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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Torrey, Reuben Archer, Jr.(1887-1970, NP) / Torrey, Janet Mallery
 작성자 : 다니엘정  2018-12-06 03:08:49   조회: 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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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이 선교사 Torrey, Reuben Archer, Jr.

1. 이름 : Torrey, Reuben Archer, Jr. / 토레이 선교사
2. 출신 및 소속 : 미국 / 북 장로교.
3. 생물 연도 : 1887-1970
4. 한국 선교 기간 : 1952-1959(7년)
5. 연표
1913-1951. 북 장로교 선교사로 중국에서 공산화 때까지 활동2차 대전 후 교통사고로 오른팔
을 잃음.
1953. 부인과 함께 내한. 서울, 대전, 대구 등 전쟁 부상자에게 복음전도, 자활직업훈련. 대전
에 정착하여 직업재활센터 건립, 의수족사업, 직업훈련.
1958. 고령으로 은퇴 후 1년간 더 봉사.
1959. 귀국
6. 가족사항.
부인 : Torrey, Janet Mallery
아들 : Torrey, Reuben Archer III(대천덕 신부)


II. 선교사 소개

1. 중국에서 한국으로

토레이 2세 선교사는 D. L. 무디와 함께 복음주의 운동에 참여한 목사이자 저술가, 무디성경학교의 초대 교장인 루벤 아처 토레이(1856-1928)의 아들이다. 토레이 2세(이하 토레이) 선교사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자신의 이상이었고 목사가 되기를 꿈꿨다. 6살 무렵 그는 중국을 개척한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 박사와 하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토레이 선교사는 “허드슨 박사님은 여섯 살 어린 꼬마였던 내 머리에 손을 얹고 ‘너는 장차 자라서 무엇이 되려느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분명하게 ‘목사님’이라고 대답했다”고 했고, “이후 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는 나의 사랑을 전할 사람들이 적은 해외에서 너를 사용하기를 원한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한국에 오게 됐다고 고백했다.
토레이 선교사는 일찍이 선교사가 될 것을 꿈꾸었고, 처음 그가 가고 싶었던 곳이 한구이었다. 그러나 미국 북 장로교 선교부에 의해 중국으로 파송 받아 1913년에 부임하였고, 중국이 공산화되기 까지 산동 중지에서 활약하였다.
토레이 선교사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을 무렵 중국 선교를 하다가 일본군의 가족과 함께 집에 감금되어 일본군의 포로가 되기도 했고, 제2차 세계대전(1939.9.1-1945.9.2)이 끝난 후, 1945년 토레이 선교사는 미-중 양국의 연락관 임무를 수행하다가 교통사고로 오른팔을 잃었다. 당시 연락담당관 동료 프랭크 투스와 미군 트럭을 타고 중국 쓰촨성 북부 리앙산 활주로를 가고 있었다. 그런데 급커브 길을 가다가 산 계곡에서의 터진 불발탄으로 인해 운전을 하던 동료 프랭크가 급정거를 하였고, 돌고 있던 차 안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오른팔을 차창 밖으로 휘두르다가 앞의 트럭과 충돌하면서 오른팔이 두 트럭 사이에 끼어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이 사고오 인해 토레이 선교사는 미국에서 재활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그는 자기와 같은 처지의 불구자들을 위한 선교를 결심하고 이에 대해 전문 교육을 받았다.
그런 그가 내한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20세기 세계 선교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당시 미국 장로교회는 한국 선교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으로 온 해외 선교사들은 1900년도의 한국의 놀라운 부흥도, 일제 강점기의 아픔도 함께 하였다. 이 후 1950년 6월 25일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고, 이 전쟁으로 팔 다리를 잃은 수족절단 장애인이 급격이 늘어났는데 이런 상황에서 미국 장로회 해외 선교부는 한국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 적임자로 지체장애인이었던 토레이 선교사가 추천되었다(사실 토레이 선교사가 한국으로 파송된 것은, 해외 선교부에 의해서 보내진 수동적인 사역이었다기보다, 그가 한국에 있는 수족절단 장애인들에게 선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

2. 한국에서의 선교 사역

토레이 선교사는 1952년에 한국에 오게 되었고, 서울 및 대전을 오가면서 사역을 하였다. 그 해 9월은 중국 공산당이 퇴각한 해였고, 먼저 한국에서 선교하고 있던 에드워드 애덤스 부인이 서울역에서 토레이 선교사의 의수족 사역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1949년 아펜젤러에 의해 세워진 ‘한국기독교세계봉사회’에서 1952년 10월 하순에 세브란스병원에서 본회지원으로 수족 절단자들을 위한 특별 진료소가 개설되었는데, 당시 이 사업의 책임자가 바로 토레이 선교사였다.
개원 초기 6개월간의 업무보고서에 나타난 진료인원은 209명이며, 73명에게 의수족을 맞추어 주었고, 보행과 수족 사용방법을 훈련시켰다. 1953년에는 대전에서 제 2 사업장을 개설하고 치료뿐만 아니라 의수족 한자들에게 직업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을 건립하였고, 129명이 동시에 수용될 수 있는 기숙사를 대전교회 기독교연합 봉사회 농장 안에 건립하였다. 같은 해인 전주예수병원에도 이 진료소 개설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제 3의 사업장을 개설하였다. 그 후 다시 대구에서도 개설하여 지방에 흩어져 있는 많은 의수족 환자들의 진료를 감당하게 하였다. 특히 초창기에 이 사업이 성과 있게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군병원의 정형외과 의사인 졸던 군의관을 비롯한 의료진들의 봉사적 참여와 시설기재 등의 무상 지원에 기인했다.
토레이 선교사는 의수족 사업뿐만 아니라 고아들을 돌보는 일에도 관심을 가졌다. 한경직 목사가 설립한 22명의 미망인과 82명의 어린이를 수용한 대전의 ‘다비다 모자원’에서 같이 일하면서, 토레이 선교사는 1955년에 대전에 7천 명의 고아들이 있다고 보고하기도 하였다. 그는 “무질서한 많은 거지 소년들이 충분한 음식과 옷이 없이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또 토레이 부부는 킹스베리D. N. Lutzes Paul Kingsbury와 정간모와 함께 1953년 7월에는 직업 센터를 열어서 세브란스 병원과 연계하여 인공 팔다리를 만들기 위한 가게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토레이 선교사의 성품과 인격과 사역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대전에 직업 센터에 배정된 동역자 조지 아담스George Adams 목사는 이렇게 증언했다. “우리가 일하고 있는 어느 날 토레이 박사가 와서 밝은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다. 처음 우리가 그에게 충격을 받았던 것은, 그가 자신의 인공 팔을 창피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연필과 손수건을 가지고 그것을 시연했다 … 토레이 박사는 우리의 고립 생활을 끝내고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 방법을 보여준 첫 번째 사람이었다. 우리는 삶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고, 주님께서 그를 준비해서 우리에게 보내셨다고 확신한다.” 또 이 사업으로 장애를 극복하게 된 한 사람은 “루벤 선교사님은 우리에게 외톨이 인생을 끝내고 정상인이 되는 법을 처음으로 보여준 분입니다. 그분을 통해 삶의 새 희망을 찾았어요. 그분은 주님이 예비하여 우리에게 보내신 분입니다.”라고 고백했다.
토레이 부부의 공식적 은퇴 년도는 1958년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사역하기 위한 또 다른 의수 사역자 존 스틴스마와 그 가족이 한국어와 한국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특별 훈련의 시간을 가질 만큼 끝까지 한국 선교에 열정적이었다. 토레이 선교사는, 그가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매일 목격한 기적과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특권과 기회, 그리고 훌륭한 한국의 교회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간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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