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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Hankins, Ida(1882-?, MS)
 작성자 : 유승은  2019-06-27 13:10:13   조회: 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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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기본사항

1. 이름 : 핸킨스 / Hankins Ida / 한국명 : 행길아다 혹은 신길아다
2. 생몰연도 : 1882.8.21 ~ ?
3. 출신 및 소속 : 미국 노드콜로라도주 올리브마운트 출생, 남감리교
4. 한국선교기간 :1911 ~ 1940
5. 연표
1882.8.21 미국 노드콜로라도주 올리브마운트 출생
1900 ~ 1903 노드콜로라도여자대학에서 수학
피바디대학에서 석사 학위
1911 남감리교 선교사로 내한, 서울에서 한국어 공부
1912배화여학교 교사로 취임
1914제 3대 배화여학교 당장으로 임명되어 2년간 봉직
1917 ~ 1920 개석의 미리흠여학교 교장으로 봉직
1920 호수돈여학교 부교장으로 취임, 7년간 봉직
1931 미리흠여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여 학교 발전에 공헌
1931 콜럼비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
1932 중부연회에서 목사안수 후 개성북부교회 부목사 시무
1940 일제에 의해 강제 송환, 귀국후 선교본무에서 근무
1947. 9 선교사직에서 은퇴

6. 가족사항
없음


II. 선교사 소개

1. 핸킨스의 생애

핸킨스 여선교사는 남감리회 목사로이자 교육가이다. 그녀는 1882년에 미국 노드콜로라도주올리브마운트에서 출생하였다. 그녀는 노드콜로라도에 있는 여자대학에서 공부하였고 1910년 스카릿성경학원에 진학하여 1년간 신학공부를 하였다. 1911년 남감리회 선교사가 되었고, 그녀는 대한민국 서울에 선교사로 내한하게 되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한국어를 배웠으며 이후 배화여학교 교사로 취임하게 되었다.
1914년 제 3대 배화여학교 당장으로 임명되어 2년간 봉직하였으며 1917년 개성의 미리흠여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여 1920년까지 봉직하였다. 1920년 역시 개성에 있는 호수돈 여학교 부교장으로 취임하고, 7년간 봉직하였다.
그동안 안식년을 1917년, 1923년, 1930년마다 가지면서 미국으로 가서 학업을 계속 이어갔다. 그녀는 피바디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땄고, 1931년에는 콜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각각 받았다. 1931년 그녀는 다시 미리흠여학교 교장으로 돌아왔고, 1932년 중부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녀는 미리흠여학교 교장으로 학교 발전에 공헌을 한것으로 판단된다. 개성북부교회 부목사로도 시무했다. 그녀가 시무한 개성북부교회는 “삼포막”이라고 부르는 한 인삼창고에서 시작한 교회로 1902년 부임한 크램(W. G. Cram)선교사에 의해 발전하며 개성북부교회로 따로 분리했으며 여성선교사들이 사역함에 따라 자연히 여성교인들이 많아졌다. 핸킨스는 1932년 미리흠여학교 교장으로써 복무하면서 동시에 개성북부교회 부목사로 목회에도 힘써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1940년, 한국에 들어온지 29년만에 일제에 의해서 강제 송환될 수 밖에 없었다. 귀국후 그녀는 선교본무에 근무하다가 1947년 은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정확한 업적에 대해서는 찾아 볼수는 없었으나 배화여학교, 미리흠여학교, 호수돈 여학교 등 여자학교에서 종사한 것을 보아서는 여성교육에 대한 공헌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이 간다. 당시 시대는 여성이 무시받고 천대받던 시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은 교회를 세우면서 학교를 같이 세웠는데, 여성학교는 남성학교에 비해 그 수가 결코 뒤지지 않았다. 기독교 학교에서 공부한 여성들은 이 나라 근대화에 지대한 역할을 감당했다. 특히 개성의 경우 남감리교회가 세운 호수돈, 미리흠 여학교는 각 분야의 우수한 인재를 배출한 명문학교이다. 이러한 학교에서 교장을 역임한 그녀는 기독교적 평등 세계관을 가지고 들어와서 학교에서 복음을 전하고 한국 여성들의 지성을 깨운 것으로 추측된다.
그녀는 오랫동안 한국의 여성 교육쪽에서 종사하였으며, 그럼에도 자신의 학업을 소홀히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스카릿성경학원에서 신학 공부를 한 이후에 선교 내한 중에도 꼭 안식년을 가지면서 안식년때마다 공부를 하고 학위를 땄다. 피바디대학에서 석사를, 콜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함으로써 그녀는 자신의 학업에도 소홀히 하지 않고 더욱 쌓았으며 그것을 가지고 다시 한국으로 와서 선교를 이어갔다.


2. 핸킨스 선교사가 있던 미리흠여학교에 관하여…

미리흠 여학교(Mary Helm School)는 1906년 4월 개성에 설립된 여학교이다. 남감리교 선교사 크램의 부인이 개성에 있는 선교사 주택내에서 과부들을 모아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기원이 되었다. 초기에는 크램부인, 윤치호, 김광기 등이 교사로 있었다. 크램 선교사가 귀국 이후에는 갬불 부인이 학교를 관장하였다. 해외선교부에서는 메리햄의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거액의 회사금을 지급하여 학교 운영을 원활하도록 하였고, 메리헴학교가 발음이 어려워 한자로 미리흠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교육방침은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가정형편에 의해 학령을 초과한 여자,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여성들에게 초등 교육 등을 가르치고 실제생활에 필요한 유용한 기능을 전수하였다.
핸킨스 여선교사는 1917년 미리흠여학교의 교장이 되었고 1927년까지 복무한다. 그녀의 뒤를 이어 니클스(Miss Nichils)가 교장으로 취임하게 되는데 그녀가 휴가를 가거나 학교를 비우게 되는 일이 생길 때는 핸킨스가 교장의 자리를 대신 해주기도 하였다.
이것을 보아서 핸킨스 선교사 역시 미리흠여학교에서 가정형편이 어렵고 학령을 초과한 여성들, 특히 어린나이에 과부가 된 여성들을 기독교정신으로 가르치면서 여성들에게 초등교육을 가르치고 덕을 함양시키며 그녀들이 실제생활에서 여성으로 살 수 있는 유용한 기술들을 전수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핸킨스는 대학을 나온 여성이었고, 아직 대한민국은 여성이 초등학교 과정도 쉽게 수학 할 수 없는 시기였다. 그런 여성들에게 교육을 시키고자 핸킨스는 선교사는 노력했음을 예상할 수 있다.


3. 핸킨스 선교사가 있던 배화여학교에 관하여 …

남감리교회의 여선교사 캠밸 부인은 한국에서 선교사업으로 교욱 사업이 필요함을 느끼고 여선교회 안에 교육부를 두고 학교 설립을 추진하였다. 캠밸부인은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서울 내자동 75에 몇채의 가옥을 매입하고 정식으로 여학교를 설립했다. 이 배화여학교는 초창기에는 고아원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1913년 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중학과를 고등과로, 초등과를 보통과로 개편하였다. 1925년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로 교명을 개칭하였고 배화여자보통학교를 분립시켰다.
이 배화여학교는 학생의 연령은 10세부터 18세까지였으며 성경을 가르치며 기독교교육이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세례를 받았고 가정에서까지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졸업생 중에는 전도자도 많이 배출되었다. 성경공부에 힘을 썼으며, 매주일마다 학생들은 예배를 드렸다. 많은 배화여학교 출신 학생들이 독실한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많은 이들이 배화여학교 학생들을 통해 교회로 인도되었다.
이러한 배화여학교에서 핸킨스는 캠밸, 스미드에 이어 3번째 교장으로 배화여학교에 있었다. 이처럼 핸킨스 여선교사는 배화여학교의 초기 교장 중 한명으로서 여학생들에게 성경교육에 힘쓴 것으로 보인다.


4. 핸킨스 선교사가 있던 호수돈여학교에 관하여…

1916년 개성에서는 처음으로 유치원을 병설하였으며, 호수돈여자보통학교와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로 분리되어 운영하게 되었다. 1918년에는 실업부인 기예과를 신설하였고, 1922년에는 재학생수가 600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핸킨스 여선교사는 1920년 부교장으로 부임하게 되었고, 7년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호수돈여학교에서 부교장으로 있었다. 당시 일제하의 교육정책으로 독립사상 억제와 우민화 정책, 기독교 사립학교의 동제정책, 교육과정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며, 성경, 지리, 역사를 가르치지 못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복무하고 있는 호수돈여학교는 1922년 재학생수가 600명에 이르게 된다.

5. 여학교에서 여성교육에 힘쓴 핸킨스 여선교사

기독교가 근대화의 기초를 놓은 것 가운데 가장 자랑스런 발자취 중 하나가 바로 여성교육이다. 선교사들은 교회를 세우면서 학교를 같이 세웠는데, 여성학교는 남성학교에 비해서 그 수가 뒤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기독교 학교에서 공부한 여성들은 한국 근대화에 지대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특히 남감리교회가 세운 호수돈, 미리흠 여학교는 각 분야의 우수한 인재를 배출한 명문학교였다. 옛날 집 안에서 바느질만 배우던 소녀들이 올망졸망 앉아서 키 큰 선교사에게 성경을 배우는 모습은 교인들에게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학교에 보낸 딸이 얼마 되지 않아 한글을 깨치고 십계명을 암송하고 심지어 바느질도 잘하니 부모가 어떻게 안좋아할 수 있는가? 남감리교가 세운 호수돈여학교와 미리흠여학교는 이렇게 여성 교육에 앞장서서 근대화 여성을 세우는데 힘썼으며, 이 두 학교에서 교장과 부교장을 했던 사람이 바로 핸킨스 여선교사이다.
이것으로 보아 핸킨스 여선교사는 자신의 생애를 여성교육에 힘쓰며 근대화에서 여성을 기독교세계관을 가지고 가르치고 깨어있는 여성 기독교인을 배출하기위해 힘썼음을 알 수 있다.
2019-06-27 1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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