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6.23 화 09:15
 
 내한선교사 / Foote, William R.(1869-1930, CP) / Foote, W. R. (Mrs.)
 작성자 : 3-5 배찬미, 서동훈  2018-12-06 12:10:41   조회: 1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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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사항

[Foote, William R.] _ 아버지 푸트
1) 생물연도: 1869-1930.3.19. 캐나다 노바스코시아 출생
2) 학력: 아케이티아 대학 거쳐 1898 핼리팍스의 파인힐 신학교 졸업
1920 아케이티아 대학에서 명예 신학박사 학위
3) 경력
1989.9.6. 캐나다장로교 선교사로 부인과 함께 내한
1898.11 원산의 북장로교 선교사업 이양, 남자학교 인수 원산을 근거로 하여 함경도와 강원도 일대 순회전도
1914 북간도 용정에 선교부 개설, 이주하여 선교 활동
1923 러시아 정부, 러시아정교회의 압력으로 원산으로 철수
1925 평양장로회 신학교 대리 교수, 1927 전임교수로 취임
1928 딸의 병으로 귀국
1930.3.19. 병으로 노바스코시아에서 소천
4) 가족사항: Foote, W. R.(부인)과 1남 3녀, Foote, Jean N.(장녀)
5) 저술활동: [역서] 요한 낙스전; 세계선교운동
With the koreans in manchuria, Missionary Review, 1921.6; 윌리암 C. 뻔스 목사전,
신학지남5.3(1923.7.); 다윗 리빙스턴
신학지남10.1(1928.1);라벌트 멜이 맥체인
신학세계3.3(1918.5); 만국장로회 연합총회
신학지남3.1(1920.4); 맹아로서 유명한 시인, 웅변가급 저작가가 된 한 위인 “졸지 메듸손”
신학지남7.4(1925.10); 모하멧교의 기원과 발전
신학지남7.1(1925.1);사도시대 선교의 방법과 진행
신학지남5.4(1923.10); 삼우엘 루엘풋
신학지남4.1.(1921.10); 아일란드교회와 성바드릭
신학지남1.3.(1918.10);알렉산더 떠푸의 생활
신학지남6.4(1924.10);에베소 총론
신학지남9.1(1927.1);요한 뿔렉의 약사
신학세계3.5(1918.9);요한 웨실니
신학지남9.3(1927.4) 유대선교사기
신학지남8.3(1926.7);장로회선교사업
신학지남 8.4(1926.10); 중생이라
신학지남 6.1(1924.1); 지난 100년동안에 외국 선교회 발전된 것이 주께서 예언한 말씀임을 응하게 되심,
신학지남 7.2(1925.4); 초대교회 선교의 원리
신학지남 1.2(1918.7)

[Foote, Jean N.] _ 딸 푸트
1) 생물연도: 알수없음
2) 학력: 알수없음
3) 경력: 1922 캐나다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평양 외국인 학교에서 5년간 교사로 봉직,
1927 귀국.
4) 가족사항: Foote, William R.(부), Foote, W. R.(모)


2. 선교사 소개

2.1. 캐나다 출신 초기 내한 선교사들 _ 푸트 선교사 이전
캐나다 장로교의 한국선교가 시작된 것은 1898년이지만 캐나다 출신 선교사들이 한국에 입국한 것은 그보다 10여 년 전인 1889년이었다. 한국선교 촉구의 목소리에 응답한 캐나다 출신 선교사들은 '게일' (James Scarth Gale), '로버트 하디'(Robert Alexander Hardie). 하디의 스승 '에비슨' (O. R. Avision), 그리고 '말콤 펜윅' (Malcolm C. Fenwick) 이었다. 박용규, 『한국교회사1』, (서울: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17), 481-483

위에 언급한 캐나다 출신의 초기 선교사들의 사역에 뒤이어, 캐나다 장로교회는 1898년에 교단적 차원에서 한국선교를 시작했다. 사실, 이를 가능하게 한 직접적인 원인은 스코틀랜드계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 '매켄지'(William J. McKenzie)의 사역과 그가 소래에서 맺은 사역의 열매들 때문이었다. 박용규, 483-484, 488

한국선교를 거룩한 소명이자 시대적 요청으로 받아들인 캐나다 장로교는 1898년에 로버트 그리어슨(Robert G. Grierson) 부부와 맥래(D.M.MacRae와 푸트(W.R. Foote) 선교사들이 한국에서의 선교 사명을 감당하도록 파송하였다. 박용규, 484


2.2. 캐나다장로회 출신 첫 내한 선교사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기독교 대백과사전 15권』, (서울:기독교문사, 1996), 977

푸트(Foote, William R.)는 1898년 핼리 팍스에 있는 파인힐 신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해 목사가 되어 캐나다장로회 동해안 연합 노회 파송을 받아 부인과 함께 9월 8일 내한하였다. 푸트는 맥래와 그리어슨과 함께 캐나다장로회에서 정식으로 파송 받은 첫 번째 선교사였다. 그는 1893년에 맥레와 그리어슨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먼저 요코하마로 들어갔다. 조국을 떠나 일본 요코하마에 들어가서야 생필품을 구매하였고, 자신의 출신을 소개했다. 낯선 타국으로 선교를 떠남에 있어 이런 행동들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William Scott, Canadians in korea, (개인출판, 1975), 42
그들은 여권을 소지하지도 않았으며, 생존을 위한 백신 접종이나 생필품의 준비 없이 선교에 대한 뜨거운 마음과 열정을 가지고 한국으로 향한 것이다.

2.3 푸트 선교사 부녀의 한국에서의 선교 사역

2.3.1. 망설임 없이 사역을 감당한 아버지 푸트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기독교 대백과사전 15권』, (서울:기독교문사, 1996), 977

한국에 들어와서 활동하다가 병사한 맥캔지(W.J.McKenzie)의 유지를 계승하고자 황해도 소래로 가기를 희망하였으나 도착해보니 그곳이 너무나 벽촌이어서 캐나다 장로회 선교회 본부를 설치하기에는 부적당한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다 선교회 공의회에서는 관북 지방을 캐나다장로회 선교지역으로 추천하게 됨에 따라 이를 승낙하고 즉시 1898년 11월 4일 남쪽지역의 원산으로 향한다. 맥레와 그리어슨과은 북쪽 지역을 담당하게 된다. 이들은 지역을 나누어 탐사하고, 각각 담당하는 지역을 복음화하기에 힘쓴다. William Scott, 46

당시에 미국 북 장로회에서 관리하던 원산에서의 선교사업을 인계받아 64명의 교인이 있는 교회와 남자학교를 인수한다. 그는 이때로부터 원산을 선교 근거지로 삼아 함경도와 강원도 일대를 순회하며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의 선교영역은 멀리 북간도 지역과 시베리아지역까지 확장되어 1914년 정식으로 북간도 용정에다 선교부를 개설하고 그곳으로 옮겨 만주 및 시베리아 지역의 교포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벌였다. 1922년에는 시베리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 최관홀 등 한국인 목사들과 함께 크게 활약하다가 1923년에 이르러 부득이 원산 러시아 정부 및 러시아정교회의 압력을 받아 부득이 원산으로 철수하게 된다.

2.3.2. 문서를 통해 볼 수 있는 아버지 푸트의 사역
한국감리교회사연구회가 편집한 ‘한국교회사 색인자료집’에 따르면, 아버지 푸트는 영문지 한국선교현장(The Korea Mission Field, 이상 KMF)에 3번 언급된다. 푸트는 KMF 1910년 11월호 273쪽과 1926년 9월호 179-182쪽에 글을 남겼고, 1930년 6월호에는 윌리엄 스콧에 의하여 회고 및 평가되었다.
본 연구팀은 위의 자료 중 KMF 1926년 9월호와 1930년 6월호를 번역함으로, 한국선교에서의 아버지 푸트 선교사의 사역들을 알 수 있었다. 먼저, 푸트가 기록한 1926년 9월호에서는 그가 얼마나 한국에서의 선교 사역을 진지하게 임했는지를 알 수 있다. 캐나다 연합교회의 복음주의적 선교사로 자신을 소개한 푸트는 선교사들이 어떻게 선교 사역을 한국의 정황에 맞게 잘 이루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어떻게 하면 경건한 삶을 살아내고 영적인 부분의 지식을 발전해나갈 수 있을까에 대해 숙고한 결과를 글로 남겼다. 특히,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주이시자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은혜 가운데 성장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하면서 각자 그리스도인 갖고 있는 습관의 힘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며 매일의 삶에서의 경건을 추구했다. 나아가 선교 사역을 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고민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3가지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1)우리는 우리의 소명의 본질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2)우리는 우리의 메시지가 명백하게 이해되는 지를 확인해야 한다. 3)이러한 메시지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가장 좋은 방법으로, 확신이 있게 전달되어야 한다. the Korean Mission Field(KMF),1926년 9월호, 179-180

이와 같은 푸트의 글을 통해서, 본 연구팀은 푸트가 하나님의 말씀의 무오성과 그 능력을 믿고 사역하는 선교사임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또한, 말씀 선포의 중요성과 실제적인 삶에서 말씀 그대로 살아내는 것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을 통해서 그가 복음주의적 정신을 함양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KMF 1930년 6월호에서는 윌리엄 스콧(William Scott)이 푸트에 대해 회고하며 설명하는 글이 있다. 스콧은 푸트를 선배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따라, 사역 중에 죽은 선교사라고 소개하면서 그의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기쁘고 편안한 가정 생활을 보내는 행복을 저버리고 외로운 선교사역의 길을 걸어갔던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스콧은 푸트의 삶과 생각이 한국 중심적이었다고 얘기한다. 이는 푸트가 얼마나 그리스도가 필요한 한국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스콧은 실제로 푸트의 헌신과 사랑은 실제로 한국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자세하게 이야기한다. 스콧에 따르면, 푸트는 학문적으로도 한국에 기여했는데, 실제로 푸트는 강의도 하고 지난 몇 년 동안 교수로 봉사하기도 했다. 또한, 가치를 매길 수조차 없는 귀중한 그의 헌신은 한국어 성경 사전을 준비하는 데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열심히 있는 사역자였던 푸트는 대부분 복음적인 사역에 매진했다. 교회를 방문하고 돌보았고 성경공부를 진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하나 이상의 학교를 설립하였고 실제로 이 학교들 중에 몇몇은 수 년 동안 병원으로 운영되기도 했다. the Korean Mission Field(KMF),1930년 6월호, 131-132

윌리엄 스콧이 아버지 푸트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회고하고 평가하는 글을 통해서, 본 연구팀은 푸트 선교사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한국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였는지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사회적인 책임까지 감당한 선교사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푸트의 글 혹은 푸트를 언급한 문서에서는 가족이나 딸(Foote, Jean N.)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찾을 수 없었다.

2.3.3. 평양외국인학교: 딸 푸트의 헌신 _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을 통한 지속 가능한 선교 도모 기독교대백과사전 편찬위원회, 『기독교 대백과사전 11권』, (서울:기독교문사, 1984), 1314

Foote, William R.의 딸인 Foote, Jean N.은 1922년 아버지를 따라 선교사로 내한하여, 평양외국인학교에서 5년 동안 교사로 봉직한다. 기독교 대백과사전 15권, 978
평양외국인학교는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설립된 학교이다. 초기 한국 선교사들의 가장 큰 곤경의 하나가 자녀교육의 문제였다. 그들을 교육 시킬 만한 학교가 없었고 또 하나 이질적 문화권 속에서 자신들의 문화양식과 지식을 어린 자녀들에게 전해주는 것에 있어 특별한 주의가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주로 선교사들의 부인, 즉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개별적으로 혹은 선교부별로 그룹을 형성, 교육을 담당해왔다. 이런 기본교육과정이 끝난 후에는 선교사들의 대거 진출로 인하여 그들 자녀를 위한 외국인학교가 개설되어있는 중국의 “지푸”나 아니면 미국, 본국을 보내 교육시켰다.
본격적인 한국에서의 외국인학교는 1900년 평양에서 비롯되었다. 1899년 2월에 평양주재 선교사 “베어드”의 집에서는 베어드 부인의 주선으로 자녀 교육을 위한 자모회가 조직되고 이를 추진, 1900년 6월 15일 6명의 아동을 모아 마펫 선교사 사택 뜰에서 학교가 시작되었다. 첫 교사로는 모리스 부인(Mrs. C.D. Morris)이 가르쳤다. 그해 곧 작은 초가집을 마련, 교실로 정했고 1902년에는 여고사 암스트롱, 1907년에는 스트랭이 차례로 부임하였다. 교육과정은 초등과정에 치중하였으나 1903년부터 고등과 개설이 시작, 기숙사를 마련하는 등 점차 한국 굴지의 외국인 학교로 발전하였다. 한국에 도래하는 선교사 수가 계속 증가하고 특히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지방의 선교사업과 교세가 활발한 증가를 보임에 따라 학생 수도 계속 늘어났고, 학교의 역할도 점점 커져야 만했다. 이곳에서 고등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대부분 미국의 대학으로 진학했고 그중에 다시 한국선교사의 대를 이어 내한하는 이도 많았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딸 푸트 선교사가 아버지 푸트 선교사와 마찬가지로 약품과 위생과 교육과 사회봉사의 분야에서 헌신한 캐나다 출신 초기 내한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따랐음을 반증한다. Yoo, Earlier Canadian Missionaries in Korea, A Study in History 1888-1895, (Society for Korean and Related Studies,1987), 86-87
2018-12-06 12:10:41
49.xxx.xxx.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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