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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Kenmure, Alexander(1856-1910, EFBS)
 작성자 : 이제영  2018-12-06 02:17:04   조회: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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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뮤어 선교사 / Kenmure Alexander (1856-1910)

1. 이름: Kenmure, Alexander / 켄뮤어 /
2. 생몰연도: 1856.4.19.-1910.12.25.
3. 출신 및 소속: 영국, 영국성서공회(BFBS,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
4. 한국선교기간: 1893.5.8.-1904.5.3
5. 연표

1856.4.19.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밀턴에서 출생
1885.12.16.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대학 재학 중 중국 선교사로 지원하여 출국
1886.1.29. 부인과 함께 홍콩에 도착함
1887.2. 마카오에서 선교사로 활동함
1891. 영국성서공회 중국 번역 출판과 회계 업무 담당
1893.5.8. 서울에 방문해 ‘로스 번역본’이 아닌 ‘새로운 한글 성서의 번역’의 필요성 인식
1893.5.16. ‘중국위원회’를 모델로 한국 상임성서위원회(PEBC)조직을 개편하도록 제안
1895.10.18. 만주-한국 담당 임시 총무로 선임
1896.5.20. 영국성서공회 한국지부 개설 및 초대총무로 취임
1900.7. 신약전서 번역
1904. 3공회(영국,미국,스코틀랜드)연합성서위원회 공동총무로 선임
1904.7-12. 일본에서 ‘신약전서’ 출간
1907.12.-1909.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 도착하여 쿠트네이스 슬로칸시에서 목회
1909.-1910.12 밴쿠버 성 바울 장로교회에서 목회
1910.12.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Merritt’s newest church의 창립설교를 맡았으나 병으로 이동하지 못함.
1910.12.25. 향년 55세로 캐나다 벤쿠버에서 사망. Vancouver Mountain View Cemetery에 안장.

6. 가족사항
부인: Annie Holmes Kenmure (1857.5.28.-1937.1.27.)
아들: Alexander Gordon Kenmure(1896.9.10.-1897.1.1)
딸: Katherine Frame Gordon Kenmure(1899.9.20.-1981.8.25.)


II. 선교사 소개: 켄뮤어(Alexander Kenmure, 1856-1910)

1. 한국의 성서사업에 큰 업적을 남김

켄뮤어(Alexander Kenmure, 1856-1910)는 성서번역과 반포(頒布)에 새 길을 튼 인물이다. 알렉산더 켄뮤어(Kenmure, Alexander)는 1856년 영국에서 출생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대학 재학 중 중국 선교사로 지원하여 1885년 12월 16일 영국을 출발했다. 1886년 1월 29일 부인과 함께 홍콩에 도착하여 다음해 1월까지 중국의 남부지방을 여행하다가, 1887년 2월부터 마카오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다. 1891년 영국성서공회가 중국의 남부지부와 중부지부를 통합하면서 그는 번역 출판과 회계 업무를 담당했다.
서울에 도착한 켄뮤어는 1893년 5월 16일 상임성서위원회에 참석하여 영국성서공회, 미국성서공회(The American Bible Society, ABS), 스코틀랜드 성서공회(NBSS)의 세 공회가 연합으로 운영되는 “중국위원회”를 모델로 한국 상임성서위원회(PEBC) 조직을 개편하도록 제안했다.
1884년부터 20년동안 그 협회는 한글 성경의 313500개의 복사본을 인쇄하였고, 이중 21481개는 신약이었다. 독립기구 하에서 1896년부터의 비용은 10126파운드, 수령액은 964파운드에 이른다.

결국 켄뮤어의 서울 방문은 BFBS로 하여금 “로스역” 성경의 반포를 포기하게 하고, 기존의 한국 상임성서위원회를 재편성하는 역사적 전환점의 계기가 되었다.
그 후 1894년 4월. 영국, 미국, 스코틀랜드의 성서공회에서는 세 기관이 연합하여 성서 번역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켄뮤어는 1895년 10월 18일 만주-한국 담당 임시 총무로 선임되었다.
그는 우선 서울에서 영국성서공회 한국지부 개설 준비 작업에 착수하여 1896년 5월 20일 결성하고 초대 총무가 되었다. 그는 서울에 정착하면서 성서번역과 반포사업을 지휘하며 1900년 신약 전체를 번역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1901년 안식년 휴가에 앞서 6년 간의 한국 활동을 1차 마무리하면서 “권서사업은 하나님의 왕국을 앞당기는데 가장 귀중한 도구이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인쇄된 말씀을 풍성히 사용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는 1904년 3공회(영국, 미국, 스코트랜드) 연합성서위원회 공동총무(Joint Agent)로 선임되었다. 1904년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간 일본에 머물면서 “신약 전서”의 원고와 교정지를 일일이 검토하고 인쇄에 넘겨 성서를 계속 출간했다.
그러나 1904년 구약 번역 착수 중 성서번역 사업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신경쇠약(Nervous Breakdown)으로 쓰러져 4월 19일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다.
에비슨 의사의 치료와 장기 요양 권고로 결국 하던 일은 밀러(Miller, Hugh, 閔休) 부총무에게 일임하고, 1904년 5월 3일 서울을 떠나 일본과 시애틀을 거쳐 6월초에 북미 철도로 미국을 횡단하여 빅토리아호로 대서양을 건너 런던으로 돌아갔다.
그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원인에는 ABS 루미스(Loomis, Henry) 선교사 측과의 불협화와 갈등에서 비롯된 주도권 싸움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켄뮤어 선교사는 한글 성서의 새로운 번역과 반포를 통하여 수많은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접할 수 있는 핵심적인 선교사역을 담당한 고마운 분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2. “로스 번역본”의 문제점 인식 및 새로운 번역본의 필요성 제기

켄뮤어(Alexander Kenmure, 1856-1910)는 1893년 5월 8일 서울을 방문하게 되었다. 한국 방문 길에 만주 심양에서 성서를 번역하며 활동하던 로스(Ross, John, 羅約翰)목사를 만났다. 이때 “로스 번역본” 성경은 반포에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성경 내용이 한문체(漢文体)가 많고, 용어에 북쪽(義州) 지방성이 두드러지며, 번역상의 오류와 인쇄 등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그는 한국 방문 길에 “로스 번역본”이 아닌 “새로운 한글 성서 번역”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한편 언더우드 선교사도 1890년 로스역의 무용성을 앞장서 주장하며 “빠른 시일 내에 새 번역본이 나와야한다.”고 역설한 바 있었다. 그리고 헐버트(H. B. Hulbert)선교사에 의해서도 비슷한 지적이 제기되었다. “한국어는 중국어나 일본어와는 완전히 다르므로 순 한글 성경의 번역과 인쇄가 필요하다.”고 했다(자료: 대한성서공회사).


3. 영국성서공회와 미국성서공회와의 갈등

처음에 각 공회는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20세기초의 한국의 성경사업은 번역·출판·반포 등에서 협조해야 할 일이 많았으나 실제적으로는 경쟁관계에 있었다. 일·러전쟁의 전개와 선교활동에 대한 한국 정부의 심한 통제 등은 선교부들과 성서공회들이 단결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따라서 1904년 한국성서위원회가 구성되고 연합총무에 켄뮤어가 임명되는 것을 계기로 1907년까지 3공회들의 사업상의 불일치로 1908년 연합사업은 해체되고 말았다.
한국에서는 특히 영국성서공회와 미국성서공회의 갈등이 계속되었다. 이 문제는 한국에 있는 지부가 해결해야 하기보다는 런던과 뉴욕의 본부에서 나서야 할 문제였다. 런던과 뉴욕은 필리핀과 한국의 사업을 고려하여, 필리핀에서 영국성서공회가 물러나고 한국에서 미국성서공회가 물러나는 것으로 조정하였다. 따라서 1919년부터 한국의 성경사업은 영국성서공회의 독점적인 관할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4. 전국적인 성경 배포

켄뮤어에 의해 재번역된 성경은 전국적으로 배포되었다. 캔뮤어는 많은 동역자들을 통해서 성경을 배포했다. 특별히 성경 배포는 조선 여성들의 눈물겨운 헌신으로 가능했다. 1896년에는 260개의 복사본을 배포한 여자가 있었고, 1903년에는 21명의 여성이 3896개의 복사본을 배포했다. 영국성서공회는 여성들에 헌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여성들은 세례를 받을 때 세례명을 함께 받았다. 한나, 도르카스, 수산나, 줄리엣, 코델리아는 그들의 복사본을 묶어서 마을에서 마을을 다니며 성경을 전하러 다녔다. 때때로 그들이 다녔던 거리는 150마일 정도 되었다. 여성들은 항상 이상적인 성경 배포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발에 못이 박혔던 것을 생각하며 강을 건넜고, 산을 넘었고, 거의 먹지 못했고, 강행군을 펼쳤다. 결국 그들은 탈진하여 발병이 나기도 했다.
여성들은 환영받지 못했던 장례식장, 결혼식, 생일잔치, 굿판, 성황당까지 가서 복음을 들을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매년 수천명에게 생명의 말씀을 읽어줬다. 뿐만아니라 여성들은 귀신들린 자들을 자유롭게 했고 무당, 박수들과 같은 악한 세력들의 공격들을 떨쳐버렸다. 여성들은 남자들이 전혀 가볼 수 없는 곳을 갔고 남자들이 시도할 수 없었던 일을 성취했다.”
여성들의 헌신으로 성경 배포 범위는 남쪽으로는 제주도, 북쪽으로는 두만강을 넘어서 시베리아까지 넓어졌다. 켄뮤어와 여성들의 헌신으로 성경이 전국적으로 배포되었다. 성경이 배포 되면서 악한 영이 물러가고 사람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5. 한국의 성서주일 시작

켄뮤어는 한국에서 성서주일을 처음 시작했다. 성서주일은 18세기 영국에서 성경 무료 보급 운동 이후 제정됐었다. 성경 연구와 보급을 위해 매년 12월 둘째 주일에 지켜지는 성서주일은 한국에서는 1899년 5월에 처음 시작되었다. 켄뮤어가 시작한 성서주일을 통해서 서울 안에 있는 5개의 자국어 신문 중 3개 신문의 편집자들이 성서 번역에 도움을 줬다.
켄뮤어는 “한국 성도들이 서양으로부터 받은 성경을 통해 구원받았으니 이제 지구촌 이웃에게 그 은혜를 돌려주자”며 성서주일을 지키자고 주장했다. 켄뮤어는 한국 교회가 받은 복음에 감사하며 복음을 받는 국가에서 선교를 하는 국가가 되는 것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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