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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Voelkel, Harold(1898-1975, NP) / Voelkel, Gertrude Swallen
 작성자 : 박상숙  2018-12-05 22:20:41   조회: 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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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켈 선교사 / Harold Voelkel (1898-1975)

I. 기본사항

1. 이름: Voelkel, Harold / 보켈 / 한국명: 옥호열(玉鎬㤠)
2. 생물연도: 1898.2.14. - 1975
3. 출신 및 소속: 미국 캘로포니아 출생, 북장로교 소속
4. 한국선교기간: 1929.8. - 1967
5. 연표
1898.2.14. 미국 캘로포니아에서 출생
후른 대학,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수학
1924년 무디성서학원 입학
무디 성서학원에서 스왈른과 만나 한국선교 결심
1929.8 북장로교 선교사로 부인과 함께 내한
경북 안동에 소속되어 전도목사로 활동
지방 순회 부흥회 개최, 성경학교 교사로 전도인 양성
1941.6 일제에 의해 강제 철수
1946.9 재내한, 안동선교부 재개와 교회복구사업 착수
1949 서울로 옮겨 NCC사업 지원
1950.9 미군 군목 신분으로 인천에 상륙, 전쟁포로 전도
1950.10.29 평양 서문교회에서 예배
1.4 후퇴 이후 부산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선교활동
1953.6 반공포로 석방에 지대한 공헌, 거제도고아원 설립
1955-56 한국군목단 고문으로 한국 군목제도 창설에 노력
1957 숭실대학 교수로 성서와 영어 강의, 도서관장 역임
1962 숭실대 명예이사
1963 협동 학장 부인은 여성, 성경학교사업 및 여자포로, 수용소자녀 교육
1967 은퇴후 귀국,
1981.9 부인 사망
6. 가족사항
부인: Voelkel, Gertrude Swallen
자녀: Voelkel, Sarah Lou(딸) 등 4남매

Ⅱ. 선교사 소개

1. 브라질 선교사에서 한국 선교사로!
보켈(Harold Voelkel, 1898-1975)은 미 장로교 선교사이며, 교육가이자 목사였다. 그는 1898년 2월 14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출생하여 후론대학과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수학한 후 원래 브라질 선교사로 갈 뜻을 품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1924년 무디성서학원에 입학하여 공부하는 중 한국 선교사 2세 스왈른(Gertrude Swallen : W. L. Swallen(蘇安論/소안론)의 딸)을 알게 되었다. 그는 스왈른의 권고에 의해 선교지를 프린스턴 동창(송창근, 한격직, 김재준, 윤하영 등)이 있는 한국으로 바꾸게 되었고, 그는 그녀와 1928년 8월 28일 결혼한 후 이듬해 8월 함께 한국에 도착하여 경북 안동에 배정되었다.

2. 일제 강점기 안동에서의 「천막 전도」, 그리고 끊임없는 한국선교에 대한 열정과 노력!
보켈은 안동을 중심으로 전도목사로 활약하였는데, 특히 그는 「천막 전도」를 창안하여 지방을 순회하였다. 그는 1년 9회, 1회에 5일 정도의 부흥회를 개최하여 많은 결실을 맺었다. 그는 농촌전도뿐 아니라 성경학교 교사로서 ‘전도인 양성’에도 크게 두각을 나타냈었다. 그러나 일제말기인 1941년 6월에 강제 송환되었다. 그는 송환된 후에도 일본의 패망이 가까워 오자 한국선교 재개를 위해 1943년 3월 뉴욕에서 개최된 동아시아선교사협의회에 언더우드(H. H. Underwood), 블레어(W. N. Blair), 플레처(A. G. Fletcher) 등과 함께 참석하여 한국선교 재개를 협의하였다.
그리고 해방 후 1946년 9월에 내한하여 아담스(G. Adams), 힐(H. Hill) 등과 함께 다시 안동으로 내려가 ‘안동 선교부’를 재개하고 피폐된 교회 복구사업에 착수하였다. 1949년부터는 선교부의 지시로 서울로 이주하여 NCC 사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3. “반공포로의 아버지” 보켈, 전쟁 포로들을 위한 선교 사역!
보켈은 1946년에 경북 안동과 서울의 NCC에서 일하다가 6.25를 맞게 되었다. 그는 잠시 일본에 퇴거한 뒤 유엔군 군목의 자격으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다. 그는 인천에서 투항한 5만 여명의 공산군에게 선교를 시작했다. 그는 서울에 모인 북장로교 실행위원들과 시작한 일은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파괴된 서울의 선교부 시설들을 재건하고 정상적인 운영에 힘쓰는 일이다. 둘째, 각 교파 선교부 지도자들과 모임을 갖고 범교단 차원에서 재건 문제를 논의했다. 마지막으로 실행위원들은 구호활동을 했다.
1950년 10월 25일 유엔군이 평양에 입성할 때 보켈은 한인 목사들과 선교부 실행위원들 동참했었다. 보켈은 포로 선교를 하게 되었다. 그는 평양, 재령, 함흥, 원산, 흥남 등지에서 포로들을 상대로 전도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트럭에 성서를 싣고 주민들과 포로들에게 나누어 주면 포교활동에 전념했다. 특히 그는 유엔군이 평양에 입성하자 평양 서문교회에서 전란 후 처음으로 예배를 드렸다. 그가 평양에서 약 5만 명의 전쟁포로 가운데 6명의 한국인 목사를 찾아냈었다. 그는 그의 포로 전도사역을 끝까지 협력한 김윤찬 목사를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산동지역 선교사로 사역했던 이대영 목사가 합류하여 성경학교를 개설하였고 전도 집회를 열어 사역에 참여했다. 평양에서 보켈은 전도 활동으로 만난 포로는 3만 명에 이르렀다.
보켈은 흥남으로 철수 하루 전에 1,000명을 태울 수 있는 기차로 기독교인을 함흥에서 흥남으로 이동시키고 미국 선박으로 대피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나머지 2,000명 신자들을 찾는 과정을 겪으면서 극도의 혼란 속에서 신자 3,600명을 태운 기차를 출발 할 수 있었다. 1950년 12월 25일 그는 흥남철수작전 때에 3만 9천명의 교인들과 주민들을 남하하게 하였다. 흥남에서 피난 나온 기독교인들은 학교를 중심으로 정착했고 목회자와 장로들은 북장로교 선교부 소속 세 개 학교를 세우고 운영했다.

그는 또한 중공군의 참전으로 다시 남하하게 되자 부산이나 거제도에 자리 잡은 포로수용소에 가서 참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는데 헌신했다. 아래 도표는 거제도에 머물렀던 기간과 거제도 선교활동의 결과이다.

보켈은 1953년 6월 해외선교부에 사직할 것을 청원했다. 그는 퇴역하기 직전 5월 아스콤, 영천, 대구, 부산, 마산, 그리고 광주의 수용소를 순회했다. 그리고 1년 남짓 휴가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보켈 부부는 피어선성경학교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4. 그 밖의 사역
그는 군목으로서 포로선교 외에도 부산-제주간 피난선 주선, 거제도 고아원 설립 등 많은 공을 세웠다. 그리고 그는 그 후에도 다른 차원에서 전후(戰後) 복구사업을 지원하는 한편 한국 군목제도 창설에 협조를 아끼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쇼우(W. E. Shaw)의 후임으로 1955년부터 1956년 한국군목단 고문직을 맡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피난 온 숭실학교 재건을 위해 헌신하였고, 1957년부터 숭실대학 교수로 성서와 영어를 가르쳤으며 도서관장을 역임하였다. 1962년 숭실대 명예 이사가 되었고, 1963년에 협동학장이 되어 1967년 은퇴 후 귀국하기까지 강단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은퇴한 후 캘리포니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가든에서 은퇴한 선교사들과 함께 말년을 보내며, 은퇴 후에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선교 지원을 계속하였다.

5. 보켈의 저서와 기록
1) 주요 저서 : 「Behind Barbed Wire in Korea, 1953; Open door to Korea.」
2) 보켈은 「The Korea Mission Field」에 Dr. Chisholm의 책인 "Vivid Experiences in Korea Vivid Experiences, william H. Chisholm, The Bible Institute Colportage Ass'n. Chicago. III.
"에 대한 리뷰로서, "Vivid Experiences," a Review of Dr. Chisholm's Book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보켈은 이 책이 한국 선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여러 가지 문화와 상황, 환경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면에서의 공통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하나님 말씀(성경)의 능력(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The reader of "Vivid Experiences" is deeply impressed with the necessity of knowing and using the Bible in soul-winning and the adequacy of God's Word in meeting any and every situation.

3) 보켈은 "Japanese Language Study for Korea Missionaries"라는 주제 3편의 글 중 하나인 "3. Learning a Little Japanese"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이것은 1939년 11월 「The Korea Mission Field」에 실렸던 글로서, 한국선교에 있어서 일본을 조금이라도 배우는 것이 유익하다는 내용의 글이다.

6. 보켈의 가족
보켈이 한국 선교사로 올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하고 평생을 남편의 선교 사업을 뒷받침하면서 한국의 여성사업, 성경학교 사업 및 여자포로와 수용소 자녀교육에 공을 남긴 부인(Voelkel, Gertrude Swallen/옥귀철)은 1981년 별세하였다. 슬하에 4남매를 두었는데 장녀(Sarah L. Voelkel) 역시 선교사로 1954년 내한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1957년 홍콩으로 전임하였고, 장남(Janvier W. Voelkel)도 목사가 되어 뒤를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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