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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Steadman, Frederick W.(1871-1948, ETMM) / Steadman, F. W. (Mrs.)
 작성자 : 박미화  2018-12-06 12:55:35   조회: 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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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 사항

1. 이름: Frederick W. Steadman / 스테드맨
2. 생몰연도: 1871.10.10. - 1948
3. 출신 및 소속: 캐나다, 엘라딩기념 선교회(클라렌돈 교회의 독립 선교단체, 침례교)
4. 한국 선교 기간: 1897-1901
5. 연표
1871.10.10. 캐나다 노바 스코티아(Nova Scotia) 출생
1896. 엘라딩기념 선교회에서 선교사로 한국 공주로 파송
1897.09.29. 선교사 브라이든과 서울에서 결혼
공주 사역의 본격화
1899. 강경으로 이동해 사역 시작
강경 침례교회 2대 목사 부임
1901. 4. 펜윅 선교사에게 사역 위임. 한국 선교 사역 종료.
1902. 미국침례교선교사연맹에서 파송. 일본 선교 시작
1933. 선교사역 은퇴
1948. 향년77세로 미시간 렌싱 병원에서 사망

6. 가족 사항
부인: Agnes Taylor Bryden /
자녀: 1명



Ⅱ. 선교사 소개: 스테드맨(Fredrick W. Steadman, 1871-1948)

1. 엘라딩기념선교회에서 파송받다.
잘 알려진 대로 19세기 말 충청도 강경에 와서 선교했던 엘라딩 기념선교회는 미국 북침례교의 총회 차원의 선교 단체가 아니었다. 이 선교회는 그 교단에 소속된 보스턴의 클라렌돈교회에서 개별적으로 세운 독립 선교단체이다. 엘라딩기념선교회는 선교사들을 한국에 파송하는 사역에 소명을 두고, 두 차례에 걸쳐 모두 6명의 선교사를 한국에 파송했다.


고든 목사의 생전에 임명된 이들은 가델린인 것 같고, 이어서 두 번째로 스테드맨(Fredrick W. Steadman), 엘머 그리고 엑클스가 선교사로 지명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1명은 스테드맨의 부인이 되는 브라이든(Agnes T. Bryden)이다. “The Ella Thing Memorial Mission”, 299-300
스테드맨은 1895년 2월 2일 고든 목사의 사망 이후 이 선교회에서 2차로 임명, 파송되었다. 스테드맨은 1896년 4월 한국으로의 입국이 확인된다.

2. 선교사 브라이든과의 결혼
스테드맨은 1896년 25세 나이로 엘라딩기념선교회에서 2차로 한국 공주로 파송되었다. 그는 먼저 1897년 5월 공주에 거주지를 마련했다. 그는 이 선교회를 통해 만난 브라이든 선교사(Agnes Taylor Bryden)와 1897년 9월 29일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아마 브라이든은 엘라딩 선교회 소속 선교사로 파송받았다가 스테드맨과 결혼한 듯하다.

3. 선교의 열매
스테드만 일행은 처음에는 서울의 서북지역에 자리를 잡고 전도용 소책자들을 나누어 주는 등 노방전도와 개인전도를 하였다. 첫 번째 구령의 열매로 서울에서 침례를 받은 이는 지병석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인천 태생으로 서울에서 포목상을 하고 있었고 서울과 충청도 강경을 배편으로 오가며 장사를 하던 사람이었다.

강경 옥녀봉 중턱에 있던 지병석, 천성녀 부부의 집에서 1896년 2월 9일에 첫 예배를 드림으로써 한국 최초의 침례교회인 강경침례교회를 세우는 데 기틀이 되었다. 당시 서울은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이 본거지로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엘라 씽 기념선교회 선교사들은 사역의 중심지를 충청도 지역으로 옮기게 되었다. 폴링 선교사 부부와 가들라인 자매는 강경 북옥동에서, 스테드만 선교사 부부와 엑클즈, 엘머 선교사는 공주 반죽동에서 자리를 잡고 선교활동을 펼쳤다.


폴링 선교사 부부가 일신 상의 사정으로 한국에서의 선교사역을 접고 미국으로 돌아가자, 스테드만 선교사 부부는 강경으로 사역지를 옮겨 칠산을 비롯한 금강 강변의 마을들을 두루 다니며 전도하였다. 당시 최초의 신자들은 지병석, 홍국진, 김치화, 고내수 등이었는데, 이들이 주축이 되어 전도활동을 하였다. 스테드맨의 공주 사역과 관련해서 알려진 사람 중 하나인 오긍선은 1896년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아펜젤러에게 세례를 받아 교인이 되었다.
이후에 1901년 4월 스테드맨이 한국 사역을 마무리할 때 까지 그의 사역에 함께 동역했다.

신앙고백을 하고 침례를 받을 신자들이 생겼지만 침례를 베풀 사람이 없었다. 스테드만 선교사는 당시 안수 받은 목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고민 끝에 군산에서 사역하고 있던 남장로고 선교사 불 윌리암(Bull William, 부위렴) 목사를 초청하여 1899년 8월에 금강에서 침례식을 거행하였다. 이 때 침례를 받았던 수침자들은 홍봉춘, 장교환, 김치화, 고내수, 김도정, 최춘명 등 여섯 사람이었는데, 이들은 칠산침례교회 개척교인들이 되었다.

4. 강경침례교회의 2대 목사로 부임하다.
1899년 같은 선교회 출신이자 강경에서 먼저 사역하던 폴링이 사역을 마치고 본국으로 귀국하자, 본격적으로 스테드맨은 공주에서 강경으로 이동해 사역을 펼쳐나갔다. 그는 먼저 강경 침례 교회 2대 목사로 부임했다.
그는 여기서 사역의 열매를 맺었는데, 12명의 침례교인을 얻는 기쁨을 맛보았다.

5. 한국 선교 사역을 마무리하다.
스테드만 선교사 부부가 1901년 4월에 한국을 떠남으로서 엘라 씽 기념선교회의 한국선교사역은 공식적으로 6년 만에 마무리가 되었다. 비록 6명에 선교사들에 의해 6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사역이었지만, 그 열매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이들 선교사들은 미국의 침례교회 출신이었고 한국 땅에 들어와 신앙고백을 분명하게 하는 신자들에게 침수례(Believer’s Immersion Baptism)를 행했던 침례교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이 사역했던 강경, 칠산, 공주 등지에는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오랜 역사의 침례교회들이 지역교회의 등불로서 존재하고 있다.

스테드만은 사역지를 펜윅 선교사에게 위임하고, 캐나다로 귀국하여 보스톤 스트리트 침례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1902년에 미국침례교선교사 연맹에서 파송받아 일본으로 선교를 나갔다. 그는 일본 도쿄 인근 조후(調布, chofu) 주변에 머물면서 선교 사역을 펼쳐나갔다. 그는 세 차례(1902년 3월, 1903년 11월, 1905년)에 걸쳐 강경, 칠산, 공주 지역을 방문하여 자신이 뿌린 복음의 씨앗으로 인해 결신한 신자들에게 침례를 베풀었고, 교회들이 튼튼한 반석 위에 설 수 있도록 배려하고 격려하였다. 1905년 스테드맨이 마지막으로 공주-강경-철산을 방문했을 때 한국에는 모두 300명 정도의 침례교인들이 있었다.
스테드만은 1933년 12월에 은퇴했고, 1948년에 향년 77세의 나이로 미시간 주 랜싱(Lansing)에서 영원한 안식의 나라로 들어갔다. 스테드맨의 사역은 짧았지만, 그의 사역은 많은 새로운 생명들을 낳은 사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8-12-06 12:5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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