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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Kinsler, Francis(1904-1992, NP) / Kinsler, Dorothy Woodruff
 작성자 : 정반석  2018-12-06 00:51:22   조회: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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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슬러 부부 선교사 / Francis Kinsler & Dorothy Woodruff Kinsler


선교사 기본정보
1. 생몰년도 - 1904. 1. 13 – 1992. 1. 9. / 미국 필라델피아 출생
2. 학력
● 1925년 메리빌 대학 졸업
● 1928년 프린스턴 신학교 졸업
3. 경력
● 1928. 10. 4.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평양선교부 소속으로 숭실전문학교에서 강의.
● 1930. 9. 12. 부인 내한. 성경구락부를 조직하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아동들을 교육.
● 1940년 일제에 의해서 강제 추방.
● 1948년 재내한. 대구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성경구락부 사역을 재개. 장로회 신학교 교수로서 신약 신학 강의.
● 1952년 장로회신학교 교장 대리직 수행.
● 6.25 전란시에 피난가지 않고 군목제도 창설과 운영에 공헌.
● 1951년, 1957념 미연합장로회 한국선교사 대표 역임
● 1970. 9. 14. 정년퇴직하고 귀국, 롱아일랜드에서 목회 (1976년까지).
● 그 후 한인이민교회를 돕는 사역.
● 양화진 제 1묘역에 안장.


선교사 소개 _ Francis Kinsler – A. K. A. 권세열 선교사

1. 성경을 가르치는 선교사 권세열_성경구락부 사역.
프란시스 킨슬러 선교사는 한국에서 “권세열” 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선교사이다. 그는 앞서 기본정보에 언급한 대로 1928년에 한국에서 선교 사역을 시작했다. 그의 사역 중 가장 두드러진 사역을 딱 하나만 꼽는다면 단연 ‘성경구락부’ 사역이라 할 수 있다. 성경구락부는 종교, 지육, 체육, 봉사의 4대 생활을 지도하는 사회선교 기관이다. 그가 처음에 내한하였을 때에 숭실전문학교에서 강의함과 동시에 거리에서 방황하는 학령 아이들과 불우한 청소년들을 데려다가 성경구락부를 조직하여 성경을 가르치는 사역도 병행하였는데 이 구락부는 처음에는 ‘개척구락부’라고 불렸다가 점차 인원이 많아져 가면서 ‘성경구락부’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구락부는 일주일에 5일, 매일 3시간씩 여러 학문을 배우는 곳이었으며 숭신전문학교의 학생들이 교사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름이 성경구락부라고 하니 성경만을 가르칠 것 같지만 킨슬러 선교사가 운영했던 구락부는 그렇지 않았다. 국어, 역사, 지리 산수 자연 등을 가르치며 아이들이 눅 2:52에 따라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도록 만들었다. 후에는 산수, 자연, 음악, 체조 등을 가르치면서 일반 교과 제도에 버금가는 체계를 갖추었다. 이 구락부는 학생이 5천명이 달하게 되었는데 1938년 문제가 생겼다. 조선총독부가 새로운 교육령을 내린 것이다. 이 교육령은 1938. 3. 에 공표된 칙령 제103호로 제3차 '조선교육령‘ 으로써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교명을 개칭하였다. 종래 보통학교를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 고등보통학교를 중학교, 여자고등보통학교를 고등여학교라고 하였다.
● 교육내용으론 일본어·일본사·수신·체육 등의 교과가 강화되었다. 이때부터각급 학교에서는 학칙개정을 하여 교육목적을 "…국민도덕을 함양함으로써 충량유위(忠良有爲)의 황국신민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바꾸었다.
● 한국어를 못쓰게 금하였다. 각급 학교의 조선어 교과목은 정과(正果)에서 수의과로 떨어졌다. 총독부는 될 수 있는대로 이를 교육과정으로부터 제거하기 위하여, 특히 사립학교에 대하여는 과하지 않도록 하였다.
● 사립중학교 설립을 불허하였다. 총독부는 제3차 교육령을 통하여 "내선(內鮮)인이 다같이 동일한 법규 밑에서 교육을 받는 길을 연 소이"라고 하면서 1938년부터 1943년에 이르기까지 공립중학교 17교, 공립고등여학교 22교를 신설하면서도 사립중학교 설치는 억제하였다. 예를 들면, 황해도 안악(安岳)에 고등보통학교를 설립하려고 지방 유지 백여 인이 50만원의 기본금을 거둬서 설립인가를 청하였는데, 당국은 "공립으로 하라, 실업학교(實業學校)로 하라"고 거절하였다.
● 기독교 계통 학교의 성경 과목을 폐지시켰다.
이런 상황과 신사참배의 강요는 성경구락부 사역이 완전히 중단되게 만들었으며 1940년 킨슬러 선교사 부부는 강제 추방되었다. 그러나 그는 1948년 다시 내한하였다. 돌아와서 대구 등지에서 선교 사역과 함께 성경구락부 사업을 재개하였다. 1949년부터 본격적인 구락부사역이 재개되었는데 서울의 해방교회, 창신교회, 영락교회, 상도동교회, 충무로교회, 동광교회, 효자동교회, 도원동교회 등에 구락부를 신설하여 운영할 수 있도록 협력하였다. 그의 이런 사역은 6.25 사변 이후 교육의 기회를 잃은 많은 아동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으며 이 사역은 날로 커졌다. 1959년이 되었을 때에는 전국에 700여개의 성경구락부가 있었으며 7 만여명 학생이 적을 두고 공부했다. 구락부 사역에서 맺어진 큰 열매들이 있었는데, 구락부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70%가 불신앙인이었으며 이 아이들 중 60%가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구락부의 가장 큰 열매는 자라는 젊은이들에게 기독겨적 이상과 가치관을 부여하고 성경과 관련된 것만이 아니라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구체화 하는 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2. 전쟁안에서의 사역과 군목 제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많은 선교사들이 일본으로 피난하였다. 그러나 킨슬러 선교사는 한국에 잔류하며 한국교회를 돌보았다. 그는 전쟁으로 텅 비워진 서울에서 부활절 공동체 안에서 부활절 예배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전쟁시에 피난을 가야할 때에도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움직이며 대구엣 선교사역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는 인천 상륙작전 이후 UN군의 북진에 따라 평양으로 올라가 숨어있던 사람들을 위로하고 구출하는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는 교제하고 연결되어 있는 교회들을 돕고 예배를 진행하는 사역을 감당하기도 하였다.
한국 전쟁의 발발 때문에 군종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때 킨슬러 선교사는 군목제도를 창설하여 운영하는데 적극적 공헌을 하였다. 이들의 이런 군목사역은 1950년 12월 29일 대통령에 의해 창설되고 운영은 1951년부터 시작되었다. 1969년 권세열(킨슬러 선교사) 목사, 박형규 목사 정순민 소장, 조충원 대령이 모여 군의 정신무장과 군목의 역할에 대한 논문에는 이들이 군목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한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한국의 군목제도는 미국 군목을 본 따 현지에 맞게 적용시킨 것이었다. 본 논문은 군목제도가 생기고 거의 20년이 지난 후에 있었던 좌담회로서 지난 군목제도의 발전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나누는 것이었다. 이 좌담에 킨슬러 선교사가 참석했다는 것은 그가 군목 제도를 설립함에 있어 얼마나 깊이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다.

3. 학교 사역
그는 많은 한국인들을 교육산 선교사라고도 할 수 있다. 먼저 그가 입국한 1938년 그는 숭실전문학원에서 많은 학생들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앞서 길게 언급했던 것처럼 성경구락부를 창설하여 수많은 아이들에게 복음은 물론, 학교와 다르지 않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사실 구락부라는 이름자체는 총독부의 학무국이 제정하는 여러 제한 사항들을 이행하지 않아도 되도록 일부러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구락부에서 가르치는 과목들은 학교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의 과목들이었다. 그는 이 구락부의 숫자를 많이 늘림으로써 대한민국의 차세대들에게 교육의 장을 열어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신학자로서 후학 양성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1951년 장로회신학대학의 전신인 총회신학교의 신약학 교수로서 신약을 가르쳤다. 현재 총신대학교 전자정보 도서관에 남아있는 논문 자료로 “그리스도의 명칭”이라는 논문과 “에큐메니칼운동 약사” 라는 논문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신학자로서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4. 가족들의 사역
킨슬러 선교사는 그의 가족이 한국에서 같이 사역하였다. 그의 아내 Dorothy Kinsler는 (권도희 선교사) 1930년 9월 여성 선교사로 내한하였다. 그리고 선교활동을 하다가 킨슬러를 만나 1930년 평양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성경구락부 사역을 도우면서 고아 자선사업과 장애인 수양부모로서 공헌한 것으로 알려진다.
킨슬러 선교사의 아들은 John, Authur Kinsler이고 딸은 Helen이 있었다. 킨슬러가의 사역은 대를 걸쳐 불과 10년전까지도 지속되었었다. 권오덕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Aurthur Kinsler는 2004년 등대 복지회를 설립하여 북한 어린이를 돕는 사역을 지속하고 있다. 2018년인 현재 등대 복지회는 이사장만 바뀌었을뿐 북한 어린지 지원에 지속적으로 힘쓰고 있다.

5. 後記
이번에 Francis Kinsler에 대해 자료 조사를 하면서, 이분이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아닐까 느껴졌다. 동역(同役)할 때는 자신이 두드러지는 것보다는 항상 다른 동역자를 돕는 위치에 서기를 기뻐하는 사람이다. 반면 어려운 상황에 놓일 때는 홀로 고난과 맞서며 하나님의 양무리를 끝까지 보살피는 사역자이었다. Kinsler 부부와 자녀들을 보면서 하나님 나라에서 가족이 어떻게 쓰임 받아야 하는지 새삼 돌아보는 기회를 얻었다. 부부 사역의 중요성도 실감 했고, 부모의 삶을 지켜보며 성장한 자녀들이 동일한 십자가를 지고 다음 세대를 살아가는 모습이 마치 주님의 교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했다.
이번에 Francis Kinsler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놀라움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조국과 조국 교회를 위해 헌신한 외국 선교사들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는 사실에 우선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우리가 그런 분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지 않았나 하고 부끄러움과 죄스런 마음을 갖게 된다. 조국과 조국 교회에 선한 발자취를 남긴 선교사들을 잘 기억하고 후대에 정확히 전해주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2018-12-06 00: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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