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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서 / Baugh, Harold T.(미상, NP) / Baugh, Emma Walker
 작성자 : 한아람  2018-12-05 23:51:37   조회: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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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교사 프로필 소개
이름: 바우어 (Baugh, Haold T)

경력: 19321.9.28 북장로교 의료선교사로 부인과 함께 내한/
주로 경북지방에서 의료선교활동
1941 세계기도일사건에 관련되어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
1941-45 상해, 필리핀에서 억류생활
해방 후 재내한, 안동성소병원에서 봉직하다 사임후 귀국
미국 오클라호마 미커에 거주

가족사항: Baugh, Emma Walker(부인)


1. 1931년 상황과 바우어 의사와 안동성소병원

바우어 의사가 제 6대 병원장으로 부임한 의료선교는 쏘텔 목사의 노력에 힘입어 1909년 여름 플래처가 의료선교를 안동에서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플래처는 1909년에 원주에 임명되었었으나 원주 지역이 북감리회 선교구역으로 이양되면서 안동에서 봉사하도록 임명을 받았다. 의료선교를 시작한 그의 뒤를 이어 안동 지역에 새롭게 배치된 스미스 부부에 의해 안동지역 성소병원이 세워진다. 이전 병원의 시설이 어둡고 환기와 난방도 잘 되지 않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병원건물을 필요로 하던 찰나, 1912년 뉴욕의 쇼플러 부인으로부터 ‘그녀의 아버지인 베이커를 기념하여 새 병원 신축을 위해 10,000 달러의 기부금을 받았고, 1914년 ’베이커 기념병원‘으로 불리는 성소병원을 신축하였다. 이 병원은 20개의 병상과 남녀로 분리된 진료실 및 대기실을 갖춘 북장로교 최초의 시설이었다.
1914년 성소병원이 지어지고 난 후, 선교사들의 개인적인 여건의 어려움과 자금난으로 인해 병원을 중단하고 재개하기를 반복했고, 1922년부터 1926년까지는 성소병원의 문을 닫기에 이르렀었다. 1914년부터 1922년 문을 닫기 전까지 이 병원에서 치료 받은 환자가 무려 25,000명 이상이었다. 안동 성소병원이 다시 재개를 시작한 것은 바우어 의사 부부의 선임인 버코비츠 의사 부부가 1924년 안동 선교부에 임명되면서 부터였다. 버코비츠 부부가 휴가에서 돌아온 후 1930년 평양으로 이동하였고, 성소병원의 후임으로 1931년 가을 제 6대 병원장 바우어 의사 부부가 부임하여 10년 이상을 근무하였다. 이 때 한국인 의사 두 명이 근무하였는데, 그 중 한명인 백 의사는 1930년부터 10년 동안 근무한 다음 1940년에 1년간 공부를 위해 쉬기도 했다.
바우어 박사가 안동지역 의료선교사로 부임했던 시기는 1931년 가을이었다. 1931년도 당시 한반도의 상황은 안정적인 시기라고 볼 수 없었다. 일제의 신사참배 문제는 1930년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1930년에 있었던 만주사변 이후에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제일 우선순위에 둔 것이 기독교계 학교였다.
성소병원의 진료실적을 보면 1911년에 약 3,200명 이후 점차 증가하다가 1920년 8,400건 이후에는 감소세로 돌아와 1938년에 가서야 1920년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아마도 바우어가 안정되게 근무한 1930년대에는 증가세로 접어들었던 시기로 보인다. 유아진료소는 샤록스 간호사와 바우어 부인이 맡아서 하루 평균 25-30명을 치료하여 1936년 한 해 동안에 1,233명을 진료하였다. 1935년에 3,503병의 우유를 지급하기도 하였다.

2. 세계선교일
세계기도일(WORLD DAY OF PRAYER)은 전 세계 180여 개국 교회여성들이 매년 3월 첫째 주 금요일 함께 모여 세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기도해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초교파 여성 기도운동” 이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각기 처한 곳에서 한 날 한 시에 하나의 주제로 예배하면, 세계기도일, 지구에서는 24시간 여성들의 기도가 이어지게 된다. 이로 인해 교회의 일치와 다양성, 그리고 한 몸의 유기체적 연합이 현실에서 구현된다. 종족, 문화, 전통, 교파를 초월하여 세계여성들은 돌아가며 예배문을 작성하고 함께 예배의 주체로 서 간다. 이 과정에서 세계여성들은 각 나라 여성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성서 본문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배우고, 서로의 관심과 필요, 기도제목을 나눈다. 또한 인종이나 성별, 가진 자와 없는 자, 인간과 자연 간의 공정하지 않은 관계로 인한 불화와 분쟁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와 평화를 이루는 신앙의 실천을 결단한다.
세계기도일은 다윈 제임스(미국 장로교 국내선교 부의장)라는 여성이 1887년 당시 미국으로 새 삶 의 터전을 찾기 위해 유럽과 아시아에서 이민 온 사람들을 위해 기도의 날을 정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890년에는 침례교부녀회에서 해외선교를 위한 기도의 날을 시작했고, 1919년에는 이 두 모임이 연합 하여 선교의 날 기도회를 사순절 첫 금요일에 갖기 시작했다. 1920년에는 캐나다에서 초교파적 기도의 날이 시작되고, 1922년 미국과 캐나다의 기도모임이 연합되었다. 이 기도모임은 선교사들과 해외여행을 하는 여성들을 통하여 세계 각국으로 번져나갔고, 드디어 1927년에 “세계기도의 날”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많은 나라들이 이 기도의 날을 지키지 못하도록 금했으나 여성들은 비밀리에 이 날 을 지켜냈다. 시련 속에서도 굳건히 자라난 이 기도운동은 대륙에서 대륙으로, 바다에서 바다로 뻗어나 가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한국에서 있었던 세계선교일은 한국에서 세계기도일 운동은 1922년경에 시작되었으며, 1930년에는 김활란 선생이 “예수님만 바라보며”를 주제로 세계기도일 예배문 작성에 참여했다. 일제 말기인 1941년에는 <만국부인기도회(세계기 도일예배의 당시 이름)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중국 교회여성들이 작성하고 세계기도일 본부에서 보내 온 예배문의 주제와 내용이 ‘하나님의 나라’와 ‘평화’였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 어지이다”(마 6:10)가 주제 성구였다.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힌 일제는 평화를 위한 기도운동을 항일 민족운동으로 보고 전국적으로 607명을 체포했다. 이처럼 한국에서의 세계기도일은 ‘민족연대’, ‘에큐메니칼연대’, ‘세계연대’, ‘기도연대’의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이 사건 후 선교사들이 추방되고 세계기도일 운동은 중단되었다가 해방 후 다시 돌아온 선교사들에 의 해 재개되고, 1953년에는 “세계기도일 한국위원회”가 구성되었다. 1959년에는 감리교의 이효덕이 위원장이 되면서 점차적으로 조직이 확산되었고, 1963년 “이기는 힘”(손양원 목사님 이야기)을 주제로 한 국이 세계기도일 예배문을 작성해 세계로 보냈다. 1967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창설된 후 1979년부터는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세계기도일위원회가 세 계기도일 한국위원회를 맡게 되었다. 1997년에 “씨가 자라서 나무가 되듯이”를 주제로 한국이 또다시 예배문을 만들어 세계 여성들과 함께 예배했다. 2010년 현재 한국에서는 12개 교단, 100개 지역, 2000 여 개 교회 여성들이 예배로 서로 친교하고 함께 행동하는 연합기도운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18-12-05 23: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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