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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Lampe, Henry Willard(미상, NP) / Lampe, Ruth Heydon
 작성자 : 윤준, 문형철  2018-12-06 14:58:41   조회: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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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프 선교사 / Lampe, Henry Willard (1878-1971)

Ⅰ. 기본사항

1. 이름: Lampe, Henry Willard / 램프 / 남행리(南行理)
2. 생몰연도: 1878 – 1971
3.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교
4. 한국선교기간: 1908-1940, 1946-48.
5. 연표
1878.9.28. 미국 네브래스카주 딕슨카운티 폰카에서 출생
1908.08.20.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서울에서 1년간 설교
1909 선교임지인 평북 선천으로 이전/ 선천선교부 활동
1911 남자고등성경학교 2대 교장으로 재직
일제말 강제 귀국
1946 재내한, 충북 청주에서 선교사업/ 임지가 38 이북으로 청주에서 활동
1947.02.06. 대한기독교서회 이사로 문서선교활동
1948.9 또는 10. 은퇴
6. 가족사항
부인: Lampe, Ruth Heydn (1888-1962)
아들: Lampe, Joseph Heydon (1911-2003)
7. 논저
한국선교보고서 「The First Church of Sin Wiju」
➠ 신의주에 처음으로 세워진 교회에 대한 보고서
한국선교보고서 「The Annual Church Bible Class」
➠ 한국 교회에서 매년 열리는 성경 수업에 대한 보고서
한국선교보고서 「A Parent says Yes.」
아동 교육 사역에 교사 충원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보고서
한국선교보고서 「Im Teuk Ho」
➠ 한국 목회자 임택호에 대한 그의 사역 보고서
한국선교보고서 「After One Year」
➠ 한국 땅에 온지 일년만에 쓴 선교 보고서


Ⅱ. 선교사 소개: 램프(Lampe, Henry Willard, 1878-1971)

1. 한국의 상황
Lampe, Henry Willard(이후로 Lampe)선교사님은 1908년에 입국하였다. 입국 당시 대한민국은 부흥의 물결이 일 때였다. 1907년에는 5년 전보다 2배 인원이 증가했으며, 세례를 받은 사람이 5배 증가했고, 교리문답 수강자는 3배나 증가했다.
당시 또 하나의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것은 여성을 위한 것들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남북 교회 에서 여성교회학교가 생겼고, 또 다른 형태로 성경공부반과 성경기관이 생겼다. 특별히 Lampe 선교사님이 활동을 했던 선천에서 1901년 5월에 첫 성경공부반이 생겼다. 이곳저곳에서 기독교인의 숫자가 늘어났다.

2. 선천에서의 선교
Lampe 선교사님은 입국한 1908년에는 원주를 위한 서울로 할당을 받았다. 당시 원주는 굉장히 부흥하고 있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1년간의 서울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Lampe 선교사님은 선천에서 사역을 하였다. 선천은 굉장히, 매우 부흥하고 있던 곳이었다. 1910년 여성을 위한 성경공부반이 있었는데, 이 공부반은 1300명으로 선천에서 가장 큰 공부반이었다. 많은 여성 기독교인들이 한 방에 모였다. 모두 하얀 옷과 하얀 두건을 썼었다.(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래 참고자료의 1933년 선천여학교학생 사진을 참고하면 이해하기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Lampe 선교사님이 직접적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여성들을 위해서도 성경공부가 이루어졌다는 점으로 보아 선천이 굉장히 부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Lampe 선교사님은 S.L. Roberts 선교사님의 뒤를 이어 남성고등성경학교에서 2대 교장으로 재직하였다. 긴 시간 재직한 것은 아니다. 때문에 이에 관한 특별한 자료는 없다.
선천에서는 특별히 1933년부터 1939년까지 즉 세계대전 전 6년 동안 굉장한 선교구역이었다. 선천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Lampe 선교사님만 광범위하게 북쪽 끝 펵동, 창성 그리고 삭주를 오가며 순회설교를 하셨다.

3. 일제 말 추방
1930년대에 들어와 만주사변(1931)과 중일사변(1937)을 도발한 일제 전시체제의 형성에 따라 한국 주재 선교사들에 대한 감시와 탄압도 가중되었다. 1930년대 신사참배 저항의 배후에 선교사들이 있다고 판단한 일제는 선교사들에 대한 탄압과 회유를 병행하였으나, 「외국인의 입국, 체재 급 퇴거에 관한 건(법령)」(1939)·「기독교에 대한 지도방침」(1940)·「외국인관계 취인·취체 규칙」(1941) 등을 통해 선교사를 비롯한 외국인들에 대한 통제와 단속을 더욱 강화하였다.
1940년 5월 미국 국무성은 전쟁이 예상되는 지역의 미국인들에게 위험을 경고했으며, 1940년 9월 일본 메소디스트 감독인 아베도 주한 선교사에게 철수를 권고하였다. 같은 해 9월 일본·독일·이탈리아가 삼국동맹을 체결하자 10월 주한미국총영사 마쉬(O. G. Marsh)도 본국의 지시를 받아 선교사를 비롯한 가족들의 철수를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11월에는 선교사와 그 가족 189명을 비롯한 219명의 미국인들이 마리포사호(The Mariposa)로 귀국하였다. 이때 Lampe 선교사님도 강제 귀국 당하셨다.

3. 청주에서의 선교
청주는 충청도의 수도이다. 100년 전 한국에서 가장 큰 불교 도시였다. 오랜 시간이 흘러 한국에서 기독교 운동이 시작되었고, 청주는 1866년 큰 박해가 있을 때까지 가톨릭 신자들의 중심지였다.
1945년 5월 선교를 위한 모집이 있었고, 일제 말 추방당하셨던 Lampe 선교사님은 1946년에 재내한 하셨다. 함께 들어온 선교사는 Lampe 선교사님을 포함해 총 7명으로 Group A로 불리는 Emergency Executive Committee였다. 이들은 처음 10월 2일 처음 서울에서 모임을 시작했고 매달 한 번씩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다. Lampe 선교사님은 청주를 할당받았다.
Lampe 선교사님은 1946년 9월에 입국하셨다. 그는 선교사로, 미군을 위한 목사(군종목사)로 사역했다. Lampe 선교사님은 청주에서 2년 동안 사역하시고 은퇴(1948년 9월 은퇴)하셨는데, 2년간 사역하시며 러시안 존(구소련에서 관리하던 북한지역)에서 탈출한 한국 사람들과 자주 만남을 가졌다. 그들은 북한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고 보고했다. 공산주의하에 분배가 이루어졌지만, 사람들은 전보다 더 잘 먹지 못했다고 했다.
2018-12-06 14: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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