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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Smith, Walter Everett(1874-1932, NP) / Smith, Grace Purnell
 작성자 : 충정교회서도사  2018-12-06 16:09:46   조회: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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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본사항

1. 이름 : Smith, Walter Everett / 스미드 / 한국명: 심익순(沈翊舜)
2. 생몰연도 : 1874-1932.7.6.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 출생
3. 학력 : 1895 뉴윈드서 매릴랜드대학 졸업
1897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1898 프린스턴신학교 수료
4. 경력 : 1902. 11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부산에서 10년동안 교회 설립, 전도 등 개척선교사로 활동
나환자를 위한 선교사업
1910 선교부 회장에 피선
1910-17 평양선교부로 전임, 숭실대학에서 강의, 문서선교
1919 귀국, 선교일선에서 은퇴후 미국에서 목회생활
1932. 7. 6 과로로 델라웨어주 월밍턴에서 사망
5. 가족사항 : Smith, Grace Purnell(부인; 1869-1945)과 1남 2녀


Ⅱ. 선교사 소개: 스미드(Smith, Walter Everett, 1874-1932)

1.한국 선교사로서의 준비
스미스 선교사는 북 장로교(NP) 한국 선교사로서 한국명 심익순(沈翊舜)이다. 그는 1874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하였고, 필라델피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891년 뉴 윈드서 매릴랜드대학에 입학하여 1895년 졸업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1897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898년 프린스턴 대학을 수료하였다. 그는 1년이상의 목회훈련을 거친 뒤 목사로 안수 받았으며 이후 자국의 목회보다는 해외 선교사로서 소명감을 느끼고 해외 선교사를 자원하였다. 그리하여 1902년 11월 한국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2. 한국에서의 선교
부산선교부의 아담스(J. E. Adams; 안의와)가 안식년으로 귀국하자 그 후임으로 부임, 이곳에서 10년 동안 경남 전역에 걸친 교회설립•전도 등 개척 선교사 일을 조직하였으며 훌륭히 해냈다. 특히 부산진교회 등은 1904년 당회를 조직하였으며 그의 첫 안식년을 맞이한 1910년에 이르러서는 불과 서넛으로 시작되었던 교회가 1백여개를 넘어서게 되었고, 매우 적극적인 활동가인 그는 안식년을 맞은 그해(1910) 선교부 회장에 피선되었다.
1)본포교회 연혁 중(中) 1911-1920년 부분에 이렇게 기록되고 있다. 1911년 12월 6일 부산진예배당에서 경상노회를 조직하다. 본교회 이현필 장로 노회 총대로 참석하다. (노회장-왕길지 목사, 서기 겸 회계-홍승환 목사) 본표교회는 심익순(沈翊舜, Smith, Walter Everett)선교사의 지경에 소속되다. 당시 이현필 장로는 1885년 7월 25일 경남 창원군 본포교회 설립자인 이종근(李宗根) 영수와 김화일(金化日) 성도의 5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이령교회 김세민 장로의 생질이며 1905년 심익순(沈翊舜, Smith, Walter Everett)선교사의 권서로 임명되어 서부 경남에서 활동하였고 합천교회 조사로 사역하였다.


Gelson Engel
(엥겔 왕길지 선교사) 1868-1954
본포교회 이현필(李賢弼)장로

2)기독교 문헌 총서에서의 기록들
①제 6장 합동공의회시대(合同公義會時代)1901년-1906년 말: 시년(是年) 추(秋)에 거창군 개명리교회가 성립하다. 선시에 박순명, 김종한 외 10여인이 신종하여 교회가 성립되고 선교사 심익순(沈翊舜, Smith, Walter Everett)조사 김주관이 시무하니라.
②김해군 내삼리교회가 성립하다. 선시에 선교사 심익순(沈翊舜, Smith, Walter Everett)의 전도(傳道)로 조종환이 신교후 20리 되난 김해읍교회에 래와하면 예배하고 김성화는 유치화의 전도로 밋고 조종환의 사전에셔 예배하다가 기후에 최가 3간을 매수하야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30명 교인이 예배하더니 후에 무한리교회와 병합되얏나니라.
③김해군 진례면 시례동교회사 성립하다. 최에 선교사 심익순(沈翊舜, Smith, Walter Everett)의전도로 김상범, 김길창 형제가 밋고 신풍리교회로 다니엿고 후에 최경관의 사저에셔 예배하다가 예배당을 시례동에 건축하니라
④동래군 구포교회가 성립하다. 선시에 선교사 심익순(沈翊舜, Smith, Walter Everett)의 전도로 김문익이 귀도하야 가옥을 매수하야 예배당을 건축하니라. 1905년 3월 1일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심익순[월터 스미스(Walter E. Smith): 1874~1932]에게 전도된 김문익(金文益), 박도사 부자 등이 김문익의 집에서 첫 가정 예배를 가진 것이 구포교회의 태동이다. 이 무렵 경상남도 지역은 호주 선교부와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에서 나누어 개척 전도를 했는데, 구포 지역은 북장로회 담당이었다. 1906년 3월 무렵부터 심익순 선교사가 교회를 돌보았다. 1926년 4월 구포동 430-36번지에 구포교회 예배당을 건축[건물 면적 66㎡, 대지 면적 448.4㎡]하였는데, 건립 책임자는 박세택 영수였다


구포교회 첫 번째 예배당
오늘날 구포교회

⑤거창교회 설립은 다음과 같다. 조선 예수교 장로회 사기의 기록을 통해 보면 거창의 첫 교회 성립은 1904년 가을 거창군 고제면 개명리 교회이다. 초기에 박순명(朴順明), 김종한(金宗漢)외 십여 명이 믿어 교회가 성립되고 미국인 선교사 스미스(W. E. Smith : 심익순(芯翊舜)와 조사(助事)(요즘 전도사와 같음) 김주관(金周寬)이 시무하였다. (김주관은 1913년에 부산 초량교회 초대 장로로 장립받았다.) 두번째 교회는 1906년 거창군 웅양면 노현리교회로서 선교사 스미스의 전도로 안덕보(安德保), 김명칠(金明七), 김순일(金順一)등이 믿고 안덕보의 집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조사 오형선(吳亨善)이 시무하였다. 다음으로 1906년 거창군 가조면 마상리교회로 선교사 스미스의 전도로 양진규(梁鎭奎)가 믿고 신자가 점차 많아 교회가 성립하였다. (현재 가조교회로 이어져 온다.) 1970년 거창군 남하면 대야리 가천교회가 선교사 스미스의 전도로 추용경(秋鏞競) 부자(父子)가 주님을 믿고 연보하여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1908년에는 의병의 난으로 거창군 교회가 적지 않은 피해를 받았다. 1909년 거창군 신원면 와룡리교회가 성립하였다. 서울 박응용(朴應用)의 전도로 본동서재에서 40여명이 예배를 드리다가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인도자 김윤명(金潤明)이 근거 없이 의병 혐의로 잡히니 교회가 환란을 입어 겨우 7명이 예배를 드리다가 그 후 부흥하였다.(현재는 교회가 와룡리에 남이 있지 않는다.)
⑥김해군 시산리교회가 성립하다. 선시에 본리 이성관의 모가 동군 금곡리 서명철의 전도로 인하야 밋고 1년간 자택에서 예배 하더니 일반교인이 합심연보 하야 가옥을 매수 하야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선교사 (沈翊舜, Smith, Walter Everett)이 시무하니라.
⑦창원군 웅천 북부리교회가 성립하다. 선시에 선교사 심익순(沈翊舜, Smith, Walter Everett)의 전도로 약간 신도가 초진하야 송화여 사제에셔 예배 하얏고 교회점진 하야 서중리에 예배당을 건축 하얏다가 후에 북부리에 예배당을 이건하니라.
⑧용산교회 : 거창지방에 최초로 복음을 전해준 이는 미북장로회선교부의 스미드(1874-1932) 선교사이다. 그는 1902년에 내한해 북장로회선교부 부산지부에 소속돼 있으면서 7년간 거창지역을 순회전도 했다. 그가 거창지역에 세운 교회는 모두 8개인데 고제면 개명리 교회(1904)는 이 지역 최초의 교회이다. 그는 1912년 평양선교부로 전임해 숭실대학에서 강의했다. 이후 귀국해 미국에서 목회하다가 1932년 7월 6일 델레위어주 웰밍턴에서 과로로 별세했다. 정원길 목사(평택일심교회), 기독교보, 2013, 9, 11일자 기사.
용산리가 위치한 가조, 가북 지역에 설립된 최초의 교회가 스미드가 설립한 가조교회(1906)이다. 용산교회는 스미드 선교사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가조교회 교인들의 전도로 가북에 교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자 당시 거창지역의 순회목사였던 이자익 목사가 1932년에 가북면 우혜리에 가북교회를 설립하게 된다. 이자익 목사는 본래 충남 금산교회의 마부였던 자로서 테이트 선교사의 전도로 예수를 믿고 금산교회의 초대 장로가 됐다. 그리고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제8회로 졸업하고 금산교회의 2대 목사가 됐다. 그는 장로회 총회장을 3번이나 역임했던 매우 존경받는 목사였다. 이자익 목사가 호주장로회선교부 거창지부의 요청으로 1926년 거창지역의 순회목사로 부임해 1938년 거창을 떠날 때까지 자그마치 12년을 거창지역 교회를 돌아보았다. 그 시기에 이자익 목사가 가북교회를 설립했던 것이다. 용산교회는 가북교회의 용산기도소에서 출발했으니 이 마부출신의 목사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용산리에 최초로 교인이 생겨난 것은 1938년경이다. 이때 처음 믿은 신자들은 신만조, 이인수, 조외순, 노구장의 처 모씨, 이씨 등 5명이다. 이들은 모두 여인들이다. 이들은 일제말의 혹독한 식민통치 아래서 남편들의 지지도 없이 10리길을 걸어서 가북교회로 출석했다. 그리고 이들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온몸으로 맞섰다. 급기야 이인수와 신만조 씨는 신사참배 거부로 거창경찰서에 감금되는 등 수난을 당했다. 해방을 맞이한 후, 여인들의 가족과 친지들이 대거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이들 용산리 교인들은 1949년에 용산리 기도소를 설립하고, 이곳에서 새벽기도와 수요예배를 드리면서 주일만 가북교회로 출석했다. 그런데 이즈음 한국 장로교회는 교단분열의 암흑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가조와 가북지역도 예외일 수 없었다. 1952년 4월 경남(법통)노회가 제37회 총회로부터 거부되고 그해 9월 11일 경남(법통)노회는 총회로부터 독립된 총노회를 조직 했다. 경남, 특별히 거창지역은 거창교회 주남선 목사의 영향으로 모든 교회들이 경남(법통)노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가조교회 시무하던 정모 전도사의 선동으로 가조교회와 가북교회가 총회측으로 이탈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법통노회를 지지하던 교인들은 교회에서 내몰리게 됐다. 이렇게 가조교회에서 나온 교인들이 장기리 신천마을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가북교회에서 나온 교인들은 용산기도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이때 이 소식을 보고받은 거창교회 남영환 목사(당시 거창성경학원 교장, 주남선 목사의 후임)는 거창성경학원에 재학 중이던 배영오 전도사를 가조, 가북 지역에 파송했다. 가조, 가북 교회로부터 축출된 성도들을 모으고, 가조, 가북 지역에 교회를 개척해 총회측으로 뺏긴 손해를 만회하라는 사명을 그에게 맡겼던 것이다. 이렇게 파송된 배영오 전도사는 장기리의 교인들과 함께 신천교회를 설립했고, 용산리 기도소에 모인 교인들과 함께 1953년 5월 3일 용산교회를 설립했던 것이다. 후에 신천교회는 교세가 약해 용산교회에 통합되게 됐다. 이렇게 지역의 장자교회인 가조교회로부터 내몰리고, 모교회인 가북교회로부터 거부된 용산교회였지만 출옥성도들이 부르짖었던 그 진리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갔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용산교회는 주남선 목사의 영향으로 설립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용산교회는 미북장로회선교부의 스미드 선교사와, 마부 출신의 이자익 목사, 출옥성도 주남선 목사 등의 영향으로 설립된 교회다. 하나님께서 용산교회를 사랑하셔서 이와 같이 훌륭한 사역자들의 섬김을 통해서 교회를 설립하게 하고, 진리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이다. 용산교회는 이들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다.

⑨함양교회 : 1908년 4월 11일에 심익순 沈翊舜, Smith, Walter Everett)선교사와 김주관 조사가 순회 전도로 함양교회가 설립되었다.

3)그 외의 선교 활동들 : 어빈(Irvin), 빈턴(Vinton) 등과 함께 경상도에 수천명의 나환자를 위해서도 선교사업을 시작했으며 1910년 안식년 휴가에서 돌아와서는 평양선교부로 전임되어 숭실대학에서 강의하는 한편 문서선교사업 및 순회목사로도 활약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그가 두 번째 안식년을 맞이한 1917년까지 근속하였다.
①국내 첫 한센병 치료병원 : 부산 나병원을 설립하였다.(현재는 일신기독병원)

설립자인 북미 선교사 3명의 한자이름(심익순, 어을빈, 사목사), 병원 운영자였던 호주 선교사 맥켄지의 한자이름(매견시)등이 새겨져 있다. 송재호, 부산 cbs.

부산 나병원은 설립 초기 환자가 20명에 불과했지만 병원 폐쇄 무렵에는 650여명이 환자가 공동체를 이룰 정도로 발전했다고 한다.

3. 본국 귀환 및 이후 사역
귀국해서 선교일선에서 은퇴, 미국에서 다시 목회생활을 계속하였는데, 첫 번째 볼티모어에서 그리고 제 1차 세계대전 중에는 프랑스의 YMCA에서 2년간 일했으며 뒤에 델라웨어주 월밍턴에서도 7년간(올리베트 장로교회)에서 시무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일에 열중한 나머지 과로하여 건강을 해치고 결국 1932년 7월 6일 델라웨어주 월밍턴에 있는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맡은일에 정열적이었고 항상 뛰어난 위트와 유모어로 동료들의 긴장을 풀어주기를 좋아했던 스미드는 그의 부인(Grace Purnell, 1869-1945)과이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다. 부인은 스미드와 함께 한국선교에 몸바치다가 함께 은퇴, 1945년 볼티모어 자택에서 76세로 별세하였다.

4. 선교사 연구 관련 사진 모음

5. 선교편지 일부 해석

Itinerating accessories
도보

나는 나의 주제에 대한 불리한 조건과 걸어서 가야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기사에 대한 우선순위를 준데 대한 편집장의 다정한 배려에 매우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처음에 이동해 다니는 방법이 채택된 것에 대한 정책의 어떤 배려에도 감동받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지역의 교회에
나는 나의 순회활동을 걸어 다니면서 시작하는 것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처음에 방문한 곳이 나의 집에서 인접해 있었고 그동안 항상 걸어 다니는 것에 익숙해있었고 그리고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었다. 특히나 사람의 등으로 이동하는 것이 많은 교통수단의 방법인 이 나라에서 그러나 거리가 너무 멀 때는 필수적인 교통수단은 말을 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말을 탈 때 나를 도와 주는 사람이 걸어가고 있을 때 불편함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는 교대로 탔다.
교회의 수가 증가하면서 이동해야하는 거리는 점점 짧아졌다
내가 동물을 타는 것을 거의 즐기지 못할 때 속도가 더 빠른 것은 별로 가치가 없었던 것같다.
교회가 주로 위치해 있는 작은 마을에서 숙박시설을 찾는 것은 어려웠다.


6. 참고문헌


[영어 논문]

- Keer, Edith A. & Anderson, George. the Australian Presbyterian mission in Korea 1889-1941 Australian Presbyterian board of Missions, 1970

- Rhodes, Harry A. ed. History of Korea Mission: Presbyterian church U.S.A Vol. Ⅰ1884-1934 Seoul:Chosen Mission of Presbyterian Church USA 1934; 최재건 역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성교회사 1:1884-1934』 .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9
- Rhodes, Harry A. & Campdell, Archibald. eds History of korea mission: presbyterian Church in USA Vol. Ⅱ, 1935-1959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교육부, 1984

[단행본 및 논문]

- 기독교 대백과사전 편찬위원회, 『기독교대백과사전 제3권』, (용산구: 기독교문사, 1970).
- 기독교 대백과사전 편찬위원회, 『기독교대백과사전 제4권』, (용산구: 기독교문사, 1970).
- 기독교 대백과사전 편찬위원회, 『기독교대백과사전 제5권』, (용산구: 기독교문사,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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