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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Hendrix, Eugene Russell(1847-1927, MS)
 작성자 : 명준호  2018-12-06 03:55:43   조회: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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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드릭스 감독 / (Bishop) Hendrix, Eugene Russell (1847-1927)


Ⅰ. 기본사항


1. 이름 : Hendrix, Eugene Russell / 헨드릭스,E.R.
2. 생몰연도 : 1847.5.27. - 1927.11.11.
3. 학력 : 웨슬리 대학, 유니온신학교 졸업
4. 출신 및 소속 : 미국 미주리주 페이예트 출생, 미국 남감리회 감독
5. 한국 선교기간 : 1895.10.18. - 10.21, 이후 본국에서도 계속 선교지원
6. 연표
1847.5.27 미국 미주리주 페이예트에서 출생
1869 뉴욕 유니온신학교 졸업하며 목회를 시작
1870 목사 안수를 받음
1870~ 캔자스주 리본워스, 미주리주의 메이턴세인트 조셉 등 미국에서 목회활동을 함
1876 마빈 감독과 함께 세계 각지의 선교지들을 순방함
1877-1878 미주리주 글래스고우에서 목회
1878 명예 신학박사 학위 받는 한편, 센트럴대학 학장으로 취임
1879-1886 페이예트의 센트럴대학 학장으로 봉직
1886 남감리회 총회에서 감독으로 선출되어 36년간 봉직. 남감리회 거의 모든 구역을 관장함. 멕시코와 동양 및 남아메리카도 관장함. 명예 법학박사 학위 받음.
1895.8. 윤치호로부터 조선선교 요청 서신을 받음
1895.10.18 리드와 함께 내한, 서울에서 선교개척사업 추진, 알렌과 윤치호의 주선으로 고종을 만남. 한국은행 본점 자리에 선교기지 마련하고 10.21 귀국. 이후 본격적인 한국선교가 이루어지고 그후 계속 선교지원
1908 미국 기독교교회연합공의회 초대 회장
1916 미감리회 총회에 참석하여 뉴욕감독과 함께 우리는 합쳐야한다고 연설
연도미상 남북 감리교회의 합동을 위해 헌신. 밴더빌트대학 이사장 역임. 학교를 교회의 엄격한 통제하에 두려고 하는 감독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교육행정을 펴나감. 또 초교파적으로도 널리 활동함.
1927.11.11. 캔자스시티 마운틴에서 사망
7. 가족
부친 : Adam Hendrix (1814-1876)
모친 : Isabella Murray Hendrix (1820-1909)
부인 : Ann Eliza Scarritt Hendrix (1851-1922)
자녀 : Evangeline Hendrix Waring (1873–1961)
Mary Matilda Hendrix Simpson (1875–1954)
Nathan Scarritt Hendrix (1878–1940)
Helen Hendrix Mohr (1880–1966)




Ⅱ. 선교사 소개 : 헨드릭스 감독 ( Hendrix, Eugene Russell 1847-1927 )


1. 헨드릭스는 선교사라기 보다 선교에 도움을 준 인물

헨드릭스는 미국 기독교 남감리회의 감독이다. 그는 한국에 온 선교사라기 보다는 한국에 남감리회의 선교가 시작되도록 큰 도움을 준 인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시각일 것이다. 그가 한국에 머물렀던 기간은 일주일 남짓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가 남긴 남감리회 초기 한국 선교사에서의 업적이 크기에 한국 내한 선교사의 목록에도 포함되었다고 생각된다.


2. 남감리회 한국 초기선교에 있어서 헨드릭스의 업적

헨드릭스의 업적은 한국에 관심이 없었던 남감리회가 적극적으로 한국 선교를 하는 것으로 공식적 결정을 하게 한 것에 그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물론 남감리회 한국 선교사역의 완전한 시작점은 윤치호였지만, 헨드릭스는 남감리회를 관장하는 권위 있는 감독으로서 큰 결정을 내리고 한국에 선교사 파송 및 선교사역을 진척시킨 것에 위대한 업적이 있다고 하겠다. 이것은 좋은 안건이 있더라도 대통령의 수락이 없으면 아무런 정책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3. 헨드릭스가 선교적 도움을 주게 된 경위

헨드릭스의 남감리회 한국 선교사역은, 윤치호와 리드 선교사가 시작하고 주도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사역을 함께 살펴본다면 헨드릭스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노력을 함께 어우르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하심을 보게 될 것이다.

1890년대 당시 미국 남감리회 선교부는 남북전쟁 여파로 재정이 어려워 중국과 일본에 선교적 지원을 하는 것에도 벅차 한국에까지 지원 영역을 넓히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근데 중국선교를 하면서 중국 선교사역 지역의 확장을 고민하는 시기가 있었다. 이 때의 중국 선교는 상하이와 푸저우, 광저우 등 남부 해안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중국 내륙지방과 북쪽 지방까지 확장하는 것을 고민했다. 또 해안지방에 파송된 신참 선교사 가족들이 중국 남부의 해양성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질병에 걸려 죽거나 본국에 송환되는 일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미국 본토와 기후가 비슷한 중국 북부 지역에 선교기지를 만들어 중국 기후와 환경에 적응한 후 본격적으로 중국 선교에 임하도록 유도하자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 후 1894년에 15년차 선교사 리드가 중국 북부의 선교적 상황을 알아보고자 그곳으로 리서치 여행을 떠났다. 베이징, 산둥, 랴오둥 일대까지 둘러보았다. 리서치 여행이 끝난 후 그의 보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부 지역은 새로운 선교부 후보지로서 기후와 환경은 적합하나 이미 다른 교파와 교단 선교사들이 진출하여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감리회 선교부까지 들어가서 경쟁적으로 선교활동을 할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이런 리드 선교사의 보고를 접한 남감리회 중국선교회나 본국 선교부는 당연히 중국 북부지역 선교확장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때에 한국에서 급하게 중요한 편지 한통이 왔다. 1897년 이 상황에 대해 리드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중국 북부지방 탐사여행에 관한] 보고서를 선교본부에 보낸 후 이 문제를 두고 숙고하고 있던 중에 한국으로부터 아주 급한 요청서가 날아왔는데, 개성에서 중요한 사업을 하고 있다는 이건혁이 보낸 것이었다. 이 편지를 우리에게 전달한 윤치호는 국왕을 위해 봉사하고 있던 교육부 차관이었다. 때도 때려니와 상황도 적절하여 우리는 이것이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결정적인 섭리처럼 느껴졌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국으로] 탐사여행을 시도하기로 결의하였고 그 결정에 따라 나와 헨드릭스 감독이 1895년 10월 13일 상하이를 출발하였다.”

윤치호를 통해 남감리회 중국 선교부에 전달된 개성 사업가 이건혁의 편지는 “한국에 와서 선교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건혁은 윤치호의 이모부였다. 더욱이 1895년 당시 학부 참의로서 고종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던 윤치호를 통해 전달된 이건혁의 선교요청이었기에 한국 선교가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질 만했다. 중국 북부 지역에 마땅한 선교 후보지를 구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던 중국 선교사들로서는 한국으로부터 온 선교요청을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결정적인 섭리”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하였다. 그리하여 1895년 10월 헨드릭스 감독과 리드 선교사가 직접 한국에 가서 선교 가능성을 탐색하게 되었다.

이렇듯 남감리회는 중국 북부 지역을 선교하려 했던 기존의 정책을 바꾸어 한국을 중심으로 한 선교를 모색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제일 선봉에서 이끈 이가 바로 윤치호인데 그는 이미 한국인 최초 남감리교인으로서 중국과 미국의 남감리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유명인사였다.

헨드릭스 감독과 리드 선교사는 1895년 10월 13일 내한하여 정동 아펜젤러 사택에 일주일간 머물면서 선교 가능성을 탐색하고 돌아갔다. 당시 한국 상황은 그들이 내한하기 5일 전인 10월 8일에 일어난 명성황후 시해 사건 때문에 극도로 불안정했고 국내외적으로는 혼란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협판으로 외교실무를 담당하고 있던 윤치호는 사건 수습과 정치 현안에 집중해야 했기에 헨드릭스 감독 일행을 제대로 영접하거나 안내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건혁이 있던 개성 방문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헨드릭스 감독과 리드 선교사는 서울에 머무는 동안 미감리회를 비롯하여 북장로회, 남장로회, 호주장로회 등 다른 선교부 소속 선교사들을 두루 만나 남감리회의 한국 선교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확인하였다.

그뿐 아니라 헨드릭스 감독은 미국 대리공사 알렌의 주선으로 고종을 알현하고 “한국에 온 것을 대단히 환영한다. 한국에 교사들을 보내달라.”는 부탁까지 받았다. 또한 헨드릭스 감독은 마침 방한 중인 미감리회의 월든감독을 만나 두 감리교회의 선교 협력에 대한 논의까지 하였다. 그리고 미감리회 장로사 스크랜턴의 주선으로 스크랜턴 대부인이 살던 달성궁 동편 남송현 지역, 지금 한국은행 본점 자리에 있던 한옥과 부지를 3천 달러(멕시코 달러)에 구입했다. 이로써 서울 한복판, 남대문 안에 남감리회 선교부지가 확보되게 되었다.

결국 선교 탐색을 목적으로 했던 헨드릭스 감독과 리드 선교사의 한국 여행은 선교 착수로 바뀌었다. 모든 과정이 “어떤 힘에 떠밀리듯” 이루어졌다. 그래서 헨드릭스 감독은 서울에 머무는 동안 한국 선교를 결정하고 리드 선교사를 그 개척자로 임명하였다. 그리하여 남감리회의 한국 선교는 결정사항이 되었다.

이처럼 헨드릭스 감독은 선교 가능성을 탐색하러 내한했다가 선교 결정은 물론 선교 부지까지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이 소식을 선교본부 관계자들에게 알렸고, 리드 선교사는 1896년 5월 28일 내한하여 남송현 선교부에 자리를 잡았다. 리드 선교사는 집수리를 마무리한 후 상하이로 돌아갔다가 그해 8월 14일 가족을 데리고 다시 나왔다. 리드 선교사는 가족을 서울에 데려다 놓고 다시 남감리회 중국선교연회에 참석하였다. 헨드릭스 감독이 주재한 이 연회에서 한국지방회가 정식으로 조직되었고 리드 선교사는 초대 장로사로 임명되었다. 드디어 정식으로 한국에 남감리회 선교가 시작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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