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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Brown, George Thompson(1921-2014 , SP) / Brown, Mardia H.
 작성자 : 송영훈  2018-12-05 15:37:14   조회: 1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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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Brown, George Thompson (브라운 / 미국 / SP)

한국이름 : 부명광

1. 생몰연도:
1921-2014.1.21 중국에서 출생

2. 학력:
중국 외국인 학교 졸업
1942 미국 데이빗슨대학 졸업
1949 리치몬드의 유니온신학교 졸업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신학교육

3. 경력:
1950 남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광주에서 부임
광주성경학원 원장, 전남대학교 영어성경반 출강
1954 광주성경학원을 호남성경학원으로 개칭, 원장
1960 순천 매산신학교, 광주야간신학, 호남성경학원 통합해 호남신학원 설립
1963 호남신학교로 개칭하여 초대 교장에 취임
1967-68 남장로회 선교부 극동총무로 봉직
1971 호남신학교 초대 이사장
1977 미국 해외선교부 총무로 선임되어 귀국

4. 가족사항:
Brown, Mardia(부인)
- 생몰연도: 1922-2018.4.10.

5. 논저:
Misson to Korea, 1962.

6. 참고문헌:
기독교백과사전 7권
Misson to Korea
장로회호남신학교 요람
신학교육기관자료 (1978)


Ⅱ. 선교사 소개

조지 톰슨 브라운(Brown, George Thompson)

조지 톰슨 브라운(G. Thompson brown)은 미국남장로교 소속 중국 선교사의 둘째 아들로써 중국 지린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양 외국인학교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 하였으며, 미국으로 돌아와 1942년에 데이빗슨 대학을 졸업하였다. 군복무 후에 그는 미국의 리치몬드 유니온 신학대에서 1949년도에 학부를 졸업하고 63년도에 신학박사학위를 받고, 1950년도에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후에 1952년 그의 아내인 미국 남장로교회 하퍼 선교사의 딸 마리아(Brown, Mardia G)와 함께 미국남장로교 총회 세계선교부로부터 한국선교사를 임명받은 후 한국에 내한하여 광주와 목포에서 선교활동을 하였고, 1960년 호남성경학원과 광주야간신학교, 순천매산신학교를 통합해 호남신학원으로 발전시켰다. 이후 호남신학대학교의 원장으로써 한국교회 지도자 양성에 주력하였으며, 그곳에서 1955년까지 신약 교수로 활동하였고 60-67년도에는 학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미국 남장로교 한국 선교의 주역으로 수고하며, 1967년에서 1973년까지 한국의 수도 서울에 있는 서울 장로교 신학대학교에서 성경 신약을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며, 미국남장로교 총회 세계선교부 아세아 총무를 하였고, 1973년부터 1981년까지 그가 세계선교와 한국에서 선교를 통해 경험한 많은 부분을 인정받아 애틀란타로 돌아오는 그가 미국남장로교 총회 국제선교부 책임자로 임명되었으며,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애틀란타의 콜롬비아신학교에서 선교학 교수를 역임하며, 2012년 호남신학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데이빗슨 대학을 졸업한 후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 까지 미국 군인으로 복무하였으며,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에 노스케롤라이나 게스토니아지방에 있는 아담 메모리얼 린우드 장로교에서 목사로 2년 동안 섬기었다. 후에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임명을 받으면서 한국선교의 복음을 위해서 힘썼다. 그에게 있어서 선교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사명은 이 선교를 통하여 지역교회들이 교회 리더를 훈련시키고 훈련 받은 리더들이 많은 훈련생들을 훈련시키고 양육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호남신학대학원을 설립하여 18과목으로 시작하였고 지금은 한국에서 유명한 7개의 신학대 중의 하나인 호남신학대와 신대원으로 신학생이 7,000명이 넘는 학교로 발전하였다. 조지 톰슨 브라운 목사님은 중국과 인맥을 맺은 기독교 조직단체의 첫 번째 책임자로써 지난 24년 동안 중국에 필요한 의학과 국민 건강 사업들을 위해 그의 삶을 헌신해 온 사람이었다. 가장 큰 일을 한 것 중에서 또한 하나는 중국의 어마어마한 대륙에 수술과 치료를 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춘 자동차를 사용할 수 있게 물신양면으로 그들을 도운 점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한국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서 보면, 그는 “한국의 가마는 작은 네 기둥으로 된 닫집으로 가로 세로 3자에 높이 4자 정도로 되어 있으며 메고 가는 두 장대가 있다. 타고 가는 사람은 가마 안의 상자 같은 의자 위에 앉는데 커튼이 있어 밖을 바라볼 수도 있고 찬바람을 막기도 한다....가마꾼들이 매 3마일마다 길 한복판에 가마를 내려놓는데, 그렇게 못하게 하면 안 된다. 그들이 술을 한잔 하거나 담배를 피우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라고도 하였으며, 호남지역의 옛 모습에 대해서 “비옥하고 웃고 있는 계곡의 들머리에 아름답게 자리 잡은 도시”라고 순천을 비유하기도 하였고, “바위가 많은 큰 강변 둑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그림 같은 마을”이라고 목포를 비유하는 등 그가 있었던 한국에 대해서 사랑으로 많은 곳에서 헌신하였음을 볼 수 있다.
그는 1981년부터 1989년 콜럼비아 신학대학원의 세계기독교 선교학 교수로 재임하다 은퇴하였다. 그가 콜롬비아 신학대학원에 부임하여 “내 평생을 통하여 일하고 체험한 세계 기독교는 나의 고향인 장로교회의 삶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만민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분의 화해와 구원을 필요로 하는 모든 백성들에게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도록 우리의 모든 재능과 뜻을 아끼지 않아야 할 줄 믿습니다”라고 하며 한국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으며, 지금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메시지를 남겼다.

메리 브라운(Brown, Mardia)

메리 브라운 여사는 평생 동안 성경 속의 마리아에 대한 한국어 음역 단어인 마르디아라고 불리었다. 메리와 그녀의 두 형제인 조와 조지는 부모님과 부모님의 동료 선교사들의 지도로 목포에서 칼버트 코스라는 홈스쿨링 과정을 통해 배웠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평양외국인학교에 다녔다. 메리는 많은 선교 사역을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여러 한국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일을 하였다. 한국에서 마지막 몇 주간 동안 메리는 빌리 그래함 목사 의 1973년 서울 전도집회를 도왔다. 서울에서의 집회는 빌리 그래함 목사의 집회 중 최대 규모의 인파가 모인 집회였다. 메리는 톰슨 브라운이 애틀란 타의 미국 남장로교회의 세계선교부 책임자로 발령나면서 가까운 디케이터로 이사와 2004년 파크 스프링스 양로원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그 곳에서 살았다. 마운트 버논 스트리트에 있는 메리와 톰슨 브라운의 집은 아그네서 스콧 대학과 가깝고 디케이터 장로교회와 가까워 그들이 디케이터 장로교회에 있는 동안 그곳을 꾸준히 후원하며 도왔다. 그 교회에서 메리는 집사와 장로로 여러 해를 섬기며, 콜롬비아 신학생을 비롯하여 입을 만한 옷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미션 헤이븐 옷장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메리 브라운 여사는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의 빨강머리로 인한 소동이 유명하였는데 그 빨강머리는 결국 순 백발이 되었다. 메리가 초등학교 다닐 적에 어느 날 그녀가 엉엉 울면서 집에 돌아왔다. 아이들 모두가 자기를 뚫어지게 쏘아보면서 메리를 작은 악마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자 메리의 어머니께서 “메리야, 너는 이 사람들이 본 적이라곤 없는 검은 머리가 전혀 없는 유일한 어린 아가씨란다. 네 자신이 이 세상의 모든 빨강머리 어린 소녀들을 대표하는 대사님으로 한국에 와있다고 생각해봐”라는 말씀에 어린 메리의 마음은 녹아지기 시작하였고 삐쳤던 일이 끝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의 가수들이 빨강머리 한 것을 보며 좋아하고, 복음 안에서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 땅에 심어주고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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