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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Sherman, Harry C.(1869-1900, M)
 작성자 : 강수민  2018-12-05 17:00:36   조회: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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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 선교사 기말 보고서
셔먼 선교사 / Harry C. Sherman (1869 - 1900)


I. 기본사항

1. 이름: Sherman, Harry C. / 셔먼 / 미국 / M
2. 생몰연도: 1869. 03. 03. - 1900. 07. 25.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 감리교.
4. 학력: 남 캘리포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5. 한국선교시간: 1898. 02. 14. - 1900. 06.
6. 연표:
1869. 03. 03. 미국 아이오와주 델라웨어에서 출생.
1896. 08. 플로렌스(Sherman, Florence Mills)와 결혼.
1897. 남 캘리포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1897. 12. 28. 부인, 아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에서 배타고 한국으로 항해 시작.
1898. 02. 14. 미 감리교 의료선교사로 내한.
1898. 서울 광혜원에서 봉사하며, 제물포, 원산, 평양, 수원, 공주 등 순회 진료.
1900. 06. 과로로 결핵 진단 받고 귀국.
1900. 07. 25.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망.
1904. 03. 11. 플로렌스 셔먼이 최초의 한인교회인 “L.A. 한인선교회(Korean Mission)” 설립.

7. 가족사항:
부인: Sherman, Florence Mills
자녀: Sherman, Harry M. / Sherman, Chester W.


II. 선교사 소개: 셔먼(Harry C. Sherman, 1869 – 1900)

본 과제는 David Yoo의 「Contentious Spirits: Religions in Korean American History, 1903-1945」, 2010. 의 내용을 중심으로 번역하여 정리한 글입니다.


1. 어린 시절의 해리 셔먼과 플로렌스 셔먼

해리 셔먼과 그의 부인 플로렌스 셔먼은 20세기 초 감리교 선교사로 한국에서 사역했다. 1869년 아이오와주 델라웨어에서 태어난 해리 셔먼은 그가 태어난 지 겨우 두 살 되었을 때, 아버지를 잃었다. 그래서 그의 할아버지와 다른 친척들에 의해서 키워졌다. 해리 셔먼은 14세에 뮤지션으로 미국 육국에 입대했지만, 그의 나이 때문에 곧 귀가조치 당했다. 방황하던 시절이 지난 후에 그는 캘리포니아 주 레드 랜드에 있는 감리교 성공회에 들어갔고, 1890년에 기독교로 개종하여 남 캘리포니아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으며, 의학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해리 셔먼은 로스앤젤레스의 제일 감리교 성공회 교회(First Methodist Episcopal Church)에 출석했으며, 학교에 다니는 동안 양재사와 음악교사로 일하는 플로렌스 셔먼을 만나게 되었다. 캐나다 온타리오 출생인 플로렌스 셔먼은 감리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에 있는 그녀의 오빠를 방문하던 십대 때, 그곳의 날씨와 풍경을 너무 좋아해서 그곳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1894년에 교회에 등록했으며, 해리 셔먼과 상호 신뢰와 음악에 대한 공통 관심사로 서로에게 마음이 끌리기 시작하면서 교회의 적극적인 회원이 되었다.

2. 의료 선교사로 내한한 해리 셔먼과 플로렌스 셔먼

해리 셔먼과 플로렌스 셔먼은 1896년 8월 결혼했다. 그리고 해리 셔먼은 일 년 뒤 1897년에 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셔먼 부부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항해를 시작했다. 그들은 1897년 12월 28일에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서 1898년 2월 14일에 서울에 도착했다. 해리 셔먼은 달성교회에 배속되어 교회의 병원에서 일했으며, 불과 5개월 만에 약 1600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동시에 플로렌스 셔먼은 젊은 여성 교회에 들어가 사역에 합류하여 주일 학교 프로그램에 보조교사로 봉사했다. 그녀는 그녀의 상급자로부터 금방 신뢰와 존경을 받게 되었다. 죠지(George Heber Jones) 목사는 셔먼 부부의 헌신에 주목하면서 해리 셔먼이 자신의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의사를 양성하기를 희망했다고 밝혔다.

3. 신흥우와 이승만과의 우정

셔먼 부부는 1898년부터 1900년까지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훗날에 한국과 해외의 개혁자로서 탁월한 지도력을 지녔던 많은 한국인 친구들과 친분을 쌓았다. 특별히 두 사람, 신흥우와 이승만은 셔먼 부부와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아갔다. 신흥우는 한국 YMCA의 핵심 리더가 되었다. 해리 셔먼은 신흥우가 약속을 잘 지키는 젊은이라는 것을 확신했고, 그래서 그가 의료 선교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이들의 우정은 훗날 로스앤젤레스에서의 한국 선교를 위한 초기 작업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한편 신흥우의 동포이자 동료 개혁가인 이승만도 셔먼부부를 알고 있었다. 1899년 1월 해리셔먼은 이승만에게 한국인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동행해줄 것을 요청했다. 왜냐하면 그는 통역으로서 이승만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감리교 선교 파재 학교에서 숨어서 갑갑하게 지내던 이승만은 괜찮을 것 같아 바람도 쐴 겸해서 따라 나갔다. 두 사람이 일본 영사관에 다가가자 경찰은 서둘러 이승만을 체포했다. 해리 셔먼은 즉시 미국 공사 알렌과 함께 미국 장관을 찾아가 이승만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승만은 한국 환자를 돌보기 위한 자기의 통역이었을 뿐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해리 셔먼을 비롯한 미국의 선교사들은 이승만이 고문을 당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자주 면회를 갔다.

4. 과로로 인해 결핵 판정을 받은 해리 셔먼의 죽음

해리 셔먼은 선교 사역을 계속 하면서 환자를 치료했고, 한국어를 배우려고 노력했으며, 감리교회 선교사역의 복음 전파 활동에 동참하는 일에 그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이로 인해 그의 건강은 급격하게 악화되었고, 결국 결핵 판정을 받게 되었다. 1900년 6월 플로렌스 셔먼과 함께 해리 셔먼이 이미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것은 남부 캘리포니아의 온화하고 건조한 기후로 인해 질병의 상태를 호전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6주 후에 해리 셔먼은 내한한지 2년 만인 31세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랑하는 아내 플로렌스 셔먼과 4살, 그리고 3달 된 두 아이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5. 남편의 죽음 이후 미국 본토에 최초의 한인교회를 세운 플로렌스 셔먼

남편의 죽음을 겪은 플로렌스 셔먼은 그녀가 처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사역을 이어 나가기 원했다. 그리고 그녀는 1904년 3월 한국 사절단을 설립하는 일의 촉매 역할을 했다. 만약에 그녀가 더 이상 한국에서 사역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그녀의 선교 사역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새롭게 시작될 수 있었다. 그녀는 두 아이를 데리고 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며, 1519 Hill Street에 있는 건물을 빌려 미국 본토 최초 한인 교회인 “한인 선교회(Korean Mission)”를 시작했다. 이 선교회가 시작 될 때 모인 사람의 수는 12명이었다. 당시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모든 한인의 수가 20명 정도였기에 적은 수라 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삶 역시 미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공식적인 이민자로 온 이들은 1903년 사탕수수 노동자로 하와이에 온 사람들이었다. 큰 꿈을 안고 하와이에 왔지만 고된 노동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찾아온 곳이 로스앤젤레스였다. 하지만 이들은 집도 먹을 음식도 없었다. 이들이 찾아갈 곳이라곤 교회뿐이었다.

플로렌스 셔먼은 고단한 노동자들과 가난한 유학생들의 현재 모습을 보지 않고 그들이 변화되어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힘쓸 주님의 제자로 여겼다. 그래서 신흥우를 초청하여 USC를 다니게 했고, 주일에는 자기를 도와 설교를 하게하며 한인 유학생들을 데리고 성경공부를 가르쳤다. 이를 통해 기독교 가정을 만들고, 한인 이주자에게 직장을 알선하며, 한인 유학생들의 학업을 돕는다는 등의 목적을 세웠다. 한인들은 주일 아침에는 나성제일감리교회 영어 예배에 참석하고 곧 이어 플로렌스 셔먼이 인도하는 주일학교에 참석했다. 주일 오후 한인 예배 처소에서 한국어 주일예배가 있었는데 신흥우 외에도 유학생인 김우제도 설교를 담당했고, 셔먼이 설교할 경우 신흥우가 통역을 맡았다. 주일예배 외에 토요일 청년회와 금요일 성경공부 반을 운영하며 전도하였다. 이곳에서 훈련된 사람들은 철저한 복음으로 무장한 제자가 되어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였고, 미국의 문화와 교육을 몸으로 익힌 사람들은 조국의 선교자로서 사명을 감당했다. 이민자로 뿌리를 내린 자들은 전 미국에 뻗어 나가 미주 내 한인 이민 사회의 기틀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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