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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Bunce, A. C.(1901-1953, YMCA) / Bunce, A. C.(미상, YMCA)
 작성자 : 서영생  2019-06-13 11:24:25   조회: 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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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기본 사항

1. 이름 : Bunce, A. C.
2. 생몰연도 : 1901 - 1953
3. 출신 및 소속 : 캐나다, YMCA
4. 한국 선교 기간 : 함흥, 원산 중심 (1928-1934), 6년
5. 연표
1901. 영국 륀케셔(Luncashire, 맨체스터의 옛 이름) 에서 출생.
캐나다로 넘어가 교육을 받음.
1925. University of Saskatchewan 졸업
1928. 10. YMCA국제위원회 캐나다연합선교부 소속 농업 전문간사
후반 세계대공황의 심화로 한국농촌이 피폐해지자 기독청년회(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이하 YMCA)의 초빙을 받아 한국 옴.
6년 동안 함흥 지역을 중심으로 농촌갱생을 위해 활동.
1934. 일제의 탄압과 YMCA국제위원회의 요청으로 내한 선교사들이 모두 본국으로
송환되는데, 번스도 이 때 미국으로 감
귀국 후 아이오와 (Iowa)대학에서 가르침.
1937. 위스콘신 (Wisconsin) 대학교에서 농업경제학으로 석·박사 학위 동시 취득.
1941. 미국시민권자가 됨.
1943. 아이오와 주립 단과대학 (Iowa State College) 농업경제학과 조교수 역임
1944. 미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oard, 이하 FRB) 국제부 아시아 관련
자문위원.
1946. 2. 내한하여 하지의 농업·경제 고문으로 일하면서 미소공동위원회 미국 대표
단에 합류. 토지개혁 추진 과정에서 귀속농지매각계획을 추진하였으나 이루
지 못함.
전쟁 발발 직전부터 태평양 문제연구회(Institute of Pacific Relations, 이하
IPR)에서 활동하면서 한국관련 논문 발표.
1948. 10. ECA 주한사절단정으로 대한원조경제정책의 국무부대표로 활동
미군정의 경제문제 책임자로 임명.
미국 경제 협조처(Economic Coperation Administration, 이하 ECA)의
한국지부장으로 한국전쟁 발발 직후까지 활동.
1952. 필리핀 경제고문으로 파견
1953.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
6. 가족 사항
아버지 : 아더 번스 (Arthur C. Bunce)
어머니 : 엘리자베스 (Elizabeth C. Bunce)


Ⅲ. 선교사 소개 : 아더 번스 (Arthur C. Bunce)

1. YMCA의 농촌 전문 간사로 파견된 아더 번스
1920년대는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으로 전국 각지에서 농민들의 소작쟁의와 수리조합 반대운동 등 전국 규모의 농민 단체가 결성되어 농민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되던 시기였다. 사회주의자들은 일제 및 지주들과의 투쟁을 통한 적극적인 농민운동을 전개하였고, 한편으로는 농민계몽, 생활개선, 농사 개량 등을 주요 목표로 한 ‘농민계몽운동’이 전개되었다. 농민계몽운동은 일차적으로 교육진흥 · 물산장려 · 농촌교화 · 대중각성운동 등을 통해 국민의 실력을 양성하여 장차 독립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민족 경제 자립운동으로서 민족개량적 성격이 강하였는데, 이러한 움직임의 중심에는 기독교가 있었다.

YMCA에서는 국제위원회와 농촌문제 전문간사의 파송과 농촌사업 지원등을 협의하였고, 그 뒤 1926년 4월 5일부터 9일까지 5일간 서울에서 조선 YMCA의 농촌사업의 기본 윤곽을 마련하기 위해 ‘YMCA 농촌사업협의회’가 열렸는데, 이 협의회에서는 농촌운동의 목적과 필요성, 재정과 출판물 조달 등에 관한 내용과 함께 외국인 전문 간사의 자격과 역할에 대해 확정하였다.

번스도 이 흐름에 따라서 1928년 10월 그의 부인과 함께 캐나다연합선교부 소속 농업 전문 간사로 내한하였다. 농촌사업에 있어 외국인 간사들의 임무는 매우 중요하였다. 이들은 국제 YMCA를 통해 한국으로 파송된 영미권 사람들로 기독교 선교와 함께 농촌사업을 전개하는 데 있어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할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다.

번스를 포함해 총 5명이었는데, 가장 먼저 내한 한 에비슨은 쌀농사 전문가로 광주YMCA를 통해 호남지방부에서 활동하였고, 농촌교육 전문사인 쉽은 선천 YMCA총무와 함께 관서지방부에, 1929년 4월 내한한 클라크(F.C. Clark)는 농업행정가로 YMCA연합회 농촌부 간사와 함께 경성지방부에서 활동하였다. 번스는 함흥 YMCA총무와 함께 관북 지방(함경남도 · 간도)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번스가 주로 활동한 지역은 함흥·원산 지역으로 19세기 말부터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들이 정착하여 활동하던 곳이다. 관북 지역은 1888년 이래로 캐나다 장로회 선교부 소속으로 하크니스 부부(Harkness,1888), 게일(Gale, 1888), 펜윅(Malcolm C. Fenwick, 1889), 에비슨(Olive R. Avison, 1892), 멕켄지(William J. McKenzie, 1893)가 내한하여 복음선교, 의료선교 활동을 전개한 지역이다. 그리고 황해도 장연의 소래교회에서 활동하던 맥켄지 (W. J. McKenzie) 선교사의 영향으로 캐나다 장로교회가 한국선교를 적극 지원하였다. 이처럼 이미 한국에서 사역하고 있던 장로교 선교공의회의 제안에 따라 캐나다 선교사들은 원산에서 사역을 시작하여 한국의 북동쪽에 위치한 함경남도, 함경북도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하게 되었고, 캐나다 선교부의 관할 지역은 동만주지역(두만강 이북지역)까지 포함되었다. 그 후 캐나다 감리교, 장로교 선교부는 보다 효율적인 선교활동을 위해 1925년 ‘캐나다연합선교부’로 재조직 되었다.

대체로 관북 지역은 미국 장로교, 호주 장로교 선교부와는 달리 전통적인 캐나다장로회의 성격이 강한 지역이었다. 캐나다장로회는 스코틀랜드 장로회의 전통에 있는 교회로 일찍부터 해외선교와 교회연합에 매우 적극적인 교회였고, 선교본부에서 어떤 정책을 수립하여 선교 현장에 강요하기보다는 피선교지 중심의 선교에 중점을 두었다. 관북지역은 YMCA농촌운동이 가장 활발히 진행된 곳 중 하나였다.

2. 아더 번스의 한국인에 대한 평가와 방향성 제시
번스가 내한한 1928년은 YMCA 농촌사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시기로서 농촌사업의 조직이 정비되고 농사개량·형동조합운동이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번스는 동년 10월 내한 직후 경성에서 몇 달간 한국어를 공부했다. 따라서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기는 YMCA 농촌 상업이 조직적으로 정비되어 사업이 본격화되던 1929년부터이다. 그는 ‘한국인이 자신에게 큰 관심과 존경을 가지고 있지만, 진취적인 마음과 야망이 부족하고, 감정이 자극받으면 이성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고 하면서 그 이유가 ‘그들이 알지 못하는 근대적인 것이 침입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며, 아직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우회적으로 이해하진 못하지만 아마도 언어 소통의 문제가 크기 때문’이라고 한국에 대한 첫인상을 남겼다.

번스는 인도의 체계적 교육환경 설치를 통한 고용의 안정을 이룬 것이 한국의 농촌 현실에도 적용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번스는 캐나다의 밀 공장의 예를 소개하면서 ‘진보한 농촌 사업이 지역 공동체 경제와 유기적 관계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이러한 농촌 사업을 위해 제도적으로 보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한국의 단순한 농지 이용과 재래식 농법의 폐해를 지적하고 인분을 직접 땅에 뿌리는 것보다 균형 잡힌 비료를 사용하고 가축 사료로 비료용 콩깻묵을 이용하는 것이 구릉이 많은 지역에 유용한 농법이라며 함흥지역의 지형적 특성에 맞는 농법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미작만 하는 것 보다는 가축을 키워 토질을 보존하고 우유를 생산하여 부족한 영양에 시달리는 농촌민들의 식품 공급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3. 농사강습회 개최
YMCA와 YWCA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덴마크 농촌시찰과 예루살렘 대회 참가를 계기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는데, 덴마크 농촌시찰과 함께 미국 농업 선교사들의 농업지도, 생활지도 등 서양의 농법과 농업경영 방법들이 소개 되면서 협동조합이 주력사업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장로교·감리교 양 교파 및 각 선교회와 연합으로 에큐메니칼운동 차원에서 농사강습회가 전국적으로 개최되었다.

이순기와 번스가 주관하였던 함경도 지방도 농사강습과 판매 · 소비조합 방면에서 특징적인 모습을 보였다. 원산YMCA와 함흥YMCA를 중심으로 전개된 농사강습회는 대표적 산간지대인 관북지방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여 다양한 품종재배 형태의 강습이 진행 되었다.

4. 아더 번스의 농촌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
번스는 세 마을을 지정해 당시 농촌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계획을 구상하고 진행 시켰다. 그는 지정한 세 마을에 건물을 짓고, 교육, 건장, 경제, 여성부, 소년부, 조직부를 구성해 각 분야별로 구체적인 생활 환경 개선 계획을 세웠다.

교육 분야에서는 ① 문맹을 깨치기 위한 야학 ② 적은 인원이 책을 소유하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마을 도서관 건설 ③ 경제, 지리, 역사 등의 주기적인 교육 강좌 개설 ④ 미신, 술, 결혼, 빚 등 사회악에 대한 강좌를 구체적으로 구상

건강 분야에서는 ① 시멘트로 지붕과 내벽을 만든 공중 화장실 건설 ② 결핵과 기생충 감염 (90%이상의 사림이 이로 인한 감염 증세를 가짐) 예방을 위한 간단한 위생 교육 ③ 각 가정 별로 청결한 화장실 설치 ④ 공동 목욕탕 설치

5. 아더 번스의 정치 문제에 관한 인식
한국의 정치·경제 문제에 대한 번스의 입장은, 그가 식민지시기 YMCA 간사로 일할 당시에 이미 구체화되어 있었다. 우선 그는 YMCA 활동을 하면서 한국 기독교계가 여전히 전통적 가르침에 사로잡혀 “대중들을 섬기지” 못한다고 보았고 목사들이 사회주의에 대해 무지한 것에 대해 놀랐다. 그는 농촌의 소득증대가 필요하지만 “산업의 성장”이 “국부”만 아니라 “농산물 소비를 위한 시장”을 창출해낼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해방 직전 민간국제 학술연구단체인 태평양문제연구회를 통해 한국에 관한 두 편의 글을 발표했다. 그는 우선 연합국이 카이로회담에서 한국이 “적절한 절차를 거쳐서” 독립될 것이라고 약속한 것은 한국이 수세기 동안 중국, 일본과 달리 자신들의 “언어, 문자, 관습과 문화”를 지녀온 점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한반도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중국, 러시아, 일본의 “초점이” 되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들 국가들이 한반도 주변의 “집단안보”에 참여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한반도의 “국제무역과 투자의 발전”을 위한 “국제적 협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업발전”과 무역의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가 이전부터 견지해온 입장으로 그의 해방 후 활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번스는 또한 일본 패망 후 한반도에 “민주적인 전국적 의회”가 부재한 것이 많은 문제를 만들 것이라고 보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위원회”를 구성, 의회기능을 하는 “한국위원회(Korea National Coucil)”을 조직토록 해야 한다는 일을 제시했다. 또한 번스는 해방 전 중국 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광복군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이들과 더불어 미주 한인들이 “공무와 질서”를 유지하는 “효과적 수단을 조직”하기 위한 “잠재적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한국인 자문위원회”를 구성하면 연합국의 관할 아래 “임시정부”를 수립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번스는 해방 후 김구와 이승만 등 중경 임시정부계열의 반탁입장과 ‘극우적’ 성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6. 아더 번스의 농촌문제의 심각성 인식
그 당시에는 전체 인구의 75%에 달하는 사람들이 토지를 경작하지만, 자신들이 수확한 량의 1/3에서 3/4에 달하는 과도한 “소작료와 부대비용(세금)”을 지주들에게 내고 있었다. 그는 소작인의 현실을 지적하기 위해 자신이 활동했던 함경도 지역에서 직접 조사한 사례를 소개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수리조합을 만들어 농민들에게 수리조합비를 20년간 과도하게 물려서 결국 토지가치를 저하시키는 현실을 목도했다. 그래서 농민들은 생활의 곤궁을 벗어나기 위해 토지를 방매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아더 번스는 농촌 문제의 심각성을 해결하기 위해 세 가지 조치를 즉시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의 토지는 즉시 국가에 의해 “수용되어야”한다. 둘째, 수리조합비 상환기간이 짧은 지역에서는 상환기간의 연장과 조하비 인하가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소작료의 “강제 인하”와 함께 규정을 위반하는 지주에 대해 “무거운 벌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즉각적인 조치 이후에는 “국가적 토지사용계획”즉 “기생적인 지주층의 농민들에 대한 지배력”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7. 미국 경제 고문으로서의 아더 번스

1946년 2월 11일 경제 고문인 번스 휘하 11명이ㅣ 미 군정청 정치고문실로 배속되었다. 국무부는 “번스의 경제 고문팀이 정치 고문실에 배속되지만 정책적으로 점령국 당국에 예속되는 것은 아니므로 경제정책문제에 대한 최종적 권한을 가지고 국무부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현할 것”을 지시했다.

번스 고문팀은 각 분야 전문가, 특히 재정 및 경제 관련 전문가들 위주였다. 이들 가운데는 번스, 아펜젤러, 키니, 베커처럼 선교사 혹은 선교사 부모를 둔 경우가 많았다. 1946년 1월 내한한 제임스 피셔(James E. Fisher)와 함께 배재고등보통학교 교장으로 오래 재직한 아펜젤러가 이때 공보부에 합류함으로 미군정 고문 팀에 배재, 연희전문 등 서울의 교육선교사 출신들의 영향력이 커졌다. 번스가 키니 등 한국 체류경험을 가진 인사들은 남한의 혼란을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이 아닌 사회경제적 모순의 산물로 인식하면서 사회개혁을 추구하려고 했다.

번스는 미소공동위원회 미국 측 대표단 5명 중 한 명으로서 경제분과를 이끌었다. 그의 의견은 1차 미소공동위원회 개시 전후부터 이듬해인 1947년 여름까지 미국무부가 추구한 정책과 합치되어서 그에게 전폭적인 신뢰가 이루어졌고, 1946년 10월경, 공사로 승진하고, 그는 남한에서 국무부의 정책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입지를 확보했다. 1946년 5월 9일 이후에 ‘임시정부’ 구성을 위한 협의체에 참여할 단체의 성격을 두고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회담이 휴회되자 미군정은 본격적으로 좌우합작운동에 착수했다. 한편으로 미국은 미소공동위원회 속개를 위해 평양의 소련군과 접촉했다. 번스는 1946년 10월에 북한에 가서 조만식, 김일성 등을 면담하기도 했다.

8. 아더 번스를 통해 본 선교사들의 중요성
아더 번스는 미국 국무부의 정책형성에 영향을 주면서도 정책집행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다. 번스는 전후 한국의 경제안정과 산업발전을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지만 미군정의 비협조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비록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서였기는 하지만 1948년 4월, 일본인 소유 귀속농지들이 농민들에게 불하되도록 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유상몰수, 유상분배안은 한국전쟁 전후로 실시된 남한의 농지개혁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해방 이후에는 원조 경제를 책임진 ECA의 한국지부장으로 있으면서 가능한 한 이승만의 개입을 차단하면서 한국정부의 인플레이션 정책에 제동을 걸면서 경제부흥을 추진했다. 비록 ECA의 ‘자립경제’를 위한 본격적인 활동은 한국전쟁 직후의 두 달 정도에 불과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한국의 경제 성장은 1950년대부터 가능했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 초기에 이승만 정권의 견제 등으로 한국전쟁 발발 이후 태국으로 전출되게 된다.

그를 통해서 우리는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선교사들의 중요성을 알 수 있게 된다. 2차 대전을 겪으면서 미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제3국에 대한 정보가 절실히 요구되었을 때 한국과 관련된 정보를 체계적으로 구축한 집단은 선교사들이 거의 유일했다. 번스는 선교사로 함흥지역에서 YMCA 활동에 6년간 종사하면서 한국 내 농민과 노동자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전후에 그의 교육배경과 함께 그가 미국무부와 ECA의 고위관리가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19-06-13 11: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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