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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Ericksson, Ingleborg Swea(1891-1977, SA)
 작성자 : 강성찬  2019-06-27 14:28:39   조회: 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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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슨 선교사 / Ericksson, Ingleborg, Swea. (1891. 10. 22~1977)

Ⅰ. 기본 사항

1. 이름: Ericksson, Ingleborg Swea. / 에릭슨 / 한국명: 어륵손, 에릭손
2. 생몰연도: 1891. 10. 22~1977.
3. 출신 및 소속: 스웨덴 여자 사관 출신
4. 한국선교기간: 1914. 3. 7. ~ 1929. 2. 6
5. 연표
1914. 3. 7. 한국 내한
1914. 3. 9.~ 어학연수
1915. 9. ~ 전주영 및 지방부 부인 사업담당
1916. 서울 본영
1922. 본영 서기장관실에서 근무
1923. 본영 회계관에서 근무
1924. 사령관 비서, 군국 회계관 역임
1929. 개성 지방관
1929 2. 스웨덴으로 출국 (휴가를 갔으나 이후 돌아오지 않음)
1951. 정령보로 은퇴
1977. 사망 추정
6. 가족사항
독신


Ⅱ. 선교사 소개: 에릭슨(Ericksson, Ingleborg Swea. 1891. 10. 22~1977)

1. 한국에 온 12명의 스웨덴 선교사 중 하나인 여성 독신선교사
어륵손에 대한 설명은 많이 기재되어있지 않다. 그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자료는 그녀가 1914년에 내한을 했다는 사실이며, 1929년에 그녀가 한국을 떠났다는 등의 거의 공식적인 기록만 있을 뿐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책에도 역시 이름과 내한, 그리고 외한의 기록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설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양화진선교회의 자료에 따르면 유럽에 있는 스웨덴에서 한국에 파송된 구세군 선교사는 다섯 차례에 걸쳐서 모두 12명이라고 한다. 최초의 스웨덴 선교사는 코흘러(Kohler, Magda), 프릭(Frick, Sofia), 우을선(Olsson, Verna)이라고 한다. 이들은 1911년 12월 24일에 여성 독신선교사로 내한하였다.
1911년 12월 24일 여성 독신선교사 내한 이후, 1914년에 제2진으로 파송된 선교사는 어륵손(Ericksson), 하변천(Havenstein), 인귀지(Lindquist), 위설영(Westhling), 옥거흠(Akerholm)부부 등이다. 그리고 1915년에는 변세돈(Bersten)선교사가 내한했으며, 1926년에는 두영서 사령관 부인(Toft Mrs.), 그리고 1928년에 이대전(Ryden)선교사 등이 계속하여 내한하였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여 양화진 묘역에 묻힌 스웨덴 출신의 구세군 선교사는 두 사람이다. 서울에서 4개월 간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1912년 4월 29일 별세한 프릭 선교사가 첫 번째이고, 다음은 경북지방에서 1년 5개월간 담임사관으로 헌신하다가 1913년 5월 23일 별세한 코흘러 선교사라고 한다.
그녀는 스웨덴의 죤 코링 군영 출신으로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부위에 임관한 후 영국에서 일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3월 9일에 한국 선교사로 와서 어학을 익혔다. 1915년 9월에는 전주영 및 지방부 부인 사업 담당으로 부임하였다. 이어서 1916년 서울에 있는 본영에서 ‘뻬인뿌리쥐 부인’과 함께 유년사업을 하기로 되어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뻬인뿌리쥐 부인은 어느 날 다른 곳에 간다는 기록이 있는데, 어륵손과 오랜 사업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또한 본 신문의 ‘본영통신’에는 ‘에릭손 부인’이라고 명시를 했다.

한편 그녀의 결혼유무에 대해서는 양화진선교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글을 기재하였다.

“스웨덴에서 처음으로 온 선교사들을 환영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이건영 통역은
그들이 남편이 없다는 말을 듣고, ‘독신을 과부’로 잘못 통역하였다는 웃지 못 할
후일담이 전해진다.”

그렇다면 1924년 3월 구세군 신문에서는 그녀가 몸이 좋지 않았다고 할 때에 어륵손을 향해 부인이라고 하지 않고, ‘어륵손 씨’라고 기명한 것은 과부로 잘못 통역한 것에 대한 수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1922년에는 본영 서기장관실에서 일을 했으며, 1923년에는 본영 회계관에서 근무하였다. 1924년에는 사령관비서를 했다가 군국 회계관에서 다시 근무(역임)한 기록이 있고, 스웨덴으로 돌아간 해인 1929년은 개성 지방관에서 근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2. 에이커홈 부부, 옥거흠 등과 함께 한 대전도집회
1918년 7월 신문에 따르면 어륵손은 이때에 복음전도의 큰 집회를 한 것으로 보인다. 신문에는 명확히 나와 있지 않지만, 양화진선교회의 자료에 따르면 이때 어륵손과 함께 특별 부흥회(전도대회)를 같이 한 인물들은 에이커홈 선교사 부부, 옥거흠 등으로 보인다.

“거오월십칠일(음역사월팔일)은 불가명졀셕가몬의 탄일인바 … 구셰군에서난 이긔회를
리용하야년가이 대젼도회를 개하던바 금년에도 디방관 졍위옥거흠씨와 동부인과
경셩본영에서 특송하신 졍위어륵손씨와 해디방 관하지영사관 일동이 합심합력하여
대활동함으로 인산인해를 닐운시가즁에셔 가로젼도를 여섯 번개하고 영내례비를
닐곱번개한바 복음에 말삼을 쟐드른사람 슈효가 일천사빅삼십인이오 회개한
사람슈효가 삼십일인고로 대숭리를 엇엇으며 사람이 원악만히 모이였던 계제라 십팔일
토요와 십구일쥬일에도 여젼히 례배마다 사람의슈효가 만핫슴으로 삼일동안 활동한
결과로 대숭리를 잇엇다더라.”

여기서 에릭슨 선교사는 옥거흠 등과 함께 대전도집회에 참여했으며, 특송을 했다는 기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3. 몸이 좋지 않아 결국 스웨덴으로 복귀한 에릭손
1924년 3월 신문에 따르면 어륵손은 몸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달 1924년 2월 구세군신문에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긔관어륵손씨는 거월즁순에 세부란스병원에셔 수술을밧은바 본긔사를 긔록할때에도
퇴원치못하고 치료즁에 잇셧는데 속히 쾌복되기를 츅원하노라”

이렇듯 몸이 좋은 편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아마도 1929년 2월에 고국 스웨덴으로 휴가를 간 후에는 다시 돌아오지는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그녀가 세상을 떠난 날짜 역시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고, 다만 1977년이라는 기록만 있다. 그녀는 여생을 스웨덴에서 봉사했고, ‘정령보’로 1951년에 은퇴하였다고 한다.
2019-06-27 14:2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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