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6.23 화 09:15
 
 내한선교사 / Fontaine Lena Royster(1883-1981, SP)
 작성자 : 마라나타81  2018-12-06 13:20:18   조회: 1005   
 첨부 : 한국교회사_Fotaine.hwp (203776 Byte) 
 첨부 : 가계도.hwp (636416 Byte) 
Fontaine, Lena Royster
폰테인 / 반리라F(女)/ 미국 / Southern Presbyterian 미국남장로회

1. 생몰연도: 1883.02.01-1981.02.18. 미국 버지나아주 출생
->1888년 2월 1일로 고칠 것
내한 선교사 총람은 그녀의 출생을 1883년 2월 1일이라고 말하지만 반리라는 1888년 2월1일에 Virginia Wythe County에서 태어났다. 이것을 명확히 증거하는 것은 그녀의 죽음을 맞이해 치러진 장례예배에 관한 1981년 2월 18일자의 ‘MISS LENA FONTAINE’ 신문 광고이다. 광고는 그녀가 죽음을 맞이한 때가 93세라고 알려준다.

그녀의 아버지는 Clement Royster Fontaine이고 어머니는 Mary Abner Strange Fontaine이다. 두 분은 1866년 2월 14일에 결혼했으며, 슬하에 12명의 자녀(아들6명/딸6명)를 뒀다. 구체적인 가족사항은 필자가 자료들을 취합해서 만든 가계도
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녀의 가족 사항에서 특이한 점은 부모님이 결혼하면서 정착하여 신앙생활을 한 Virginia Wytheville County에 있는 Wytheville장로교회에서 아홉 번째 오빠인 Edward Selden Fontaine을 제외하고 신앙생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도 부모님과 형제들의 전도를 통해 신앙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가족가계도에 표시했듯, 그가 묻힌 장소가 Saint John Lutheran Church Cemetery인 것으로 보아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버지 Clement Royster Fontaine은 어린시절부터 결혼하여 분가하기 전까지 신앙 생활을 한 Virginia Buckingham Country에 있는 New Canton장로교회에서 신앙의 기틀을 세웠을 것이다. 이것이 결혼한 1866년 2월 14일 이후 같은 Virginia주의 Wytheville County 로 이주하여 주님 품에 안길 때까지 신앙생활을 하며 섬긴 Wytheville장로교회에서 곧 바로 Ruling Elder로 섬기게 된 것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숨을 거두기 3년 전에 Elder로 선출될 때까지 신앙생활을 신실하게 하며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전도했을 것이다. 그는 자녀와 아내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을 것이다. 결혼 후 8년 10개월이 지나 아내가 입교교인이 되었다. 이 두 부부는 자녀에게 좋은 신앙의 모범을 보이며 양육했으며, 그것이 반리라의 첫째 오빠인 장남 James Maury Fontaine를 목회자로 키워냈으며, 셋째 William Lloyd Fontaine이 교회의 대표가 되게 했으며, 열째 Janette Forestier Fontaine은 아프리카 간호선교사로 서원하여 섬기게 했고, 열한째 반리라도 한국의 선교사로 섬기게 키워낸 것이다.
반리라 선교사가 한국의 선교사로 올 수 있었던 배경엔, 그녀의 부모님과 Virginia와 Missouri에서 목회한 목사인 큰오빠, 그리고 손위 언니인 아프리카 간호 선교사 Janette Forestier Fontaine와 그 당시 목회했던 Rev. T. P. Barclay가 큰 힘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반라리의 언니는 그녀보다 2년 앞서 하나님의 복음을 간호선교사로서 전파하기 위해 아프리카 Belgian Congo로 갔다.


2. 학력: 1909-1912 스톤웰 백손 칼리지

언제 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반리라 선교사의 집안은 농장을 소유했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남북전쟁에서 활약한 지휘관으로 대위에서 대령까지 고속 승진했다.
또한 할아버지는 변호사이자 군인이었으며 부호였다. 따라서 그녀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학업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She received her formal training at the Stonewall Jackson Institute in Abingdon. She served as a Presbyterian Missionary to Korea”


반리라 선교사는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로 1923년 내한한다.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1909-1912년은 마지막 배움의 시간이었다. 학업을 마친 시기와 내한한 1923년 사이에 11년 정도의 간격이 있다. 그녀가 언제 선교사로 서원했으며, 한국 선교사로 가기로 결정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한하기 전까지 존재하는 11년의 시간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을지는 자료를 근거로 추측할 수 있다.
이들 자료를 통해 그녀는 모교회인 Wytheville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을 것이다. 그녀의 언니와 함께 1912년 ‘Presbyterian Mission School Teacher & Cook’ Virginia Grundy에서 그리고 Presbyterian Home Missions Project의 일환으로 Lumber Camp Children에서 Teacher & Cook으로 섬겼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녀가 신사참배 거부를 이유로 일제가 선교사들을 강제 추방시킴으로 1940년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주일학교에서 섬긴 것처럼 대략 이 11년의 기간 동안 Wytheville장로교회에서 교사로 섬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경험이 그녀가 한국에서 기전여학교사역을 하는 밑거름이 됐을 것이라 생각된다.


3. 경력
:
-1923 남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전북 전주
에서 지방전도사업
에 종사, 기전여학교
에서 교육
-1940 일제에 의해 강제 귀환,
-1948 재내한 _ 군산에서 복음전도자로 활약
-1958 은퇴 후 귀국

반리라 선교사가 내한하여 전라북도 전주로 간 이유가 있다.
그것은 1893년 1월 28일 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의 미션공의회에서 효과적인 한국 선교를 위해 선교지역을 배정한데 있다. 미션공의회에서 호남지방인 전라도와 충청도를 미국 남장로회 선교회의 선교지역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후 입국하는 미국남장로회 선교사들은 호남지방에서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를 따라 선교사역을 감당하게 된다. 반리라 선교사가 내한 했을 때에는 이미 입국하여 선교했던 선배 선교사들의 수고와 노력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많은 선교의 열매들이 맺혔을 때이다. 최초 내한한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 7인과 이후로 연이어 입국한 선교사들이 갈고 닦은 터 위에서 사역하게 된 것이다.
이미 기전여학교는 ‘전목사 긔렴여중학교(記全女, The W.M Junkin Memorial school for girls)’로 학교명을 정한 후 14년의 시간을 지내오며 전주에서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하여 여성들을 교육해 왔고 성장해 있었다. 이런 터 위에 발리라 선교사는 내한하여 선교 사역을 전주에서 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에 저항하며 1937년 10월 5일 자진폐교한 이후로 어디에서 어떤 사역을 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미국으로 강제 귀환될 때까지 그녀는 복음을 전하며 선교사역을 감당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다. 1940년 일본에 의한 강제 추방으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1945년 광복 이후 3년이 지나 1948년 다시 내한한 그녀의 사역지가 달라진 것이다. 그녀가 정착하여 헌신하며 열매 맺은 전주의 기전여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군산에서 사역한 점이다. 1937년 10월 5일 일제의 신사 참배 거부의 일환으로 자진 폐교하고,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한 이후 1946년 11월 26일 4년제 학교로 이미 복교한지 2년의 시간이 지났는데 반리라선교사는 전주로 가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필자가 추측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2년의 시간동안 기전여학교의 교사들이 충원되어 있었을 가능성이다. 다른 선교사들이 한국에 내한하여 정착하여 사역을 하는데 있어 자신이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섬김과 헌신의 실천의 측면이다. 둘째, 미국 남장로회 선교회의의 결정에 따랐을 가능성이다. 개인의 욕심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아닌, 선교회의 소속 선교사로서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역지로 언제든 갈 준비를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다. 군산에도 이미 학교 사역 및 다양한 사역이 전개되고 있는 시점에서 반리라 선교사는 군산행을 택하고 10년의 선교 사역을 감당한 후 은퇴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4. 가족사항
:
반리라 선교사는 아버지 Clement Royster Fontaine와 어머니 Mary Abner Strange Fontaine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6남6녀 중 11번째로 태어났다. 가족 가계도를 살펴보면 알 듯 그녀가 내한하여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1923년~강제 귀환당한 1940년까지 사랑하는 가족 5명을 잃게 된다. 그녀의 내한이 1923년 몇 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해 3월 5일 17년 동안 미망인으로 자식들과 함께 남편의 죽음을 신앙으로 이겨내던 어머니가 하나님 품에 안긴다. 그리고 1928년 8월 28일 목사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던 아버지와 같았던 22살 위인 첫째 오빠 (Rev. James Maury Fontaine)의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1930년 10살 위 넷째 언니(Katherine Strange Fontaine) 1932년 18살 위인 첫째 언니(Mary Belle Fontaine)의 죽음, 1936년 17살 위인 셋째 언니(Annie Elizabeth Fontaine)의 죽음, 1937년 16살 위인 둘째 오빠(William Lloyd Fontaine)의 죽음의 소식을 한국 땅에서 들었을 것이다. 강제 귀환 당한 이후 1942년 15살 위 둘째 언니(Margaret Ballard Fontaine)의 죽음을 경험한다. 미국 땅에서 경험한 것이기에 슬픔의 현장에 함께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재내한한 1948년 ~ 은퇴하여 돌아가는 1958년까지 넷째 오빠(1951년 Benjamin Wade Fontaine)와 셋째 오빠(1953년 Clement Nicholas Fontaine) 2명의 죽음을 한국 땅에서 알게 된다. 그녀의 선교 사역가운데 가족 내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공통되게 그녀는 오빠들과 언니들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는 2억 만리 떨어진 고향에서 그녀를 사랑해주고 돌봐주며 하나님을 더욱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도록 도와 줬던 형제들의 죽는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다. 아마도 그녀의 편지 속에 한국 선교사로의 삶으로 겪는 애환과 어려움, 기쁨과 감격,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과 미안함을 담은 심경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녀가 몇편의 편지를 썼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남대학교 인돈학술원에 24통의 편지가 보관되어 있다.



5. 선교사 조사 과제를 수행하며:
학내 사태로 인해 총신대학원에서 배움을 갖게 되는 마지막 학기는 상당히 짧은 기간으로 끝마쳐지게 됐다. 학기의 초반 4주의 시간을 수강신청도 못하고 개강수련회만 진행할 수 있었다. 학교가 정상화로 가는 진입로에 들어섰지만, 3학년의 학사 일정은 2주 단축되어 끝나기에 실제로 공부할 수 있는 기간은 8주 밖에 되지 않아 너무도 아쉽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과제를 최선을 다해 수행하려고 했지만, 차질 행긴 학사 일정임에도 다른 과목들의 과제들이 조정되지 않아 물리적인 시간의 제약이 많았다. 이로 인해 정보를 알고도 직접 찾아가 취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 점이 너무도 아쉽다. 한편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내한선교사의 정보를 얻을 다양한 자료들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찾아볼 없을 정도로 정보와 자료가 빈약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될 수 있었던 초석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내한 선교사들의 입국과 선교사역, 그리고 들을 통해 서구의 신식 문물과 과학, 교육, 의료, 예술 전방위로 걸쳐 은혜를 입었음에도 그들에 대한 자료가 없다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필자는 반리라 선교사의 자료를 내한선교사 총람과 호남선교이야기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웹서치’를 통해 취합했다. 내한선교사 총람에 나오는 미국남장로교회 선교사들이 누가 있으며, 언제 입국했고, 어디서 사역했는지를 살폈다. 그리고 반리라 선교사의 정보에 나온 키워드들을 통해 그녀가 했을 사역을 역추적하였고, 이것을 토대로 추론하여 재구성했다.
이번 과제를 수행하며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은 1)부흥을 경험한 사람들이 다른 이들에게 부흥을 경험케 해주는 기폭제가 되어 준다는 사실이다. 또한 2)하나님은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을 통해 소식을 전해주고(선교지 정보 공유), 추수할 일꾼을 모으신다는 것이다. 3)하나님의 선교 사역을 수행할 사람들은 경건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길 소망하는 마음을 키웠고 선교지정보를 접했을 때 삶으로 반응한다. 4)이 모든 과정은 모든 성도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교통하심 속에서 예수그리스도와 연합한 몸 된 교회들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여 지속적으로 성취된다.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에 얼마나 크신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셨는지 더 많은 자료들이 드러나고 찾아지길 기대한다. 이 일을 위해 많은 이들이 함께 협력하길 바라고, 이 일을 해줄 많은 관심이 곳곳에서 일어나길 기도한다. 이번 과제를 통한 선교역사 정리에 있어 가장 큰 소득이자 기여는 반리라 선교사의 출생년도를 교정한데 있을 것이다.


6. 참고문헌
:

7. 사진 자료들
2018-12-06 13:20:18
49.xxx.xxx.169


작성자 :  비밀번호 : 


번호
제 목
작성자
첨부
날짜
조회
  선교사 조사 과제시 참고할 사이트 소개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2020-04-16   8209
  [공지] 2020년 1학기 내한선교사 수정 및 보완과제 안내 (1)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4-16   8256
  [공지] 2019학년 2학기 한국교회사 퀴즈와 독후과제   평양대부흥   -   2019-10-10   19753
  [공지] 한국교회사 과제 제출관련   평양대부흥   -   2019-07-02   29220
  로그인 '비밀번호 찾기' 관련 안내   평양대부흥   -   2018-12-06   56167
  [주의 사항] 첨부파일의 이름 작명시 주의 사항 (2)   평양대부흥   -   2017-05-18   81141
1661
  내한선교사/8번/Forsyth, Helen(미상, NP)   문전도사     2020-06-24   17
1660
  내한선교사/32번/Hartness E. Marion(미상, NP)   백운진     2020-06-23   54
1659
  내한선교사/59/Conrow Marion Lane(1894-1986, M)   정지훈     2020-06-22   65
1658
  내한선교사 / B023 / Genso. John Frederick. (NP) / Genso. Mabel Rittgers.   김광     2020-06-21   72
1657
  내한선교사/Colton, Susanne Avery(1878-1972, SP)   정전도     2020-06-16   46
1656
  내한선교사/3학년2반25번/Hankins, Ida(1882-1964, MS)   노경현     2020-05-26   102
1655
  Hamilton, Floyd E 선교사(한국기독교사연구소 편집)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2-28   520
1654
  Pye, Olive Fawcett 선교사(한국기독교사연구소 편집)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2-27   499
1653
  McAfee, Lapsley Armstrong 선교사(한국기독교사연구소 편집)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2-26   540
1652
  Griffis, William Elliot (한국기독교사연구소 편집)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2-25   562
1651
  내한선교사 / Cooper, Harrison(1904-?, SA)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2020-02-21   530
1650
  McCormick, Nettie Fowler(한국기독교사연구소 편집)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1-10   465
1649
  Billings, Peggy Marie 선교사(한국기독교사연구소 편집)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1-08   453
1648
  Maw, Thelma B 선교사(한국기독교사연구소 편집)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1-07   444
1647
  Grubb, William Albert 선교사(한국기독교사연구소 편집)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1-07   465
1646
  Chadwell, Arthur Earnest 선교사(한국기독교사연구소 편집)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1-07   549
1645
  Kostrup, Bertha Alfrida 선교사(한국기독교사연구소 편집)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1-07   460
1644
  Cumming, Daniel James 선교사(한국기독교사연구소 편집)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1-07   450
1643
  Bernsten, Brigador Arnold & Bernsten, E. Johnson 선교사(한국기독교사연구소 편집)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1-07   453
1642
  Bercovitz Nathaniel 선교사(한국기독교사연구소 편집)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0-01-07   485
제목 내용 제목+내용 이름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오늘 : 1,236 / 전체 : 15,404,393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우) 121-884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376-32 | TEL 02)3141-1964 | FAX 02)3141-1984
Copyright by 한국기독교사연구소 기사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 문의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