rhodes, H. A. History of Korea Mission Presbyterian church U.S.A. Vol. I 1884-1934.
서울: 조선예수교,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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